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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02:12

고양이가 울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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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잠시 눈싸움을 하다가 손목시계가 새벽 여섯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다시 누웠다.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다가 창문을 한 번 핥고 지나갔다. 창문을 잘 닫아두어서 다행이다.




일단 돈은 그럭저럭 되어보였다. 모아두었던 돈도 있고, 통장에 있던 돈도 언제 압류될지 몰라서 전부 찾아두었다. 그래도... 젠장. 나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았는데.




신림동 고시촌은 정말 넓다.




길은 엄청나게 비슷비슷하고, 미로처럼 얽혀있는데다가 위쪽으로 갈수록 길이 복잡하다. 그 때문인지 방이 싸다. 그리고 PC방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고시공부하려고 사람이 모인 곳을 기점으로 상권이 엄청나게 넓어진 듯 하다. 아무리 강남이라고 해도 상권이 신림역에서 버스정류장 다섯개가 지날 때까지 끊이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일할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 같다.




일단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고, 입술만 축일 정도로 기울였다. 그리고 핸드폰을 먹고갈 수 있게 만들어놓은 코너의 위에 올려놓았다. 핸드폰 요금계산일까지 약 1주정도. 그 안에 답이 나오지 않으면 아마 굶어죽을 것이다.




그렇게 여덟시간. 다리가 아픈 것도 모르고 멍때리고 있기를 여덟시간이나 지났다. 편의점에 공짜로 계속 있기도 미안해서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그게 네 시간 전의 이야기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받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주민등록증도 안 나왔다고 하지, 학교는 고3인데 휴학했다고 하지, 부모님 없다고 하지...




뭐어, 내가 사장이라면 200원 정도 시급을 내리는 것으로 타협을 봐서 쓸 것 같기는 하지만 미성년자를 쓰는 것도 꽤 골아픈 일인 것 같다.




배고프다는 생각도 없었다. 팅팅 부어서 감각도 없는 다리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빚쟁이들에게 쫓겨서 집을 나올때까지 실감하지 못했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거... 굶어죽는거 아냐?'




다시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리가 팅팅 부어서 아픔을 넘어 감각이 없어질 때 까지 더 돌아다니면서 아랫동네까지 전부 연락처를 남겼다. 피시방으로 한정시키던 곳을 유흥업소, 당구장, 노래방, 편의점으로 넓혔다. 그 이외에 커피숍이나 카페같은 것도 있었고, 제과점도 있었지만 경험자가 아니면 사절이라고 해서 연락처도 남기지 못하고 쫓겨났다.




미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일주일 전까지 학교도 잘 가고, 부모들끼리는 잘 치고박고 했지만 동생과 히히덕거리면서 놀았다. 이제는 그 때를 생각하면 부서질 것 같이 머리가 아파온다. 현실을 직시할 수가 없다. 만일 누군가가 '이게 네 생활이야'라고 하는 순간 아직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현실감이 솟아나서 죽어버릴 것 같다.




그래. 딱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죽어버릴 것 같다. 이 생활은 내 생활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고, 나는 집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장자의 호접지몽(장자가 꿈에서 나비를 자아로 인식하고 꿈을 꾸다가 깨어났지만 어느 쪽이 꿈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이야기. 자신이 장자라는 사람인지, 그 사람이 꾼 꿈의 나비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처럼, 다시 세 평 남짓한 고시원의 방에서 잠을 자면 낮은 진동음과 함께 잠에서 깰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떠난 여행이나, 일탈할때와 같이 땀이 비오듯 흐른다. 아드레날린이 쉴새없이 흐르고 불안하다. 손이 덜덜떨린다. 하늘을 바라보면 어지럽고, 감각은 극도로 날카로워졌는가, 하면 또 엄청나게 무뎌진 것 같기도 해서, 땅의 티끌이 보일 듯 하지만 사람과 부딫치는 것을 느끼기 힘들다. 정처없이 걷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편이 오히려 '고시원으로 돌아간다'는 상황에 혼란을 주어 좀 더 안정되게 만든다.




부서질 것 같다. 정신이 부서질 것 같고, 답답하고, 어지러운데다가 외롭고 고독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다. 칼이 있다면 목에 꽃고 죽고싶다. 하지만 아플 것을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누구와의 소통도 없이, 어떤 확신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 뿐이다.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부유하는 것 같이 어중간한 느낌 뿐이라서 불안하다.




1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1년 후에도 세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세우잠을 자는 생활을 생각하면 죽고싶어진다.




아찔하다. 세상이 빙빙돈다. 그러면서도 발은 착실하게 갈 곳으로 가고, 그 길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싸늘하다. 살갗이 얼어붙는다. 그러면서도 사고는 냉정하게 '미래'를 생각하며 절망에 빠지는 듯 하다.




서글프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티끌의 양 만큼도 풀어지지 않는다.




누가 나 좀 죽여줘. 빚쟁이든 부모든 동생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구든 좋으니까, 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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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의 퇴고본입니다.



원래 1, 2, 3을 묶어서 1편으로 올렸었습니다만, 젠장맞게도 다시 보면 전혀 아니더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퇴고하고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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