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소울은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난데없이 동행을 하자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한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따스함이
깃들어 있는 얼굴이었다. 소울은 사내에게 당황한 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왜 저랑 같이 가겠다는 거죠? 뭘 알기나 합니까?"
중요한 일을 치르러 가는 데에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저는 하르 츠나레 입니다. 당신과 동행하는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전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요."
"그럼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설명해 보시오."
소울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풀 위에 앉았다. 하르도 다시 바위 위에 앉으며 소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은 모두 다 정확했다. 그가 도박에 빠진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뻔한 것도, 소울의 그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것도 모두 정확하게 맞았다.
"그 때 당신의 어머니는 죽었죠. 바로 당신 아버지 때문에..."
그 말이 하르의 입에서 나오자 소울은 순간 흠칫했다. 생각하기 싫었다.
그의 가문은 어떻게 보면 도박 때문에 망한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자, 돈을 건질 궁리를 하다 어머니를 노예 시장에 비싸게 팔아 버린 것이다. 어머니를 사간 사람들은 그녀를 갖고 놀다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 때 겨우 5살 밖에 되지 않았던 소울이 보는 앞에서. 그 때문에 소울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하다 결국 죽이려 마음 먹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마도사라는 계급에 걸맞게 모든 면에서 소울보다 뛰어났다. 그러므로 소울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그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복수를 위해 마법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홀로 공부를 하는 도중에 또다른 원수를 만나게 되고 말았다. 그 '놈'이 누구인지 소울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복수를 하려면 그 이름과 모습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자가 누군지 알고 있소?"
"예. 저는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식은땀을 흘리며 옛 기억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던 소울은 그 입에도 담기 싫은 자의 이름을, 그 자가 한 짓을 짤막하게 말했다.
"카른...하로스. 그 자가 내 어머니를 죽였어요. 나도 죽이려 했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의 아버지는 죽기 직전이었다. 17살이었던 청년 소울은 그것을 슬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감정없이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남겨준 것은 지금 소울이 주머니 속에서 초조한 듯 만지작거리고 있는 에르델리아, 초록빛 결정체였다.
"다시 묻겠습니다.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하르가 마지막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울은 이 뭔지모를 사내에게 마음이 끌렸다. 같이 간다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될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르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사람 한면 더 있으면 좋은 거죠. 같이 갑시다."
그 말을 하자마자 하르가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울에게 물었다.
"저에게... 질문하실 게 있지 않으십니까?"
하르라는 이 사내는 마치 독심술사 같았다. 소울은 하르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이 자라면 알것도 같았다. 혹시 알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든 소울은 하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람을 피하는지,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지 알고 있소?"
하르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소울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웃음을 그친 하르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말씀드릴 수 없군요. 도시에 있는 호프라도 들어가서 말해드리죠."
"도시가 어딨소?"
"이 숲을 가로질러 가면 나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오두막 뒤의 또 다른 숲을 가리켰다. 소울은 오두막 주변을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숲을 보지 못했다. 하르가 먼저 숲으로 들어섰다. 소울도 얼른 그 뒤를 이었다.
숲에 들어가보니 아까의 그 숲과는 달리 생명이 없었다.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를 가로질러 들어오지도 않았고, 나뭇잎이 생기있는 초록빛이지도 않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소울은 하르에게 물으려고 했으나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소울은 굉음과 함께 지진이 난 듯이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소울은 이런 일은 처음 겪는 것이라 놀라 숲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하르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나간 큰 나무도막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본 소울이 얼른 그를 잡아끌려 했지만, 하르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그 나무도막은 공중에서 가루가 되어 버렸다.
당황한 소울은 하르에게 소리쳐 물었다.
"이건 뭡니까? 도대체..."
"아타르입니다. 우린 싸워야 이 곳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여기를 지나가려면 저 괴물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하르가 턱끝으로 가리킨 곳을 본 소울은 거대한 초록색 괴물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토할 것 같은 형태의 몬스터가 자신의 몸 양쪽에 난 발들을 이용해 그들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 현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5-19 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