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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저물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해가 진다. 더 이상 이 색보다 피에 가까운 색은 없다고 느낄 정도로 선명한 피색이 보는 사람의 망막에 확연히 비쳐졌다. 노을이 지나간 후의 환영처럼 남아있는 저 여명도 곧 끝나가고 있었다. 곧 밤이 올 것이다.




"위험했네요."




정철진이 눈을 뜨자 박보람이 말했다.




정말 위험했다. 부엌에 함정을 파기 위해 지체된 덕분에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불길이 등을 직격했다. 그 후로 기억이 없었다.




"심상민은?"




다행히 등은 별 이상 없는 것 같았다. 뒷머리가 살짝 그을리고 오리털 점퍼가 상의와 같이 눌어붙어있다는 점만 빼면. 정철진은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이 쓰레기가 된 점에 경의를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




"부엌에 있는데요."




정철진은 다시 누웠다.




모자가 달린 티셔츠가 정철진의 시야 한 구석에 들어왔다. 그 말은 정철진을 입히는 것이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말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위쪽은 전혀 입지 않았다는 말이다. 거기에 더불어 바지도 책상 옆에 놓여있었다. 정철진은 순간 두통을 느꼈다.




"알았으니까, 나가주지 않을래?"




정철진이 두통 때문에 머리를 잡으면서 말했다. 의외로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책상 옆에 손을 뻗어 검은색 셔츠를 손에 집었다. 박보람은 웃는 얼굴이었다.




"그 전에 설명해주세요."




"뭘?"




"칼 그림이요."




정철진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주력인 왼팔을 제외하고는 온 몸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대검에 맞은 상처, 총알이 스친 상처, 잭나이프와 식칼은 물론, 시미터도 몇 번인가 거쳐보았다. 아마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무기는 한 번 정도 거쳐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설명 안 해. 입이 찢어져도 안 하니까 찢을 생각도 하지 마."




"에-이. 빼지 말고 말해줘요-."




박보람은 어린아이가 조르듯이 정철진에게 조르고 있었다. 정철진은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눈매가 가늘어졌지만 그 뿐으로, 박보람은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인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 아직 웃는 얼굴이었다.




"그만해. 학기 초에 도와준 일도 있고, 그냥 이 일은 넘어가줘."




정철진이 셔츠를 들고 입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말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잖아요-."




"상관있어. 많아. 그러니까 나가줘."




"거절.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에는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부부싸움 하지 마. 그리고 박보람. 환자한테 엉겨 붙지 말고 떨어져. 병 옮아."




부엌에서 심상민이 그렇게 말했다. 프라이팬을 쓰고 있는 모양인지 뭔가를 튀기는 소리가 났는데, 어떻게 튀기는지가 궁금하다고 정철진은 생각했다. 기껏해야 라이터 정도밖에 없을 텐데, 부엌에서는 계란을 튀기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병? 오히려 네 쪽이 감기 걸리지 않았나?"




"감기정도는 괜찮아. '인격파탄'이라는 병 보다는."




"인격파탄자한테 손 벌리고 있는 사람은 어떤지 볼만 하겠네."




정철진이 비꼬며 말했다. 심상민은 아픈데 찌른다고 뭐라 중얼거렸지만 정철진은 못 들은 척 돌아누웠다. 박보람은 문을 닫고 나갔기 때문에, 정철진은 방 안에 혼자 있게 되었다. 정철진은 벌떡 일어나 빳빳한 바지를 입고 몸을 살폈다.




먼저 변혁이 완전히 중지된 것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시행할때도, 원래대로 돌려놓을 때도 극도의 긴장을 필요로 하기에 때때로 몇 일 씩이나 변혁된 상태로 되어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 후에 며칠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비를 확인했다. 투척용 단검 20개, 단도 둘. 전부 계산대로였다. 헤어스프레이는 이제 없지만, 어느 편의점에나 있는 가스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카메라와 구급상자를 비롯한 물건이 들어있던 가방이었다. 붕대와 소독약, 지혈제는 항상 어깨에 차고 다녔기에, 지금은 책상위에 있는 헝겊주머니에 있었지만, 응급치료 이상의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가."




정철진은 그 방 안에서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배수진이라는 생각으로 방에 들어와서 먼저 가방을 던져놓은 뒤 필요한 물품만 꺼냈었다. 지금 와서 머리를 짚고 후회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어진 원인을 찾아갔다.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무리하게 변혁한 것이 원인일 것이다. 마지막에 잘 생각해보면 가스레인지에 레버를 돌리자 풀리려고 하는 변혁을 억지로 잡아두었다. 혹시 녀석이 뛰쳐나온다면 다시 상대해야 했으므로 억지로 교감신경을 자극해 유지시켰던 것이 화근인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해서 마지막에 뛰어내리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부교감신경이 극도로 자극되었는지도 몰랐다.




다른 원인이라고 해봐야 교감신경을 자극시킨다는 것이 부교감신경이나 다른 뭔가를 건드려서 의식이 날아갔을 경우 정도. 확실히 그 때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땅에 닿기도 전에 의식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땅에 머리부터 부딪쳐서 의식이 날아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젠장."




왼팔은 움직이는데, 오른팔이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수전증 정도가 아니라 팔 전체가 떨리는 것이다. 움직이기는 하지만 꽤 아팠고, 움직일수록 진폭이 더 커져왔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래된 상처를 벌리고 식초를 붓는 것을 뼈에다가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뼈 속에 공기가 들어있어서 대류하는 것 같이 기분이 나빴다.









정철진 일행과 김다희를 제외한 사람들은 도서실에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대형 파티양초가 탁자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고, 다들 외투를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아무것도 입지 않는 편이 이상했다. 하지만 다들 외관을 중시하지 않고 실용성만 따진 탓인지 오컬트분야에 깊게 심취한 오컬트동아리의 부원들 같았다.




모이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모두를 끌어들였다고 생각되는 김은영의 집에 모두의 시체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 중에서 단 한 명, 정철진의 시체만은 빠져있었다. 그렇다면 과학동 1층에서 죽어있는 학생을 비롯해 그 집에 있던 모두를 죽인 것은 정철진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현상한 사진에는 모두의 시체가 찍혀있었다. 전문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방 전체를 한 번, 나머지는 세부적으로 찍고, 구석구석마다 한 번씩 더 찍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전부 살아있는데 어째서 저기에는 자신의 모습을 한 시체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왜 정철진의 시체만이 없는 것인지도 믿기지 않았다.




이 중에서 가장 체격이 좋은 이동규는 자신이 공격하기로 했다




"죽을 거야."




"분명히."




김양지와 이시은이 말했다. 그 둘은 정철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이동규가 공격한다면 분명히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




육체노동에는 자신 있는 이동규가 반문했다.




"간단해. 너는 아무리 저런 녀석이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찌를 수 있겠어? 거기에 저쪽은 수십 번이나 죽인 녀석이야."




이시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동규는 계속 달그락거리며 잭나이프를 만지작거리다가 못 참겠다는 듯 나이프로 나무탁자를 내리쳤다. 얇은 사진을 확실히 꿰뚫은 나이프는 손가락 두 마디정도가 콱 박혀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동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만한 자세로 모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면 총을 수리하는 건 어때요?"




임준원이 말했다. 확실히 총은 남아있었다. 분명 이시은이 관리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모두가 합해서 일한다면 총 하나를 수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만장일치로 총의 수리가 가결되었다.




모두 생존에 대한 위협은 있었다. 물론 자신들이 잘못했다고는 하지만, 그로인해 죽어야 할 책임까지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끝나고 불러. 난 나대로 찾아볼 테니까."




이동규는 화난 듯 깊게 박힌 나이프를 거칠게 뽑으며 일어섰다.




"뭐를 찾으려고?"




유현준이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돌아 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정철진을 따라간 심상민은 죽은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내가 가는 것이 싫다면, 학기 초에 왜 사람이 죽었는지 말해주던가?"




이동규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따라가려던 구본석이 그 말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




다들 말이 없었다.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의욕이 뚝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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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살짝 귀차니즘;



아니, 쓰는 건 좋은데 올리기가 싫어요;

* 현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5-19 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