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넥스와 플렉스는 할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뜬금없이 인코니타가 되어있는 쥬이썬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나딘 일행들이 안보였던 것도 우리를 이곳으로 밀어 넣으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살아나가려면 이곳을 박살내는 수 밖에."
쥬이썬은 짧은 경고, 그 이후에 아무런 말 없이 그 자신의 깊은 중심부에서 푸른 빛을 내는 거울의 파편들을 날려보냈다.
"재일베이트(Jailbait)."
시모넥스의 왼손이 한이 서려보이는 수많은 쇠사슬들로 갈라져 공중을 향해 뻗어나갔다.
시모넥스에게 날아오던 조각들은 그의 면전 약 30m 앞에서 그의 쇠사슬에 모두 묶였다.
아니, 묶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까 통로에서 조각들이 가루가 되어버린 것과는 달리 그것들은 쇠사슬을 보기 좋게 관통해버리고 맹렬히 날아오고 있었다.
"이……이게 무슨……?"
순간적으로 갑옷을 동화한 시모넥스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 옆에 있던 플렉스의 몸에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조각이 내리 꽂혔다.
"뭐에요……아저씨, 아까랑은 다르잖아요?"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된 일인지……"
차마 원인을 분석하기도 전에 쥬이썬의 공격은 다시 시작되었다. 방금 전의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조각들이었다.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아무래도 뭔가 물리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이 있는 게 분명해요."
시모넥스는 신안의 등급까지 눈을 개방했다. 쥬이썬의 '공격'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자 그 현상이 쉽게 붕괴되는 몇 가지 점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플렉스는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도약해 순식간에 그 점들을 하나하나 찔러 붕괴를 가속시켰다.
"아니야……무엇인가가 잘못됐어."
플렉스의 예감은 정확히 적중했다. '존재'는 전혀 붕괴되지 않은 채 멀쩡해 보였다. 이번에는 예상을 했기에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몸의 부상은 더욱 심해졌다.
"제로-인(Zero-In). 틀림없어요. 야크랑 똑같잖아요!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있는 거!"
"그래. 쥬이썬의 영혼이 갇혀있는 '이것'의 이름이 제로인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녀석이 제로-인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움을 해야된다는 말이 되잖냐!"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저의 공격은 날아오는 유리조각들, 그 자체였고 아저씨가 공격했던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즉 야크가 제로-인을 사용할 때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만 대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유리 조각들은 곧 제로인과 동일시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구요."
시모넥스는 이해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플렉스의 장황한 설명을 이쯤에서 끊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빨리 결론만 말해!"
"놈을 아저씨와 제가 동시에 공격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녀석이 공격을 감행할 때 아저씨가 유리조각을 향해 뭔가를 하면 제로인이 힘을 발동할 거고 그 사이에 저는 저것의 중심부 안에 들어가서 대기하다가 아저씨의 공격이 무력화 되는 것과 동시에 이 존재를 파괴시키면 된다 구요!"
시모넥스는 그래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마지막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제로인의 공격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좋아……이왕에 네 녀석이 내 공격이 너에게 닿는 시간만큼을 역행해야 한다면 그 시간을 길게 해주지. 가능한 많은 마력을 소모하게 해야 플렉스가 네놈을 없애는데 무리가 덜 갈테지. 여기……분명 탄광이라고 했지. 사릭스 니아몬(Salix Niamon). 네 차례인 것 같군."
시모넥스의 오른쪽 팔뚝이 화려한 자줏빛을 내뿜는 성창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자그마한 화염과 소량의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잘 가라."
시모넥스가 팔을 휘두르는 순간 사릭스 니아몬의 끝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가스와 화염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일격에 급속도로 일어나지 않고 연쇄적인 반응의 형태로 발생했기 때문에 그만큼 쥬이썬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그가 역행해야 할 시간이 길었던 것이다.
시모넥스는 아르젠타미스를 동화한 채로 가능한 한 동굴의 끝자락으로 내달렸다. 그는 등 뒤로 몇 개의 조각들과 폭발에 의한 불똥들이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느꼈지만 무시한 채 끝까지 달렸다.
그 틈에 플렉스는 제로인의 깊숙한 중심부까지 들어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의외의 물체가 있었다.
주황색의 구,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의 물체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체의 상태가 아니라 주변의 푸른색 빛과는 대조적인 빛을 발산하고 있는 에너지인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플렉스는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단 마안의 단계부터 개방해야 했다. 이 '제로인'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이것을 파괴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쥬이썬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에덴이 이를 인코니타화 하였음. 그렇지만 그는 이곳의 주인이 쥬이썬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음. 이곳에는 제로-아웃(Zero-Out)의 힘을 보관하고 있음……응?'
플렉스는 마안으로 그곳의 정보를 읽어나가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발견했다.
"설마, 이 주황색 빛이 제로-아웃의 에너지라는 건가."
그는 아직 읽지 않은 정보를 연이어 읽어나갔다.
'이는 식스 닷이 쥬이썬에게 마지막으로 넘겨 준 신이 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쥬이썬이 코비에게 암살당하기 전에 이곳으로 가까스로 와 영혼의 힘으로 제로-아웃을 봉인해놓았다.'
마지막 한줄까지 정보를 다 읽은 플렉스는, 육감적으로 제로-인의 발동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다'
그는 지금껏 몇 번 해왔던 것과 같이 칼을 높이 들어올린 채 신안의 힘으로 제로인이라는 이 공간을 깔끔하게 파괴해버렸다.
순식간에 그곳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적출되어 버렸고, 남은 것은 제로-아웃의 에너지뿐이었다. 이제 시모넥스와 플렉스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야크에게 이 힘을 안전하게 전달할것.'
시모넥스는 온몸에 묻은 시커먼 재를 털어내며 달려왔다. 그는 플렉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서 쥬이썬이 암호를 걸어놓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군. 그나저나 폭발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지 않았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멀쩡하네. 이걸 타고 다시 올라가자고. 나딘 일행들은 우리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지도 않을테니 순조롭게 야크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야크는 마합에 갔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도……"
"물론이지. 이곳 동노레이브 동북지방에서 아몬의 위트레시아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아. 내 예상에는 야크가 흥분해서 가긴 했어도 마합을 치기 위해 정보가 필요한 바, 나에게 공중전화 따위로 연락을 할거라고. 그러면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면 되는 거잖냐."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시간이 어느새 정오 즈음이 될 때가 되 서야 야크는 뭍에 상륙할 수 있었다. 넓은 모래가 펼쳐져 있는 백사장이었다.
"추워 죽겠군. 그나저나 이제 여기서부터 마합을 찾으러 나서야 할 텐데."
그 때,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 야크의 귀로 낯선 이의 40~50대의 걸걸하면서도 지금 그가 발을 딛고 서있는 동토(凍土)의 날씨처럼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자네를 격추하려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보군, 레인씨."
강렬한 이미지가 풍기는 백발의 머리카락에, 군복을 입고 있는 그 덩치 좋은 남자는 구석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등장했다.
"아몬 어느 군부대의 왕초가 아닌가 보군. 내 이름을 알다니. 편하게 야크라고 불러. 그나저나 전투기를 보낸 것도 네 녀석이냐?"
그러나 남자는 야크의 말을 무시하는 듯이 제 이야기만 해댔다.
"내 이름은 노아 타셀하츠(Noa Tacelart). 마합의 라이더(Rider) 중 한 명이다. 네 친구 녀석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야크는 뜬금없는 노아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 친구라니?"
"시모넥스 호라이즌리스를 말하는 거다. 아니, 그걸 모르고 있었나? 척살령이 내려진 라이더를?"
"마합 출신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라이더인지 척살령인지 하는 것들은 들어본 적 없는 것이다만."
노아는 샐쭉하며,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하나 말해두자면 마합의 라이더는 너 같은 녀석들을 청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술의 최고봉들을 모아놓은 집단이랄까?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 특별히 구성된 처형집단이지."
"자질구레한 설명은 듣고 싶지 않군. 시모넥스에 대한 이야기는 마합에 들어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어찌되었든 네놈도 날 죽이러 이곳에 온 것일 테니 긴말 말고 시작해볼까?”
"글쎄, 네놈이 몸 온전하게 마합 본부에 침투할 수는 없을 것 같군 그래."
모래사장의 결투는 야크의 총성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허리춤에 있던 게슌토 하나를 꺼내 그에게 발사했다.
'우선 네놈의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봐야겠지.’
그러나 그가 발사한 총알은 노아의 몸에 닿자마자 연기와 함께 재가되어 사라져버렸다.
"과거, 인간들이 핵 전쟁을 일으켰을 때 나는 마합의 정보원으로써 에바로드 근처에 있었지."
"그건 벌써 300여년 전의 일이다만."
"아, 내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어. 나는 핵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직격탄을 맞아버리고 말았지. 그렇지만 나는 마합에서도 권위 있게 쳐주는 동화(同化)계열의 마술사였다. 살아남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핵폭발을 동화하려고 시도했지."
"그래서, 용케도 살아남으셨군."
노아는 야크의 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 몸은 우라늄235나, 세슘139 따위처럼 불안정한 원소가 되어버렸지. 이미 나 자신이 완전히 그것으로 변해버려 원래의 상태로는 돌아올 수 없을 지경으로 말이야. 뭐……그 덕에 난 엄청난 양의 방사선 및 방사능 열을 방출할 수 있지."
"방사선은 생물체에게만 극악인 줄 알았는데."
"생물에만 피해를 끼치는 것 아니냐고?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난 동화 마술사라고. 네놈의 총알 같은 경우도 나의 몸에 닿자마자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원소의 상태가 되어 급속히 분열을 일으키지. 물론 나의 신체는 나의 의지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에 붕괴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어찌 되었든 단순히 방사선을 방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야크는 꽤나 골치 아픈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순간, 광자총을 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광입자 또한 노아의 몸에 닿으면 성질이 변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노아의 공격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의 격투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느릿느릿한 것이었다. 노아는 자기가 서있는 곳 주변을 방사선으로 오염시켜가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공기까지.
"이게……널 위한 나의 환영 선물이다. 낙진(落塵)과도 비슷한 셈이지."
제로-인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야크는 그게 멍청한 짓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공격이 서서히 뻗쳐오는 만큼, 원인에서 결과로까지의 '경과'가 길어진다.
그렇게 되면 원인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역행해야 하고 그 만큼 야크의 에너지는 더욱 더 소모되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투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조금만 역행하자니,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그의 몸에 방사능의 영향을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사실상 쓸데없는 일이었다.
'저놈이 나의 능력을 알고서 이런 방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은 나의 일행을 제외하고는 가루가 돼버린 진(Jin) 말고는 남아있지 않을 텐데. 아무리 마합의 정보가 빠르다고 해도 어떻게……'
야크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이미 그의 주위는 오염된 방사능의 대(帶)가 형성되어 도망칠 곳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아는 음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제로-인을 사용하고서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최소한 하루, 길게는 사흘까지 걸릴지도 모른다. 지금 살아나려면……결국 그 수밖에는 없어.'
"제로-인(Zero-In)!"
야크의 눈앞에 녹색의 선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선상의 끝에 있는 노란색 점.
그 점은 굳이 가까이 다가가서 찌르지 않아도 '찌른다' 라는 의지만 있으면 찔러지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찔러지는 순간……원인이 붕괴한다.
야크는 무려 30초를 역행해야 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찢어발겨질 듯이 온 힘을 다해 내질러 배출하는 엄청난 기력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대로 있었다가는 녀석이 또 한번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마력을 사용해서 절대악의 인격을 끌어내 지탱해야 했다.
'기껏해야……1초다.'
평소에 5초까지 끌어낼 수 있는 연습을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0에 가까워있는 현재의 기력으로써는 그게 다였다.
'일어나라……내 안의……악마'
일순간, 야크의 눈동자에서 보랏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전광석화와도 같이 미라처럼 변해버린 그의 검은 오른손에서 뻗어져 나온 아타울프는 아름다운 하나의 직선으로, 노아를 그어버렸다.
아타울프, 두꺼운 강철도 잘라낼 수 있다는 날카로움과 견고함을 지닌 그의 검. 절대악의 성질을 지니게 되면 이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잘라내어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그 검의 공격이……
전혀 먹혀 들지가 않았다.
그리고 노아는 그를 여전히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잘려나간 그의 몸이 보기좋게 다시 들러붙고 있었던 것이다.
크레도스와의 접전과 같은 경우였다. 회복의 차원이 아니라 주변의 물질들을 자신의 몸을 이루는 구성요소로 동화해서 그의 의지력으로 방사성붕괴를 막은 뒤 신체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완전히 마력이 바닥난 야크. 그에게는 원시적인 물리력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아타울프가 절대악의 성질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동화 마술 에너지' 마저도 끊어버려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젠장."
"주제를 모르고 날뛰면 안되지. 안 그래?"
노아는 한쪽 무릎이 꿇린 채 쓰러져 있는 야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비아냥댔다.
'일어서야 해. 내가……이 따위 녀석한테 죽을 수는 없다.'
순간 야크의 머릿속에 과거 진과 처음 전투를 벌였을 때 그, 아니 지금은 그녀가 된 진이 남기고 간 편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머지 두개는 뭔가, 비정상적인 인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거꾸로 도는 6의 기운은 네 광화된 정신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제대로 도는 6과 거꾸로 도는 6사이에 끊어진 광화의 기운이 존재했거든.
그 말은 거꾸로 도는 6이 광화를 통해서 6이 됬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네 정신에서 일어났다는 말이지. 』
그것은 당시에 진이, 쓰러져 있던 야크의 정신 분석을 해보고 나서 내놓은 그녀 나름의 결과물이었다. 사실 절대선과 절대악은 과거 에티노브나 식스 닷 등이 애초부터 그에게 의도적으로 주입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진의 결론은 옳지 않은 것이기는 했으나,
그 나름의 의미도 있었다. 야크가 가지고 있는 인격의 배치 상태는 원래 하나의 일직선 상에 놓여진 세 개의 점과 같은 형태였다.
중심점(中心點)이 일반적인 야크의 의식, 나머지 두 점에 각기 절대선과 절대악이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야크가 절대악을 절대선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단지 절대선이 보다 야크 본연의 의식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에서는 야크의 보통 때 의식은 각기 절대악과 절대선 어느 것이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만 정작 절대선과 절대악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의 의식 체계는 변했던 것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직접 직선으로 연결되고, 본래의 정신세계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광(狂)의 인격이라는 의식이 생성되어 또 하나의 점이 되면서 절대선과 절대악, 광은 하나의 삼각형을 이루고 그 중심에 야크의 일반적인 성향이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원래부터 불안정한 상태였던 야크의 의식 상태에 스투빌의 책을 읽음으로 인한 충격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다만 진과의 전투에서 광이라는 인격은 그녀의 일격에 의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야크의 의식 체계에서는 다시 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광(狂)이라는 인격이 없어진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정신 세계는 재차 불안정한 구조를 띄게 되었고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자연히 다시금 절대악과 절대선에서 뻗어져 나간 두 개의 선분이 하나의 점에서 맞춰지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야크의 분노는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노아의 공격은 다시금 야크를 향해 가차없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빠른 일격이었다. 야크가 제로-인을 사용할 수 없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던 노아는 만만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에 담겨있는 엄청난 양의 감마선의 영향을 야크가 받게 된다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엄청난 양의 감마선을 동원한 노아의 주먹에 맞는다면 엄청난 화상, 뇌출혈, 수포 등과 더불어 순식간에 암세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진혈종이라고 해도 피해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닐 것이었기 때문에, 야크에게는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그러나 야크는 자신 있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래도……싸움은 내가 더 잘한다고."
야크의 눈빛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의 아타울프는, 광(狂)의 성향을 띄면서 마치 거대한 몽둥이처럼 몸집이 커졌고 그 도신에는 삐죽 삐죽한 가시가 돋쳤다.
광(狂) 상태의 움직임은 절대악의 그것에 거의 필적했다. 다만 이것은 정신적인 마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야크의 육체에 아직 남아있는 물리력을 최대로 동원한다는 것이 다를 뿐.
노아는 야크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 꽂히기는커녕, 반격에 당해 야크의 아타울프를 방사선으로 동화할 새도 없이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아무리 마술사라 하더라도 인간이었다면 그 공격에 의해 몸이 박살 나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노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꽤 세긴 하구만 그래."
"네놈……마술사인 거냐, 아니면 격투가인 거냐. 어떻게 그런 신체를 가질 수 있는 거지?"
"아까 내가 나의 이름을 말할 때 눈치를 채지 못했나 보군. 내 이름을 다시 말해주지. 나는 노아 타셀하츠(Noa Tacelart)."
"타셀하츠(Tacelart)……이제 알겠군. 모두 멸족한 줄 알았는데 얼마 정도는 살아있었나 보지."
타셀하츠는 진혈종과 인간, 즉 오혈종의 중간 정도 되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측에 섰기 때문에 진혈종의 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어떤 적보다 진혈종에게는 천적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타셀하츠가 인간과 진혈종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혈종에 비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면 풍부한 마력. 비록 현대에 와서는 그 마력이라는 것이 많이 옅어지기는 했으나 고대에는 인간들의 마력이라는 것은 진혈종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양이를 막아내기 위한 쥐의 마지막 방어책, 그쯤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셀하츠는 진혈종이 인간으로 타락하는 과정 초기에서 만들어진 몇 가지 가문(家門)들 중 하나였다.
그들 대부분은 그저 인간과 같았지만 타셀하츠 가문만은 예외였다. 돌연변이 현상으로 인해 그들은 진혈종의 성향을 80%, 최대 90% 까지도 가지고 있었고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풍부한 마력이라는 것을 동시에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 진혈종 제국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위해 만들었던 기사(Knight)라는 조직에 의해 거의 섬멸되었고 그 후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야크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었다.
그러나 현대에까지 명맥을 유지해오는 몇몇 타셀하츠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노아였다.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군. 어쨌든 내가 과거 수천년 전에 인간에게 했듯이……네놈에게도 사후세계의 맛을 보여줄 때가 온 것 같군 그래."
마찬가지로 이제는 노아도 그를 쉽게 볼 때가 아니었다. 그 또한 그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필살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야크가 광화한다는 것은 사전에 데스라비에로부터 들은 적이 없었고 당연히 계산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신체를 이루는데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의지로 묶여있는 자신의 몸을 해방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방사선과 방사능열이 그의 주위에서 발산되었다. 그의 주위는 마치 불이 일어난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문답무용. 그 누구도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양쪽 모두 노아의 이번 공격이 마지막 일격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노아는 자신의 신체를 폭발시킴과 동시에 최대한 동화할 수 있는 자신의 마력을 끌어 모아 주변 해안가는 물론 야크 자체도 완전히 방사선화 하여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야크도 그쯤은 지레짐작 하고 있었고, 비록 이성(理性)을 깎아먹고 만들어진 광화한 인격이지만 센터에서 공부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정도는 되었다.
'보통의 인간은 800렘 정도 방사선을 쬐면 고통을 앓다가 죽게 된다. 이 녀석이 이곳 전체뿐만 아니라 나까지 낙진으로 만들어버린다면 희망은 없어!'
그 때, 야크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낙진을 제거할 때 물을 뿌린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노아가 이 근방을 모두 날려버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었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 있는다면 낙진이 모두 물 속에 흡수되어 피해를 덜 입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이럴게 아니라 빨리 피해야지!'
야크는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전속력으로 바다를 향해 질주했다.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만큼 그의 체력은 있는 힘껏 발휘되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러고 있는 야크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마술 공정이 진행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자칫 몸을 움직였다가는 마지막 일격이 취소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로써도 가능한 최대 범위까지 감마선의 폭발을 일으키는 수 밖에 없었다.
'3'
야크의 머릿속에 자동으로 카운트다운이 세어졌다.
'2……1'
깊고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머리 위로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음을 야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노아. 미안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이겼구만.'
야크는 짐짓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낙진이 되어버린 모래들이 모두 물 속으로 가라앉아 흡수 될 때 까지 기다렸다.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해버린 노아도 물 속으로 동시에 잠기고 있었다.
동토에서의 첫싸움은 그렇게 야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딘 일행들이 안보였던 것도 우리를 이곳으로 밀어 넣으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살아나가려면 이곳을 박살내는 수 밖에."
쥬이썬은 짧은 경고, 그 이후에 아무런 말 없이 그 자신의 깊은 중심부에서 푸른 빛을 내는 거울의 파편들을 날려보냈다.
"재일베이트(Jailbait)."
시모넥스의 왼손이 한이 서려보이는 수많은 쇠사슬들로 갈라져 공중을 향해 뻗어나갔다.
시모넥스에게 날아오던 조각들은 그의 면전 약 30m 앞에서 그의 쇠사슬에 모두 묶였다.
아니, 묶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까 통로에서 조각들이 가루가 되어버린 것과는 달리 그것들은 쇠사슬을 보기 좋게 관통해버리고 맹렬히 날아오고 있었다.
"이……이게 무슨……?"
순간적으로 갑옷을 동화한 시모넥스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 옆에 있던 플렉스의 몸에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조각이 내리 꽂혔다.
"뭐에요……아저씨, 아까랑은 다르잖아요?"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된 일인지……"
차마 원인을 분석하기도 전에 쥬이썬의 공격은 다시 시작되었다. 방금 전의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조각들이었다.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아무래도 뭔가 물리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이 있는 게 분명해요."
시모넥스는 신안의 등급까지 눈을 개방했다. 쥬이썬의 '공격'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자 그 현상이 쉽게 붕괴되는 몇 가지 점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플렉스는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도약해 순식간에 그 점들을 하나하나 찔러 붕괴를 가속시켰다.
"아니야……무엇인가가 잘못됐어."
플렉스의 예감은 정확히 적중했다. '존재'는 전혀 붕괴되지 않은 채 멀쩡해 보였다. 이번에는 예상을 했기에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몸의 부상은 더욱 심해졌다.
"제로-인(Zero-In). 틀림없어요. 야크랑 똑같잖아요!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있는 거!"
"그래. 쥬이썬의 영혼이 갇혀있는 '이것'의 이름이 제로인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녀석이 제로-인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움을 해야된다는 말이 되잖냐!"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저의 공격은 날아오는 유리조각들, 그 자체였고 아저씨가 공격했던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즉 야크가 제로-인을 사용할 때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만 대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유리 조각들은 곧 제로인과 동일시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구요."
시모넥스는 이해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플렉스의 장황한 설명을 이쯤에서 끊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빨리 결론만 말해!"
"놈을 아저씨와 제가 동시에 공격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녀석이 공격을 감행할 때 아저씨가 유리조각을 향해 뭔가를 하면 제로인이 힘을 발동할 거고 그 사이에 저는 저것의 중심부 안에 들어가서 대기하다가 아저씨의 공격이 무력화 되는 것과 동시에 이 존재를 파괴시키면 된다 구요!"
시모넥스는 그래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마지막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제로인의 공격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좋아……이왕에 네 녀석이 내 공격이 너에게 닿는 시간만큼을 역행해야 한다면 그 시간을 길게 해주지. 가능한 많은 마력을 소모하게 해야 플렉스가 네놈을 없애는데 무리가 덜 갈테지. 여기……분명 탄광이라고 했지. 사릭스 니아몬(Salix Niamon). 네 차례인 것 같군."
시모넥스의 오른쪽 팔뚝이 화려한 자줏빛을 내뿜는 성창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자그마한 화염과 소량의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잘 가라."
시모넥스가 팔을 휘두르는 순간 사릭스 니아몬의 끝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가스와 화염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일격에 급속도로 일어나지 않고 연쇄적인 반응의 형태로 발생했기 때문에 그만큼 쥬이썬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그가 역행해야 할 시간이 길었던 것이다.
시모넥스는 아르젠타미스를 동화한 채로 가능한 한 동굴의 끝자락으로 내달렸다. 그는 등 뒤로 몇 개의 조각들과 폭발에 의한 불똥들이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느꼈지만 무시한 채 끝까지 달렸다.
그 틈에 플렉스는 제로인의 깊숙한 중심부까지 들어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의외의 물체가 있었다.
주황색의 구,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의 물체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체의 상태가 아니라 주변의 푸른색 빛과는 대조적인 빛을 발산하고 있는 에너지인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플렉스는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단 마안의 단계부터 개방해야 했다. 이 '제로인'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이것을 파괴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쥬이썬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에덴이 이를 인코니타화 하였음. 그렇지만 그는 이곳의 주인이 쥬이썬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음. 이곳에는 제로-아웃(Zero-Out)의 힘을 보관하고 있음……응?'
플렉스는 마안으로 그곳의 정보를 읽어나가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발견했다.
"설마, 이 주황색 빛이 제로-아웃의 에너지라는 건가."
그는 아직 읽지 않은 정보를 연이어 읽어나갔다.
'이는 식스 닷이 쥬이썬에게 마지막으로 넘겨 준 신이 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쥬이썬이 코비에게 암살당하기 전에 이곳으로 가까스로 와 영혼의 힘으로 제로-아웃을 봉인해놓았다.'
마지막 한줄까지 정보를 다 읽은 플렉스는, 육감적으로 제로-인의 발동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다'
그는 지금껏 몇 번 해왔던 것과 같이 칼을 높이 들어올린 채 신안의 힘으로 제로인이라는 이 공간을 깔끔하게 파괴해버렸다.
순식간에 그곳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적출되어 버렸고, 남은 것은 제로-아웃의 에너지뿐이었다. 이제 시모넥스와 플렉스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야크에게 이 힘을 안전하게 전달할것.'
시모넥스는 온몸에 묻은 시커먼 재를 털어내며 달려왔다. 그는 플렉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서 쥬이썬이 암호를 걸어놓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군. 그나저나 폭발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지 않았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멀쩡하네. 이걸 타고 다시 올라가자고. 나딘 일행들은 우리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지도 않을테니 순조롭게 야크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야크는 마합에 갔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도……"
"물론이지. 이곳 동노레이브 동북지방에서 아몬의 위트레시아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아. 내 예상에는 야크가 흥분해서 가긴 했어도 마합을 치기 위해 정보가 필요한 바, 나에게 공중전화 따위로 연락을 할거라고. 그러면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면 되는 거잖냐."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시간이 어느새 정오 즈음이 될 때가 되 서야 야크는 뭍에 상륙할 수 있었다. 넓은 모래가 펼쳐져 있는 백사장이었다.
"추워 죽겠군. 그나저나 이제 여기서부터 마합을 찾으러 나서야 할 텐데."
그 때,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 야크의 귀로 낯선 이의 40~50대의 걸걸하면서도 지금 그가 발을 딛고 서있는 동토(凍土)의 날씨처럼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자네를 격추하려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보군, 레인씨."
강렬한 이미지가 풍기는 백발의 머리카락에, 군복을 입고 있는 그 덩치 좋은 남자는 구석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등장했다.
"아몬 어느 군부대의 왕초가 아닌가 보군. 내 이름을 알다니. 편하게 야크라고 불러. 그나저나 전투기를 보낸 것도 네 녀석이냐?"
그러나 남자는 야크의 말을 무시하는 듯이 제 이야기만 해댔다.
"내 이름은 노아 타셀하츠(Noa Tacelart). 마합의 라이더(Rider) 중 한 명이다. 네 친구 녀석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야크는 뜬금없는 노아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 친구라니?"
"시모넥스 호라이즌리스를 말하는 거다. 아니, 그걸 모르고 있었나? 척살령이 내려진 라이더를?"
"마합 출신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라이더인지 척살령인지 하는 것들은 들어본 적 없는 것이다만."
노아는 샐쭉하며,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하나 말해두자면 마합의 라이더는 너 같은 녀석들을 청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술의 최고봉들을 모아놓은 집단이랄까?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 특별히 구성된 처형집단이지."
"자질구레한 설명은 듣고 싶지 않군. 시모넥스에 대한 이야기는 마합에 들어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어찌되었든 네놈도 날 죽이러 이곳에 온 것일 테니 긴말 말고 시작해볼까?”
"글쎄, 네놈이 몸 온전하게 마합 본부에 침투할 수는 없을 것 같군 그래."
모래사장의 결투는 야크의 총성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허리춤에 있던 게슌토 하나를 꺼내 그에게 발사했다.
'우선 네놈의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봐야겠지.’
그러나 그가 발사한 총알은 노아의 몸에 닿자마자 연기와 함께 재가되어 사라져버렸다.
"과거, 인간들이 핵 전쟁을 일으켰을 때 나는 마합의 정보원으로써 에바로드 근처에 있었지."
"그건 벌써 300여년 전의 일이다만."
"아, 내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어. 나는 핵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직격탄을 맞아버리고 말았지. 그렇지만 나는 마합에서도 권위 있게 쳐주는 동화(同化)계열의 마술사였다. 살아남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핵폭발을 동화하려고 시도했지."
"그래서, 용케도 살아남으셨군."
노아는 야크의 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 몸은 우라늄235나, 세슘139 따위처럼 불안정한 원소가 되어버렸지. 이미 나 자신이 완전히 그것으로 변해버려 원래의 상태로는 돌아올 수 없을 지경으로 말이야. 뭐……그 덕에 난 엄청난 양의 방사선 및 방사능 열을 방출할 수 있지."
"방사선은 생물체에게만 극악인 줄 알았는데."
"생물에만 피해를 끼치는 것 아니냐고?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난 동화 마술사라고. 네놈의 총알 같은 경우도 나의 몸에 닿자마자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원소의 상태가 되어 급속히 분열을 일으키지. 물론 나의 신체는 나의 의지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에 붕괴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어찌 되었든 단순히 방사선을 방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야크는 꽤나 골치 아픈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순간, 광자총을 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광입자 또한 노아의 몸에 닿으면 성질이 변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노아의 공격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의 격투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느릿느릿한 것이었다. 노아는 자기가 서있는 곳 주변을 방사선으로 오염시켜가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공기까지.
"이게……널 위한 나의 환영 선물이다. 낙진(落塵)과도 비슷한 셈이지."
제로-인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야크는 그게 멍청한 짓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공격이 서서히 뻗쳐오는 만큼, 원인에서 결과로까지의 '경과'가 길어진다.
그렇게 되면 원인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역행해야 하고 그 만큼 야크의 에너지는 더욱 더 소모되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투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조금만 역행하자니,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그의 몸에 방사능의 영향을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사실상 쓸데없는 일이었다.
'저놈이 나의 능력을 알고서 이런 방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은 나의 일행을 제외하고는 가루가 돼버린 진(Jin) 말고는 남아있지 않을 텐데. 아무리 마합의 정보가 빠르다고 해도 어떻게……'
야크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이미 그의 주위는 오염된 방사능의 대(帶)가 형성되어 도망칠 곳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아는 음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제로-인을 사용하고서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최소한 하루, 길게는 사흘까지 걸릴지도 모른다. 지금 살아나려면……결국 그 수밖에는 없어.'
"제로-인(Zero-In)!"
야크의 눈앞에 녹색의 선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선상의 끝에 있는 노란색 점.
그 점은 굳이 가까이 다가가서 찌르지 않아도 '찌른다' 라는 의지만 있으면 찔러지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찔러지는 순간……원인이 붕괴한다.
야크는 무려 30초를 역행해야 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찢어발겨질 듯이 온 힘을 다해 내질러 배출하는 엄청난 기력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대로 있었다가는 녀석이 또 한번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마력을 사용해서 절대악의 인격을 끌어내 지탱해야 했다.
'기껏해야……1초다.'
평소에 5초까지 끌어낼 수 있는 연습을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0에 가까워있는 현재의 기력으로써는 그게 다였다.
'일어나라……내 안의……악마'
일순간, 야크의 눈동자에서 보랏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전광석화와도 같이 미라처럼 변해버린 그의 검은 오른손에서 뻗어져 나온 아타울프는 아름다운 하나의 직선으로, 노아를 그어버렸다.
아타울프, 두꺼운 강철도 잘라낼 수 있다는 날카로움과 견고함을 지닌 그의 검. 절대악의 성질을 지니게 되면 이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잘라내어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그 검의 공격이……
전혀 먹혀 들지가 않았다.
그리고 노아는 그를 여전히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잘려나간 그의 몸이 보기좋게 다시 들러붙고 있었던 것이다.
크레도스와의 접전과 같은 경우였다. 회복의 차원이 아니라 주변의 물질들을 자신의 몸을 이루는 구성요소로 동화해서 그의 의지력으로 방사성붕괴를 막은 뒤 신체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완전히 마력이 바닥난 야크. 그에게는 원시적인 물리력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아타울프가 절대악의 성질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동화 마술 에너지' 마저도 끊어버려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젠장."
"주제를 모르고 날뛰면 안되지. 안 그래?"
노아는 한쪽 무릎이 꿇린 채 쓰러져 있는 야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비아냥댔다.
'일어서야 해. 내가……이 따위 녀석한테 죽을 수는 없다.'
순간 야크의 머릿속에 과거 진과 처음 전투를 벌였을 때 그, 아니 지금은 그녀가 된 진이 남기고 간 편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머지 두개는 뭔가, 비정상적인 인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거꾸로 도는 6의 기운은 네 광화된 정신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제대로 도는 6과 거꾸로 도는 6사이에 끊어진 광화의 기운이 존재했거든.
그 말은 거꾸로 도는 6이 광화를 통해서 6이 됬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네 정신에서 일어났다는 말이지. 』
그것은 당시에 진이, 쓰러져 있던 야크의 정신 분석을 해보고 나서 내놓은 그녀 나름의 결과물이었다. 사실 절대선과 절대악은 과거 에티노브나 식스 닷 등이 애초부터 그에게 의도적으로 주입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진의 결론은 옳지 않은 것이기는 했으나,
그 나름의 의미도 있었다. 야크가 가지고 있는 인격의 배치 상태는 원래 하나의 일직선 상에 놓여진 세 개의 점과 같은 형태였다.
중심점(中心點)이 일반적인 야크의 의식, 나머지 두 점에 각기 절대선과 절대악이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야크가 절대악을 절대선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단지 절대선이 보다 야크 본연의 의식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에서는 야크의 보통 때 의식은 각기 절대악과 절대선 어느 것이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만 정작 절대선과 절대악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의 의식 체계는 변했던 것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직접 직선으로 연결되고, 본래의 정신세계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광(狂)의 인격이라는 의식이 생성되어 또 하나의 점이 되면서 절대선과 절대악, 광은 하나의 삼각형을 이루고 그 중심에 야크의 일반적인 성향이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원래부터 불안정한 상태였던 야크의 의식 상태에 스투빌의 책을 읽음으로 인한 충격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다만 진과의 전투에서 광이라는 인격은 그녀의 일격에 의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야크의 의식 체계에서는 다시 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광(狂)이라는 인격이 없어진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정신 세계는 재차 불안정한 구조를 띄게 되었고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자연히 다시금 절대악과 절대선에서 뻗어져 나간 두 개의 선분이 하나의 점에서 맞춰지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야크의 분노는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노아의 공격은 다시금 야크를 향해 가차없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빠른 일격이었다. 야크가 제로-인을 사용할 수 없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던 노아는 만만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에 담겨있는 엄청난 양의 감마선의 영향을 야크가 받게 된다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엄청난 양의 감마선을 동원한 노아의 주먹에 맞는다면 엄청난 화상, 뇌출혈, 수포 등과 더불어 순식간에 암세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진혈종이라고 해도 피해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닐 것이었기 때문에, 야크에게는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그러나 야크는 자신 있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래도……싸움은 내가 더 잘한다고."
야크의 눈빛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의 아타울프는, 광(狂)의 성향을 띄면서 마치 거대한 몽둥이처럼 몸집이 커졌고 그 도신에는 삐죽 삐죽한 가시가 돋쳤다.
광(狂) 상태의 움직임은 절대악의 그것에 거의 필적했다. 다만 이것은 정신적인 마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야크의 육체에 아직 남아있는 물리력을 최대로 동원한다는 것이 다를 뿐.
노아는 야크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 꽂히기는커녕, 반격에 당해 야크의 아타울프를 방사선으로 동화할 새도 없이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아무리 마술사라 하더라도 인간이었다면 그 공격에 의해 몸이 박살 나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노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꽤 세긴 하구만 그래."
"네놈……마술사인 거냐, 아니면 격투가인 거냐. 어떻게 그런 신체를 가질 수 있는 거지?"
"아까 내가 나의 이름을 말할 때 눈치를 채지 못했나 보군. 내 이름을 다시 말해주지. 나는 노아 타셀하츠(Noa Tacelart)."
"타셀하츠(Tacelart)……이제 알겠군. 모두 멸족한 줄 알았는데 얼마 정도는 살아있었나 보지."
타셀하츠는 진혈종과 인간, 즉 오혈종의 중간 정도 되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측에 섰기 때문에 진혈종의 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어떤 적보다 진혈종에게는 천적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타셀하츠가 인간과 진혈종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혈종에 비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면 풍부한 마력. 비록 현대에 와서는 그 마력이라는 것이 많이 옅어지기는 했으나 고대에는 인간들의 마력이라는 것은 진혈종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양이를 막아내기 위한 쥐의 마지막 방어책, 그쯤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셀하츠는 진혈종이 인간으로 타락하는 과정 초기에서 만들어진 몇 가지 가문(家門)들 중 하나였다.
그들 대부분은 그저 인간과 같았지만 타셀하츠 가문만은 예외였다. 돌연변이 현상으로 인해 그들은 진혈종의 성향을 80%, 최대 90% 까지도 가지고 있었고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풍부한 마력이라는 것을 동시에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 진혈종 제국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위해 만들었던 기사(Knight)라는 조직에 의해 거의 섬멸되었고 그 후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야크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었다.
그러나 현대에까지 명맥을 유지해오는 몇몇 타셀하츠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노아였다.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군. 어쨌든 내가 과거 수천년 전에 인간에게 했듯이……네놈에게도 사후세계의 맛을 보여줄 때가 온 것 같군 그래."
마찬가지로 이제는 노아도 그를 쉽게 볼 때가 아니었다. 그 또한 그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필살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야크가 광화한다는 것은 사전에 데스라비에로부터 들은 적이 없었고 당연히 계산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신체를 이루는데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의지로 묶여있는 자신의 몸을 해방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방사선과 방사능열이 그의 주위에서 발산되었다. 그의 주위는 마치 불이 일어난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문답무용. 그 누구도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양쪽 모두 노아의 이번 공격이 마지막 일격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노아는 자신의 신체를 폭발시킴과 동시에 최대한 동화할 수 있는 자신의 마력을 끌어 모아 주변 해안가는 물론 야크 자체도 완전히 방사선화 하여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야크도 그쯤은 지레짐작 하고 있었고, 비록 이성(理性)을 깎아먹고 만들어진 광화한 인격이지만 센터에서 공부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정도는 되었다.
'보통의 인간은 800렘 정도 방사선을 쬐면 고통을 앓다가 죽게 된다. 이 녀석이 이곳 전체뿐만 아니라 나까지 낙진으로 만들어버린다면 희망은 없어!'
그 때, 야크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낙진을 제거할 때 물을 뿌린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노아가 이 근방을 모두 날려버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었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 있는다면 낙진이 모두 물 속에 흡수되어 피해를 덜 입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이럴게 아니라 빨리 피해야지!'
야크는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전속력으로 바다를 향해 질주했다.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만큼 그의 체력은 있는 힘껏 발휘되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러고 있는 야크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마술 공정이 진행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자칫 몸을 움직였다가는 마지막 일격이 취소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로써도 가능한 최대 범위까지 감마선의 폭발을 일으키는 수 밖에 없었다.
'3'
야크의 머릿속에 자동으로 카운트다운이 세어졌다.
'2……1'
깊고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머리 위로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음을 야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노아. 미안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이겼구만.'
야크는 짐짓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낙진이 되어버린 모래들이 모두 물 속으로 가라앉아 흡수 될 때 까지 기다렸다.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해버린 노아도 물 속으로 동시에 잠기고 있었다.
동토에서의 첫싸움은 그렇게 야크의 승리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