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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女)기사 - 드래곤을 키우다 (33/100회)

우리 하나비 기사단은 드래곤을 키우게 되었다. 키우게 된 과정은 저번회에서 설명했었고, 뭐 그런 이유로 지금 이렇게 기사단에서 이 새끼 드래곤을 키우기로 기사단원들과 합의를 봤다. 우리 기사단은 아지트가 있었다. 아지트는 기사단의 자금으로 구입한 집이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합숙하기로 했다. 하네시에 있는 아지트였다. 우리의 아지트는 하네시의 모퉁이에 있는 집 한 채로, 구청에 기사단 등록을 할 때 받았던 푸른색 비단으로 만들어지고 깃발에는 방패를 든 노란색 용이 그려진 푸른 기사단 깃발을 지붕 위의 한 가운데에 꽂아 두었다. 깃발은 잘도 펄럭였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나와 이곳에서 모여 살기로 했다. 원래 집을 구입한 것은 꽤 이전이나, 정식으로 우리가 이곳에 모여서 살기로 한 것은 이 새끼 드래곤을 줍고난 사실을 다 같이 알았을 때였다. 왜 굳이 이곳에 모여 살지 않았냐면, 계획이 없어다랄까. 모여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기사단에 출근하 듯 우리는 때때로 정한 약속장소에 모이고 출장 갈 때처럼 원정을 나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모여 살게 되었으니 좋다고 해야 하나. 그레잇은 이전에 밀리터리맨의 집에 머물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기사단이 이렇게 한 집에 한 곳에 네 사람이 모여서 가족처럼 살게 되었다. 오늘은 그 첫날이었다.

우리는 집 안에 있었다. 거실에 빙 둘러 앉아 있었는데 빙 둘러 앉은 가운데 새끼 드래곤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새끼 드래곤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말했다.

"저도 정말 황당했다니까요. 어떤 비양심적인 사람이 쓰레기를 길에다 버린 줄 알았어요."

밀리터리맨은 내 말에 대답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쓰레기가 아니라 드래곤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예."

밀리터리맨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었다. 밀리터리맨이 말했다.

"할 수 없지. 키우는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나중에 이 드래곤이 어떤 몸집을 갖게 될지 모른다는 거야."

밀리터리맨이 그 말을 마치고 나자 야곱이 말했다.

"나중에는 이 집보다 더 커질 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잘 못 걸려도 이렇게 잘 못 걸릴 수가. 우리가 그 드래곤을 기사단숙소-우리는 그 집을 이렇게 불렀다.-에서 키우기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우리는 하루가 몰라보게 점점 덩치가 커지는 드래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 하고 있었다. 키운지 십 일이 지났을 때는 이미 야곱보다 덩치가 더 커져 있었고, 겉에 있는 가죽은 단단해졌다. 살갗은 나무갈색처럼 변했고 두껍고 까칠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우유와 빵만 먹더니 이제는 고기를 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곱과 나는 한 번 생닭고기를 주웠다. 그랬더니 드래곤은 생닭고기를 날름 입에 물고 으적 으적 씹어댔다. 우리는 공포스러웠다. 만약, 우리가 이녀석을 키우다가 나중에 이녀석이 우리를 잡아 먹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우리가 그 드래곤을 키운지 삼 개 월이 지났을 때, 이미 마을에서는 이 드래곤의 정체를 알고 마을 한 모퉁이에 돌산처럼 자리 잡고 앉아있는 거대한 드래곤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시청에 항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드래곤을 마을 밖에 내놓은 것은 드래곤이 삼 개월 만에 몸집이 집채만 해져서 더 이상 이 기사단숙소에서 키울 수 없게 된 이유도 있었지만 드래곤이 싸놓는 똥과 오줌의 양이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하네시 마을 모퉁이에서는 드래곤의 오물냄새로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에 폐를 끼치는 것을 참으로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도 방안이 없었다. 이젠 새끼 드래곤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커 버린 드래곤인데다가 우리 기사단원들을 형제처럼 따르고 말도 잘 듣고 있었다.

우리 기사단원들이 기사단숙소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집으로 누가 찾아왔다. 마을시장이었다. 마을시장은 우리에게 드래곤과 함께 이 마을을 떠나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살아왔던 이 마을에서 드래곤과 함께 쫓겨나게 되었다.


하아. 우리는 그날 이른 오후에 마을에서 나와 드래곤을 데리고 숲으로 갔다. 우리 드래곤이 숲을 거닐을 때마다 나무가 몇 그루 씩은 밟히고 있었다. 우리 기사단원들은 쓰러지는 나무에 행여나 깔릴 까봐 조마조마 하고 있었다. 정말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등에 배낭을 매고서 드래곤을 올려다 보며 외쳤다.


"야, 좀 살살 걸어!"


드래곤은 알아 듣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내 말에 꾸륵 꾸륵 소리를 냈다. 처음 주워 왔을 때는 갈매기 소리처럼 끼룩 끼룩 대더니 이제는 좀 보이쉬하게 꾸륵 꾸륵 소리를 내게 되었다. 정말, 어쩌다가. 드래곤은, 그렇게 처음에는 큰 병아리마냥 노랬는데 한 달여가 지나자 몸이 갈색빛이 나다가 삼 개 월 여가 지난 시점에는 몸에서 붉은 털이 나고 있었다. 그레잇이 말했다.

"제가 드래곤에 대해 조금 알지요. 대게 드래곤들은 새끼 때는 종을 잘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크면서는 종이 나뉘어 지지요. 이 드래곤은 레드 드래곤 인 것 같습니다."

뭐- 라고요, 그레잇!? 레드 드래곤? 빨간색? 그래서 지금 드래곤의 몸에서 붉은 털이 자라는 건가. 나는 그레잇에게 물었다. 레드 드래곤에 대해서 말이다.

"레드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그레잇은 둘러 입고있는 블랙로브의 망토모자를 눌러 쓰고 있어 눈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레잇은 차분히 말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종이며 입에서는 불을 뿜고 사악한 종류의 드래곤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 드래곤이 사악한 레드 드래곤이라고? 그런데, 우리 말을 잘 듣고 현재까지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은 놈인데. 나는 그레잇에게 우리가 데리고 있는 저 드래곤이 수컷인지 암컷인지를 물었다. 그레잇은 수컷이라고 했다.

등 뒤에서 따라오던 우리의 드래곤은, 갑자기 저 높은 공중을 향해 불을 내뿜었다. 우리는 하늘을 붉게 묽드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순간 그렇게 지상 아래는 높은 열에 나뭇잎들이 타는 현상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있던 지면 위는 뜨거웠고, 내 몸에서는 열기와 함께 현기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드래곤이 내뿜는 불은 오래 가지는 않았고 잠잠해졌다. 나는 몸에서 땀이나서 옷이 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내 가슴에 있는 상의를 당기며 몸에 있는 열을 밖으로 조금 빼냈다.

어떻게 드래곤이 자신의 말이 나오자마자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는 듯 하늘에 불을 내뿜다니. 정말 그레잇이 말한 레드 드래곤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 기사단은 마을을 떠나 동쪽으로 20km를 걸어 갔고, 근처의 활동하고 있는 화산이 있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레드 드래곤은 화산을 보더니 갑자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라 화산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분화구가 있는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어? 레드 드래곤! 자살 하려는 거니? 나는 깜짝 놀라서 같이 옆에서 걷고있던 그레잇에게 말했다.

"지금 레드 드래곤이 뭐하는 거죠?"

그레잇은 모자를 들어 화산 분화구를 바라보며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화산 분화구 안으로 들어 간 것 같습니다. 레드 드래곤은 화산에서 태어난답니다."
녀(女)기사 - 드래곤과 기사단 (34/100회)

날은 이미 저녁이었는데 화산의 분화구 안으로 들어갔던 그 레드 드래곤은 한 시간가량 지나서야 분화구 안에서 펄쩍 뛰어 올라 밖으로 나왔다. 그 드래곤의 몸에서는 김이 나고 있었고, 즐거운 듯 보였다. 잠시후 우리의 등 뒤에 1km가량 떨어진 곳에 착륙한 드래곤은 하늘에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깜짤 놀랐다. 드래곤이 외치는 소리가 마음을 통해 전해져 왔고, 또 드래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를 키워주셔서 모두들 고마워요.'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고 모두들 드래곤이 하는 말을 듣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것처럼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우리 기사단원들도 마찬가지리라. 하지만 그레잇만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별로 놀라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레잇이 말했다.

"사람과 가까워진 드래곤은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하는 전설이 있지요."

그 말을 마친 그레잇은, 양팔을 벌려 하늘을 향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잠시후 그레잇의 양손에서 밝은 흰빛이 일어나면서 그 빛이 하늘을 향해 뭉쳐 날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 빛은 상당히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는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사방으로 퍼졌다. 그레잇을 제외한 우리 세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움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레잇은 말했다.

"저 드래곤에게 우리의 친구가 된 것을 환영한다는 표현을 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레드 드래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고음이라서, 귀를 막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으윽, 이 야밤에 갑자기 괴성이람!"

나는 귀를 양손으로 틀어 막으며 궁시렁 댔다.

그렇게 한참동안 레드 드래곤의 괴성이 이어지다가 멈추었다. 사방이 쥐죽은 듯이 조용한 가운데 그레잇이 말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제가 정하도록 하지요. 그곳은 바로, 이공간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 '심연의 나라'." 하고 그레잇은 말하고 자신의 입으로 몇 마디를 중얼거리고 오른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레잇의 내민 손에서 빛이 나더니 뒤틀린 거울같은 다른 차원의 문이 발생했다. 그레잇이 말했다. "이곳으로 들어가죠."

정말, 그레잇이란 사람의 존재가 궁금해 진다. 그는 이미 자신의 과거를 말한 바 있었지만, 현재 그레잇이 벌이는 모습들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 하기 때문에 그의 알 수 없는 과거들이 더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우리는 한 사람 씩 천천히 그레잇이 만든 다른 차원의 세계로 한 사람 씩 들어갔다. 내가 밀리터리맨, 야곱에 이어 세 번 째로 들어갔는데 그레잇은 맨 뒤에서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차원의 문에 발을 한 발짝 내밀었을 때, 나는 그 공간으로 빨려 들어 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몸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어, 내 앞사람들과 같이 그 공간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어가게 만들었다. 나는 그  공간에 빨려 들어갔고, 원래 그 공간 밖에 있어야할 풍경들과는 다른 곳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몸은 원치않게 저절로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밀리터리맨과 야곱이 팽글 팽글 돌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렇게 지금 정신없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 보았을 때, 밀리터리맨과 야곱과 나는 왠 한 밤의 공중묘지같은 분위기가 나는 안개 낀 허허 들판 위에 누워 있었다. 내 옆에는 밀리터리맨과 야곱이 누워 있었고 내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인 듯 했다. 그레잇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이 정체모를 곳에서 레드 드래곤의 행방 역시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누워있는 두 사람 중 밀리터리맨을 먼저 깨웠다. 행여 무슨 일이 발생하면 야곱보단 밀리터리맨이 전력이 더 될 것이다. 밀리터리맨! 밀리터리맨! 일어나세요!

밀리터리맨은 인상을 찡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밀리터리맨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나는 밀리터리맨에 이어서 야곱도 깨웠다. 야곱은 일어나며 '빵, 빵 어딨어'하며 먹을 것을 찾았다. 나는 야곱에게 현재 상황을 이야기 해 주었고 야곱은 '난감하네.'란 말로 현 상황을 표현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그레잇이 보이질 않았다. 그레잇, 어디에 있어요.

저 멀리서 그레잇과 레드 드래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발걸음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그레잇이 멀리서 다가오면서 말했다. 망토모자는 어느새 뒤로 제껴 놓고 있어 얼굴이 보였다.

"이곳은 지구의 중심을 받지만 지면에 닿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곳이죠. 이공간, 마법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입니다."

그레잇과 레드 드래곤은 어느새 우리들 가까이 다가왔다. 밀리터리맨이 그레잇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뭐지요?"

그레잇은 차분히 대답했다.

"정의를 위한 일을 하는 기사단이라면, 악의 본거지인 이곳을 소탕하는 것을 전제로 합시다."

에엑! 뭐라구요? 이곳이 악의 본거지라고요? 나는 깜짝 놀랬다. 악마들이 바글 댄다는 것인가? 그레잇이 말했다.

"안개가 끼고 주위가 어둑어둑 한 것은 마법으로 만들어 낸 한계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며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오래 전 고수준의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제3세계이지만 실패한 이공간이죠. 그런 곳을 악마들이 잠식해서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고작 우리 기사단으로 이런 곳엘 들어왔단 말인가? 황당함을 금치 못 하겠다. 나는 그레잇에게 대꾸하며 말했다.

"어이가 없군요. 마치 악마들에게 죽으러 온 것 같잖아요."

그레잇은 등뒤에 레드 드래곤을 가리키며 말했다.

"독자적인 길을 걷는 레드 드래곤은 악마들의 킬러라 불리고 있기도 하지요. 레드 드래곤 한 마리면 이곳은 평정하기 쉽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어떤 한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키가 컸고 얼굴은 하앴으며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오는 긴 흑색의 생머리를 가진 잘 생긴 남자였다. 복장은 나체였다. 나체..

그 남자는 우리 앞에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레드 드래곤을 데리고 오신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그 남자는 말했다.

"레드 드래곤이라면 족히 우리를 모두 파멸하고도 남겠지요. 이곳에서 레드 드래곤의 등장으로 우리 악의 세력이 소멸했던 그때로부터 정확히 50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500년 전에도 당신들처럼 레드 드래곤을 몰고 이곳으로 왔던 기사단 무리들이 있었지요."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나서 잠시후 이어서 말했다.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싸우는 어리석은 악마들은 없습니다. 항복하오니 부디 저희들을 부하로 넣어 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녀(女)기사 - 악마들을 부하로 삼다 (35/100회)

그때 그레잇이 말했다. '이 사람을 강하게 해 줘.'하고 나를 가리켰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 나체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지요."

그 나체의 남자의 몸에서 검은 연기들이 일더니 이내 그 검은 연기들이 내 몸을 관통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레잇에게 외쳤다.

"뭐에요!? 이건?!"

그레잇은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밀리터리맨은 단도를 뽑아 들고서 그레잇에게 말했다.

"사실 우리 기사단에서 실세라고 하면 당신이겠지, 그레잇. 우리 중에 당신이 가장 강하니까. 그런데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그레잇은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레드 드래곤을 손에 넣었고 또 이세계에 모여있는 악마들을 부하로 두게 되었습니다.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 부하인 악마들에게 하나비 씨를 강하게 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악마들은 악한 영혼을 몸에 모아 두어 자신의 힘으로 사용합니다. 그 힘을 나누어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밀리터리맨은 그레잇에게 멈추라고 지시했다.

"그만두시오. 우리는 악을 벌하는 집단이지 악과 손잡는 사악한 기사단이 아니라오."

하지만 그레잇은 밀리터리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레잇, 당신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힘을 얻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지? 그레잇을 기사단에 받은 것은 실수였어!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끓어오르는 힘을 감지했다. 내 입에서는 검은 입김이 나고 있었고 손에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뽑아 버린 내 은제 롱소드의 손잡이가 들려 있었다. 나는 차분한 어조로 그레잇에게 말할 수 있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무언가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그레잇은 말했다.

"정의로웠을 때의 당신은 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최강의 검사 중 한 명일 것입니다."

나는 왼손에 검을 바꿔 쥐었다. 그리고 검을 사람들이 없는 허공에 한 번 옆으로 휘둘렀다. 그랬더니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그레잇에게 말했다. 밀리터리맨과 야곱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 보고 서 있었다.

"이상하네요. 가볍게 휘드른 것 같은데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나다니."

그레잇은 말했다. "당신은 이 신세계의 군주니까요. 그에 걸맞게 강해지신 겁니다."

그때 밀리터리맨이 우리 두 사람을 저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소. 그레잇, 여기있던 일은 이만 없었던 일로 하고 돌아 갑시다."

하지만 그레잇은 그런 밀리터리맨의 말에 대꾸했다.

"눈앞에 힘이 있는데 그 힘을 걷어 차 버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악마들이 저절로 부하가 되겠다고 하는데 본래 박멸해야 할 그들을 전력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건 과거 수백 년간 아주 보기 드믄 예입니다. 그것을 굳이 마다 하시겠습니까?"

밀리터리맨은 단호하게 말했다.

"거부하겠소."

그레잇과 밀리터리맨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곱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굴리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고, 나는 그레잇의 말에도 일리가 있고 밀리터리말에도 수긍이 갔다.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나약하기만 했던 내 자신이 지금 누구보다 강해져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레잇을 편들며 말했다.

"밀리터리맨. 처음으로 당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군요. 저는 그레잇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더 생각이 들어요. 이번만은 당신이 그레잇의 의견에 따라 주었으면 해요."

나는 몸에서 쾌감이 솟아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이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밀리터리맨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또 그 석고상 같은 표정으로 이전과는 다르게 나를 쏘아 붙이 듯 말했다.

"틀렸어, 존 군. 지금 자네의 눈을 보게. 자네의 눈은 악에 멀어 버렸어. 밝았던 이전의 눈빛은 사라지고 탁한 검은 색이 눈동자를 가득 메워 버렸다네. 그렇게 힘을 원했나? 그렇다면 왜 수련을 더 하지 않았나. 그것부터 따지고 들어가게.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힘이라면, 나라면 얻지 않을 걸세."

나는 화가났다. 지금, 나는 힘을 얻었다. 하지만 밀리터리맨은 나를 시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악이 어떻든 그 악이 우리의 전력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내가 후회하게 될 생각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 했다. 나는 밀리터리맨을 향을 내 왼손에 쥔 검을 재빠르게 날렸다. 밀리터리맨은 순간 자신이 들고있던 단도로 내 검을 막았다. 나는 가볍에 힘을 쥐고 있는데도 밀리터리맨은 매우 힘에 겨운 듯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보기보다 나약하시군요." 하고 나는 말하고 검을 도로 거두었다. 내 몸에서 끔임없이 알 수 없는 기운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져서 이제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든 발산 해 내고 싶었다. 피가 보고 싶어졌다. "아. 밀리터리맨. 죄송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왜지, 지금 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이 내 의지는.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 그레잇이 말했다.

"악마들에게 명한다. 레드 드래곤을 보살피고 우리가 즉각 출동명령을 내리면 이공간을 뚫고 나오도록."

그 나체의 남자는 그레잇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는 형체를 감추어 버렸다. 그레잇은 말했다.

"이제 다시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지금은 레드 드래곤이 우리의 말을 잘 들으나 원래 사악한 동물입니다. 나중에 본능에 눈을 뜨고 우리를 배신할테지만, 악마들에게 레드 드래곤을 맡겨 놓는다면 그들과 동화되어 우리 말을 듣겠지요. 아시겠습니까, 밀리터리맨? 이것은 다 우리 기사단을 위한 제 노력입니다."

밀리터리맨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백발 머리카락 한가닥이 그의 앞이마에서 내려와 그의 이마를 살짝 가렸다. 나는 아무렴 좋았다. 강해 진 것이다. 이전의 나약한 나는 없어진 것이다.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셈이 되는가? 하지만, 그레잇이 한 일인 걸.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나를 그렇게 합리화 했다.

그레잇은 다시 이공간의 아지랭이 피어오르 듯 뒤틀리는 문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던 그 화산 옆의 숲속으로 되돌아 가게 되었다. 나는 숲속에서도 내 안에 꿈틀거리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밀리터리맨에게 말했다.

"밀리터리맨, 저는 강해지고 싶었어요. 그 누구보다요. 하지만 저는 제 한계를 깨달았죠. 저는 세례나 기사단의 붉은 머리의 매처럼 강해 질 수 없어요. 저는 악마의 힘을 빌어서라도 강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다만 그 힘을 정의를 위해 쓰면 되지 않겠어요?"
녀(女)기사 - 타락한 하나비 기사단 (36/100회)

하네시로부터 출발한 우리 기사단은 레드 드래곤을 이공간의 악마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 악마들을 부하로 둘 수 있었다. 이것은 그레잇이 자초한 일로, 나는 악마들의 힘을 빌어 강해지게 되었다. 강해진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었고, 뭐든 하찮게만 보였다. 거칠 것이 없어진 나였지만 나는 그 힘을 발산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야곱은 내 앞에서 입을 닫아 버렸고 밀리터리맨은 내게 더 이상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은 없었다. 그레잇은 앞으로 다른 말을을 구원 해 나가자는 말을 하며 기사단을 다독였고 나는 내 힘을 시험 할 장소가 필요했다. 어디야, 어디로든. 나는 어디든 좋았다. 우리는 마을시장에게 레드 드래곤을 버리고 왔다는 말을 하고 다시 마을로 복귀했다. 그리고 기사단숙소에 모여 앞으로 기사단의 앞날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뜸 밀리터리맨이 두 장의 '탈퇴서'봉투를 들고 나에게 내밀었다. 밀리터리맨이 말했다.

"존 군, 그동안 즐거웠네. 나와 야곱 군은 기사단을 그만 두겠어."

뭐라고요. 기사단을 그만 두겠다고요? 나는 밀리터리맨에게 말했다.

"그만두고 하실 일은 따로 있으세요?"

밀리터리맨은 석고상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의 눈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우리는 세례나 기사단에 가서 입단을 신청할 생각이라네. 자네는 이전과 달라졌어. 우리는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 본 봐로 그것을 알 수 있지."

나는 마음 속에서 끌어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악에 조종되는 나의 의지일 것이다. 나는 마음 가는대로 해 버렸다. 나는 일어서서 내 허리 오른춤에 차여 있는 검집에서 왼손으로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밀리터리맨과 밀리터리맨의 등뒤에 있는 야곱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필시 검을 겨눈다는 의미는 절대 좋지 않은 의미였다.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어. 당신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고, 이 기사단은 당신들이 없으면 껍데기뿐인 기사단에 지나지 않아. 밀리터리면, 심사숙고해서 다시 생각 해 주세요."

하지만 밀리터리맨은 그런 나를 쏘아 붙였다.

"지금 이런 존 군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들고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뭔가 핵심을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이전의 나였으면 분명 이러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힘을 얻게 된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잘 알게 되었다. 힘을 가지게 되면,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 같다. 그것을 참고 올바른 일에 매진할 때 비로서 그 힘을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힘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힘을 갖게 된 나는 뭐든 제멋대로 하려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검을 떨어뜨렸고 나는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렇다고, 다시 내가 갖게 된 이 힘을 잃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될 공허함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갖게 된 이 힘을 버리고도 내가 다시 이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레잇은 잠자코 있다가 그때서야 끼어 들며 말했다.

"두 분이 떠난다면 아마 하나비 씨는 기사단이 나아갈 방향을 어찌해야 좋을지 가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말 떠나시렵니까?"

밀리터리맨과 야곱의 표정은 진지했다. 밀리터리맨과 야곱은 동시에 대답했다.

"예."

그리고 그 두 사람은 기사단을 떠나 버렸다. 이제 기사단에는 그레잇과 나 존 하나비만 남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분노했고 이런 내 감정이 몸에 있는 악한 기운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았지만 주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을 비난했다.

"정말 책임감없는 두 사람이에요, 안 그런가요? 함께 기사단을 시작했으면서 이제는 제가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기사단을 그만 둬 버리다니요. 오히려 축하 해 줄 일 아닌가요? 정말, 그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나의 이런 투덜거림에 그레잇은 맞장구 쳤다.

"그럼요. 그 두 사람이 나뻤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떠나버리자 끝없이 허탈감이 밀려 왔다. 마음 한 쪽이 쓰라려 왔다. 배신자들. 내가 힘을 갖는 것이 그렇게 꼴보기 싫단 말이지? 나는 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악한 기운에 힘을 실었다. 나는 요즘에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에게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못된 말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이런 못된 마음씨를 갖고 악한 생각을 했던 걸까. 나는 원래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힘을 빌린 후로 내 마음에는 그러한 나쁜 마음들을 끊임없이 들끓고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이 미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레잇은 이전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두 사람이 떠난 후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하고 있었다. 왜지? 나때문인가? 왜? 나는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러다 참지 못 해 그레잇에게 물었다.

"두 사람이 떠났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실 수가 있죠?"

그레잇은 대답했다. '저는 하나비 씨만 있으면 됩니다.'하고.
나는 그런 그레잇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신은 쓰레기야.
녀(女)기사 - 하나비 기사단 해체 (37/100회)

내 이름은 존 하나비. 우리 기사단은 레드 드래곤을 손에 넣고 이공간의 악마들을 부하로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과 함께 밀리터리맨과 야곱이 기사단을 그만 두고 나가 버렸다. 나는 그들을 더 이상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변한 것은 나였기 때문에, 내가 악의 힘을 손에 넣고 그 힘을 이용해 강해지고 그로 인해 변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기사단에는 그레잇이 있었고, 그레잇과 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거기에 레드 드래곤에 악마들을 불러낼 수 있었기에 기사단 전력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나는 그레잇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밀리터리맨과 야곱이 떠난지 1년이 지난 날이었다. 나는 언덕 위에서 그레잇과 함께 작은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저 마을을 부셔 버리고 가죠."

그레잇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나는 검을 뽑아 들고 마을로 내려가서 무차별 살육을 저질렀다. 그레잇은 레드 드래곤을 이공간으로부터 마을로 불러 내어 드래곤이 마을에서 날뛰도록 했다. 그리고 이공간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생김새를 한 악마들이 마을을 박살내고 있었다.

나는 내 긴 금발머리카락이 이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죽여 나간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로써 도적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무차별 적으로 파괴하고나서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발닿는 대로 향했다. 나는 온 몸이 피에 젖어 있었는데 닦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는 이미 내 코가 무감각해져 있었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레잇에게 말했다.

"아무리 도적들이라지만, 우리는 도적들보다 더 한 것 같군요."

그레잇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미 늦었습니다. 세간에 우리 두 사람은 파괴자로 불리고 있고 친했던 세례나 기사단까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해 온 지 벌써 반 년이 지났으니까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자 중얼거리 듯 말했다.

"이게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일까요. 정의를 명목으로한 일방적인 살육전이 아닐지요..?"

그레잇은 힘을 가진 자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정의로운 것이라는 구실로 우리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고 말았다. 아무리 도적들이라지만, 방금 내가 베어 나간 저 도적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도적은 아닐 것이다. 저들도 다 이유가 있기에 도적질을 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도적질은 옳지 못 하지.'

나는 그렇게 혼자서 생각했다.

그레잇과 내가 이 일 년 간 세계를 떠돌면서 정의를 명목으로 한 행위들은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조건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말을 거역했으니까. 나는 다음 목적지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그레잇에게 기사단을 그만 두자는 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의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우리가 한 행위들이 정의를 위한 구실 치고는 너무 파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레잇은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왠지 저는 지금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오히려 약했을 때보다도 외롭군요."

나는 밀리터리맨, 그리고 야곱과 나. 셋이서 함께 기사단을 만들어 악을 쫓아내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즐거웠던 그때가 눈에 아른 거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눈을 떴다.

"그때 새끼 드래곤이 화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냥 숲에다 새끼 드래곤을 버려 버렸더라면 지금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레잇도 그때는 함께 있었으니 알 것이다. 그레잇은 말했다.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부정한다면 우리 스스로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맙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듭니다."

그레잇. 당신은 냉철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당신처럼 냉철하지 못 해.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당신은 성장과정이 불우했어. 하지만 나는 달랐지. 나는 군사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만스러웠을 뿐, 나머지는 즐거웠어.

나는 오른쪽 허리에 차고있던 검집을 빼서 저 멀리 허공을 향해 던져 버렸다. 내 몸에 뒤짚어 썼던 피는 이미 마르고 물만 들어있어 내 몸은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빨갰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이런 내 자신이 슬퍼졌다.

"세상에 정의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에요. 우리 같은 인간이 애초에 정의를 위한다는 건 이렇게 인위적으로 계속 할만한 것이 못 되요. 정의란, 이렇게 찾아 해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보고 느낄 수 있고 또 일상에서 할 수도 있는 거에요."

나는 그레잇에게 말했다.

"제 몸에 있는 악의 힘들은 이제 물러 가 주었으면 하는군요. 저는 더 이상 힘을 원하지 않아요. 이제 이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알아요. 저는 본의 아니게 수배자가 되었으니까요. 당신도 그렇구요. 그냥, 세속에 숨어서 살아 갔으면 해요. 당신도 그만 두세요."

그레잇은 서글픈 표정이었다. 그레잇이 말했다.

"제가 기사단에 들어왔던 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 그러하길 원하신다면 저는 굳이 당신을 말릴 생각이 없어요. 그럽시다, 그러도록 하지요. 레드 드래곤과 이공간의 악마들에게는 제가 말 해 두겠습니다. 이공간 외에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요. 그럼 되겠지요?"

나는 울음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레잇의 의지에 대답했다.

"예. 좋은 생각이에요."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타락한 1년 간의 모험을 끝으로 기사단을 해체하기로 결심했다.

끝났다. 이제. 그리고 이 긴 모험을 끝으로 내린 결론은 '정의는 없었다'란 것이었다.

정의란 무엇일까.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올바른 행위가 바로 정의인 것이다. 그렇다고 정의가 아닌 다른 것을 힘으로 찍어 눌러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나비 기사단.

해체.


목표를 잃었기 때문에, 우리 기사단은 해체했다. 그레잇과 나는 이공간에 들어가서 다시는 이 세계에 나오지 않기로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더 이상 이 세계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레잇과 내가 이공간으로 들어간 후 팔 개 월 여가 지나는 동안 우리는 현 세상의 소식과는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이공간에서 독서를 하고 이공간의 악마들하고 이야기를 하는 등의 조금 따분하지만 나름 지낼만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레잇은 마법수련만 죽어라 하면서 빨리 나이 들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우리 두 사람은, 현 세계에서 '파괴의 군주'라고 일컫어 지는 대악마가 악의 근원지인 지하세계에서 올라 와 현 세계를 지배하려 들고 있다는 소식을 악마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녀(女)기사 - 다시 현 세계로 (38/100회)

그레잇과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악은, 선보다 약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는 이루어 진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그레잇도 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했다. 사실 알고보면 그 파괴의 군주가 지상 위로 올라오게 된 이유는 우리 때문인 것 같았다. 인간이 마물인 드래곤을 이끌고 정의를 행세하며 지상 위에서 살육을 벌였기 때문에, 지상은 혼란스러웠고 그로인해 지하세계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지하세계의 '파괴의 군주'라 불리는 대악마가 블랙 드래곤 세 마리를 이끌고 지상 위로 올라왔다. 이것은 내가 이공간의 악마로부터 들은 내막이었다. 결론은, 그레잇과 나 때문이었다. 지금쯤 현 세계는 파괴로 얼룩져 있는 지옥같은 풍경일 것이었다. 그레잇과 나는, 현 세계에 행한 잘못을 씻기 위해 우리가 거둔 씨앗을 우리가 거두기 위해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정의란 명목으로 현 세계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현 세계에 거두어 들인 '파괴의 군주'는 우리가 마무리를 짓자는데 그레잇과 나는 의견을 모았다. 우리에게는, 레드 드래곤이 있었다. 그리고 이공간의 악마들은 우리 편이었다. 그레잇과 나는 오랜 만에 이공간을 벗어나 다시 현실 세계로 나갔다.

돌아 온 현실 세계는 의외로 평온 해 보였다. 하늘 높은 곳에서 바라 본 지상은, 커다란 숲이 있었고 저 멀리까지 아주 평온 해 보였다. 뭐지? 파괴의 군주가 올라 온 것이 아니었나? 나는 어리둥절했고 당황스러웠다. 그때 그레잇이 말했다.

"파괴의 군주가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서쪽으로 한 참을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레잇과 나는 하늘을 가볍게 떠다닐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에는 이공간의 악마들의 힘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몸을 가볍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가볍에 숲 한 가운데 착지하고는, 서쪽을 향해 걸었다. 이대로 서쪽으로 간다. 서쪽 끝에서는 지금쯤 파괴의 군주가 블랙 드래곤 세 마리를 데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레드 드래곤을 데리고 있는 그레잇과 나 뿐일 것이다. 다시는 지상 위로 올라오지 못 하게 해 주겠어.

우리 두 사람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해 걸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걸 수 십 번 반복한 끝에야 우리는 파괴의 군주가 있는 곳에 닿을 수 있었다. 아, 왔구나. 나는 우리 두 사람 앞에 펼쳐져 있는 마을을 바라봤다. 폐허. 이미 불길조차 꺼져버리고 잿더미만 남은 폐허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잿더미들도 이미 먼지는 바람에 다 날려서 새까만 잿덩어리들만 남아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그곳은 이미 벌레 한 마리 살지 못 할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파괴의 군주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레잇에게 말했다.

"파괴의 군주가 이동한 방향은 어디에요?"

그레잇은 말했다.

"북쪽입니다."

우리는 북쪽으로 걸어갔다. 걷다보면 만날 수 있겠지, 파괴의 군주를.

그리고 우리는 옛 하네시에 닿을 수 있었다. 다시 찾아 온 하네시는, 파괴의 군주가 휩쓸고 지나간 우리가 먼저 보았던 그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오른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너무 처참하군요."

그레잇은 그런 내 말에 묵묵부답했다.

나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지상을 자기들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기들에 비해 개미만도 힘을 갖지 못한 반항하는 인간들을 쓸어 내겠다는 건가. 나는 절대로 파괴의 군주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상황이 동쪽으로 진행되지 못 하도록 막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길로 곧장 북쪽으로 걸었다.

우리는 또 그렇게 해와 달이 번갈아 뜨기를 수 십 번 반복했을 때 드디어 파괴의 군주가 만들어 놓은 꼬리를 따라 이동한 끝에 드디어 파괴의 군주와 맞딱뜨릴 수 있었다. 파괴의 군주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멋진 남자의 모습을 하고. 나는 파괴의 군주에게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지?"

파괴의 군주는 대답했다.

"지상 위에 사는 인간들이 부러워서."

결국은,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군. 그레잇은 레드 드래곤을 이공간으로부터 불러냈다. 파괴의 군주는 블랙 드래곤 세 마리를 동시에 불러 내었다. 레드 드래곤 대 블랙 드래곤 세 마리의 싸움. 나는 그레잇에게 물었다.

"레드 드래곤이 블랙 드래곤과 일 대 일로 붙는다면 어느쪽이 이길까요?"

그레잇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레드 드래곤에게 한 표 던집니다.

그래요, 나도 레드 드래곤에게 한 표를 걸지요. 내기는 없지만.

우리는 파괴의 군주와 싸웠다. 그리고 졌다. 우리는 패배와 확정됐다고 느끼는 순간, 그와 동시에 우리만 이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레잇이 패배할 것을 대비 해 미리 손을 써 둔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레잇, 당신은 정말 치밀한 사람이군요.

나는 이공간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 났을 때엔 주위에 그레잇이 옆에서 잠들어 있었고 상처 입은 레드 드래곤은 저 멀리서 목을 늘어 뜨리고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공간에 있는 악마들을 불러내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레잇이 일부로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가 이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온지 약 일 개 월이 지났고 우리는 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이공간 안의 악마들은 현 세계와 지하세계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고립되어 있었고, 그레잇이 이공간의 문을 열지 않는 한 우리는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레잇은 그 싸움에서 패배한 이후 이 이공간 안에 들어오고 한 달이 지나도록 잠에서 깨어나질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레드 드래곤은 잠에서 깨어났으나 몸을 심하게 다쳐 다시는 일어 설 수 없었고 그렇게 말라 간 레드 드래곤은 그로부터 보름 뒤 스스로 숨을 거뒀다. 이공간의 악마들은 방황하기 시작했으며, 그레잇이 깨어나질 않을 경우에는 다시는 이 이공간을 현 세계나 다른 공간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없었다.

나는 그레잇의 옆에서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영원히 깨어나질 않았다. 그러다 조용히 그레잇의 심장이 다시 뛰질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이공간의 악마들은 폭주 해 버렸다. 이공간의 악마들은 일제히 나에게 달려 들었다.

나는 전투의지를 잃고 검을 내려 놓았다. 더 이상 삶에 미련은 없었다.


현 세계에서 이루지 못 했던 꿈은 이제 한낯 추억이 되어 버렸고, 현 세계에서 일으켰던 속죄를 씻을 방법은 도저히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삶에 의지를 꺾는 이유였다.


이공간의 악마들은 일제히 내 목숨을 노리고 달려 들어왔다.

나는 양 팔을 벌리고 죽은 후에라도 현 세계로 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마지막으로 이공간의 악마들에게 내 전신을 맡겼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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