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연락하기다. 친구들에게 무작정 연
락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졸업앨범을 뒤져가며 연락
을 걸었다. 연락 되는 친구보다 이사 가는 등의 이유로 연락 안 된 친구들
이 훨씬 더 많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친구들과 전화로 대화하면서 추억
에 젖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그 친구들이 전화를 하면 하나같이
수지와의 일을 묻는다. 난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하긴. 고등학교 때
부터 수지와 사귀어 왔으니까. 내가 얼버무리면 눈치 빠른 친구들은 대충
눈치 채고 황급히 화제를 돌리곤 했다. 하지만 모든 이가 눈치 빠를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눈치 없는 애들은 꼬치꼬치 캐물었으니까. 내가 한참만에
야 부정적인 대답을 입에 올려놓으면 아차하면서 날 위로해주지만, 별로 달
갑지는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서야 과연 내가 한 행동이 올바른 행동인가를 후회
하기 시작했다. 전화비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제서야 후회가 들었지
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하루가 금세 지나가버렸
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개강 때까지만 어떻게 버텨보자. 복
학하고 나서 학과공부에 열심히 하다 보면 수지와의 일은 잊을 수 있겠지.
난 대충 옷을 차려 입었다. 오늘은 나가 볼 곳이 있었다. 어제 진 빚은 하루
빨리 갚는 게 좋겠지. 지갑을 열어 대충 돈을 세아려 보니 삼 천 원 밖에 없
다. 현금 인출기를 이용할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다. 수수료가 아깝다.
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보통 술집 같은데 가면 수지를 만나
러 가는 일 외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 밖에 없었는데, 이런 일로 술집을
가게 될 줄이야. 술집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자니 또
망설여졌다. 내가 왜 찾아가야 돼지? 찾아가서 뭐 어쩌게?
“아씨…….”
이 우유부단함. 아마 이것에 질린 것이 아닐까, 수지도. 왜 헤어져야 했는
지, 내가 왜 차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짐작 가는 것은 있다. 수지와 사
귀었던 4년의 시간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그 동안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나
의 결점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우유부단함도 일부일 것이다. 좋
아. 결심했어. 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용감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혼자세요?”
“아, 네.”
“그럼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어제 봤던 미연씨와는 다른 사람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그 사람
뒤를 따라갔다. 안내 받은 자리는 구석이었다.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다 보
니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여자는 날 안내하고 잠시 사라졌다가 잠시
후 물 잔이랑 물수건, 그리고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난 어쩔까 망설이다가 속
으로 크게 심호흡하고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여기에 미연이라는 사람 일하고 있나요?”
“아? 네. 손님. 일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아, 저. 제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불러 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았습니다, 대답하고 사라졌다. 난
미연씨를 찾으러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슴이 콩닥
콩닥 거린다. 아, 이 소심증. 그런데 오면 뭐라고 그러지? 테이블에 앉아 막
상 기다리자니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무작정 찾아 온 거나 마
찬가지잖아.
갑자기 찾아온 불안감에 좌불안석이 되어 초조해하고 있자니 미연씨가 싱
긋 웃으며 왔다. 난 얼결에 일어나서 꾸벅 인사를 하고 말았다.
“어서 오세요. 진짜 오셨네?”
“아, 네. 은혜를 받았으니 갚아야죠.”
“그럼 어떻게 갚아주실 건데요?”
“네? 아, 그건 아직 생각을…….”
“생각도 안 하시고 오신 거예요?”
“그, 그게 그러니까…….”
할 말이 없다. 난 엉거주춤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그런 모습에 미연씨
는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보상 받고자 한 행동이 아니니까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계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술 상대라도 해 드리고 싶지만 전 일하는 도중이라 그렇게 하진
못하겠네요. 그럼 이렇게 하죠. 이 가게에서 제가 도움을 엄청 많이 받고 있
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매상 조금 올려주시면 은혜 갚은 걸로 칠게요. 됐
죠?”
“아, 네.”
“그럼 손님, 뭘 주문하시겠어요?”
“그, 그럼 소주 한 병 하구요. 안주는……적당한 걸로 아무거나…….”
난 급작스런 전개에 당황해서 머리 회전을 굴릴 틈도 없이 얼결에 고주 한
병과 적당한 안주 아무거나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뭔가
마뜩찮은지 미연씨는 볼을 부풀리고는 날 빤히 쳐다봤다. 뭐, 뭐지?
“종업원한테 적당히 달라고 하면 곤란해요. 제가 가장 비싼 안주 주문하면
어쩌려고. 여기서 가장 싸고 맛있는 안주는 이거니까, 이걸로 하나 가져올
게요. 괜찮죠?”
생각해보니 지갑에 돈이 얼마 없다. 그리고 순간 카드에 돈이 얼마 남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얼마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난 순간 어제 내
가 쓴 돈을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설마 카드에 만 원도 없겠어? 난 고개
를 끄덕였고, 승낙이 떨어지자 능숙한 솜씨로 미연씨는 메뉴판을 걷어갔
다. 메뉴판을 걷어가고 조금 기다리자 소주 한 병이 먼저 나오고, 곧 이어
안주가 나왔다. 생각해보니 찌개를 시킬 걸 그랬나? 눈 앞에서 먹어달라고
조르는 닭발을 보자니 갑자기 찌개가 생각이 났지만, 난 조용히 소주를 내
잔에 따랐다. 어제도 자작하긴 했지만 어제와 달리 식어버린 정신으로 자작
하자니 뭔가 어색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난 한 잔을 따라서 훌쩍 마셨다. 알싸한 알콜
향이 목구멍에서 진하게 올라온다. 젓가락을 들어 안주를 집어 먹을까 하다
가 관뒀다. 다시 소주를 따랐다. 다시 원 샷. 그리고 다시 한 잔. 다시 원
샷. 연거푸 세잔을 마셨더니 눈앞이 얼큰해진다. 입안에 알콜 냄새가 멤도
는 것이 기분도 그닥 나쁘지는 않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수지의
얼굴이 떠오르고 미연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세차게 도리질했다. 아무래
도 안 되겠어.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니까 미연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난 계산서를 내밀어서 계산했다. 카드를 내밀면서 혹시나 잔액이 부
족하다고 뜨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다행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
다. 전자 서명을 하고 카드 명세서를 받고 나서 몸을 돌려 나가려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멈춰 섰다.
“저, 혹시 필기구 같은 것 좀 구할 수 있을까요?”
“필기구요?”
“네. 종이나 펜 같은거…….”
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카운터 아가씨는 잠시만 기달려 보라는 말과
함께 카운터 아래를 뒤졌다. 그리고는 빈 메모지 한 장과 검정색 모나미 볼
펜을 줬다. 난 필기구를 받고 내 핸드폰 번호를 종이에 남겼다. 그리고 메모
를 남길까 하다가 관뒀다. 난 볼펜과 종이를 그 아가씨한테 주고 말했다.
“이거……미연씨한테 전해 주시겠어요? 어제 신세졌던 사람이라고 하면
알 텐데…….”
“아, 네.”
난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에서 좀 떨어져 나오니 내 자리
를 치우고 있는 미연씨가 보였다. 먼발치에서 보자니, 왠지 한숨이 나왔다.
내가 일 벌려놓은 걸 뒷정리하는 걸로 보였다. 나란 놈은 왜 이럴까. 연락
이 오면 다른 방식으로 은혜를 갚고 싶었고, 왠지 이것도 인연일 것 같아 놓
치긴 싫다. 그렇지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것으로 끝이겠지. 난 주머니에
손을 탁 찔러놓고 터벅터벅 걸었다. 난 미연씨한테 공을 넘겼다. 나에게 패
스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겠지.
그리고 복학시기가 다가왔다. 끝내 나에게 모르는 번호로 연락은 오지 않
았다.
락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졸업앨범을 뒤져가며 연락
을 걸었다. 연락 되는 친구보다 이사 가는 등의 이유로 연락 안 된 친구들
이 훨씬 더 많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친구들과 전화로 대화하면서 추억
에 젖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그 친구들이 전화를 하면 하나같이
수지와의 일을 묻는다. 난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하긴. 고등학교 때
부터 수지와 사귀어 왔으니까. 내가 얼버무리면 눈치 빠른 친구들은 대충
눈치 채고 황급히 화제를 돌리곤 했다. 하지만 모든 이가 눈치 빠를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눈치 없는 애들은 꼬치꼬치 캐물었으니까. 내가 한참만에
야 부정적인 대답을 입에 올려놓으면 아차하면서 날 위로해주지만, 별로 달
갑지는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서야 과연 내가 한 행동이 올바른 행동인가를 후회
하기 시작했다. 전화비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제서야 후회가 들었지
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하루가 금세 지나가버렸
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개강 때까지만 어떻게 버텨보자. 복
학하고 나서 학과공부에 열심히 하다 보면 수지와의 일은 잊을 수 있겠지.
난 대충 옷을 차려 입었다. 오늘은 나가 볼 곳이 있었다. 어제 진 빚은 하루
빨리 갚는 게 좋겠지. 지갑을 열어 대충 돈을 세아려 보니 삼 천 원 밖에 없
다. 현금 인출기를 이용할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다. 수수료가 아깝다.
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보통 술집 같은데 가면 수지를 만나
러 가는 일 외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 밖에 없었는데, 이런 일로 술집을
가게 될 줄이야. 술집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자니 또
망설여졌다. 내가 왜 찾아가야 돼지? 찾아가서 뭐 어쩌게?
“아씨…….”
이 우유부단함. 아마 이것에 질린 것이 아닐까, 수지도. 왜 헤어져야 했는
지, 내가 왜 차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짐작 가는 것은 있다. 수지와 사
귀었던 4년의 시간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그 동안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나
의 결점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우유부단함도 일부일 것이다. 좋
아. 결심했어. 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용감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혼자세요?”
“아, 네.”
“그럼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어제 봤던 미연씨와는 다른 사람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그 사람
뒤를 따라갔다. 안내 받은 자리는 구석이었다.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다 보
니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여자는 날 안내하고 잠시 사라졌다가 잠시
후 물 잔이랑 물수건, 그리고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난 어쩔까 망설이다가 속
으로 크게 심호흡하고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여기에 미연이라는 사람 일하고 있나요?”
“아? 네. 손님. 일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아, 저. 제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불러 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았습니다, 대답하고 사라졌다. 난
미연씨를 찾으러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슴이 콩닥
콩닥 거린다. 아, 이 소심증. 그런데 오면 뭐라고 그러지? 테이블에 앉아 막
상 기다리자니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무작정 찾아 온 거나 마
찬가지잖아.
갑자기 찾아온 불안감에 좌불안석이 되어 초조해하고 있자니 미연씨가 싱
긋 웃으며 왔다. 난 얼결에 일어나서 꾸벅 인사를 하고 말았다.
“어서 오세요. 진짜 오셨네?”
“아, 네. 은혜를 받았으니 갚아야죠.”
“그럼 어떻게 갚아주실 건데요?”
“네? 아, 그건 아직 생각을…….”
“생각도 안 하시고 오신 거예요?”
“그, 그게 그러니까…….”
할 말이 없다. 난 엉거주춤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그런 모습에 미연씨
는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보상 받고자 한 행동이 아니니까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계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술 상대라도 해 드리고 싶지만 전 일하는 도중이라 그렇게 하진
못하겠네요. 그럼 이렇게 하죠. 이 가게에서 제가 도움을 엄청 많이 받고 있
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매상 조금 올려주시면 은혜 갚은 걸로 칠게요. 됐
죠?”
“아, 네.”
“그럼 손님, 뭘 주문하시겠어요?”
“그, 그럼 소주 한 병 하구요. 안주는……적당한 걸로 아무거나…….”
난 급작스런 전개에 당황해서 머리 회전을 굴릴 틈도 없이 얼결에 고주 한
병과 적당한 안주 아무거나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뭔가
마뜩찮은지 미연씨는 볼을 부풀리고는 날 빤히 쳐다봤다. 뭐, 뭐지?
“종업원한테 적당히 달라고 하면 곤란해요. 제가 가장 비싼 안주 주문하면
어쩌려고. 여기서 가장 싸고 맛있는 안주는 이거니까, 이걸로 하나 가져올
게요. 괜찮죠?”
생각해보니 지갑에 돈이 얼마 없다. 그리고 순간 카드에 돈이 얼마 남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얼마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난 순간 어제 내
가 쓴 돈을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설마 카드에 만 원도 없겠어? 난 고개
를 끄덕였고, 승낙이 떨어지자 능숙한 솜씨로 미연씨는 메뉴판을 걷어갔
다. 메뉴판을 걷어가고 조금 기다리자 소주 한 병이 먼저 나오고, 곧 이어
안주가 나왔다. 생각해보니 찌개를 시킬 걸 그랬나? 눈 앞에서 먹어달라고
조르는 닭발을 보자니 갑자기 찌개가 생각이 났지만, 난 조용히 소주를 내
잔에 따랐다. 어제도 자작하긴 했지만 어제와 달리 식어버린 정신으로 자작
하자니 뭔가 어색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난 한 잔을 따라서 훌쩍 마셨다. 알싸한 알콜
향이 목구멍에서 진하게 올라온다. 젓가락을 들어 안주를 집어 먹을까 하다
가 관뒀다. 다시 소주를 따랐다. 다시 원 샷. 그리고 다시 한 잔. 다시 원
샷. 연거푸 세잔을 마셨더니 눈앞이 얼큰해진다. 입안에 알콜 냄새가 멤도
는 것이 기분도 그닥 나쁘지는 않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수지의
얼굴이 떠오르고 미연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세차게 도리질했다. 아무래
도 안 되겠어.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니까 미연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난 계산서를 내밀어서 계산했다. 카드를 내밀면서 혹시나 잔액이 부
족하다고 뜨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다행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
다. 전자 서명을 하고 카드 명세서를 받고 나서 몸을 돌려 나가려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멈춰 섰다.
“저, 혹시 필기구 같은 것 좀 구할 수 있을까요?”
“필기구요?”
“네. 종이나 펜 같은거…….”
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카운터 아가씨는 잠시만 기달려 보라는 말과
함께 카운터 아래를 뒤졌다. 그리고는 빈 메모지 한 장과 검정색 모나미 볼
펜을 줬다. 난 필기구를 받고 내 핸드폰 번호를 종이에 남겼다. 그리고 메모
를 남길까 하다가 관뒀다. 난 볼펜과 종이를 그 아가씨한테 주고 말했다.
“이거……미연씨한테 전해 주시겠어요? 어제 신세졌던 사람이라고 하면
알 텐데…….”
“아, 네.”
난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에서 좀 떨어져 나오니 내 자리
를 치우고 있는 미연씨가 보였다. 먼발치에서 보자니, 왠지 한숨이 나왔다.
내가 일 벌려놓은 걸 뒷정리하는 걸로 보였다. 나란 놈은 왜 이럴까. 연락
이 오면 다른 방식으로 은혜를 갚고 싶었고, 왠지 이것도 인연일 것 같아 놓
치긴 싫다. 그렇지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것으로 끝이겠지. 난 주머니에
손을 탁 찔러놓고 터벅터벅 걸었다. 난 미연씨한테 공을 넘겼다. 나에게 패
스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겠지.
그리고 복학시기가 다가왔다. 끝내 나에게 모르는 번호로 연락은 오지 않
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