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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6 20:18

01. 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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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한적한 밤의 도시 어느 골목길.
온 몸에 검은 망토를 둘러 입은 한 남자가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수상쩍은 행동에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을 뿐이었다. 골목길을 지나 도로가 보이는 인도에 다다르자 그는 잠시 멈추어 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듯했다. 몇 분이 지나자 마음을 정한 그는 발길을 돌려 오른쪽에 있던 담장 틈새로 허리를 굽혀 들어갔다. 사람의 눈에 띄일 수 있는 길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가 틈새를 빠져 나와 고개를 들자, 좁은 길목 바닥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망토를 벗어 길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망토 속에 숨겨져 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20대 초반의 잘생긴 미남형 얼굴의 소유자였다. 망토 안 그가 입고 있던 옷엔 길게 늘어뜨린 금은빛 쇠줄들이 잔뜩 걸쳐져 있었다. 숨을 들이쉰 뒤 그는 그 좁은 구멍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구멍 속은 어두컴컴해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한참을 구멍 속에서 내려가는데, 저 앞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 새 그는 거대한 신전 내부에 들어서 있었다. 손을 들어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진 연단 앞으로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연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그는 양손을 위로 치켜들고 피가 담긴 투명한 유리병이 놓여진 연단에 대고 소리쳤다.

“우리들의 아폴론이시여, 깨어나소서. 온 천지에 그대의 웅장한 목소리를 울리소서!”

그의 목소리가 신전 안에 메아리쳤다. 이어서 고요가 그 뒤를 따랐다. 잠시 뒤, 신전의 양쪽에 나 있는 창문 안으로 환한 햇살이 유리를 뚫고 들어왔다. 그리고 신전이 미세하게 요동치는가 싶더니 웅장한 목소리가 신전을 가득 메웠다.

“소울, 그대는 무슨 이유로 나를 찾아왔는가.”

그 사내는 양 팔을 천천히 내리고는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다.

“영원한 신 사르그시여. 제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내는 숨을 고르더니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연단만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아주 강한 힘을 말입니다.”

“어째서 힘이 필요한가?”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사내의 말에 사르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내가 말을 이어 나갔다.

“힘이 꼭 필요합니다. 막강한 힘을 주십시오. 그 자에게 복수해야 합니다.”

신전에 사르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엔 굳은 의지만이 비쳐 보였다. 사르그는 그런 사내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어째서 힘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가.”

“집착이 아닙니다. 그 자는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기에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네게 힘을 주마. 그러나 그 힘을 네가 옳지 못한 곳에 쓴다면, 나는 곧바로 네게서 힘을 다시 빼앗을 것이다. 알겠느냐?”

“감사합니다.”

바로 다음 순간 연단의 유리병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와 신전을 메웠다. 사내는 붉은 빛에 둘러싸여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 현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5-19 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