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요.
글 올리자니 마땅한데도 없고
역시 귀차니즘 ㄷㄷㄷ
때로는 소문이 진실보다 더 무섭게, 그리고 진지하게 대중을 압도한다.
“들었어?”
“응. 성청 고등학교 애 맞지?”
“나 중학교 때 ‘그 애’가 옆 반이었는데 그때도 이미 깡패 같았어. 반 분위기를 자기 마음대로 휘어잡았다니까. 걸핏하면 때리더라고. 내가 본건 아니지만 들었는데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여자애도 패고 그랬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어떤 조직 활동 같은 것도 했다고 하더라고.”
“으아. 너무했다. 오히려 잘된거 아냐. 그런 놈이 알아서 난리를 피우다가 죽어버렸다니.”
“그러기만 하면 좋겠다면 난 찝찝하다고. 어쩌면 기억이 날까말까한 얼굴인데 그런 내가 아는 사람이 확 죽어버린다는게 얼마나 이상한 느낌인줄 알어? 으으.”
“아는 오빠가 이야기 해줬는데 현장이 장난이 아니었데. 난자하는 핏자국에 하얀 뇌수 같은 것은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혓바닥이 쇄골까지 내려와서는”
“우엑. 이건 진짜 학교괴담이다.”
“소름끼쳐.”
무리 지어 모여 있는 여학생들은 현장을 상상해보며 몸서리를 쳤다. 먼 곳도 아닌 바로 옆 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가까운 곳이기에 뉴스를 통해 어제 저녁 사건을 사실을 접한 아이들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문으로 접한 사람들이 더 많은 탓일까. 사실을 본 사람은 누구도 없었지만 그 일에 대한 궁금증은 이제 불확실한 과거에 의지한 추측으로 발전된 상태였다.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혹시 타살 아냐? 영화나 그 뭐나. 탐정만화 같은 걸 보면 이런 사건은 알고 보니 타살이라는 흥미로운 전개가 진행되던데.”
“하지만 거기 있던 반 아이들이 다 증인인걸. 그것도 수업 중에 벌어진 일인데 설마 타살일까. 경찰도 애당초 자살로 결론지으면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것 같던데. 그 뭐라더라. 맞다. 샤프로 귀를 찔렀다더라.”
“싫다. 난 샤프가 긁혀도 소름끼쳐서 삼일간은 날카로운 것은 보기도 싫은데.”
“엄살은.”
“무슨 이야기 중이야?”
수군거리는 여학생들이 갑자기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에 움찔했다. 무슨 금기라도 들킨양 뜨끔한 표정으로 천천히 돌아본 그녀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들이 돌아본 곳에서는 검은 뿔테 안경이 매우 잘 어울리는 짧은 트위기 커트 머리의 반 친구가 서 있었다.
“선생님인줄 알았잖아.”
“어서와요. 재은씨.”
“히히. 맞다. 재은아. 너 말이야.”
여학생들 중의 일부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와 눈치를 주었다.
“혹시 뭐 들은거 없어. 그...”
“어제 성청고교 자살 사건 말이지?”
분위기만 봐도 자네들의 대화 주제를 알것만 같애. 라는 표정을 재은이 짓자, 여학생들은 반색하며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가지 지식을 비롯하여 잡다한 소식 등에 빠른 친구가 재은이다. 2학년 3반의 새틀라이트 어택이라는 소문이 괜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상당한 수준의 신뢰성까지 갖춘 그녀라면 아마 자신들이 원하는 소문의 자세한 뼈대를 들려줄 것이다. 그녀들이 이야기를 집도하는 곳 바로 옆에 자리를 두고 있는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는 형사한테 들은 이야기야. 평소 생활에 문제가 많던 학생 A는 평소 마약을 즐겨하는 학생으로 어제 오후 3시 경, 갑작스럽게 찾아온 금단 현상으로 괴로워하면서 수업 시간 중에 옆에 앉아 있던 친구를 심하게 구타, 말리는 선생을 거칠게 뿌리치고 괴로움에 발버둥쳤지.”
“으아. 역시 마약?”
“대체 그런걸 어디서 구할 수 있는거야.”
“인터넷에서 샀나보지.”
“친구의 자리에 놓여 있는 샤프를 마약으로 착각하고 평소처럼 머리에 주사했는데 재수 없게 귀를 관통하는 바람에 뇌를 직격했고, 바로 중요 신경이 끊겼고, 병원 엠블런스가 곧 도착했으나 의사는 그 자리에서 사망을 인정. 이상일까. 나머지는 아직도 수사중이래. 애당초 고등학생이 중독이 될 정도로 만은 양의 마약을 누가 제공했는 등을 비롯해서 어째서 머리에다가 주사를 놨는지 같은 것도 말이야.”
“그러게. 왜 마약을 머리에다가 꽂은거야?”
“아마 사용한 마약류가 뇌에 강한 영향을 주는 종류일거야. 적어도 헤로인이나 엑시터스 같은 가벼운 종류의 약들은 아니겠지. 좀더 자극적인 강한 마약일거야. 마약을 머리에 꽂은 이유는 간단해. 약이란 본래, 근육에다가 놓는것보다 심장이나 내장에 직접 주사하는 것이 효과가 빠르고 강하거든. 다만 이래저래 인체에 부담이 많이 돼서 그렇지.”
“헤에. 그렇게 된거구나.”
사람 하나 죽은 이야기를 자신들보다 술술 쏟아내고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재은의 정신력은 어쨋건 그녀들은 이제 알겠다는 탄성을 지으면서 후속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추가적으로 생길 현장의 생생함이라던지 자신들의 근거 없는 지식, 경험까지 쏟아내며 또 다시 생길 희생자를 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절대로 쉬는 시간을무료하게 보내지 않는 그녀들을 힐끗 쳐다본 재은은 무표정하게 턱을 괴고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말해준 이야기 중에서 자살이라는 것을 빼고, 실제로 죽은 이유가 마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친구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사소한 호기심조차 지금 그녀에게는 무료한 상상이다.
-흥미로운 사건이더군요-
현장을 살짝 봤다는 코디네이터가 알려준 정보는 달랐다.
이름 허경민. 나이는 18살. 어릴때부터 속칭 모범적인 양아치의 길을 걸어온 학생으로 그 분야에 있어서는 우등생 소리를 들어도 쳐줄 박수는 나오겠다. 각종 문제의 중심에다가 학생들을 건드리는데 전혀 양심의 가책도, 그리고 망설임도 없는 그가 어제, 돌연 이성을 잃어버리고 교실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자살을 기도. 결과가 그 자리에서 즉사다. 경찰과 병원이 즉시 원인 파악에 나섰지만 알아낸 것이라고는 푸른색 반점 같은 것이 온 몸에 듬성듬성 나 있는 점, 그리고 사고가 나기 전부터 작아져 있는 것으로 판명된 그의 뇌 정도 뿐이었다. 현재 표면적으로 마약 중독으로 인한 착시현상 및 자살로 결정되었지만, 아마 아닐것이다.
-재미있군요. 과연. 이것은 저주에 가깝군요.-
적어도 그 학생의 죽음이 단순 자살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것을 토대로 재은은 세가지의 가설을 추측해냈다. 첫째 상대방은 마법사다. 그 푸른색의 반점이란 실은 마약을 주사하면서 놓은 흔적도, 그리고 중독현상으로 생기는 신체의 부작용도 아닐것이다.
‘아마 드루이두 계열의 주술사, 혹은 심령에 간섭할 수 있는 무당 등, 속칭 마.법.사.로 불리는, 네피림의 피를 승계하는 자겠지’
둘째 상대방은 초보 마법사라는것. 뇌 그자체 영향을 주어 상대의 행동에 제약을 걸고 약해진 지능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조절한 것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라고 한다면 그 추측은 맞아떨어진다. 상대방의 정신에 싱크로하여 지배한다던지, 혹은 쇄뇌 등의 방법이 있는데도 가장 무식한 수단인 물리적인 압박이라니. 가장 하기 쉽고, 가장 실패확률이 높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쓰지 않는 방식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더 높은 단계의 섬세함 따위는 찾아볼수도 없는 거친 술법인데다가, 뇌의 이상 유무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집단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초짜일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어제 허경민이라는 학생이 보인 행동 패턴, 즉 불안정한 정서상태 및 갑작스러운 자살로 미루어볼 때 범인으로 추정되는 마법사는 필시 그 주변에서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을 바탕으로 하면 허경민의 행동을 관찰하고 자살해라는 암시 혹은 명령을 원거리에서 내릴 정도의 실력은 -아직- 아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재은이 피식 웃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인데 말이야. 내 일도 아닌데.”
앞장서서 이런 것까지 깊이 관여할 정도로 자신의 오지랇이 넓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아는 그녀의 시선에 막 교실에 들어오는 반친구가 들어왓다. 또래 여학생의 평균 신장을 넘는 시원시원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에 순수해보이는 얼굴. 모델이라고 해도 그렇군 하고 쉽게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의 그 친구는 두 뺨에 가득 불만을 불어놓고는 재은이의 앞자리에 앉아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말이야. 재은아. 지갑을 쥐고 있는 남자들은 왜 이렇게 쪼잔할까.”
“왜? 아영아.”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재은이었지만 아영은 책상 위로 고개를 붙인채로 중얼거렸다.
“배고파요. 난 성장기에요. 제때에 적당한 영양공급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또 먹을 것 사달라고 졸랐다가 거절당했구나. 그럴만하지.”
“그러니까 난 성장기래두.”
“얼마나 더 클라고 그래.”
“훗. 너 지금 날 질투하는 거구나.”
“내가 어딜?”
“음. 표준 이상의 내 가슴이랄까, 아니면 키? 그것도 아니면 외모?”
“나 지금 손에 샤프 들렸다.”
“낙서할라고?”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상체를 책상에 붙인채로 물끄러미 재은을 바라보던 아영은 히히거리면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왠지 너라면 그럴것 같애”
“칭찬이라면 고맙게 들을게.”
뭐가 고맙다는 건지 재은은 들고 있던 책을 덮고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자신이 해야할 것들을 다시한번 더 체크하기 시작했다. 다이어리 그 어느 구석에도 방금 그녀의 머릿속에서 맹렬하게 휘몰아치던 어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적히지 않았지만.
◇
글 올리자니 마땅한데도 없고
역시 귀차니즘 ㄷㄷㄷ
때로는 소문이 진실보다 더 무섭게, 그리고 진지하게 대중을 압도한다.
“들었어?”
“응. 성청 고등학교 애 맞지?”
“나 중학교 때 ‘그 애’가 옆 반이었는데 그때도 이미 깡패 같았어. 반 분위기를 자기 마음대로 휘어잡았다니까. 걸핏하면 때리더라고. 내가 본건 아니지만 들었는데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여자애도 패고 그랬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어떤 조직 활동 같은 것도 했다고 하더라고.”
“으아. 너무했다. 오히려 잘된거 아냐. 그런 놈이 알아서 난리를 피우다가 죽어버렸다니.”
“그러기만 하면 좋겠다면 난 찝찝하다고. 어쩌면 기억이 날까말까한 얼굴인데 그런 내가 아는 사람이 확 죽어버린다는게 얼마나 이상한 느낌인줄 알어? 으으.”
“아는 오빠가 이야기 해줬는데 현장이 장난이 아니었데. 난자하는 핏자국에 하얀 뇌수 같은 것은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혓바닥이 쇄골까지 내려와서는”
“우엑. 이건 진짜 학교괴담이다.”
“소름끼쳐.”
무리 지어 모여 있는 여학생들은 현장을 상상해보며 몸서리를 쳤다. 먼 곳도 아닌 바로 옆 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가까운 곳이기에 뉴스를 통해 어제 저녁 사건을 사실을 접한 아이들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문으로 접한 사람들이 더 많은 탓일까. 사실을 본 사람은 누구도 없었지만 그 일에 대한 궁금증은 이제 불확실한 과거에 의지한 추측으로 발전된 상태였다.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혹시 타살 아냐? 영화나 그 뭐나. 탐정만화 같은 걸 보면 이런 사건은 알고 보니 타살이라는 흥미로운 전개가 진행되던데.”
“하지만 거기 있던 반 아이들이 다 증인인걸. 그것도 수업 중에 벌어진 일인데 설마 타살일까. 경찰도 애당초 자살로 결론지으면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것 같던데. 그 뭐라더라. 맞다. 샤프로 귀를 찔렀다더라.”
“싫다. 난 샤프가 긁혀도 소름끼쳐서 삼일간은 날카로운 것은 보기도 싫은데.”
“엄살은.”
“무슨 이야기 중이야?”
수군거리는 여학생들이 갑자기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에 움찔했다. 무슨 금기라도 들킨양 뜨끔한 표정으로 천천히 돌아본 그녀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들이 돌아본 곳에서는 검은 뿔테 안경이 매우 잘 어울리는 짧은 트위기 커트 머리의 반 친구가 서 있었다.
“선생님인줄 알았잖아.”
“어서와요. 재은씨.”
“히히. 맞다. 재은아. 너 말이야.”
여학생들 중의 일부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와 눈치를 주었다.
“혹시 뭐 들은거 없어. 그...”
“어제 성청고교 자살 사건 말이지?”
분위기만 봐도 자네들의 대화 주제를 알것만 같애. 라는 표정을 재은이 짓자, 여학생들은 반색하며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가지 지식을 비롯하여 잡다한 소식 등에 빠른 친구가 재은이다. 2학년 3반의 새틀라이트 어택이라는 소문이 괜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상당한 수준의 신뢰성까지 갖춘 그녀라면 아마 자신들이 원하는 소문의 자세한 뼈대를 들려줄 것이다. 그녀들이 이야기를 집도하는 곳 바로 옆에 자리를 두고 있는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는 형사한테 들은 이야기야. 평소 생활에 문제가 많던 학생 A는 평소 마약을 즐겨하는 학생으로 어제 오후 3시 경, 갑작스럽게 찾아온 금단 현상으로 괴로워하면서 수업 시간 중에 옆에 앉아 있던 친구를 심하게 구타, 말리는 선생을 거칠게 뿌리치고 괴로움에 발버둥쳤지.”
“으아. 역시 마약?”
“대체 그런걸 어디서 구할 수 있는거야.”
“인터넷에서 샀나보지.”
“친구의 자리에 놓여 있는 샤프를 마약으로 착각하고 평소처럼 머리에 주사했는데 재수 없게 귀를 관통하는 바람에 뇌를 직격했고, 바로 중요 신경이 끊겼고, 병원 엠블런스가 곧 도착했으나 의사는 그 자리에서 사망을 인정. 이상일까. 나머지는 아직도 수사중이래. 애당초 고등학생이 중독이 될 정도로 만은 양의 마약을 누가 제공했는 등을 비롯해서 어째서 머리에다가 주사를 놨는지 같은 것도 말이야.”
“그러게. 왜 마약을 머리에다가 꽂은거야?”
“아마 사용한 마약류가 뇌에 강한 영향을 주는 종류일거야. 적어도 헤로인이나 엑시터스 같은 가벼운 종류의 약들은 아니겠지. 좀더 자극적인 강한 마약일거야. 마약을 머리에 꽂은 이유는 간단해. 약이란 본래, 근육에다가 놓는것보다 심장이나 내장에 직접 주사하는 것이 효과가 빠르고 강하거든. 다만 이래저래 인체에 부담이 많이 돼서 그렇지.”
“헤에. 그렇게 된거구나.”
사람 하나 죽은 이야기를 자신들보다 술술 쏟아내고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재은의 정신력은 어쨋건 그녀들은 이제 알겠다는 탄성을 지으면서 후속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추가적으로 생길 현장의 생생함이라던지 자신들의 근거 없는 지식, 경험까지 쏟아내며 또 다시 생길 희생자를 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절대로 쉬는 시간을무료하게 보내지 않는 그녀들을 힐끗 쳐다본 재은은 무표정하게 턱을 괴고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말해준 이야기 중에서 자살이라는 것을 빼고, 실제로 죽은 이유가 마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친구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사소한 호기심조차 지금 그녀에게는 무료한 상상이다.
-흥미로운 사건이더군요-
현장을 살짝 봤다는 코디네이터가 알려준 정보는 달랐다.
이름 허경민. 나이는 18살. 어릴때부터 속칭 모범적인 양아치의 길을 걸어온 학생으로 그 분야에 있어서는 우등생 소리를 들어도 쳐줄 박수는 나오겠다. 각종 문제의 중심에다가 학생들을 건드리는데 전혀 양심의 가책도, 그리고 망설임도 없는 그가 어제, 돌연 이성을 잃어버리고 교실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자살을 기도. 결과가 그 자리에서 즉사다. 경찰과 병원이 즉시 원인 파악에 나섰지만 알아낸 것이라고는 푸른색 반점 같은 것이 온 몸에 듬성듬성 나 있는 점, 그리고 사고가 나기 전부터 작아져 있는 것으로 판명된 그의 뇌 정도 뿐이었다. 현재 표면적으로 마약 중독으로 인한 착시현상 및 자살로 결정되었지만, 아마 아닐것이다.
-재미있군요. 과연. 이것은 저주에 가깝군요.-
적어도 그 학생의 죽음이 단순 자살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것을 토대로 재은은 세가지의 가설을 추측해냈다. 첫째 상대방은 마법사다. 그 푸른색의 반점이란 실은 마약을 주사하면서 놓은 흔적도, 그리고 중독현상으로 생기는 신체의 부작용도 아닐것이다.
‘아마 드루이두 계열의 주술사, 혹은 심령에 간섭할 수 있는 무당 등, 속칭 마.법.사.로 불리는, 네피림의 피를 승계하는 자겠지’
둘째 상대방은 초보 마법사라는것. 뇌 그자체 영향을 주어 상대의 행동에 제약을 걸고 약해진 지능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조절한 것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라고 한다면 그 추측은 맞아떨어진다. 상대방의 정신에 싱크로하여 지배한다던지, 혹은 쇄뇌 등의 방법이 있는데도 가장 무식한 수단인 물리적인 압박이라니. 가장 하기 쉽고, 가장 실패확률이 높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쓰지 않는 방식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더 높은 단계의 섬세함 따위는 찾아볼수도 없는 거친 술법인데다가, 뇌의 이상 유무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집단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초짜일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어제 허경민이라는 학생이 보인 행동 패턴, 즉 불안정한 정서상태 및 갑작스러운 자살로 미루어볼 때 범인으로 추정되는 마법사는 필시 그 주변에서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을 바탕으로 하면 허경민의 행동을 관찰하고 자살해라는 암시 혹은 명령을 원거리에서 내릴 정도의 실력은 -아직- 아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재은이 피식 웃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인데 말이야. 내 일도 아닌데.”
앞장서서 이런 것까지 깊이 관여할 정도로 자신의 오지랇이 넓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아는 그녀의 시선에 막 교실에 들어오는 반친구가 들어왓다. 또래 여학생의 평균 신장을 넘는 시원시원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에 순수해보이는 얼굴. 모델이라고 해도 그렇군 하고 쉽게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의 그 친구는 두 뺨에 가득 불만을 불어놓고는 재은이의 앞자리에 앉아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말이야. 재은아. 지갑을 쥐고 있는 남자들은 왜 이렇게 쪼잔할까.”
“왜? 아영아.”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재은이었지만 아영은 책상 위로 고개를 붙인채로 중얼거렸다.
“배고파요. 난 성장기에요. 제때에 적당한 영양공급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또 먹을 것 사달라고 졸랐다가 거절당했구나. 그럴만하지.”
“그러니까 난 성장기래두.”
“얼마나 더 클라고 그래.”
“훗. 너 지금 날 질투하는 거구나.”
“내가 어딜?”
“음. 표준 이상의 내 가슴이랄까, 아니면 키? 그것도 아니면 외모?”
“나 지금 손에 샤프 들렸다.”
“낙서할라고?”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상체를 책상에 붙인채로 물끄러미 재은을 바라보던 아영은 히히거리면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왠지 너라면 그럴것 같애”
“칭찬이라면 고맙게 들을게.”
뭐가 고맙다는 건지 재은은 들고 있던 책을 덮고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자신이 해야할 것들을 다시한번 더 체크하기 시작했다. 다이어리 그 어느 구석에도 방금 그녀의 머릿속에서 맹렬하게 휘몰아치던 어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적히지 않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