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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같이 쏟아지는 빗길을 뚫고 한 사내가 말을 내달렸다.

"빌어먹을……. 하필 이런 때 비가 올게 뭐람!"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그는 하늘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말에 채찍질을 가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그의 눈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이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빛이 눈에 잘 띠었고, 사내는 그 빛의 정체가 마을에서 새어나오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10여 분 쯤을 더 달려 마을 초입에 도착한 그는 말에서 내려 여관을 찾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주변에 여관의 위치를 물어볼 사람이 없었으나, 다행이도 마을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렵지 않게 여관을 찾을 수 있었다.

[ 방랑자의 집 ]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흔한 이름의 간판이 비바람에 삐그덕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인 지, 여관의 겉은 낡고 허름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곳에서 묵지 않을 그였으나, 상황이 상황인 지라 사내는 조심스럽게 여관 문을 열었다.

겉과 달리 여관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쥐나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곳이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던 사내는 안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때였다. 카운터에서 컵을 닦고있던 대머리 노인이 그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봐, 젊은이. 들어올꺼면 빨리 들어오지 그래?"

"아, 죄송합니다. 그 전에 제가 말을 타고 와서 그런데, 마구간이……."

"이 여관 뒤편에 있네."

노인의 말에 다시 밖으로 나간 그는 말을 여관 뒤편에 있는 허름한 마구간에 매고 다시 여관으로 들어왔다. 그가 다시 들어서자, 대머리 노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불평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죄송합니다."

노인의 말에 사내는 황급히 망토를 벗었다. 물론, 노인을 살짝 씹어(?)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테이블 한 쪽을 차지한 채, 술을 마시고 있던 중년인들 중 하나가 노인의 쌀쌀맞은 태도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봐요, 터크 씨. 그렇게 손님한테 쌀쌀맞아서야 어디 장사해먹겠어요?"

"나는 아쉬울 꺼 하나 없어.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말리는 게 내 장사원칙이니까. 더군다나, 네 녀석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닐텐데? 허구헌 날,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술만 퍼마셔대고 있으니……."

"허구헌 날이라뇨? 누가 들으면 술에 중독된 사람인 줄 알겠어요."

"네 놈이 매일 내 가게와서 얼굴도장 찍고간다는 건,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개소리냐? 네 녀석 마누라도 이젠 너란 놈에게 질려서, 술집까지 쳐들어오지도 않잖아? 너란 놈이 그런 놈이다, 이 중독자야!"

노인의 폭언에 화라도 날 법 하건만, 중년사내는 이미 이런 욕설에 면역이 됐는 지 여전히 웃음기 지우지 않은 채 항복 선언을 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거참……. 그보다, 손님 안 받을거유? 우리 때문에 말도 못 붙이고 저러고 서있잖아?"

그의 말에 그제서야 손님의 존재를 깨달은 노인은 카운터 아래에서 키 한 개를 꺼내 사내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2층 두번 째 방. 하루 묵는데 식비 포함해서 40실버야."

"예!? 40실버요? 하지만 대개 다른 여관은 20실버 정도 하는 걸로……."

"싫으면 다른데로 가던가."

노인의 대답을 짧고 명료했다. 주인도 마음에 안들고, 이런 낡아빠진 여관에서 보통 여관의 2배에 달하는 요금을 내고 숙박해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사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하나 뿐이었다.
노인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필시 자신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리라…….

사내가 약간 굳은 얼굴로 40실버를 내자, 아까 욕설을 먹었던 중년사내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도 참 안됐구만. 다른 곳에 2배나 되는 요금으로 이런 후진 여관에서 묵게되다니, 크크크……."

"뮐러, 더 이상 쓰잘떼기 없는 개소리를 지껄인다면 여기서 내쫓아버리겠어!"

노인의 서리발 같은 말에 '네, 네'하며 금새 꼬리를 내린 뮐러란 이름의 사내는 곧 관심을 방금 들어온 젊은 사내에게로 돌렸다.

"이봐, 자네! 아직 밥 안 먹었지?"

"예……."

사내의 대답에 뮐러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노인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터크 아저씨, 들으셨죠? 빨리 식사 내와요."

"네 녀석이 돈내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주문하지마!"

"에이, 여기 식사 메뉴가 한 가지 뿐이란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뭐……."

그 말에 노인은 화가 난 듯 눈을 부라렸지만, 아까처럼 욕설을 퍼붓진 않았다. 식사 준비를 위해 노인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뮐러는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치며 사내에게 말했다.

"젊은이. 합석 괜찮지?"

"네? 아, 네……. 뭐 괜찮긴 합니다만……."

말끝을 흐린 사내는 뮐러의 앞쪽에 앉아있는 두 명의 중년 사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일행이 있는데 자신이 껴도 되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그의 생각을 대번에 알아차린 그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일행에게 물었다.

"이보게, 친구들. 저 친구가 합석하는데 불만 없지?"

"이를 말인가? 이런 구석진 곳에 여행자가 찾아왔다는 건 정말 환영할 일이지!"

"맞아, 맞아"

뮐러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제 되지않았냐는 표정으로……. 일행 모두가 찬성하자, 사내도 더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뮐러의 옆자리에 앉았다. 새로운 일행의 합류에 기분이 좋아진 뮐러는 사내가 앉기 무섭게 통명성을 했다.

"내 이름은 뮐러네. 저기 내 맞은 편에 앉아있는 뚱뚱한 친구는 시몬이고, 그 옆에 앉아있는 앞머리 까진 친구는 게론이지."

뮐러의 소개에 따라 시몬과 게론이 각각 인사를 하자, 사내 역시 마주 인사하며 자신의 소개했다.

"제 이름은 세이미온 미엘 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세 사람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름만 있는 자신과 달리 이름 앞에 성이 있으니 이 젊은 사내의 신분은 필시 귀족이 분명했다. 귀족과 평민은 하늘과 땅 차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평민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대개 이런 경우에는 벌벌 떨며 자신의 죄를 비는 게 정상이지만, 세 명의 중년사내들은 그저 살짝 놀라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귀족과 대면할 기회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귀족이 자신들보다 높다는 건 알고있지만, 마을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실상 귀족을 만날 일이 없다보니 귀족에 대한 반감이나 두려움이 존재할 리 없었다.

"어쩐지 좀 귀티나게 생겼다 했더니, 귀족집 도련님이셨구만. 그럼, 존대라도 해야하는건가?"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시면 오히려 제가 더 불편해집니다."

뮐러와 두 친구들의 태도도 태도지만, 미엘 역시도 평소 귀족이란 신분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노하거나 하지 않았다. 기실 귀족이라고 해도, 그의 집안은 '준남작' 집 안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온전한 귀족도 아니었다.

여하튼 신분 차이에서 오는 문제 아닌 문제(?)가 가볍게 해결되자,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이야기라고 해봐야, 줄로 뮐러들이 질문하고 미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지만…….

"대체 이런 곳에 귀족 양반이 무슨 일로 찾아왔나?"

"뭣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알아볼 꺼? 그게 뭔데?"

뮐러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인 미엘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둘러볼 곳이 있어서요……. 저, 혹시……. 50여 년 전 쯤에 대륙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제로스 용병단'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미엘의 입에서 '아제로스 용병단'이란 말이 나오자, 세 사람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뒤쪽 구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미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뮐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갯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그가 가르킨 곳에는 누군가가 술에 취해 뻗어있었다.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 지, 테이블 주변은 물론 테이블 위에도 꽤 많은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제로스 용병단'에 대해 물었는데, 왜 갑자기 저 취객을 가리키는 걸까.
의아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미엘이 자신을 쳐다보자, 뮐러는 술잔에 남은 술로 가볍게 목을 축이며 그의 의구심을 풀어주었다.

"나나 여기 이 친구들이나 그 '아제로스'인지 뭔지 하는 용병단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곤 하지. 물론 듣고 싶어서 듣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정말인가요? 대체 누구에게…… 설마……."

"그래, 저 노인네 덕이야. 저 노인네는 여기서 살다시피 하며 술만 찾는데, 술만 먹었다 하면 '자기가 천하를 호령하던 아제로스 용병단의 간부였네' 어쨌네,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거든."

"간부요!?"

'간부'란 말에 미엘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뮐러는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인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저 노인네 말로는 그 용병단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었나봐."

미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사실 그가 이런 구석진 마을에 들르게 된 이유도 아제로스 용병단와 연관이 있었다. 아제로스 용병단에 대해 글을 쓰던 그는, 글의 완성도를 보다 높히기 위해 '아제로스 용병단' 최후의 전장터인 소시리스 평야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름길을 찾는답시고 엄한 길로 가다가 중간에 길을 잘못 들고, 더군다나 갑자기 폭우까지 만나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한 그에게 정말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 것이었다.

전직 아제로스의 용병대원, 그것도 간부……. 분명 아제로스 용병단에 대한 정보도 많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아제로스 용병단은 대륙에서 워낙 유명했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명을 떨쳤던 집단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얘기들은 어디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 예로 그가 살던 도시의 도서관만 하더라도 아제로스 용병단과 관련된 서적이 100여 권이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똑같았다. 아제로스 용병단은 없어져야 마땅할 악당 집단이라고…….
그는 이런 흔한 내용 따윈 원치 않았다. 그래서 발로 직접 뛰며 이것저것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분, 이 마을 분이세요?"

"지금은 이 마을에 살지만, 원래 이 마을 사람은 아니야."

"그럼, 저 분이랑 혹시 대화해보신 적은 있나요?"

"저 노인네랑? 아니, 전혀!"

고개를 내저은 뮐러는 이내 혀를 차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노인네가 몸 생각은 안하고 맨 술만 먹어대니……. 나는 저 노인네가 제 정신인 적을 본 적이 없어."

"……."

"내가 술 마시러 올 때면, 저 노인네는 언제나 쓰러져 자고있거나 술 쳐먹고 주정부리고 있거든."

"……그럼 저 분과 얘기할 방법은 없는건가요?"

"저 놈이랑 대화해서 뭐하게?"

이 말은 뮐러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였다. 어느 새, 미엘에 먹을 식사를 가지고 나온 대머리 노인은 뒤쪽 구석에서 자고있는 노인을 힐끗 쳐다본 후 이내 미엘을 노려보았다. 대머리 노인의 매서운 눈초리에 미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여쭤볼 게 좀 있어서…… 하하하……."

"아제로스 용병단 말이냐?"

"어? 듣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그런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몹쓸 폐물은 아니니까."

그의 말에 미엘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닌데……."

"사과받자고 한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 아제로스 용병단에 대해 뭘 알고 싶은거지?"

노인의 눈은 무언가를 탐색하듯 끊임없이 미엘을 훑어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노인의 눈빛에 미엘은 꽤나 부담감을 느끼며 애써 그 시선을 외면했다.

"그냥 이것저것요……. 정말 아제로스 용병단이 극악 집단인 지,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 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제로스 용병단'을 이끌었던 다섯 명의 리더에 대해 알고 싶어요."

"그런 얘기라면 책에 나와있을텐데……?"

"예……. 하지만 책의 내용들은 승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게 많아서 왜곡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왜곡된 부분의 진실을 파헤쳐 보고자 이것저것 조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패자라……. 하긴, 그들의 최후는 결국 비참했지."

노인은 회상에 잠긴 듯, 잠시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런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뮐러가 짐짓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거요? 혹시 아저씨도 저 노인네처럼 '아제로스 용병단'이었수?"

그 물음에 노인은 이맛살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젊은 시절, 용병생활을 하던 중 잠시 인연이 닿은 적이 있었을 뿐이다……."

"용병? 아저씨 용병이었어요? 근데 왜 그런 얘기를 한번도 안 했어요?"

뮐러의 물음에 노인은 인상을 더욱 찡그리며 그에게 말했다.

"네 녀석이 물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나에게 그걸 말할 의무도 없으니까!"

뮐러를 잠시 노려보던 노인의 시선이 다시 미엘에게로 옮겨졌다.
그는 미엘을 향해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한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말해두지. '아제로스 용병단'은 대륙에 알려진 만큼 악한 집단이 아니야. 격식과 가식을 갖추지 않은 자유분방함과 강인함을 추구하던 최강의 용병집단 뿐이지.
그들은 다른 용병들에게 있어 우상이었고,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국가라고 해서 다른 바가 없었다.
알겠나? '아제로스 용병단'은 그 강함 때문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그 강함 때문에 결국 사라지게 된거야."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다한 노인은 뒤쪽 구석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전직 '아제로스 용병단'의 간부였다던 노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주방으로 들어가 보렸다. 미엘은 물론 뮐러들 역시 노인의 저런 진지한 모습을 처음 본 것인지, 뮐러는 '쳇, 갑자기 왜 무게 잡고 난리야…….'라고 투덜거리며 남은 술을 털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