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했던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잘못 찍으면 '남'이라는 글자가 된다고. 그 누가 되었든지간에, 그 이야기는 정확히 이 상황에서 들어맞는 말이었다.
[달그락]
두 명의 여자가 한 옥상에서 컵을 기울이고 있었다. 들어있는 것은 당연히 크게 쪼개진 얼음과 3/5정도 채워진 술이었다. 잘 보면 꽤 대조적인 두 사람이었다. 한 쪽은 짧은 단발머리의 빨간색이었고, 한쪽은 긴 흑발이었다. 키는 비슷한 것 같지만 한 쪽은 활발하게 말을 거는 쪽이었고, 한 쪽은 말을 주로 듣고있었다. 여기까지는 별 일이 아니었지만, 등 뒤쪽에 있는 무기들은 엄연히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있었다.
단발머리의 여자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은 구슬이 들어간 주머니였고, 긴 흑발을 가진 여자의 뒤에 있는 것은 권총과 벨트모양으로 디자인되어서 찰 수 있는 의료킷에다가,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황혼의 여운을 반사하고 있는 일본도가 하나 있었다. '물리적'인가, 아니면 '마'와 관련되어서 공격을 행사하는 것인가가 두 부류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지만, 더더욱 웃기는 것은 그런 대조적인 두 사람이 한 팀에서 무리없이 굴러간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달그락거리면서 얼음이 흔들렸다. 단발머리의 여자는 두잔째 잔을 비우고 있었지만, 흑발의 여자는 입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도 얼굴이 태평해보이는 빨간 머리의 여자나, 술을 좋아하면서도 그 유혹을 참고있는 검은 머리의 여자나 둘 다 여간내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야기는 해가 지고도 반 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이야기의 화재는 그다지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3년 전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무색할 정도로 두 명이 속해있던 팀이 큰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라던가, 검은 머리의 여자가 청춘사업에서 약간 삐그덕거리는 것이라거나, 빨간 머리의 여자가 호쾌하게 봉을 잡아서 90만엔의 수익을 올린 일과 같이 평범한 사람 측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전문용어가 심하게 많이 섞여있었지만, 이 정도는 서로 안부인사보다 가벼운 대화였다.
소재가 떨어졌는지, 빨간 머리의 여자가 계속 술잔에 입에 대었다. 검은 머리의 여자도 그것을 알았는지 옆으로 돌아보면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시간죽이려고 날 부른거야?"
빨간 머리의 여자는 살짝 취기가 도는지 난간에 걸터앉아있던 몸을 약간 뒤쪽으로 이동시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검은 머리의 여자는 여전히 술을 입에 댈 생각은 없다는 듯 완고하게 술잔을 손에 쥐고 있었다.
"흐응.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일이 들어와서 말야아."
빨간 머리의 여자가 끝을 길게 끌면서 말했다. 목소리만 들어서야 영락없이 취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검은 머리의 여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눈 하나 깜짝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간만의 본업?"
"그렇지."
빨간색의 머리를 한 여자가 다시 글라스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검은색쪽은 계속 입에 가져가려고 하고있지만,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대상은 누군데?"
"그 전에 술 좀 마셔. 기껏 섞었더니 입에도 대지 않고 있어-."
검은 머리의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글라스를 기울여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처음 마실때에는 냉정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가, 서서히 인상이 찌푸려졌고, 향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듯 위기감이 드러났으며, 컵을 난간에 올려놓은 후에는 이를 갈고있었다.
"히치로, 이거 당신이 만든 술이지?"
"맞아. 드라이 진과 위스키 베이스에 페르노를 섞었어."
"그럼, 대상은..."
"역시 잊지 않았네. 화령도부터 항상 그랬잖아."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혀끝을 태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무시하고 빨간머리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빨간 머리의 여자는 비릿하게 웃고있었다. 검은 머리의 여자는 그것과 반대로 세상이 무너졌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인상을 지푸렸다. 그것은 알싸한 알코올 때문일까, 아니면 그 표정에 대한 경악일까.
"내가 죽일 동료에게 마시게 하는 술."
그렇게 말하는 빨간 머리의 동료를 놓아두고 검은 머리의 여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장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이지만, 자신의 동료라면 거기까지는 예측해서 무기는 이미 없앤 후 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가 없다면 검은쪽은 거의 무방비 상태이므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기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어스퀘이크(지진). 맛은 어때? 식전주로는 제격이지만, 빈 속에 먹으려면 아무래도 흔들리지?"
히치로가 아래에서 말했다. 어느 틈에 내려갔는지 미키는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만일 무기를 향해 손을 뻗은 그 때에 공격당했다면 미키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머리가 물풍선처럼 터졌을 것이다. 미키는 등 뒤쪽으로 기분나쁘게 흘러내리는 식은땀의 감촉을 느끼면서 하나의 일본도의 형태를 한 쇠붙이를 양 손에 들었다.
푸른색의 암광처리가 된 총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지 간신히 주머니에 걸쳐있었다. 아마 자세를 낮게하고 뛰거나 높이 도약하면 꽤 높은 확률로 떨어질 것이다. 거기에 장전되어있는 탄환은 완전철갑탄 10발. 이 정도로 뒤쪽에 무게가 걸려있다면 가만히 내버려두더라도 위태로울 정도다.
최후방에서 싸우는 미키와 최전방에서 싸우는 히치로의 싸움은 이런 거리에서 성립될리가 없었다. 만일 전투가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한 쪽만이 방어하는 소모전. 혹은 그 이상 공격이 가능하다면, 큰 허점을 보고 일발로 끝을 보려는 일격.
하지만 어느 전략이나, 어떤 추측이라고 해도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아마 인간은, 그런 예외에 자극을 받고 그 상황을 탈피하기위해 필사적이 되는 것이겠지.
"건배."
"아아, 건배."
로이드가 하모니카를 집어넣으면서 글라스를 부딫쳤다. 약 1시간 30분 정도이지만, 지치기에는 더도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중에 로이드가 창문이 떨리는 소리에 놀라서 한 번 다른 길로 새버렸고, 그것에 로스가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로스는 다른 악보를 보고 치는 바람에 감도 잡지 못한 로이드는 결국 로스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작곡을 하는 식으로 되어버려서 10분짜리 곡이 25분 정도로 늘어져 버렸고, 그 동안 전투시와 같이 긴장을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인의 따가운 시선이 몇 번인가 오고갔고, 끝에는 결국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샴페인을 열도록 만들었다. 로스와 로이드는 아주 무거운 가면을 쓴 것 처럼 억지로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하나씩 나가는 손님이 있다는 것은 이 둘의 당황이 어느 정도는 알려졌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무보수 자선행사가 되어버렸군."
로스가 가장 싼 맥주에 얼음을 담아넣은 글라스를 기울이며 말했다. 기포는 쉴새없이 얼음에 달라붙어 있었고, 총알의 탄피와 같은 색을 띄는 것으로 보아 아주 좋은 맥주임에 틀림 없었다.
"면목없다."
고개를 푹 숙이는 로이드가 마시는 술은 청포도가 주 재료인 칠레와인이었다. 물론, 주인의 안색을 보아 물이 60%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로이드는 '사소하잖아. 넘어가자.'라고 하면서 주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주인이 바라보았을 때, 이 둘이 한 짓을 보면 보수로 물 한 방울 주는 것이 아까웠다. 분명 대화를 하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지만, 연주를 보고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나간 것으로 보아 절대로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됐어."
로스가 황금빛의 음료수를 들이켰다. 빈 속에 저렇게 맥주를 먹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스럽게 마셨지만 정작 본인은 자각이 없는 듯 했다.
"용건은?"
로이드가 가루약을 물 없이 먹는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단 맛이 좋아서 로이드가 즐겨찾는 종류의 와인이었지만, 아무래도 물을 섞으면 꽤 쓰게 되는 모양이었다.
"고맙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로스가 말했다. 바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앉아서 엎드릴 것 같은 자세로 바의 테이블에 기대어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몇 시간 동안 앉아있었기에 했던 일이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습관이 되어있다는, 웃기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하고싶었어. 막아줘서 고맙다고."
양손으로 술잔을 잡은 로스가 기포의 수를 세듯이 글라스에 얼굴을 갖다대고 말했다.
"내가 막지 않았으면 망설임 없이 죽였을 것 같았는데."
로이드는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 같은 얼굴로 긴 와인 글라스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반대로 얼굴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회했겠지."
"명분론자냐?"
"쾌락주의자에 비관론자에 성격파탄자. 거기에 이제는 명분론자까지 붙게 생겼네."
"흥. 쓰레기야, 넌. 후회할 걸 알면서도 하려고 했냐."
"......"
로스는 할말이 궁한지 맥주의 한기가 코에 닿을 정도로 얼굴과 가까이에 있는 글라스를 움직여 목을 축였다. 표정의 변화는 극히 적었지만, 초점은 잘 맞지 않았다. 아마 옛날 생각이라도 하고있는 것이겠지.
"너도 그런 적 있잖아. 시험 전날 공부해야 하는데 노는게 너무 좋아서 놀아버렸지."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로이드가 살짝 언성을 높이며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마 6년은 더 되었을 일을 끄집어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로이드는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비슷한거야. 후회할 것은 알아. 하지만 그 때는 그런 시도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어."
"변명처럼 들려. 다른 변명은?"
"뭐, 내 진심은 좋아했으니까 빈말이라도 싫었다는 것이지만 말야... 네가 납득할리는 없지."
로스가 글라스에 남은 맥주와 얼음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로이드도 반 이상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들이키고 살짝 미간을 찡그린 후에 로스를 따라갔다.
"그럼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돼."
로이드가 주인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한 후 말했다. 그 말에 로스는 잠시 시계를 바라보더니
"None. 이미 늦었어."
라며 로이드를 만류했다.
"뭐?"
"이미 끝났어."
로이드는 그 말에 오늘 하루동안 보았던 일을 단 2걸음을 걷는 사이에 모두 생각해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냉장고에 있던 술이 약간 없었다는 것과, 페르노라는 술과 위스키, 드라이 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3번째 걸음을 걷기 위해 오른발을 움직인 순간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을 알았다.
끼걱, 하고 다 닳아서 얇아진 신발의 밑창이 대리석으로 된 계단의 마지막 층계와 마찰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다음 순간에, 로스는 고개가 일순간에 돌아가 있었다.
드라이 진에 위스키, 페르노를 3 : 1 : 1 비율로 쉐이크. 이 결과, 나오는 술은
"쓰레기 자식...!"
어스퀘이크(지진).
로이드는 대로로 나가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로스는 그런 로이드를 뒤로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더 깊은 뒷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이 나쁜 날에는 비라도 왔으면 좋으련만, 일기예보로 보나 하늘로 보나 근 시일내에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달그락]
두 명의 여자가 한 옥상에서 컵을 기울이고 있었다. 들어있는 것은 당연히 크게 쪼개진 얼음과 3/5정도 채워진 술이었다. 잘 보면 꽤 대조적인 두 사람이었다. 한 쪽은 짧은 단발머리의 빨간색이었고, 한쪽은 긴 흑발이었다. 키는 비슷한 것 같지만 한 쪽은 활발하게 말을 거는 쪽이었고, 한 쪽은 말을 주로 듣고있었다. 여기까지는 별 일이 아니었지만, 등 뒤쪽에 있는 무기들은 엄연히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있었다.
단발머리의 여자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은 구슬이 들어간 주머니였고, 긴 흑발을 가진 여자의 뒤에 있는 것은 권총과 벨트모양으로 디자인되어서 찰 수 있는 의료킷에다가,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황혼의 여운을 반사하고 있는 일본도가 하나 있었다. '물리적'인가, 아니면 '마'와 관련되어서 공격을 행사하는 것인가가 두 부류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지만, 더더욱 웃기는 것은 그런 대조적인 두 사람이 한 팀에서 무리없이 굴러간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달그락거리면서 얼음이 흔들렸다. 단발머리의 여자는 두잔째 잔을 비우고 있었지만, 흑발의 여자는 입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도 얼굴이 태평해보이는 빨간 머리의 여자나, 술을 좋아하면서도 그 유혹을 참고있는 검은 머리의 여자나 둘 다 여간내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야기는 해가 지고도 반 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이야기의 화재는 그다지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3년 전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무색할 정도로 두 명이 속해있던 팀이 큰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라던가, 검은 머리의 여자가 청춘사업에서 약간 삐그덕거리는 것이라거나, 빨간 머리의 여자가 호쾌하게 봉을 잡아서 90만엔의 수익을 올린 일과 같이 평범한 사람 측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전문용어가 심하게 많이 섞여있었지만, 이 정도는 서로 안부인사보다 가벼운 대화였다.
소재가 떨어졌는지, 빨간 머리의 여자가 계속 술잔에 입에 대었다. 검은 머리의 여자도 그것을 알았는지 옆으로 돌아보면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시간죽이려고 날 부른거야?"
빨간 머리의 여자는 살짝 취기가 도는지 난간에 걸터앉아있던 몸을 약간 뒤쪽으로 이동시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검은 머리의 여자는 여전히 술을 입에 댈 생각은 없다는 듯 완고하게 술잔을 손에 쥐고 있었다.
"흐응.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일이 들어와서 말야아."
빨간 머리의 여자가 끝을 길게 끌면서 말했다. 목소리만 들어서야 영락없이 취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검은 머리의 여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눈 하나 깜짝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간만의 본업?"
"그렇지."
빨간색의 머리를 한 여자가 다시 글라스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검은색쪽은 계속 입에 가져가려고 하고있지만,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대상은 누군데?"
"그 전에 술 좀 마셔. 기껏 섞었더니 입에도 대지 않고 있어-."
검은 머리의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글라스를 기울여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처음 마실때에는 냉정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가, 서서히 인상이 찌푸려졌고, 향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듯 위기감이 드러났으며, 컵을 난간에 올려놓은 후에는 이를 갈고있었다.
"히치로, 이거 당신이 만든 술이지?"
"맞아. 드라이 진과 위스키 베이스에 페르노를 섞었어."
"그럼, 대상은..."
"역시 잊지 않았네. 화령도부터 항상 그랬잖아."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혀끝을 태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무시하고 빨간머리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빨간 머리의 여자는 비릿하게 웃고있었다. 검은 머리의 여자는 그것과 반대로 세상이 무너졌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인상을 지푸렸다. 그것은 알싸한 알코올 때문일까, 아니면 그 표정에 대한 경악일까.
"내가 죽일 동료에게 마시게 하는 술."
그렇게 말하는 빨간 머리의 동료를 놓아두고 검은 머리의 여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장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이지만, 자신의 동료라면 거기까지는 예측해서 무기는 이미 없앤 후 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가 없다면 검은쪽은 거의 무방비 상태이므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기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어스퀘이크(지진). 맛은 어때? 식전주로는 제격이지만, 빈 속에 먹으려면 아무래도 흔들리지?"
히치로가 아래에서 말했다. 어느 틈에 내려갔는지 미키는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만일 무기를 향해 손을 뻗은 그 때에 공격당했다면 미키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머리가 물풍선처럼 터졌을 것이다. 미키는 등 뒤쪽으로 기분나쁘게 흘러내리는 식은땀의 감촉을 느끼면서 하나의 일본도의 형태를 한 쇠붙이를 양 손에 들었다.
푸른색의 암광처리가 된 총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지 간신히 주머니에 걸쳐있었다. 아마 자세를 낮게하고 뛰거나 높이 도약하면 꽤 높은 확률로 떨어질 것이다. 거기에 장전되어있는 탄환은 완전철갑탄 10발. 이 정도로 뒤쪽에 무게가 걸려있다면 가만히 내버려두더라도 위태로울 정도다.
최후방에서 싸우는 미키와 최전방에서 싸우는 히치로의 싸움은 이런 거리에서 성립될리가 없었다. 만일 전투가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한 쪽만이 방어하는 소모전. 혹은 그 이상 공격이 가능하다면, 큰 허점을 보고 일발로 끝을 보려는 일격.
하지만 어느 전략이나, 어떤 추측이라고 해도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아마 인간은, 그런 예외에 자극을 받고 그 상황을 탈피하기위해 필사적이 되는 것이겠지.
"건배."
"아아, 건배."
로이드가 하모니카를 집어넣으면서 글라스를 부딫쳤다. 약 1시간 30분 정도이지만, 지치기에는 더도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중에 로이드가 창문이 떨리는 소리에 놀라서 한 번 다른 길로 새버렸고, 그것에 로스가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로스는 다른 악보를 보고 치는 바람에 감도 잡지 못한 로이드는 결국 로스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작곡을 하는 식으로 되어버려서 10분짜리 곡이 25분 정도로 늘어져 버렸고, 그 동안 전투시와 같이 긴장을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인의 따가운 시선이 몇 번인가 오고갔고, 끝에는 결국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샴페인을 열도록 만들었다. 로스와 로이드는 아주 무거운 가면을 쓴 것 처럼 억지로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하나씩 나가는 손님이 있다는 것은 이 둘의 당황이 어느 정도는 알려졌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무보수 자선행사가 되어버렸군."
로스가 가장 싼 맥주에 얼음을 담아넣은 글라스를 기울이며 말했다. 기포는 쉴새없이 얼음에 달라붙어 있었고, 총알의 탄피와 같은 색을 띄는 것으로 보아 아주 좋은 맥주임에 틀림 없었다.
"면목없다."
고개를 푹 숙이는 로이드가 마시는 술은 청포도가 주 재료인 칠레와인이었다. 물론, 주인의 안색을 보아 물이 60%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로이드는 '사소하잖아. 넘어가자.'라고 하면서 주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주인이 바라보았을 때, 이 둘이 한 짓을 보면 보수로 물 한 방울 주는 것이 아까웠다. 분명 대화를 하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지만, 연주를 보고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나간 것으로 보아 절대로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됐어."
로스가 황금빛의 음료수를 들이켰다. 빈 속에 저렇게 맥주를 먹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스럽게 마셨지만 정작 본인은 자각이 없는 듯 했다.
"용건은?"
로이드가 가루약을 물 없이 먹는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단 맛이 좋아서 로이드가 즐겨찾는 종류의 와인이었지만, 아무래도 물을 섞으면 꽤 쓰게 되는 모양이었다.
"고맙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로스가 말했다. 바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앉아서 엎드릴 것 같은 자세로 바의 테이블에 기대어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몇 시간 동안 앉아있었기에 했던 일이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습관이 되어있다는, 웃기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하고싶었어. 막아줘서 고맙다고."
양손으로 술잔을 잡은 로스가 기포의 수를 세듯이 글라스에 얼굴을 갖다대고 말했다.
"내가 막지 않았으면 망설임 없이 죽였을 것 같았는데."
로이드는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 같은 얼굴로 긴 와인 글라스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반대로 얼굴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회했겠지."
"명분론자냐?"
"쾌락주의자에 비관론자에 성격파탄자. 거기에 이제는 명분론자까지 붙게 생겼네."
"흥. 쓰레기야, 넌. 후회할 걸 알면서도 하려고 했냐."
"......"
로스는 할말이 궁한지 맥주의 한기가 코에 닿을 정도로 얼굴과 가까이에 있는 글라스를 움직여 목을 축였다. 표정의 변화는 극히 적었지만, 초점은 잘 맞지 않았다. 아마 옛날 생각이라도 하고있는 것이겠지.
"너도 그런 적 있잖아. 시험 전날 공부해야 하는데 노는게 너무 좋아서 놀아버렸지."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로이드가 살짝 언성을 높이며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마 6년은 더 되었을 일을 끄집어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로이드는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비슷한거야. 후회할 것은 알아. 하지만 그 때는 그런 시도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어."
"변명처럼 들려. 다른 변명은?"
"뭐, 내 진심은 좋아했으니까 빈말이라도 싫었다는 것이지만 말야... 네가 납득할리는 없지."
로스가 글라스에 남은 맥주와 얼음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로이드도 반 이상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들이키고 살짝 미간을 찡그린 후에 로스를 따라갔다.
"그럼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돼."
로이드가 주인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한 후 말했다. 그 말에 로스는 잠시 시계를 바라보더니
"None. 이미 늦었어."
라며 로이드를 만류했다.
"뭐?"
"이미 끝났어."
로이드는 그 말에 오늘 하루동안 보았던 일을 단 2걸음을 걷는 사이에 모두 생각해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냉장고에 있던 술이 약간 없었다는 것과, 페르노라는 술과 위스키, 드라이 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3번째 걸음을 걷기 위해 오른발을 움직인 순간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을 알았다.
끼걱, 하고 다 닳아서 얇아진 신발의 밑창이 대리석으로 된 계단의 마지막 층계와 마찰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다음 순간에, 로스는 고개가 일순간에 돌아가 있었다.
드라이 진에 위스키, 페르노를 3 : 1 : 1 비율로 쉐이크. 이 결과, 나오는 술은
"쓰레기 자식...!"
어스퀘이크(지진).
로이드는 대로로 나가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로스는 그런 로이드를 뒤로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더 깊은 뒷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이 나쁜 날에는 비라도 왔으면 좋으련만, 일기예보로 보나 하늘로 보나 근 시일내에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