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
9:00 AM
신 도쿄.
중심부의 BAR, 'Cafe'
바는 원래 갱들이 숨던 아지트와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문은 밖에서 보아도 무게감이 넘치다 못해 압사할 정도로 무겁고, 두껍다. 아마 중량으로 따지면 2, 30kg정도는 문제없이 나가지 않을까.
그 육중한 문이 열리고 침울한 표정으로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들어왔다.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다. 그런대로 치안이 좋은 신 도쿄에서는 보통의 바라고 해도 감시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곳은 평범한 바였다. 술과 술을 섞어서 칵테일을 만들고, 중후한 분위기와 현란한 바텐더의 날렵한 손놀림을 볼 수 있는 보통의 바였다. 방금 흑발의 긴 머리카락을 한 여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종업원은 둘이 전부였다. 깔끔한 올백의 머리로 단정하게 묶은 두 명의 바텐더는 여자를 보자마자 밖으로 나가 'CLOSE'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밖으로 나가있겠다는 것이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고, 그 사이 여자는 문에서 바까지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마시겠습니까."
"그러죠. 정보는?"
"얻었습니다. 그렇게 자세하게 주셨는데 못 알아내면 때려치워야죠."
오너는 50대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후한 이미지를 내뿜고 있었다. 탁자 너머에 있는 선반에서 글라스를 꺼내 술을 따르면서 남는 손으로는 싱크대 밑에 있는 서류다발을 여자에게 건내주었다.
여자는 긴 머리는 귀찮네,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뒤로 넘기고 서류로 눈을 돌렸다. 약간 빳빳해보이는 천으로 된 어두운 곤색의 바지를 입고, 하늘색 반팔을 입고있었다. 약간 졸린지 눈이 2/3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뭐, 이제와서 'Eyes Only(복사, 낭독등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최고 기밀문서에 붙는 도장)'같은 농담은 하지 마요?"
"물론입니다. 서로 공생관계니까요."
오너가 글라스에 들어간 술을 섞으면서 말했다.
"나이는 17... 한 살 아래인가."
"한 번 사망신고 되어있었습니다."
"양자(養子)에요?"
"추측이지만요."
파란색 바인더에 싸인 종이는 대략 30개 정도 되었다. 각각 메모용지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꼼꼼한 성격인 것 같았다.
여자는 가느다란 팔을 움직여 글라스를 잡고 물을 마시듯이 칵테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그락거리는 언더락의 얼음이 컵면에 부딫치고, 여자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순간 엄청난 탄산이 혀끝을 직격해서 얼결에 목으로 넘겼더니 식도가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달궈진 납땜인두를 삼키는 것 같은 느김이었다. 그 후에는 희미한 레몬향이 감돌고 있었고, 탄산음료를 먹는 것 같은 달콤함이 있었다.
"뭐에요, 이거?"
"버번 콕이라는 칵테일입니다."
오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는 딸꾹질에 기침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몬과 짐 범 블랙 위스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무 탁자위에 차갑게 김이 나는 캔이 놓여졌다.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코카콜라?"
"그렇습니다. 약간 졸려보이시기에 레몬을 반 정도 더 갈아넣었지요."
오너는 그리고 '레몬은 1/10조각 정도 들어가는 것이 정상입니다만, 이라고 덧붙였다. 대략 5배 정도 더 레몬을 넣었다는 이야기였다.
"우와...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않으면..."
"그렇죠. 원래 쥐는 콜라를 먹으면 반나절 정도는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제 이름가지고 그러는 거에요?"
뭘 더 숨기랴. 월트디즈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불리웠던 미키마우스. 여자의 이름은 그 트레이드 마크의 이름에서 딴 '미키'였다.
"하하. 신데렐라, 좋아하십니까?"
미키는 잠시 분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었고, 이렇게 심하게 자극적인 칵테일 다음에 또 자극적인 칵테일을 마시려면 이 전보다 더 자극적이어야 했다. 그럴바에는 부드러운 칵테일로 입을 가셔두는 편이 더 나았다.
"파란색 머리카락?"
네 번째 페이지를 바라본 미키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예. 제 말단은 '쪽빛'이라고 했습니다만."
사진에는 바다나 맑은 하늘같은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먼 거리에서 몸 전신과 옆에 있던 자전거를 찍어 전체 키를 알려주고 있었고, 근처에서 상체만, 얼굴만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미키는 버번콕을 한 모금 마시면서 계속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확실히 이목구비와 키, 인상을 종합해보면 확실히 목표가 맞았다. 그런데 머리카락의 색이 상당히 달랐다. 분명 미키가 부탁했던 사람은 머리카락이 검은 색이었다.
"뭐, 신경쓸 부분은 아닌가. 나도 1시간 정도면 빨간색이나 흰색으로 염색할 수 있으니."
오너는 오렌지 주스와 파인애플 주스를 섞고있었다. 아직 뚜껑이 개봉되어서 하얀 김을 내뿜고 있던 콜라를 집어 아래쪽으로 내렸다. 아마 그대로 두면 탄산이 날아가기에 한 일일 것이다.
"근데, 오너가 찍은 건 아니죠?"
"예. 사진은 잘 찍지 못해서요. 뭔가 문제라도?"
"아뇨... 좀 별난 취미다, 싶어서."
미키가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중앙에 있던 사진이 너무 두꺼워서 뒷면을 보았더니 재주좋게도 치마속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마 미키가 의뢰주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뭐, 웃어넘겨 주십시오. 개중에는 좀 별난 의뢰도 있었거든요."
오너는 쉐이커를 흔들면서 말했다. 작게 갈아진 단단한 얼음들과 섞여서 흔들어지는 술은 분명히 기포가 많이 들어가서 톡 쏘는 맛을 낼 것이다.
"별난 의뢰요?"
"예. 한 반 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만. 팬티 모양으로 사람을 찾아달라는 사람도 있었지요."
"변태."
미키가 질렸다는 듯이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글라스를 기울였다. 오너는 넉살좋게 웃을 뿐이었다.
아직 술에 대한 적응이 다 되지 않았는지 딸꾹질을 하던 미키가 눈을 번쩍 뜨면서 서류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700? 70을 잘 못 쓴거 아니에요?"
"무리는 아니죠. 2년 전부터 거의 하루에 의뢰 하나 정도는 끝냈으니까요. 끝을 모르는 체력인 것 같군요."
서류의 12번째 장에는 받은 의뢰수가 적혀 있었다. 세부 내용은 27장 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모든 의뢰를 다 모아놓지는 않았고, 큰 의뢰들만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30분 전에 알아내어서 적지 못했습니다만, 거기 서술된 의뢰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미키는 오너의 말에 서류를 좀 더 살펴보며 말했다.
"이런. 이렇게 일 하면 일거리가 없어질텐데."
"예. 그 여자의 의뢰를 맡겼던 조직은 모두 붕괴했지요."
"더 악질인 점은 자기 손으로 부순건가. 대단한 히트맨이네요."
"이제 미국 전체를 주름잡고 있는 거물이 되었지요."
오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신데렐라를 내놓았다. 오렌지 주스에 파인애플 주스, 마지막으로 레몬주스를 1 : 1 : 1의 비율로 섞어서, 알콜이 없는 칵테일 중 하나인 신데렐라가 미키의 손에 들렸다.
약 30페이지 정도에 있는 일본에서의 활동을 살펴보며 태연하게 글라스를 기울인 미키는
"푸-웃."
아마 순도 100%의 스피리터즈(도수 90도)라면 불이 붙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힘차게 내뿜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기에 망정이지, 정면에 있었다면 오너는 자신이 만든 칵테일을 뒤집어 썼을 것이다.
미키는 쉼없이 기침을 했다. 오너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눈물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미키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놀란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놀란 적은 최근들어 처음인 것 같았다.
"신데렐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미키가 한 대 올려붙일 기세로 일어나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박력이 있었겠지만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고, 코를 훌쩍이는 데다가, 눈물도 살짝 나오려 하고있었다. 박력보다는 측은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칵테일의 종류는 무한하지요. 그리고 처음 발견한 사람이 그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장난이 심해요!"
미키가 소리치며 말했다. 오너는 다시 넉살좋게 웃더니 미키에게 앉기를 권유했다.
"확실히, 스피리터즈는 좀 심했습니다만."
"~~!"
미키는 못 참겠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있었다.
논 알콜인 신데렐라를 만드는데 쉐이커를 손에 잡는 것 자체가 일단 이상했다. 미키는 잠시 오른손을 떨다가 오너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뒤 노려보았다. 대략 5 분 정도 쉐이킹한 스피리터즈는 신데렐라라는 부드러운 칵테일을 콜라보다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대신이라면 좀 그렇지만, 오프 레코드(Off Record)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큰 일인가요?"
"좀 개인적이죠. 당신도 간만에 '직감'을 느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미키가 구 도쿄에서 6개월 전에 마주쳤을 때, 그 흑발의 여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마침 미키에게는 이 바의 오너에게 만들어둔 빛이 있었으므로 조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꽤 심각할 정도의 직감이었다. 가족 제회라도 하듯이 당장 달려가서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가 정신이 들어서 망정이지, 그냥 두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고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일 가족은 없었다. 부모는 죽었다. 그 외의 혈족은 부모에 의해 팔렸다. 한 살 위의 형제는 지금도 아마 살아있을 것이지만, 분명 온몸이 포르말린에 절여져서 죽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런던에 있는 마법사 집단에 팔아넘긴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산가족이 상봉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알려드리죠. 거기에 나와있는 클리프란 가명의 여자는..."
청색의 머리결을 가진 여자가 휘파람을 불면서 구도쿄에 있는 한 조직의 본부로 들어갔다. 그 조직은 신흥 조직으로, 나날이 상승세를 타고 다른 조직을 압박하고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신주쿠의 상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는 것 같았지만, 생긴지 1년도 되지 않은 조직으로는 엄청난 성과였다. 물론 비밀은 있었다. 그 비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금괴가 쌓여있는 금고도 아니었고, 정계까지 진출할 정도로 컬렉션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누가 믿을까.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젊은 여자 한 명이 이 조직을 여기까지 올려놓았다고 한다면.
반듯한 2층 집의 입구는 컨테이너로 되어있었다. 대형 저택의 어딘가를 부수지 않고 들어가려면 이 컨테이너를 지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되어있었다. 벽은 세라믹이 얇게 칠해져 있었고, 전등이 단 한개만 켜져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남자는 파란색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꾸벅 인사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왼손에 들린 것은 탄창 비스무리한 물건이었다. 앞에서도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여자는 '선물'이라며 알리는 것을 거부했다. 검은색의 물건이었고,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되어있었다. 표면은 광택이 날 정도로 반반한 것을 보아 내용물은 안에 있고, 검은색은 상자로 안의 물건을 포장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청소와는 꽤나 거리가 먼 것인지, 복도부터 깔금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그런대로 적응했는지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창이라거나 탁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안내하는 사람만을 따라서 발을 내려놓았다. 무기라고는 자신이 즐겨쓰는 소콤이 전부였다. 물론 거기에 붙은 악세서리가 꽤 되었지만, 총구와 방아쇠의 수는 분명히 하나였다. 탄창도 연장했다고 해도 20개가 약간 더 들어가는 정도였다. 제대로 되어먹은 머리라면 이런 곳에서 총질을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는 머리가 잘 박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소콤을 홀스터에서 빼내지는 않았다.
여자는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이 크고 육중한 문을 당당하게 열어재끼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은은하게 깔려있던 클래식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활발한 휘파람에 두목도 이제 왔냐는 듯이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무슨일로?"
"돈 주세요, 돈."
여자의 말에 쇼파에 앉던 두목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저번 일에 대한 대가는 냈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설마. 내 수첩에는 하나 남았다고 적혀있는데?"
여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보라색 표지의 수첩을 꺼내들었다. 약 2일 전에 했던 일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았다고 적혀있었다.
"장부를..."
두목의 옆에서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두목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두목은 고개를 저어서 만류했다.
"됐어. 한 장 준비해라."
여자가 요구하는 것은 봉급 이외의 성과급이었다. 두목의 선택은 현명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여자는, 몇 백개의 조직을 완전 궤멸시킨 전적이 있었다. 수틀리면 이런 건물따위 하루만에 폐허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오, 눈치 좋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두목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금고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인 일인데..."
여자가 말을 꺼냈다. 두목은 턱으로 지시해서 수하를 잠시 밖으로 나가있도록 지시했다.
"나 같은 여자 어떻게 생각해?"
두목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벙찐 얼굴이 되어있었다. 뜬금이 없어도 이 정도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탐색해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에-. 싫어?"
두목은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준비되어 있던 수표를 내밀었다. 여자는 그것을 받으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물론 좋죠."
"그럼 사귈래?"
"에... 하지만, 서로 위치라는 것도 있고..."
"하하하. 숙맥이네, 아저씨."
여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두목은 아저씨라는 말이 꽤나 찔렸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좌절을 나타냈다. 반면에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어댔다.
"좋아. 이건 선물. 직통회선이니까, 나 가고나서 열어봐-."
여자는 청색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일어났다. 두목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이 빨간색 셀로판지처럼 달아올랐다.
여자가 나가고, 두목은 검은색의 딱딱한 통을 개봉했다. 그 뚜껑에는
[さよなら]
작별을 알리는 일본어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통 내부에 있던 다이오드에 불이 들어오고,
"휘-."
한 번의 휘파람이 고막을 울리자, 여자가 방금 전까지 있던 방에서 폭발이 크게 일어났다.
아마 C4정도는 아니라도 사제 크레모아 정도는 될 것 같은 폭발이었다. 여자는 볼것도 없다는 듯 2층의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아래는 풀밭이었고, 관리라고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므로 잡초들이 무성해서 다리는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안에서는 개업한지 1년만에 최대의 비상사태를 맞이했고,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불을 끄기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지만 이곳은 구 도쿄였다. 구조요청을 해도 날아오는 것이라고는 총탄뿐이고, 10년도 지난 이 도시에서 멀쩡한 소화기가 흔할리 만무했다. 불은 삽시간에 방을 집어삼키고 복도에 깔려진 카펫을 타고 번져나갔다.
여자는 당당하게 팔을 양 쪽으로 뻗고 머리를 크게 돌려 고개를 풀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있던 버튼의 11번째 스위치를 누르자
"으아아악--!"
비명소리의 합창이 들려왔다. 그리고, 저택이 순식간에 오랜지빛으로 물들었다.
"아-아. 그래도 니트로 10kg이라니, 옮기기 힘들었어."
구 도쿄의 외곽지역에 있던 오래된 서양식 저택은 이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덧붙여 거기에 둥지를 틀고있던 조직도 공중분해 되었다.
7/26
12:00 PM
신 도쿄
중심부의 카페.
이곳은 꽤 중후한 느낌의 카페였다. 깊은 커피향이 돌고 있었고, 3층에 위치해 있는데다 그 앞으로 대로변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장관을 연출했다. 벽마다 맛있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콩테로 스케치하듯 칠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 어두운 조명이지만 밤에도 새벽에도 누군가와 부딫칠 일은 없을 정도로 절묘한 조명을 갖추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부터 새벽 1시까지 개장하고 연중무휴. 몇 번인가 노숙자가 왔던 적도 있었지만 주인은 딱히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테이블은 밝은 소나무의 오크색이었고, 중앙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중심으로 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전 주인장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증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 피아노에 있었다. 주인장이 피아노 수리공으로 몇 년간 일했기 때문에 조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관리가 잘 안 되어있는가, 하면 너무 광이 잘 나서 어두운 분위기를 해칠 정도였다. 문제는 칠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러자 카페의 매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광택은 나고 매일마다 관리도 하지만 누구도 치지 않았다. 어쩐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중후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 살풍경하지 않은 벽.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하는 카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피아노는 의외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것도 아니지만 손님은 차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이전에는 피아노소리를 듣는다는 것에서 들어오는 자릿세가 매상의 1/3정도를 차지했기 때문에 매상은 더더욱 떨어졌었다.
왜 피아니스트가 없게 되었을까. 이 카페와는 달리 전망 좋고 풀로 되어있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살고있던 부잣집의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한 달쯤 전에 총에 맞아서 죽었었다. 몇 가지 장소를 제외하고는 전부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이 화근이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대구경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고 경찰은 말했었다. 하지만 왜 과거형인가, 하면
"♩♪- "
검은색의 그랜드 피아노는 기교있는 음색으로 화음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피식 웃어넘길 것 같이 신뢰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전의 피아니스트를 죽인 팀의 일원이 며칠 전부터 여기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자몽같이 산뜻하고 깔끔한 단발머리, 중후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색계통의 복장이지만 잘 어울리게 선택한 의상, 외국인처럼 길지는 않지만 현란하게 움직이며 모든 건반을 누르는 기교있는 손가락. 1초에 2회 이상의 건반을 두드려야 하지만 단 한 번의 페달을 밟는 소리도, 건반을 세게 눌러서 덜컥거리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치고있는 곡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오로지 검은색의 피아노 뿐이지만, 이런 소규모이고 중후한 카페에는 기교있는 피아노의 음색이 악단의 웅장한 소리보다 나은 법이다. 피아니스트도 그것을 알고있는지, 보통 이하로 작은 음색을 내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카페, 그것도 소규모이고 낮이라서 연주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전제조건이라면 건반을 음이 날 정도로만 절제해서 터치할 수 있는 기교가 필요했다. 피아노뿐인 터키행진곡이라도 낮은 옥타브에 건반을 세게 두드린다면 충분히 대화에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 피아니스트는 일류였다.
연주는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끝났지만 박수는 들려오지 않았다. 낮 시간이고, 손님은 오히려 적은 축에 들어갔다. 밤 시간이라면 아무리 적어도 열 명의 관객은 있겠지만, 오늘은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부탁해서 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생각할 일이 많은 듯, 평소 일과 관계되지 않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던 주인에게 가까스로 말을 붙여서 허가를 받아내었다.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주인은 메모지를 건네주며 가게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아까전부터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던 관객이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주인에게서 받은 쪽지를 받고, 박수를 치지 않는 관객에게 다가갔다.
"기한은 24시간. 보수는 35. 살해방법은 자율, 일체의 옵션도 없다. 승낙하는가?"
관객은 어떤 사교성의 대화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가장 구석쪽이라서인지, 관객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언제나처럼의 인격을 뒤집어쓰고 웃는 얼굴로 메모지와 사진을 접어서 돌려주었다.
"No. 의뢰는 연합을 통해서 해주세요."
"그래서 15정도 더 붙은 것이다만. 아니면..."
관객은 피아니스트의 취향대로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면서 뜸을 들였다.
"그 가면이 부서질 때인가?"
관객이 느긋하게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공허한 눈은 이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뒤쪽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빌딩을 바라보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희미하지만 소독약의 냄새가 났다. 그 외의 특징이라면 반팔의 여름옷 너머로 왼쪽 어깨에 붕대가 보인다는 것 정도.
"좋아. 증명은 이걸로 하지."
피아니스트는 웃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다시 느긋하게 탁자에 손을 뻗어 메모와 사진을 집어들었다. 반으로 접힌 사진에는, 청색의 여자가 찍힌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칵테일 바에서 나오는 긴 검은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아,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검은색 운동화를 움직여 뒤로 돌아서 한 걸음을 걷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의뢰주인 관객을 씹어먹을듯이 노려보는 그 눈빛에는 농후한 살기가 서려있었다. 도저히 동일인물로 생각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한 순간에 천사가 악마로 변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표정변화였다.
"다시 한 번 그딴소리 하면, 내가 전력을 다해서 시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부숴놓겠어."
"♬---."
관객은 흥이 난다는 듯 휘파람을 불고 아까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작게 박수를 쳤다.
"과연 Distroyer(파괴자). 앞으로도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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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lude 최고의 이벤트에요.
약간 끝마무리가 부실해보여서 보수공사를 했지만;;;
근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을까나.
9:00 AM
신 도쿄.
중심부의 BAR, 'Cafe'
바는 원래 갱들이 숨던 아지트와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문은 밖에서 보아도 무게감이 넘치다 못해 압사할 정도로 무겁고, 두껍다. 아마 중량으로 따지면 2, 30kg정도는 문제없이 나가지 않을까.
그 육중한 문이 열리고 침울한 표정으로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들어왔다.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다. 그런대로 치안이 좋은 신 도쿄에서는 보통의 바라고 해도 감시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곳은 평범한 바였다. 술과 술을 섞어서 칵테일을 만들고, 중후한 분위기와 현란한 바텐더의 날렵한 손놀림을 볼 수 있는 보통의 바였다. 방금 흑발의 긴 머리카락을 한 여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종업원은 둘이 전부였다. 깔끔한 올백의 머리로 단정하게 묶은 두 명의 바텐더는 여자를 보자마자 밖으로 나가 'CLOSE'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밖으로 나가있겠다는 것이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고, 그 사이 여자는 문에서 바까지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마시겠습니까."
"그러죠. 정보는?"
"얻었습니다. 그렇게 자세하게 주셨는데 못 알아내면 때려치워야죠."
오너는 50대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후한 이미지를 내뿜고 있었다. 탁자 너머에 있는 선반에서 글라스를 꺼내 술을 따르면서 남는 손으로는 싱크대 밑에 있는 서류다발을 여자에게 건내주었다.
여자는 긴 머리는 귀찮네,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뒤로 넘기고 서류로 눈을 돌렸다. 약간 빳빳해보이는 천으로 된 어두운 곤색의 바지를 입고, 하늘색 반팔을 입고있었다. 약간 졸린지 눈이 2/3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뭐, 이제와서 'Eyes Only(복사, 낭독등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최고 기밀문서에 붙는 도장)'같은 농담은 하지 마요?"
"물론입니다. 서로 공생관계니까요."
오너가 글라스에 들어간 술을 섞으면서 말했다.
"나이는 17... 한 살 아래인가."
"한 번 사망신고 되어있었습니다."
"양자(養子)에요?"
"추측이지만요."
파란색 바인더에 싸인 종이는 대략 30개 정도 되었다. 각각 메모용지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꼼꼼한 성격인 것 같았다.
여자는 가느다란 팔을 움직여 글라스를 잡고 물을 마시듯이 칵테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그락거리는 언더락의 얼음이 컵면에 부딫치고, 여자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순간 엄청난 탄산이 혀끝을 직격해서 얼결에 목으로 넘겼더니 식도가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달궈진 납땜인두를 삼키는 것 같은 느김이었다. 그 후에는 희미한 레몬향이 감돌고 있었고, 탄산음료를 먹는 것 같은 달콤함이 있었다.
"뭐에요, 이거?"
"버번 콕이라는 칵테일입니다."
오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는 딸꾹질에 기침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몬과 짐 범 블랙 위스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무 탁자위에 차갑게 김이 나는 캔이 놓여졌다.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코카콜라?"
"그렇습니다. 약간 졸려보이시기에 레몬을 반 정도 더 갈아넣었지요."
오너는 그리고 '레몬은 1/10조각 정도 들어가는 것이 정상입니다만, 이라고 덧붙였다. 대략 5배 정도 더 레몬을 넣었다는 이야기였다.
"우와...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않으면..."
"그렇죠. 원래 쥐는 콜라를 먹으면 반나절 정도는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제 이름가지고 그러는 거에요?"
뭘 더 숨기랴. 월트디즈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불리웠던 미키마우스. 여자의 이름은 그 트레이드 마크의 이름에서 딴 '미키'였다.
"하하. 신데렐라, 좋아하십니까?"
미키는 잠시 분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었고, 이렇게 심하게 자극적인 칵테일 다음에 또 자극적인 칵테일을 마시려면 이 전보다 더 자극적이어야 했다. 그럴바에는 부드러운 칵테일로 입을 가셔두는 편이 더 나았다.
"파란색 머리카락?"
네 번째 페이지를 바라본 미키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예. 제 말단은 '쪽빛'이라고 했습니다만."
사진에는 바다나 맑은 하늘같은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먼 거리에서 몸 전신과 옆에 있던 자전거를 찍어 전체 키를 알려주고 있었고, 근처에서 상체만, 얼굴만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미키는 버번콕을 한 모금 마시면서 계속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확실히 이목구비와 키, 인상을 종합해보면 확실히 목표가 맞았다. 그런데 머리카락의 색이 상당히 달랐다. 분명 미키가 부탁했던 사람은 머리카락이 검은 색이었다.
"뭐, 신경쓸 부분은 아닌가. 나도 1시간 정도면 빨간색이나 흰색으로 염색할 수 있으니."
오너는 오렌지 주스와 파인애플 주스를 섞고있었다. 아직 뚜껑이 개봉되어서 하얀 김을 내뿜고 있던 콜라를 집어 아래쪽으로 내렸다. 아마 그대로 두면 탄산이 날아가기에 한 일일 것이다.
"근데, 오너가 찍은 건 아니죠?"
"예. 사진은 잘 찍지 못해서요. 뭔가 문제라도?"
"아뇨... 좀 별난 취미다, 싶어서."
미키가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중앙에 있던 사진이 너무 두꺼워서 뒷면을 보았더니 재주좋게도 치마속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마 미키가 의뢰주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뭐, 웃어넘겨 주십시오. 개중에는 좀 별난 의뢰도 있었거든요."
오너는 쉐이커를 흔들면서 말했다. 작게 갈아진 단단한 얼음들과 섞여서 흔들어지는 술은 분명히 기포가 많이 들어가서 톡 쏘는 맛을 낼 것이다.
"별난 의뢰요?"
"예. 한 반 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만. 팬티 모양으로 사람을 찾아달라는 사람도 있었지요."
"변태."
미키가 질렸다는 듯이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글라스를 기울였다. 오너는 넉살좋게 웃을 뿐이었다.
아직 술에 대한 적응이 다 되지 않았는지 딸꾹질을 하던 미키가 눈을 번쩍 뜨면서 서류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700? 70을 잘 못 쓴거 아니에요?"
"무리는 아니죠. 2년 전부터 거의 하루에 의뢰 하나 정도는 끝냈으니까요. 끝을 모르는 체력인 것 같군요."
서류의 12번째 장에는 받은 의뢰수가 적혀 있었다. 세부 내용은 27장 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모든 의뢰를 다 모아놓지는 않았고, 큰 의뢰들만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30분 전에 알아내어서 적지 못했습니다만, 거기 서술된 의뢰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미키는 오너의 말에 서류를 좀 더 살펴보며 말했다.
"이런. 이렇게 일 하면 일거리가 없어질텐데."
"예. 그 여자의 의뢰를 맡겼던 조직은 모두 붕괴했지요."
"더 악질인 점은 자기 손으로 부순건가. 대단한 히트맨이네요."
"이제 미국 전체를 주름잡고 있는 거물이 되었지요."
오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신데렐라를 내놓았다. 오렌지 주스에 파인애플 주스, 마지막으로 레몬주스를 1 : 1 : 1의 비율로 섞어서, 알콜이 없는 칵테일 중 하나인 신데렐라가 미키의 손에 들렸다.
약 30페이지 정도에 있는 일본에서의 활동을 살펴보며 태연하게 글라스를 기울인 미키는
"푸-웃."
아마 순도 100%의 스피리터즈(도수 90도)라면 불이 붙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힘차게 내뿜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기에 망정이지, 정면에 있었다면 오너는 자신이 만든 칵테일을 뒤집어 썼을 것이다.
미키는 쉼없이 기침을 했다. 오너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눈물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미키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놀란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놀란 적은 최근들어 처음인 것 같았다.
"신데렐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미키가 한 대 올려붙일 기세로 일어나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박력이 있었겠지만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고, 코를 훌쩍이는 데다가, 눈물도 살짝 나오려 하고있었다. 박력보다는 측은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칵테일의 종류는 무한하지요. 그리고 처음 발견한 사람이 그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장난이 심해요!"
미키가 소리치며 말했다. 오너는 다시 넉살좋게 웃더니 미키에게 앉기를 권유했다.
"확실히, 스피리터즈는 좀 심했습니다만."
"~~!"
미키는 못 참겠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있었다.
논 알콜인 신데렐라를 만드는데 쉐이커를 손에 잡는 것 자체가 일단 이상했다. 미키는 잠시 오른손을 떨다가 오너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뒤 노려보았다. 대략 5 분 정도 쉐이킹한 스피리터즈는 신데렐라라는 부드러운 칵테일을 콜라보다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대신이라면 좀 그렇지만, 오프 레코드(Off Record)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큰 일인가요?"
"좀 개인적이죠. 당신도 간만에 '직감'을 느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미키가 구 도쿄에서 6개월 전에 마주쳤을 때, 그 흑발의 여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마침 미키에게는 이 바의 오너에게 만들어둔 빛이 있었으므로 조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꽤 심각할 정도의 직감이었다. 가족 제회라도 하듯이 당장 달려가서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가 정신이 들어서 망정이지, 그냥 두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고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일 가족은 없었다. 부모는 죽었다. 그 외의 혈족은 부모에 의해 팔렸다. 한 살 위의 형제는 지금도 아마 살아있을 것이지만, 분명 온몸이 포르말린에 절여져서 죽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런던에 있는 마법사 집단에 팔아넘긴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산가족이 상봉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알려드리죠. 거기에 나와있는 클리프란 가명의 여자는..."
청색의 머리결을 가진 여자가 휘파람을 불면서 구도쿄에 있는 한 조직의 본부로 들어갔다. 그 조직은 신흥 조직으로, 나날이 상승세를 타고 다른 조직을 압박하고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신주쿠의 상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는 것 같았지만, 생긴지 1년도 되지 않은 조직으로는 엄청난 성과였다. 물론 비밀은 있었다. 그 비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금괴가 쌓여있는 금고도 아니었고, 정계까지 진출할 정도로 컬렉션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누가 믿을까.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젊은 여자 한 명이 이 조직을 여기까지 올려놓았다고 한다면.
반듯한 2층 집의 입구는 컨테이너로 되어있었다. 대형 저택의 어딘가를 부수지 않고 들어가려면 이 컨테이너를 지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되어있었다. 벽은 세라믹이 얇게 칠해져 있었고, 전등이 단 한개만 켜져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남자는 파란색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꾸벅 인사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왼손에 들린 것은 탄창 비스무리한 물건이었다. 앞에서도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여자는 '선물'이라며 알리는 것을 거부했다. 검은색의 물건이었고,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되어있었다. 표면은 광택이 날 정도로 반반한 것을 보아 내용물은 안에 있고, 검은색은 상자로 안의 물건을 포장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청소와는 꽤나 거리가 먼 것인지, 복도부터 깔금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그런대로 적응했는지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창이라거나 탁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안내하는 사람만을 따라서 발을 내려놓았다. 무기라고는 자신이 즐겨쓰는 소콤이 전부였다. 물론 거기에 붙은 악세서리가 꽤 되었지만, 총구와 방아쇠의 수는 분명히 하나였다. 탄창도 연장했다고 해도 20개가 약간 더 들어가는 정도였다. 제대로 되어먹은 머리라면 이런 곳에서 총질을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는 머리가 잘 박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소콤을 홀스터에서 빼내지는 않았다.
여자는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이 크고 육중한 문을 당당하게 열어재끼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은은하게 깔려있던 클래식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활발한 휘파람에 두목도 이제 왔냐는 듯이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무슨일로?"
"돈 주세요, 돈."
여자의 말에 쇼파에 앉던 두목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저번 일에 대한 대가는 냈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설마. 내 수첩에는 하나 남았다고 적혀있는데?"
여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보라색 표지의 수첩을 꺼내들었다. 약 2일 전에 했던 일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았다고 적혀있었다.
"장부를..."
두목의 옆에서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두목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두목은 고개를 저어서 만류했다.
"됐어. 한 장 준비해라."
여자가 요구하는 것은 봉급 이외의 성과급이었다. 두목의 선택은 현명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여자는, 몇 백개의 조직을 완전 궤멸시킨 전적이 있었다. 수틀리면 이런 건물따위 하루만에 폐허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오, 눈치 좋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두목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금고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인 일인데..."
여자가 말을 꺼냈다. 두목은 턱으로 지시해서 수하를 잠시 밖으로 나가있도록 지시했다.
"나 같은 여자 어떻게 생각해?"
두목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벙찐 얼굴이 되어있었다. 뜬금이 없어도 이 정도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탐색해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에-. 싫어?"
두목은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준비되어 있던 수표를 내밀었다. 여자는 그것을 받으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물론 좋죠."
"그럼 사귈래?"
"에... 하지만, 서로 위치라는 것도 있고..."
"하하하. 숙맥이네, 아저씨."
여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두목은 아저씨라는 말이 꽤나 찔렸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좌절을 나타냈다. 반면에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어댔다.
"좋아. 이건 선물. 직통회선이니까, 나 가고나서 열어봐-."
여자는 청색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일어났다. 두목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이 빨간색 셀로판지처럼 달아올랐다.
여자가 나가고, 두목은 검은색의 딱딱한 통을 개봉했다. 그 뚜껑에는
[さよなら]
작별을 알리는 일본어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통 내부에 있던 다이오드에 불이 들어오고,
"휘-."
한 번의 휘파람이 고막을 울리자, 여자가 방금 전까지 있던 방에서 폭발이 크게 일어났다.
아마 C4정도는 아니라도 사제 크레모아 정도는 될 것 같은 폭발이었다. 여자는 볼것도 없다는 듯 2층의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아래는 풀밭이었고, 관리라고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므로 잡초들이 무성해서 다리는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안에서는 개업한지 1년만에 최대의 비상사태를 맞이했고,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불을 끄기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지만 이곳은 구 도쿄였다. 구조요청을 해도 날아오는 것이라고는 총탄뿐이고, 10년도 지난 이 도시에서 멀쩡한 소화기가 흔할리 만무했다. 불은 삽시간에 방을 집어삼키고 복도에 깔려진 카펫을 타고 번져나갔다.
여자는 당당하게 팔을 양 쪽으로 뻗고 머리를 크게 돌려 고개를 풀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있던 버튼의 11번째 스위치를 누르자
"으아아악--!"
비명소리의 합창이 들려왔다. 그리고, 저택이 순식간에 오랜지빛으로 물들었다.
"아-아. 그래도 니트로 10kg이라니, 옮기기 힘들었어."
구 도쿄의 외곽지역에 있던 오래된 서양식 저택은 이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덧붙여 거기에 둥지를 틀고있던 조직도 공중분해 되었다.
7/26
12:00 PM
신 도쿄
중심부의 카페.
이곳은 꽤 중후한 느낌의 카페였다. 깊은 커피향이 돌고 있었고, 3층에 위치해 있는데다 그 앞으로 대로변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장관을 연출했다. 벽마다 맛있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콩테로 스케치하듯 칠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 어두운 조명이지만 밤에도 새벽에도 누군가와 부딫칠 일은 없을 정도로 절묘한 조명을 갖추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부터 새벽 1시까지 개장하고 연중무휴. 몇 번인가 노숙자가 왔던 적도 있었지만 주인은 딱히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테이블은 밝은 소나무의 오크색이었고, 중앙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중심으로 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전 주인장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증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 피아노에 있었다. 주인장이 피아노 수리공으로 몇 년간 일했기 때문에 조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관리가 잘 안 되어있는가, 하면 너무 광이 잘 나서 어두운 분위기를 해칠 정도였다. 문제는 칠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러자 카페의 매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광택은 나고 매일마다 관리도 하지만 누구도 치지 않았다. 어쩐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중후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 살풍경하지 않은 벽.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하는 카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피아노는 의외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것도 아니지만 손님은 차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이전에는 피아노소리를 듣는다는 것에서 들어오는 자릿세가 매상의 1/3정도를 차지했기 때문에 매상은 더더욱 떨어졌었다.
왜 피아니스트가 없게 되었을까. 이 카페와는 달리 전망 좋고 풀로 되어있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살고있던 부잣집의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한 달쯤 전에 총에 맞아서 죽었었다. 몇 가지 장소를 제외하고는 전부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이 화근이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대구경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고 경찰은 말했었다. 하지만 왜 과거형인가, 하면
"♩♪- "
검은색의 그랜드 피아노는 기교있는 음색으로 화음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피식 웃어넘길 것 같이 신뢰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전의 피아니스트를 죽인 팀의 일원이 며칠 전부터 여기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자몽같이 산뜻하고 깔끔한 단발머리, 중후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색계통의 복장이지만 잘 어울리게 선택한 의상, 외국인처럼 길지는 않지만 현란하게 움직이며 모든 건반을 누르는 기교있는 손가락. 1초에 2회 이상의 건반을 두드려야 하지만 단 한 번의 페달을 밟는 소리도, 건반을 세게 눌러서 덜컥거리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치고있는 곡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오로지 검은색의 피아노 뿐이지만, 이런 소규모이고 중후한 카페에는 기교있는 피아노의 음색이 악단의 웅장한 소리보다 나은 법이다. 피아니스트도 그것을 알고있는지, 보통 이하로 작은 음색을 내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카페, 그것도 소규모이고 낮이라서 연주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전제조건이라면 건반을 음이 날 정도로만 절제해서 터치할 수 있는 기교가 필요했다. 피아노뿐인 터키행진곡이라도 낮은 옥타브에 건반을 세게 두드린다면 충분히 대화에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 피아니스트는 일류였다.
연주는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끝났지만 박수는 들려오지 않았다. 낮 시간이고, 손님은 오히려 적은 축에 들어갔다. 밤 시간이라면 아무리 적어도 열 명의 관객은 있겠지만, 오늘은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부탁해서 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생각할 일이 많은 듯, 평소 일과 관계되지 않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던 주인에게 가까스로 말을 붙여서 허가를 받아내었다.
피아니스트가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주인은 메모지를 건네주며 가게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아까전부터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던 관객이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주인에게서 받은 쪽지를 받고, 박수를 치지 않는 관객에게 다가갔다.
"기한은 24시간. 보수는 35. 살해방법은 자율, 일체의 옵션도 없다. 승낙하는가?"
관객은 어떤 사교성의 대화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가장 구석쪽이라서인지, 관객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언제나처럼의 인격을 뒤집어쓰고 웃는 얼굴로 메모지와 사진을 접어서 돌려주었다.
"No. 의뢰는 연합을 통해서 해주세요."
"그래서 15정도 더 붙은 것이다만. 아니면..."
관객은 피아니스트의 취향대로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면서 뜸을 들였다.
"그 가면이 부서질 때인가?"
관객이 느긋하게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공허한 눈은 이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뒤쪽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빌딩을 바라보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희미하지만 소독약의 냄새가 났다. 그 외의 특징이라면 반팔의 여름옷 너머로 왼쪽 어깨에 붕대가 보인다는 것 정도.
"좋아. 증명은 이걸로 하지."
피아니스트는 웃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다시 느긋하게 탁자에 손을 뻗어 메모와 사진을 집어들었다. 반으로 접힌 사진에는, 청색의 여자가 찍힌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칵테일 바에서 나오는 긴 검은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아,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검은색 운동화를 움직여 뒤로 돌아서 한 걸음을 걷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의뢰주인 관객을 씹어먹을듯이 노려보는 그 눈빛에는 농후한 살기가 서려있었다. 도저히 동일인물로 생각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한 순간에 천사가 악마로 변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표정변화였다.
"다시 한 번 그딴소리 하면, 내가 전력을 다해서 시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부숴놓겠어."
"♬---."
관객은 흥이 난다는 듯 휘파람을 불고 아까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작게 박수를 쳤다.
"과연 Distroyer(파괴자). 앞으로도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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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lude 최고의 이벤트에요.
약간 끝마무리가 부실해보여서 보수공사를 했지만;;;
근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