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같이 수업을 듣는 25명의 학생 중에서 아는 얼굴이 7 명 뿐 이라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이제 복학생이라는 반열에 들어서니 선배들도 쉽게 태클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복학생이니까, 하면서 용인해주는 분위기랄까. 하긴 군대서도 그렇게 구르고 왔는데 학교에서도 구른다면 왠지 억울 할 것 같기도 하다.
“야 오늘 시간 어떠냐?”
“시간?”
“응. 오늘 저녁에 신입생 환영회 있데. 안 갈거야?”
“글세, 꼭 가야해?”
“이 놈 봐라? 그러면 안 갈라구? 야, 야! 올 해 신입생들 귀여운 애 많다니까 그러네.”
“그건 그거고.”
“그래서 안 가려구?”
“생각 좀 해 보고.”
하지만 신입생들은 아마 그렇지 않겠지.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아마 오늘 있을 환영회에 꼭 참석해야 할 것이다. 나도 복학했으니 내가 1학년 때 군 복무 하던 선배들 얼굴도 뵙고,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같은 학년인 후배들과 친해지려면 안면도 익혀야 할 것이고……결론은 참석하긴 해야 하는데 그닥 내키지가 않는다.
수업은 그냥 무난했다. 군 생활동안 많이 굳었으리라 생각했던 머리도 막상 수업에 들어가니 제법 쓸 만하게 굴러가는 것 같다. 가끔 1학년 때 배웠던 개념들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떠오르지 않아 교수님의 말이 와 닿지 않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무리없는 수준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교수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학년 때 공부했던 교재를 다시 펼쳐서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교재를 놔두고 과실에 도착하니 과실에 있는 칠판에 신입생 환영회에 관련된 글이 적혀있다.
[5시 마당갈비. 신입생 만 원, 재학생 1만 5천원. 필히 참석해! -나? 회장이야!]
그 아래에 신입생인지 재학생인지 모를 낙서가 잔뜩 되어 있고……난 씁쓸히 웃으면서 그냥 낙서들은 다 지웠다. 신입생 환영회가 오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학교 오니 친구가 말해주더라. 참석 할 거냐고. 생각해 본 다고는 했으나, 대부분의 친구들은 다 참석 할 것 같다. 복학생 중에서는 나만 마음을 못 정한 것 같고……. 아무래도 참석을 해야겠지?
생각은 길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뭐, 참석해야지. 생각해보니까 복학하고 아무런 인맥이 없다. 알고 있던 선배들은 졸업했고 모르던 선배들이 실권을 잡고 있다. 군대 가기 전 2학년이었던 남자 선배들도 군대를 갔거나 이미 취업문턱에 허덕이며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보려면 따로 연락을 해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말까이다. 아무래도 학교 생활을 하려면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루는 더디었다. 그 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막상 참석하기로 결정하니까 어서 빨리 참석하고 싶었달까. 군대 전역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그렇지만, 막상 뭔가를 기다리게 되면 엄청 시간은 느리게 간다. 수업은 일찍 끝났다. 끝나고 할 것도 마땅히 없어 동기들과 잠깐 시내로 나와 돌아다니기로 했다가, 결국 pc방으로 향했다. 남자 셋이서 한 낮에 갈 곳이 어디 있겠냐? pc방 아니면 당구장이지.
“야, 너네 무슨 게임하냐?”
“나? 난 fps종류면 다 해.”
“fps? 그게 뭔데?”
“……총 싸움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아, 그거? 서든 같은거?”
“응. 그렇지. 서든도 하긴 해. 너네는?”
“난 스포. 서든은 영 이상하더라고. 어색하고.”
“그래? 난 스포가 이상하던데. 그냥 스타나 할까?”
“스타? 고고! 무브, 무브, 무브!”
결국은 스타다. 대한민국의 남정네들이 할 수 있는 게임 중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곱으라면 몇 개 안되겠지만 아마 그 중에 들어가는 것에 스타는 반드시 끼어 있을 것이다. 컴퓨터를 상대로 4:3을 했지만 너무 손쉽게 이겨서 결국 베틀넷으로 접속해서 3:3전을 펼쳤다.
“야! 헬프, 헬프! 저글링 질럿 쳐들어와!”
“아씨, 기달려봐. 아직 멀었는데……좀 버텨봐!”
“나 지원간다. 좀만 버텨. 질럿 4마리 보냈으니까!”
“야! 나 죽어가!”
“진성아! 넌 인이 지원가고 난 12시 빈집 털러 간다! 버텨봐!”
스타하면 뭔가 아수라장이다. 첫판에서 초반 러쉬를 마린과 심시티, SCV와 구원 온 질럿과 합세하여 어찌 막아낸 다음, 동욱이의 저글링으로 빈집을 털어 한 명을 아웃시키고, 3:2를 겨우 만들었다. 진성이의 헬프와 동욱이의 초반 빈집털이로 한 명을 아웃시킨 뒤에는 비교적 게임을 수월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셋이서 스타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군대 가기 전에는 곧잘 어울려서 이렇게 스타하곤 했었는데. 새삼스레 갑자기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과 마우스는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렇게 스타 몇 판을 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미리 알람을 맞춰놔서 알람이 울리자 우리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게임을 나왔다. 계산을 치르고 나니 아직은 초봄이라 그런지 벌써 조금은 어두워져 있었다.
“아, 재미있었다. 그치?”
“그러게. 오랜만에 이런 게임하니까. 하하하하. 너희들 부대 안에서 스타만 죽어라 했나보다? 어째 실력이 별로 안 줄었는데?”
“마. 병장되면 할 것 없어서 이런 것만 붙잡고 있게 되더라고.”
“그런데 인이 너는 배 탔다면서 이런 것도 할 수 있냐?”
“배에서도 뭐, 스타만 가능한 게임 pc가 있어. 배 전용 랜 선을 이용해서 외부와는 연결이 안 되고 그냥, 뭐 배에 있는 pc끼리 가능한 정도로만? 그래서 1:1이 전부지만.”
“크크크. 이 녀석 배 탔다더니 완전 날로 했구만. 군 생활 편하게 했네, 편하게 했어.”
“마, 이것도 다 병장이 돼서 가능한 일이야. 일, 이병 짬에 이런 게 가당키나 하겠어? 나도 상병 때까지는 병장들 스타, 위닝하는거 두 손가락 쪽쪽 빨면서 구경만 했다.”
“크크크, 어쨌든. 배에서 스타를 하다니. 난 군대 있을 때 스타는커녕 pc구경도 못 했어.”
“그건 니가 꾸진 부대에 들어간 거고. 요즘 부대에 pc없는 데가 어디 있냐? 하다못해 육군 오지도 사지방이라고 있던데.”
“올, 너 해군 주제에 별 거 다 안다?”
“내 친구 중에 육군이 없겠니?”
pc방을 나와서 시덥 잖은 농담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다왔다. 가는 길에 옆집에 위치한 서서 갈비집이 보였다. 맨 처음 서서 갈비 라길래 농담 삼아서 ‘야, 서서갈비는 서서 먹으니까 서서갈비냐?’라고 했다가 이상한 놈 될 뻔 했었다. ‘당연한 거 아냐?’ ‘응?’ ‘서서 갈비는 서서먹으니까 서서갈비야.’ ‘……조크가 아니라 진짜야?’ ‘너 한 번도 안 먹어봤냐?’ ‘응.’ ‘촌놈.’ ‘카악!’ 갑자기 그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버렸다. 혼자 킥킥, 대고 웃으니까 동욱이가 잠시 날 쳐다봤지만 이내 무신경해졌다. 난 혼자서도 잘 웃는다. 습관이 되어서. 친구들도 이런 내 모습에 이미 익숙해졌다.
안에 들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집부들밖에 없다. 집부라고 해 봤자 다 후배지만……. 우리가 들어가니까 애들이 인사를 해 왔다.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이시죠? 저, 이름이?”
“어? 아, 나 강인이라고…….”
“아! 강인선배님이세요! 잠시 만요, 이름표 적어 드릴게요.”
“응. 아 회비 얼마랬지?”
“선배님은 만 오천원이세요!”
“여기.”
지갑을 꺼내 만 오 천원을 건네자 해맑은 얼굴로 웃은 후배는 돈을 받으면서 말했다.
“자리에 계시면 명찰 만들어서 금방 갖다 드릴게요.”
“응.”
대충 보니까 테이블을 여러 개 붙여 놨다. 하긴, 듣자하니 여기가 우리 학과 초반 신입생 환영회장으로 전통이 된지는 벌써 꽤 오래전이라고 한다. 사장님과도 안면이 있어서 들어와서 우리 과 학생이라고 말을 하면 일정 부분 할인 해 주시거나, 서비스를 주신다. 물론 그건 사장님 마음대로다. 어떤 서비스를 받을 지는 오기 전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푸대접 받진 않는다. 그래서 평소에 우리 과에서 단체 행사같은 것이 있으면 여기로 오고, 친구들끼리도 가끔 여기에 온다. 오늘은 몇 명이나 오려나. 예약석으로 맞춰놓은 테이블 개수를 살펴보니까 대충 80명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네.
이름을 모르는 여자후배는 날 첫 번째 손님으로 받고 나서, 동욱이와 진성에게서도 돈을 수금한 뒤에 자리로 안내해줬다. 자리에 도착해서, 아직은 딱히 할 것도 없고 괜히 일찍 왔나 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자니 후배가 명찰 세 개를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 명찰을 받고 나서 목에 걸고 나니, 갑자기 여자 후배 이름이 궁금해졌다. 혹시나 해서 명찰을 맸나 확인해 봤지만 명찰이 없다.
“아직 시간이 좀 일러서 음식을 준비하진 않았어요. 지겨우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후배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려고 했다. 음, 이름을 묻고 싶은데. 갑자기 이름을 물어야 겠다는 압박을 느낀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는 후배 손을 붙잡았다.
“어,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어? 아, 그게, 이름이 뭐야?”
“아, 제 이름이요?”
“응.”
“소담이라고해요. 한소담. 08학번 이예요. 말 놓으세요. 그리고 손 좀 놔 주시면 안 될까요?”
“어, 아. 미, 미안.”
“그럼 쉬고 계세요.”
소담이라고 소개한 후배는 금새 자리를 벗어났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부끄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모르는 여자 손을 함부로 잡다니. 내가 미쳤나…….
“휘익~ 야, 너 이 자식. 후배에는 관심 없다더니 벌써 작업이냐?”
“아, 아냐!”
“내가 보기에도 작업 같다. 요 녀석 봐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벌써부터! 크윽, 이 형아가 널 키운 보람을 느낀다!”
오바 떠는 동욱이의 머리를 한 대 박아 준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쪽팔려. 걔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데 소담이라고? 미소가 예쁜 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수지가 떠올라서 급 우울해져버렸다. 수지도 미소가 참 예뻤었는데. 에이, 잊자.
앞에 놓인 젓가락과 숟가락을 만지면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니 어느 샌가 한 두 사람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는 얼굴이 거의 없다! 결국 우리 복학생 셋은 다시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욱이가 문자를 몇 번 틱틱 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얘네들 대가리 컸다고 늦게 오겠데. 선배는 이런 자리 원래 일찍 오는 거 아니라고 그러네?”
“……우린 후배냐?”
“글세.”
아아, 한숨이여. 어색한 모습을 지나가는 후배와 인사를 했고, 서로 통성명도 했지만 솔직히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유일하게 기억이 남는 후배라면 아까 명찰을 나눠준 소담이라는 애 하나? 워낙 인상이 강렬했으니. 사건도 있었고. 아까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다. 후아, 내가 왜 그랬지?
어느덧 자리는 다 찼다. 집부들도 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조만간 시작할 것 같다. 테이블 하나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니 교수님들 자리인가?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갈비를 놓아주고, 소주랑 맥주, 콜라, 사이다가 각 테이블에 세팅이 완료 되었을 때쯤에 집중하라는 외침이 들렸다.
“자. 자! 조용. 집중 좀 해 봐요! 크흠! 안녕하세요! 절 처음 보는 분도 있을 테고, 전에 봤
던 사람도 있겠지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안녕하세요! 이번 년도 회장을 맡은 05학번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박수. 환호. 근데 난 누군지 모르겠다. 나랑 친구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 인사말을 듣고 있었다.
“오늘 자리는 신입생 환영회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신입생이겠죠! 신입생 외에도 후배님들, 선배님들 자리를 참석해 주셨겠지만, 오늘 주인공은 신입생이니까 신입생과 서로 안면 트고 인사를 나누도록 해봐요! 그리고 오늘 음식 값은 회비로 충당하고 모자란 부분은 교수님들이 내주기로 하셨으니 걱정 말고 마음껏 드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세요. 그럼 건배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잔을 따라 주세요!”
이미 세팅은 완료 되어있었다. 우리들은 벌써 술을 조금씩 따라 마시고 있었기에, 다시 꼴꼴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주를 각자의 잔에 따랐다.
“그럼 09년도 신입생의 입학을 축하하며! 09년도 행정학과의 발전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순간적으로 가게에 건배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건배라고 해서 우리들끼리도 살풋 건배했지만, 영 느낌이 안 난다. 본격적인 자리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야, 우리 괜히 온 것 같지 않냐?”
“그러게. 들러리 온 것 같은 기분이야. 여기 와서도 우리 복학생 셋이서 뭉쳐 앉아야 하고, 참 슬프다.”
동욱이의 한숨소리에 진성이가 맞장구를 쳤다.
“안되겠다! 난 로망을 찾아서 떠나야겠어!”
굳게 다짐한 듯 동욱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억지로 신입생들이 뭉쳐 앉아 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나랑 진성이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그냥 술만 따랐다. 가끔 후배들이 인사한답시고 오기도 했지만 몇 마디 하다 보니 우리들이 말주변이 뛰어난 것도 아닌지라 금세 자리를 뜨곤 했다. 배가 슬슬 불러와서 이제 그만 집에나 갈까, 고민 할 때 쯤 에 내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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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끊기가 애매하네요
이어지는 문맥이지만 중간에 그냥 끊었습니다.
“야 오늘 시간 어떠냐?”
“시간?”
“응. 오늘 저녁에 신입생 환영회 있데. 안 갈거야?”
“글세, 꼭 가야해?”
“이 놈 봐라? 그러면 안 갈라구? 야, 야! 올 해 신입생들 귀여운 애 많다니까 그러네.”
“그건 그거고.”
“그래서 안 가려구?”
“생각 좀 해 보고.”
하지만 신입생들은 아마 그렇지 않겠지.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아마 오늘 있을 환영회에 꼭 참석해야 할 것이다. 나도 복학했으니 내가 1학년 때 군 복무 하던 선배들 얼굴도 뵙고,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같은 학년인 후배들과 친해지려면 안면도 익혀야 할 것이고……결론은 참석하긴 해야 하는데 그닥 내키지가 않는다.
수업은 그냥 무난했다. 군 생활동안 많이 굳었으리라 생각했던 머리도 막상 수업에 들어가니 제법 쓸 만하게 굴러가는 것 같다. 가끔 1학년 때 배웠던 개념들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떠오르지 않아 교수님의 말이 와 닿지 않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무리없는 수준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교수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학년 때 공부했던 교재를 다시 펼쳐서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교재를 놔두고 과실에 도착하니 과실에 있는 칠판에 신입생 환영회에 관련된 글이 적혀있다.
[5시 마당갈비. 신입생 만 원, 재학생 1만 5천원. 필히 참석해! -나? 회장이야!]
그 아래에 신입생인지 재학생인지 모를 낙서가 잔뜩 되어 있고……난 씁쓸히 웃으면서 그냥 낙서들은 다 지웠다. 신입생 환영회가 오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학교 오니 친구가 말해주더라. 참석 할 거냐고. 생각해 본 다고는 했으나, 대부분의 친구들은 다 참석 할 것 같다. 복학생 중에서는 나만 마음을 못 정한 것 같고……. 아무래도 참석을 해야겠지?
생각은 길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뭐, 참석해야지. 생각해보니까 복학하고 아무런 인맥이 없다. 알고 있던 선배들은 졸업했고 모르던 선배들이 실권을 잡고 있다. 군대 가기 전 2학년이었던 남자 선배들도 군대를 갔거나 이미 취업문턱에 허덕이며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보려면 따로 연락을 해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말까이다. 아무래도 학교 생활을 하려면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루는 더디었다. 그 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막상 참석하기로 결정하니까 어서 빨리 참석하고 싶었달까. 군대 전역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그렇지만, 막상 뭔가를 기다리게 되면 엄청 시간은 느리게 간다. 수업은 일찍 끝났다. 끝나고 할 것도 마땅히 없어 동기들과 잠깐 시내로 나와 돌아다니기로 했다가, 결국 pc방으로 향했다. 남자 셋이서 한 낮에 갈 곳이 어디 있겠냐? pc방 아니면 당구장이지.
“야, 너네 무슨 게임하냐?”
“나? 난 fps종류면 다 해.”
“fps? 그게 뭔데?”
“……총 싸움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아, 그거? 서든 같은거?”
“응. 그렇지. 서든도 하긴 해. 너네는?”
“난 스포. 서든은 영 이상하더라고. 어색하고.”
“그래? 난 스포가 이상하던데. 그냥 스타나 할까?”
“스타? 고고! 무브, 무브, 무브!”
결국은 스타다. 대한민국의 남정네들이 할 수 있는 게임 중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곱으라면 몇 개 안되겠지만 아마 그 중에 들어가는 것에 스타는 반드시 끼어 있을 것이다. 컴퓨터를 상대로 4:3을 했지만 너무 손쉽게 이겨서 결국 베틀넷으로 접속해서 3:3전을 펼쳤다.
“야! 헬프, 헬프! 저글링 질럿 쳐들어와!”
“아씨, 기달려봐. 아직 멀었는데……좀 버텨봐!”
“나 지원간다. 좀만 버텨. 질럿 4마리 보냈으니까!”
“야! 나 죽어가!”
“진성아! 넌 인이 지원가고 난 12시 빈집 털러 간다! 버텨봐!”
스타하면 뭔가 아수라장이다. 첫판에서 초반 러쉬를 마린과 심시티, SCV와 구원 온 질럿과 합세하여 어찌 막아낸 다음, 동욱이의 저글링으로 빈집을 털어 한 명을 아웃시키고, 3:2를 겨우 만들었다. 진성이의 헬프와 동욱이의 초반 빈집털이로 한 명을 아웃시킨 뒤에는 비교적 게임을 수월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셋이서 스타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군대 가기 전에는 곧잘 어울려서 이렇게 스타하곤 했었는데. 새삼스레 갑자기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과 마우스는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렇게 스타 몇 판을 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미리 알람을 맞춰놔서 알람이 울리자 우리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게임을 나왔다. 계산을 치르고 나니 아직은 초봄이라 그런지 벌써 조금은 어두워져 있었다.
“아, 재미있었다. 그치?”
“그러게. 오랜만에 이런 게임하니까. 하하하하. 너희들 부대 안에서 스타만 죽어라 했나보다? 어째 실력이 별로 안 줄었는데?”
“마. 병장되면 할 것 없어서 이런 것만 붙잡고 있게 되더라고.”
“그런데 인이 너는 배 탔다면서 이런 것도 할 수 있냐?”
“배에서도 뭐, 스타만 가능한 게임 pc가 있어. 배 전용 랜 선을 이용해서 외부와는 연결이 안 되고 그냥, 뭐 배에 있는 pc끼리 가능한 정도로만? 그래서 1:1이 전부지만.”
“크크크. 이 녀석 배 탔다더니 완전 날로 했구만. 군 생활 편하게 했네, 편하게 했어.”
“마, 이것도 다 병장이 돼서 가능한 일이야. 일, 이병 짬에 이런 게 가당키나 하겠어? 나도 상병 때까지는 병장들 스타, 위닝하는거 두 손가락 쪽쪽 빨면서 구경만 했다.”
“크크크, 어쨌든. 배에서 스타를 하다니. 난 군대 있을 때 스타는커녕 pc구경도 못 했어.”
“그건 니가 꾸진 부대에 들어간 거고. 요즘 부대에 pc없는 데가 어디 있냐? 하다못해 육군 오지도 사지방이라고 있던데.”
“올, 너 해군 주제에 별 거 다 안다?”
“내 친구 중에 육군이 없겠니?”
pc방을 나와서 시덥 잖은 농담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다왔다. 가는 길에 옆집에 위치한 서서 갈비집이 보였다. 맨 처음 서서 갈비 라길래 농담 삼아서 ‘야, 서서갈비는 서서 먹으니까 서서갈비냐?’라고 했다가 이상한 놈 될 뻔 했었다. ‘당연한 거 아냐?’ ‘응?’ ‘서서 갈비는 서서먹으니까 서서갈비야.’ ‘……조크가 아니라 진짜야?’ ‘너 한 번도 안 먹어봤냐?’ ‘응.’ ‘촌놈.’ ‘카악!’ 갑자기 그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버렸다. 혼자 킥킥, 대고 웃으니까 동욱이가 잠시 날 쳐다봤지만 이내 무신경해졌다. 난 혼자서도 잘 웃는다. 습관이 되어서. 친구들도 이런 내 모습에 이미 익숙해졌다.
안에 들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집부들밖에 없다. 집부라고 해 봤자 다 후배지만……. 우리가 들어가니까 애들이 인사를 해 왔다.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이시죠? 저, 이름이?”
“어? 아, 나 강인이라고…….”
“아! 강인선배님이세요! 잠시 만요, 이름표 적어 드릴게요.”
“응. 아 회비 얼마랬지?”
“선배님은 만 오천원이세요!”
“여기.”
지갑을 꺼내 만 오 천원을 건네자 해맑은 얼굴로 웃은 후배는 돈을 받으면서 말했다.
“자리에 계시면 명찰 만들어서 금방 갖다 드릴게요.”
“응.”
대충 보니까 테이블을 여러 개 붙여 놨다. 하긴, 듣자하니 여기가 우리 학과 초반 신입생 환영회장으로 전통이 된지는 벌써 꽤 오래전이라고 한다. 사장님과도 안면이 있어서 들어와서 우리 과 학생이라고 말을 하면 일정 부분 할인 해 주시거나, 서비스를 주신다. 물론 그건 사장님 마음대로다. 어떤 서비스를 받을 지는 오기 전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푸대접 받진 않는다. 그래서 평소에 우리 과에서 단체 행사같은 것이 있으면 여기로 오고, 친구들끼리도 가끔 여기에 온다. 오늘은 몇 명이나 오려나. 예약석으로 맞춰놓은 테이블 개수를 살펴보니까 대충 80명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네.
이름을 모르는 여자후배는 날 첫 번째 손님으로 받고 나서, 동욱이와 진성에게서도 돈을 수금한 뒤에 자리로 안내해줬다. 자리에 도착해서, 아직은 딱히 할 것도 없고 괜히 일찍 왔나 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자니 후배가 명찰 세 개를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 명찰을 받고 나서 목에 걸고 나니, 갑자기 여자 후배 이름이 궁금해졌다. 혹시나 해서 명찰을 맸나 확인해 봤지만 명찰이 없다.
“아직 시간이 좀 일러서 음식을 준비하진 않았어요. 지겨우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후배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려고 했다. 음, 이름을 묻고 싶은데. 갑자기 이름을 물어야 겠다는 압박을 느낀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는 후배 손을 붙잡았다.
“어,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어? 아, 그게, 이름이 뭐야?”
“아, 제 이름이요?”
“응.”
“소담이라고해요. 한소담. 08학번 이예요. 말 놓으세요. 그리고 손 좀 놔 주시면 안 될까요?”
“어, 아. 미, 미안.”
“그럼 쉬고 계세요.”
소담이라고 소개한 후배는 금새 자리를 벗어났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부끄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모르는 여자 손을 함부로 잡다니. 내가 미쳤나…….
“휘익~ 야, 너 이 자식. 후배에는 관심 없다더니 벌써 작업이냐?”
“아, 아냐!”
“내가 보기에도 작업 같다. 요 녀석 봐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벌써부터! 크윽, 이 형아가 널 키운 보람을 느낀다!”
오바 떠는 동욱이의 머리를 한 대 박아 준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쪽팔려. 걔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데 소담이라고? 미소가 예쁜 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수지가 떠올라서 급 우울해져버렸다. 수지도 미소가 참 예뻤었는데. 에이, 잊자.
앞에 놓인 젓가락과 숟가락을 만지면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니 어느 샌가 한 두 사람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는 얼굴이 거의 없다! 결국 우리 복학생 셋은 다시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욱이가 문자를 몇 번 틱틱 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얘네들 대가리 컸다고 늦게 오겠데. 선배는 이런 자리 원래 일찍 오는 거 아니라고 그러네?”
“……우린 후배냐?”
“글세.”
아아, 한숨이여. 어색한 모습을 지나가는 후배와 인사를 했고, 서로 통성명도 했지만 솔직히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유일하게 기억이 남는 후배라면 아까 명찰을 나눠준 소담이라는 애 하나? 워낙 인상이 강렬했으니. 사건도 있었고. 아까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다. 후아, 내가 왜 그랬지?
어느덧 자리는 다 찼다. 집부들도 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조만간 시작할 것 같다. 테이블 하나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니 교수님들 자리인가?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갈비를 놓아주고, 소주랑 맥주, 콜라, 사이다가 각 테이블에 세팅이 완료 되었을 때쯤에 집중하라는 외침이 들렸다.
“자. 자! 조용. 집중 좀 해 봐요! 크흠! 안녕하세요! 절 처음 보는 분도 있을 테고, 전에 봤
던 사람도 있겠지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안녕하세요! 이번 년도 회장을 맡은 05학번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박수. 환호. 근데 난 누군지 모르겠다. 나랑 친구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 인사말을 듣고 있었다.
“오늘 자리는 신입생 환영회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신입생이겠죠! 신입생 외에도 후배님들, 선배님들 자리를 참석해 주셨겠지만, 오늘 주인공은 신입생이니까 신입생과 서로 안면 트고 인사를 나누도록 해봐요! 그리고 오늘 음식 값은 회비로 충당하고 모자란 부분은 교수님들이 내주기로 하셨으니 걱정 말고 마음껏 드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세요. 그럼 건배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잔을 따라 주세요!”
이미 세팅은 완료 되어있었다. 우리들은 벌써 술을 조금씩 따라 마시고 있었기에, 다시 꼴꼴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주를 각자의 잔에 따랐다.
“그럼 09년도 신입생의 입학을 축하하며! 09년도 행정학과의 발전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순간적으로 가게에 건배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건배라고 해서 우리들끼리도 살풋 건배했지만, 영 느낌이 안 난다. 본격적인 자리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야, 우리 괜히 온 것 같지 않냐?”
“그러게. 들러리 온 것 같은 기분이야. 여기 와서도 우리 복학생 셋이서 뭉쳐 앉아야 하고, 참 슬프다.”
동욱이의 한숨소리에 진성이가 맞장구를 쳤다.
“안되겠다! 난 로망을 찾아서 떠나야겠어!”
굳게 다짐한 듯 동욱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억지로 신입생들이 뭉쳐 앉아 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나랑 진성이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그냥 술만 따랐다. 가끔 후배들이 인사한답시고 오기도 했지만 몇 마디 하다 보니 우리들이 말주변이 뛰어난 것도 아닌지라 금세 자리를 뜨곤 했다. 배가 슬슬 불러와서 이제 그만 집에나 갈까, 고민 할 때 쯤 에 내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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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끊기가 애매하네요
이어지는 문맥이지만 중간에 그냥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