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
12:00 PM
신 도쿄
중심부의 카페.
이곳은 꽤 중후한 느낌의 카페였다. 깊은 커피향이 돌고 있었고, 3층에 위치해 있는데다 그 앞으로 대로변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장관을 연출했다. 벽마다 맛있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콩테로 스케치하듯 칠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 어두운 조명이지만 밤에도 새벽에도 누군가와 부딫칠 일은 없을 정도로 절묘한 조명을 갖추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부터 새벽 1시까지 개장하고 연중무휴. 몇 번인가 노숙자가 왔던 적도 있었지만 주인은 딱히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테이블은 밝은 소나무의 오크색이었고, 중앙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중심으로 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전 주인장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증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 피아노에 있었다. 주인장이 피아노 수리공으로 몇 년간 일했기 때문에 조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관리가 잘 안 되어있는가, 하면 너무 광이 잘 나서 어두운 분위기를 해칠 정도였다. 문제는 칠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러자 카페의 매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광택은 나고 매일마다 관리도 하지만 누구도 치지 않았다. 어쩐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중후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 살풍경하지 않은 벽.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하는 카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피아노는 의외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것도 아니지만 손님은 차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이전에는 피아노소리를 듣는다는 것에서 들어오는 자릿세가 매상의 1/3정도를 차지했기 때문에 매상은 더더욱 떨어졌었다.
왜 피아니스트가 없게 되었을까. 이 카페와는 달리 전망 좋고 풀로 되어있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살고있던 부잣집의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한 달쯤 전에 총에 맞아서 죽었었다. 몇 가지 장소를 제외하고는 전부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이 화근이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대구경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고 경찰은 말했었다. 하지만 왜 과거형인가, 하면
"♩♪- "
검은색의 그랜드 피아노는 기교있는 음색으로 화음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웃어넘길 것 같이 신뢰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전의 피아니스트를 죽인 팀의 일원이 며칠 전부터 여기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자몽같이 산뜻하고 깔끔한 단발머리, 중후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색계통의 복장이지만 잘 어울리게 선택한 의상, 외국인처럼 길지는 않지만 현란하게 움직이며 모든 건반을 누르는 기교있는 손가락. 1초에 2회 이상의 건반을 두드려야 하지만 단 한 번의 페달을 밟는 소리도, 건반을 세게 눌러서 덜컥거리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치고있는 곡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오로지 검은색의 피아노 뿐이지만, 이런 소규모이고 중후한 카페에는 기교있는 피아노의 음색이 악단의 웅장한 소리보다 나은 법이다. 피아니스트도 그것을 알고있는지, 보통 이하로 작은 음색을 내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카페, 그것도 소규모이고 낮이라서 연주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전제조건이라면 건반을 음이 날 정도로만 절제해서 터치할 수 있는 기교가 필요했다. 피아노뿐인 터키행진곡이라도 낮은 옥타브에 건반을 세게 두드린다면 충분히 대화에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 피아니스트는 일류였다.
연주는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끝났지만 박수는 들려오지 않았다. 낮 시간이고, 손님은 오히려 적은 축에 들어갔다. 밤 시간이라면 아무리 적어도 열 명의 관객은 있겠지만, 오늘은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부탁해서 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생각할 일이 많은 듯, 평소 일과 관계되지 않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던 주인에게 가까스로 말을 붙여서 허가를 받아내었다.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주인은 메모지를 건네주며 가게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아까전부터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던 관객이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주인에게서 받은 쪽지를 받고, 박수를 치지 않는 관객에게 다가갔다.
"기한은 24시간. 보수는 35. 살해방법은 자율, 일체의 옵션도 없다. 승낙하는가?"
관객은 어떤 사교성의 대화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가장 구석쪽이라서인지, 관객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언제나처럼의 인격을 뒤집어쓰고 웃는 얼굴로 메모지와 사진을 접어서 돌려주었다.
"No. 의뢰는 연합을 통해서 해주세요."
"그래서 15정도 더 붙은 것이다만. 아니면..."
관객은 피아니스트의 취향대로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면서 뜸을 들였다.
"무서운건가?"
관객이 느긋하게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공허한 눈은 이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뒤쪽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빌딩을 바라보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희미하지만 소독약의 냄새가 났다. 그 외의 특징이라면 반팔의 여름옷 너머로 왼쪽 어깨에 붕대가 보인다는 것 정도.
"좋아. 증명은 이걸로 하지."
피아니스트는 웃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다시 느긋하게 탁자에 손을 뻗어 메모와 사진을 집어들었다. 반으로 접힌 사진에는, 청색의 여자가 찍힌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칵테일 바에서 나오는 긴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아,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검은색 운동화를 움직여 뒤로 돌아서 한 걸음을 걷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의뢰주인 관객을 씹어먹을듯이 노려보는 그 눈빛에는 농후한 살기가 서려있었다. 도저히 동일인물로 생각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한 순간에 천사가 악마로 변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표정변화였다.
"다시 한 번 그딴소리 하면, 내가 전력을 다해서 시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부숴놓겠어."
"♬---."
관객은 흥이 난다는 듯 휘파람을 불고 아까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작게 박수를 쳤다.
"과연 Distroyer(파괴자). 앞으로도 부탁하지."
"네. 이 통화도 군사통신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니까, 비용은 걱정 없어요."
미키는 전에 정보를 얻었던 'CAFE'라는 바에서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몇 명이가 손님이 있었고, 정보거래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미키도 오늘은 정보를 얻기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올 일도 없을 뿐더러, 미키는 원래 이 술집을 꽤나 좋아했었다. 분위기는 꽤 어두운 편이지만, 오너는 꽤나 장난기가 심해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마시고 있는 것은 신데렐라라는 칵테일에 과일주를 섞어서 탄산의 느낌이 나는 술이었다.
마티니나 맨하탄같은 고급 칵테일도 있었지만, 미키는 언제나 쓴맛이 덜하고 달콤한 신데렐라를 주로 찾았다. 여름에는 과일을 섞고 과일주를 기본으로 만든 칵테일도 있었고, 겨울에는 도수 90이 넘는 스피리터즈를 마시면 추위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더워지기 마련이었다. 화령도 시절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로스가 몇 번인가 소주나 맥주등 여러 술을 섞은 칵테일을 선물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에게 배웠다는 것이 로스의 말이었지만, 그 친구가 로이드일줄은 손톱의 반만치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키는 꽤나 칵테일 바에 익숙했다. 술은 천성적인지 잘 마셨고, 확실히 술이 없으면 배겨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맨 처음 죽은 사람을 보고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마셧던 것은 '블러디 메리'라는 향이 없는, 독한 칵테일이었다. 물론 마시고 3분만에 드러 누워버려서 그 다음날 일과에도 지장이 있었다. 스위치가 내려가듯이 머리가 핑 돌아서 그 다음날까지 술기운이 남아있어서 학교에 가기위해 걷는 것마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키가 마셔보았던 술의 종류만 1000개는 가뿐히 넘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흐응-. 명색이 크래커인만큼 당연한건가?]
"그 정도야 뭐."
미키가 그렇게 말하면서 칵테일에 빨대를 꽃아 한모금을 더 마셨다.
[그래서, 무슨 일로 칵테일 마시면서 연락중이야?]
"일단은... 안부일까요. 스승이니까."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의외라는 것인지, 치요세는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시간으로는 대략 2분 정도 웃는 치요세의 모습을 상상하면, 옆에서 보기에는 영락없이 미친 사람일 것이다.
"농담 아닌데..."
[뭐가 스승이야-. Give & Take 아냐? 주민등록을 둘 없애서 사람을 사장시켜줬잖아.]
어찌보면 살인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호적도 주민등록도 아무것도 없어서 취직, 은행거래, 의료보험은 물론이고 사망처리된 것도 아니라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 되었으므로 살해해도 죄가 되지않는다. 어디까지나 법상으로는.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걸로 스승이라고 생각하니까 고맙네. 분할사고에 소질이 있을중른 나도 꿈에도 몰랐는데 말야-.]
"거기에 '유사'라고 붙는 것이 좀 슬프지만요."
[그래도 진품못지 않아-.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잖아?]
"물론 주무기는 검이지만."
[킥킥. 농담도. 최면은 어때?]
최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미키는 얼음이 들어간 컵을 몇 번 뒤흔들었다.
"1m안에서 눈을 마주치고 3초를 유지해야 하는데... 쓸만한 녀석은 아니죠. 뇌를 가속 해도 체감시간으로 3초니까..."
[힘들겠네, 미키마우스도. 실전사용은 지극히 무리겠지.]
"별명좀 부르지 마요. 미키마우스가 뭐야... 쥐도 아니고."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황혼. 망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산 사람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할 때. 빨간머리의 파괴자는 지금부터 오늘의 할 일을 위해 술을 섞고있었다.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앞세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두가 쉬러갈 때 자신의 일을 시작해야 그것이 분명한 뒤쪽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근무시간은 지금부터이며, 야근과 주근의 차이는 전혀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목숨은 없고, 단 한번의 실책으로 모가지이며, 한 번의 당황은 실수와 실책을 불러들인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절대영도 이하로. 어떤 감정도 갖지 않고,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 일에만 매달려야 그 다음날에도 별 일 없이 출근할 수 있는 이 세계는, 지금부터 출근시간의 러시아워였다.
그런 황혼 무렵에, 폐허가 되어버린 전 수도의 총포상이 늘어선 거리를 한 명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머리는 빨간색의 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앞머리에는 응고된 핏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고, 눈썹은 서리가 낀 것 처럼 빨간색의 물방울이 묻어있었다. 머리가 깨진 것인지 관자놀이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고, 입술은 이미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치아노제(산소부족으로 인한 증상)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두 눈은 지금 넘어져서 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풀려있었다. 왼쪽 팔은 으스러져 있었다. 아마 현대의학으로 완벽히 복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출혈량은 약간만 더 지속되면 치사에 이를 것이다. 손가락은 비교적 멀쩡한 것 같지만, 팔에는 꽤 많은 생채기가 들어서 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은 거의 잘게 찢어져서 내의가 거의 비치고 있었다.
이미 의식은 없었다. 걷고있는 것인지, 떠가는 것인지, 살아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총포상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저럴때가 있었다는 듯이 옛 추억을 되돌아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단 한 명, 지구를 부술 수 있는 머스켓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루이즈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웃었었다. 저렇게 만신창이여서야 자신이 어디를 걷고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마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가물가물할 것이고, 어쩌면 이미 근성으로 움직이는 중이고, 뇌는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꽤 비 과학적이지만, 쉽게 말하면 뇌 자체가 죽은것으로 인식, 포기한다는 것이다. 저래서야 외과의사가 있어도 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고 생각하고 루이즈가 웃었었다.
하지만 웃음을 거두었다. 아마 대부분의 총포상은 상대가 좋았다고 하겠지만, 루이즈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후에 잘 알고있던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급히 치료할 사람을 불렀다. 아마 구도쿄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의 의사였다. 현대의학보다 약 10년 정도 더 앞선 의술과, 마의 속성은 '재생'이었다. 만일 여기에서 그가 '엔트라센(의학용어, 퇴원. 치료불가 혹은 치료완료.)'이라는 판정을 하면 의학이던, 마적인 수술을 하던 살릴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손도 못 대고 사망판정을 내릴 것이다.
오른손에는 짧고 얇은 일본도가 잡혀져 있었다. 말 그대로 잡혀진 상태였다. 일본도의 손잡이에 본드를 잔뜩 바르고 거기에 장갑을 씌워서 접착시킨 다음에 그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손목의 끈이 많이 조여져서 오른손에 그야말로 억지로 잡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세 명의 건달이 다가와 그 여자를 위협하며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중간의 남자는 대답이 없는 것을 긍정으로 알았는지 일본도를 잡지 않은 왼손을 잡고 끌려고했다.
그리고 그 팔은 일본도에 의해 제지되었다. 잘려나간 것은 아니었다. 팔뚝의 절반까지 날이 들어와서 뼈를 끊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완전히 풀려있었고, 왼손은 너덜너덜거리면서 뼈가 튀어나와 있었지만 멈추는 기색은 없이, 오른손은 살육을 계속했다. 이미 의식따위는 없었다. 그저 본능 이상의 행동으로 오른손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산소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치아노제는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왼팔에서 나는 뼈의 마찰음은 밖으로 들릴 정도가 되었다. 확실하게, 목을 반 이상 베어놓고서야 여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루이즈는 망막이 충혈될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놀란 이유는 하나.그 형편없는 기교도 아니었고, 보통사람이라면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도 아니었고, 이성이 없는 근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무모한 공격도 아니었다. 단지, 무의식중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 여자의 본능이었다.
[♬ ─]
"잠깐 생각이 든 것인데, 이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거의 없는 박수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게 말하면서 피아노의 건반에서 손을 뗀 로스가 말했다.
"도와줘.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위한 대가라고 생각해."
로이드가 하모니카에서 입을 떼면서 말했다. 로스는 알았다는 듯 미간을 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본심은 꽤 불만이 있을 것이다.
로스는 그다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악보가 멀리 있어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손재주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순발력도 어느 정도는 되었다. 아니, 사실 직감으로 앞 내용과 유추해서 다음 건반을 누를 자리를 알 수 있으니 악보도 순발력도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한다고 생각하면 쉽사리 자신감이 붙지 않았다.
그런 로스가 로이드의 부탁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원래는 히치로가 근무하는 카페였지만 오늘은 빠질 수 밖에 없었기에, 주인은 이미 단골 고객들에게는 이야기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 자리를 매우기 위해 로이드와 하모니카와 로스의 손가락이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냥 여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로이드가 바이올린을 잡는 것을 보고 로스가 말했다. 이걸로 둘의 입은 자유롭게 되어있었고, 지금 연주하는 곡은 꽤 느린 축에 속하는 곡이었다. 실수로라도 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I'm always on ready for fire."
"미묘하게 문법이 틀린 것 같은 느낌이다만..."
"됐어. 피아노쪽은 느릴지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은 그다지 여유가 없다고."
"알았다. 끝난 후에 해볼까."
로스가 한숨을 쉬면서 건반위에 놓여있던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시간에, 스네이크는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은 거리를 걷고있었다. 옆에는 하얀 피부의 흡혈귀가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해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근 2년 정도를 살고있던 스네이크였지만, 이런 거리는 처음보는 것 같았다. 저 대로변에서 필요이상으로 스피커의 음색을 높게 해서 시끄럽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게 된 대중가요의 음악도 들려오지 않았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정한 리듬으로 도마에 칼이 부딫치는 소리가 들려오지도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건가."
뱀이 자신의 느낌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흡혈귀는 콧노래를 흥헐거리면서 나아가기만 할 뿐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공은 대로변에 굴러가던 채로 멈춰져 있는지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편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담장에는 아이들의 낙서가 있었지만, 키가 큰 스네이크가 담장의 위쪽을 바라보았을 때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먼지가 쌓여있었다. 몇 년 전에 마지막 연탄의 생산이 끝났다며, 마지막 연탄은 수집가들에게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 거리에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탄이 몇 십 장이나 대문 옆에 쌓여있었다. 바닥을 잘 보면, 검게 얼룩진 것은 껌이나 침이 아니라 발로 차여서 부서진 연탄재였다.
마치 이 곳 만은 시간이 비껴가는 것 같았다. '시간'을 나타내는 톱니바퀴가 빠져서 다른 인과선이 개입하지 못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 곳은 같은 세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안내하고 싶은 곳은 여기."
흡혈귀는 들어가라는 듯 고급 호텔의 안내원처럼 손을 내밀어서 초록색 철문으로 들어가기를 권유하고 있었다. 뱀은 한 발짝을 내려놓으려다가 흡혈귀를 바라보며 돌아섰다.
"왜 알려주는 거지?"
"어머나? 아직 난 뭐가 있다는 말도 안 했어?"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면서 눈을 크게 했다. 흡혈귀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대가에 관한 이야기다. 억지로 먹여놓고 목숨이라던가 지불하게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
흡혈귀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석양이 사라지고 여명이 남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를 땅거미가 밀어내듯이 햇빛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괜찮아. 네가 아니라 네 친구에게서 대가는 받았어. 뭐, 너는 기억도 하지 못할 것 같지만."
"...... 그럼 다음으로, 이 안에 있는 것은?
"기억의 파편, 이라고 해둘게. 내가 구상할 수 있는 환상은 여기까지야. 이 이상은 그 친구를 직접 찾아서 듣던가, 네가 직접 생각해서 그 친구를 찾아."
뱀은 잠시 말없이 땅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이라는 듯이 하얀색의 흡혈귀를 직시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은, 가까이에 있어?"
"글쎄, 세상에서 가장 멀지만 근처에 있다고 해둘게. 응... 아마 우주선을 타고 평생을 간다고 해도 눈으로 직시할 수 있을 거리까지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
그럼 방해꾼은 이만 갈게. 오늘은 간만에 노숙이나 해볼까─."
그렇게 흡혈귀는 들어올 때 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어둠에 잠겨갔다.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아 별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스네이크는 자신의 관측가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 후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녹슨 초록색의 철문을 밀어젖혔다.
12:00 PM
신 도쿄
중심부의 카페.
이곳은 꽤 중후한 느낌의 카페였다. 깊은 커피향이 돌고 있었고, 3층에 위치해 있는데다 그 앞으로 대로변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장관을 연출했다. 벽마다 맛있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콩테로 스케치하듯 칠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 어두운 조명이지만 밤에도 새벽에도 누군가와 부딫칠 일은 없을 정도로 절묘한 조명을 갖추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부터 새벽 1시까지 개장하고 연중무휴. 몇 번인가 노숙자가 왔던 적도 있었지만 주인은 딱히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테이블은 밝은 소나무의 오크색이었고, 중앙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중심으로 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전 주인장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증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 피아노에 있었다. 주인장이 피아노 수리공으로 몇 년간 일했기 때문에 조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관리가 잘 안 되어있는가, 하면 너무 광이 잘 나서 어두운 분위기를 해칠 정도였다. 문제는 칠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러자 카페의 매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광택은 나고 매일마다 관리도 하지만 누구도 치지 않았다. 어쩐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중후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 살풍경하지 않은 벽.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하는 카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피아노는 의외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것도 아니지만 손님은 차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이전에는 피아노소리를 듣는다는 것에서 들어오는 자릿세가 매상의 1/3정도를 차지했기 때문에 매상은 더더욱 떨어졌었다.
왜 피아니스트가 없게 되었을까. 이 카페와는 달리 전망 좋고 풀로 되어있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살고있던 부잣집의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한 달쯤 전에 총에 맞아서 죽었었다. 몇 가지 장소를 제외하고는 전부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이 화근이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대구경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고 경찰은 말했었다. 하지만 왜 과거형인가, 하면
"♩♪- "
검은색의 그랜드 피아노는 기교있는 음색으로 화음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웃어넘길 것 같이 신뢰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전의 피아니스트를 죽인 팀의 일원이 며칠 전부터 여기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자몽같이 산뜻하고 깔끔한 단발머리, 중후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색계통의 복장이지만 잘 어울리게 선택한 의상, 외국인처럼 길지는 않지만 현란하게 움직이며 모든 건반을 누르는 기교있는 손가락. 1초에 2회 이상의 건반을 두드려야 하지만 단 한 번의 페달을 밟는 소리도, 건반을 세게 눌러서 덜컥거리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치고있는 곡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오로지 검은색의 피아노 뿐이지만, 이런 소규모이고 중후한 카페에는 기교있는 피아노의 음색이 악단의 웅장한 소리보다 나은 법이다. 피아니스트도 그것을 알고있는지, 보통 이하로 작은 음색을 내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카페, 그것도 소규모이고 낮이라서 연주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전제조건이라면 건반을 음이 날 정도로만 절제해서 터치할 수 있는 기교가 필요했다. 피아노뿐인 터키행진곡이라도 낮은 옥타브에 건반을 세게 두드린다면 충분히 대화에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 피아니스트는 일류였다.
연주는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끝났지만 박수는 들려오지 않았다. 낮 시간이고, 손님은 오히려 적은 축에 들어갔다. 밤 시간이라면 아무리 적어도 열 명의 관객은 있겠지만, 오늘은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부탁해서 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생각할 일이 많은 듯, 평소 일과 관계되지 않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던 주인에게 가까스로 말을 붙여서 허가를 받아내었다.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주인은 메모지를 건네주며 가게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아까전부터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던 관객이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주인에게서 받은 쪽지를 받고, 박수를 치지 않는 관객에게 다가갔다.
"기한은 24시간. 보수는 35. 살해방법은 자율, 일체의 옵션도 없다. 승낙하는가?"
관객은 어떤 사교성의 대화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가장 구석쪽이라서인지, 관객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언제나처럼의 인격을 뒤집어쓰고 웃는 얼굴로 메모지와 사진을 접어서 돌려주었다.
"No. 의뢰는 연합을 통해서 해주세요."
"그래서 15정도 더 붙은 것이다만. 아니면..."
관객은 피아니스트의 취향대로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면서 뜸을 들였다.
"무서운건가?"
관객이 느긋하게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공허한 눈은 이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뒤쪽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빌딩을 바라보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희미하지만 소독약의 냄새가 났다. 그 외의 특징이라면 반팔의 여름옷 너머로 왼쪽 어깨에 붕대가 보인다는 것 정도.
"좋아. 증명은 이걸로 하지."
피아니스트는 웃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다시 느긋하게 탁자에 손을 뻗어 메모와 사진을 집어들었다. 반으로 접힌 사진에는, 청색의 여자가 찍힌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칵테일 바에서 나오는 긴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아,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검은색 운동화를 움직여 뒤로 돌아서 한 걸음을 걷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의뢰주인 관객을 씹어먹을듯이 노려보는 그 눈빛에는 농후한 살기가 서려있었다. 도저히 동일인물로 생각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한 순간에 천사가 악마로 변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표정변화였다.
"다시 한 번 그딴소리 하면, 내가 전력을 다해서 시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부숴놓겠어."
"♬---."
관객은 흥이 난다는 듯 휘파람을 불고 아까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작게 박수를 쳤다.
"과연 Distroyer(파괴자). 앞으로도 부탁하지."
"네. 이 통화도 군사통신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니까, 비용은 걱정 없어요."
미키는 전에 정보를 얻었던 'CAFE'라는 바에서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몇 명이가 손님이 있었고, 정보거래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미키도 오늘은 정보를 얻기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올 일도 없을 뿐더러, 미키는 원래 이 술집을 꽤나 좋아했었다. 분위기는 꽤 어두운 편이지만, 오너는 꽤나 장난기가 심해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마시고 있는 것은 신데렐라라는 칵테일에 과일주를 섞어서 탄산의 느낌이 나는 술이었다.
마티니나 맨하탄같은 고급 칵테일도 있었지만, 미키는 언제나 쓴맛이 덜하고 달콤한 신데렐라를 주로 찾았다. 여름에는 과일을 섞고 과일주를 기본으로 만든 칵테일도 있었고, 겨울에는 도수 90이 넘는 스피리터즈를 마시면 추위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더워지기 마련이었다. 화령도 시절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로스가 몇 번인가 소주나 맥주등 여러 술을 섞은 칵테일을 선물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에게 배웠다는 것이 로스의 말이었지만, 그 친구가 로이드일줄은 손톱의 반만치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키는 꽤나 칵테일 바에 익숙했다. 술은 천성적인지 잘 마셨고, 확실히 술이 없으면 배겨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맨 처음 죽은 사람을 보고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마셧던 것은 '블러디 메리'라는 향이 없는, 독한 칵테일이었다. 물론 마시고 3분만에 드러 누워버려서 그 다음날 일과에도 지장이 있었다. 스위치가 내려가듯이 머리가 핑 돌아서 그 다음날까지 술기운이 남아있어서 학교에 가기위해 걷는 것마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키가 마셔보았던 술의 종류만 1000개는 가뿐히 넘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흐응-. 명색이 크래커인만큼 당연한건가?]
"그 정도야 뭐."
미키가 그렇게 말하면서 칵테일에 빨대를 꽃아 한모금을 더 마셨다.
[그래서, 무슨 일로 칵테일 마시면서 연락중이야?]
"일단은... 안부일까요. 스승이니까."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의외라는 것인지, 치요세는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시간으로는 대략 2분 정도 웃는 치요세의 모습을 상상하면, 옆에서 보기에는 영락없이 미친 사람일 것이다.
"농담 아닌데..."
[뭐가 스승이야-. Give & Take 아냐? 주민등록을 둘 없애서 사람을 사장시켜줬잖아.]
어찌보면 살인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호적도 주민등록도 아무것도 없어서 취직, 은행거래, 의료보험은 물론이고 사망처리된 것도 아니라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 되었으므로 살해해도 죄가 되지않는다. 어디까지나 법상으로는.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걸로 스승이라고 생각하니까 고맙네. 분할사고에 소질이 있을중른 나도 꿈에도 몰랐는데 말야-.]
"거기에 '유사'라고 붙는 것이 좀 슬프지만요."
[그래도 진품못지 않아-.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잖아?]
"물론 주무기는 검이지만."
[킥킥. 농담도. 최면은 어때?]
최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미키는 얼음이 들어간 컵을 몇 번 뒤흔들었다.
"1m안에서 눈을 마주치고 3초를 유지해야 하는데... 쓸만한 녀석은 아니죠. 뇌를 가속 해도 체감시간으로 3초니까..."
[힘들겠네, 미키마우스도. 실전사용은 지극히 무리겠지.]
"별명좀 부르지 마요. 미키마우스가 뭐야... 쥐도 아니고."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황혼. 망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산 사람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할 때. 빨간머리의 파괴자는 지금부터 오늘의 할 일을 위해 술을 섞고있었다.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앞세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두가 쉬러갈 때 자신의 일을 시작해야 그것이 분명한 뒤쪽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근무시간은 지금부터이며, 야근과 주근의 차이는 전혀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목숨은 없고, 단 한번의 실책으로 모가지이며, 한 번의 당황은 실수와 실책을 불러들인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절대영도 이하로. 어떤 감정도 갖지 않고,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 일에만 매달려야 그 다음날에도 별 일 없이 출근할 수 있는 이 세계는, 지금부터 출근시간의 러시아워였다.
그런 황혼 무렵에, 폐허가 되어버린 전 수도의 총포상이 늘어선 거리를 한 명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머리는 빨간색의 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앞머리에는 응고된 핏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고, 눈썹은 서리가 낀 것 처럼 빨간색의 물방울이 묻어있었다. 머리가 깨진 것인지 관자놀이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고, 입술은 이미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치아노제(산소부족으로 인한 증상)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두 눈은 지금 넘어져서 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풀려있었다. 왼쪽 팔은 으스러져 있었다. 아마 현대의학으로 완벽히 복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출혈량은 약간만 더 지속되면 치사에 이를 것이다. 손가락은 비교적 멀쩡한 것 같지만, 팔에는 꽤 많은 생채기가 들어서 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은 거의 잘게 찢어져서 내의가 거의 비치고 있었다.
이미 의식은 없었다. 걷고있는 것인지, 떠가는 것인지, 살아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총포상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저럴때가 있었다는 듯이 옛 추억을 되돌아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단 한 명, 지구를 부술 수 있는 머스켓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루이즈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웃었었다. 저렇게 만신창이여서야 자신이 어디를 걷고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마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가물가물할 것이고, 어쩌면 이미 근성으로 움직이는 중이고, 뇌는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꽤 비 과학적이지만, 쉽게 말하면 뇌 자체가 죽은것으로 인식, 포기한다는 것이다. 저래서야 외과의사가 있어도 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고 생각하고 루이즈가 웃었었다.
하지만 웃음을 거두었다. 아마 대부분의 총포상은 상대가 좋았다고 하겠지만, 루이즈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후에 잘 알고있던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급히 치료할 사람을 불렀다. 아마 구도쿄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의 의사였다. 현대의학보다 약 10년 정도 더 앞선 의술과, 마의 속성은 '재생'이었다. 만일 여기에서 그가 '엔트라센(의학용어, 퇴원. 치료불가 혹은 치료완료.)'이라는 판정을 하면 의학이던, 마적인 수술을 하던 살릴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손도 못 대고 사망판정을 내릴 것이다.
오른손에는 짧고 얇은 일본도가 잡혀져 있었다. 말 그대로 잡혀진 상태였다. 일본도의 손잡이에 본드를 잔뜩 바르고 거기에 장갑을 씌워서 접착시킨 다음에 그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손목의 끈이 많이 조여져서 오른손에 그야말로 억지로 잡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세 명의 건달이 다가와 그 여자를 위협하며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중간의 남자는 대답이 없는 것을 긍정으로 알았는지 일본도를 잡지 않은 왼손을 잡고 끌려고했다.
그리고 그 팔은 일본도에 의해 제지되었다. 잘려나간 것은 아니었다. 팔뚝의 절반까지 날이 들어와서 뼈를 끊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완전히 풀려있었고, 왼손은 너덜너덜거리면서 뼈가 튀어나와 있었지만 멈추는 기색은 없이, 오른손은 살육을 계속했다. 이미 의식따위는 없었다. 그저 본능 이상의 행동으로 오른손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산소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치아노제는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왼팔에서 나는 뼈의 마찰음은 밖으로 들릴 정도가 되었다. 확실하게, 목을 반 이상 베어놓고서야 여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루이즈는 망막이 충혈될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놀란 이유는 하나.그 형편없는 기교도 아니었고, 보통사람이라면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도 아니었고, 이성이 없는 근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무모한 공격도 아니었다. 단지, 무의식중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 여자의 본능이었다.
[♬ ─]
"잠깐 생각이 든 것인데, 이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거의 없는 박수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게 말하면서 피아노의 건반에서 손을 뗀 로스가 말했다.
"도와줘.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위한 대가라고 생각해."
로이드가 하모니카에서 입을 떼면서 말했다. 로스는 알았다는 듯 미간을 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본심은 꽤 불만이 있을 것이다.
로스는 그다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악보가 멀리 있어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손재주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순발력도 어느 정도는 되었다. 아니, 사실 직감으로 앞 내용과 유추해서 다음 건반을 누를 자리를 알 수 있으니 악보도 순발력도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한다고 생각하면 쉽사리 자신감이 붙지 않았다.
그런 로스가 로이드의 부탁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원래는 히치로가 근무하는 카페였지만 오늘은 빠질 수 밖에 없었기에, 주인은 이미 단골 고객들에게는 이야기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 자리를 매우기 위해 로이드와 하모니카와 로스의 손가락이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냥 여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로이드가 바이올린을 잡는 것을 보고 로스가 말했다. 이걸로 둘의 입은 자유롭게 되어있었고, 지금 연주하는 곡은 꽤 느린 축에 속하는 곡이었다. 실수로라도 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I'm always on ready for fire."
"미묘하게 문법이 틀린 것 같은 느낌이다만..."
"됐어. 피아노쪽은 느릴지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은 그다지 여유가 없다고."
"알았다. 끝난 후에 해볼까."
로스가 한숨을 쉬면서 건반위에 놓여있던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시간에, 스네이크는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은 거리를 걷고있었다. 옆에는 하얀 피부의 흡혈귀가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해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근 2년 정도를 살고있던 스네이크였지만, 이런 거리는 처음보는 것 같았다. 저 대로변에서 필요이상으로 스피커의 음색을 높게 해서 시끄럽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게 된 대중가요의 음악도 들려오지 않았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정한 리듬으로 도마에 칼이 부딫치는 소리가 들려오지도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건가."
뱀이 자신의 느낌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흡혈귀는 콧노래를 흥헐거리면서 나아가기만 할 뿐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공은 대로변에 굴러가던 채로 멈춰져 있는지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편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담장에는 아이들의 낙서가 있었지만, 키가 큰 스네이크가 담장의 위쪽을 바라보았을 때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먼지가 쌓여있었다. 몇 년 전에 마지막 연탄의 생산이 끝났다며, 마지막 연탄은 수집가들에게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 거리에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탄이 몇 십 장이나 대문 옆에 쌓여있었다. 바닥을 잘 보면, 검게 얼룩진 것은 껌이나 침이 아니라 발로 차여서 부서진 연탄재였다.
마치 이 곳 만은 시간이 비껴가는 것 같았다. '시간'을 나타내는 톱니바퀴가 빠져서 다른 인과선이 개입하지 못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 곳은 같은 세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안내하고 싶은 곳은 여기."
흡혈귀는 들어가라는 듯 고급 호텔의 안내원처럼 손을 내밀어서 초록색 철문으로 들어가기를 권유하고 있었다. 뱀은 한 발짝을 내려놓으려다가 흡혈귀를 바라보며 돌아섰다.
"왜 알려주는 거지?"
"어머나? 아직 난 뭐가 있다는 말도 안 했어?"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면서 눈을 크게 했다. 흡혈귀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대가에 관한 이야기다. 억지로 먹여놓고 목숨이라던가 지불하게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
흡혈귀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석양이 사라지고 여명이 남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를 땅거미가 밀어내듯이 햇빛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괜찮아. 네가 아니라 네 친구에게서 대가는 받았어. 뭐, 너는 기억도 하지 못할 것 같지만."
"...... 그럼 다음으로, 이 안에 있는 것은?
"기억의 파편, 이라고 해둘게. 내가 구상할 수 있는 환상은 여기까지야. 이 이상은 그 친구를 직접 찾아서 듣던가, 네가 직접 생각해서 그 친구를 찾아."
뱀은 잠시 말없이 땅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이라는 듯이 하얀색의 흡혈귀를 직시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은, 가까이에 있어?"
"글쎄, 세상에서 가장 멀지만 근처에 있다고 해둘게. 응... 아마 우주선을 타고 평생을 간다고 해도 눈으로 직시할 수 있을 거리까지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
그럼 방해꾼은 이만 갈게. 오늘은 간만에 노숙이나 해볼까─."
그렇게 흡혈귀는 들어올 때 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어둠에 잠겨갔다.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아 별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스네이크는 자신의 관측가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 후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녹슨 초록색의 철문을 밀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