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이동규가 말했다.
허탕이었다. 그런 성격이지만 일기를 쓸 정도로 치밀하지는 않은 듯 했다. 최대한 왔다는 표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열어보고 조용히 서랍을 닫았지만, 이것만은 좀처럼 진정하기 힘들었다.
문은 열려있었다. 열려있지 않더라도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창문의 낡은 방범창을 뜯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무려 60년 된 아파트였다. 방범창은 나사가 거의 다 빠져서 단 하나의 나사만이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그것도 먼지가 끼어서 관리도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동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현관을 열어보았고 이런 세상에도 신은 있는 것인지 이동규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이동규는 한 손에 자신과 비슷한 유령회원이 살해당한 단검을 들고 방안을 오가고 있었다. 정철진의 방으로 추정되는 방에 도착해서 잔뜩 긴장했지만, 그 곳에 정철진은 없었다. 우라질, 이라고 욕해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TV는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의 모니터만한 TV는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대변하듯 뒤쪽으로 검은색의 선이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그 옆의 소파도 겉의 가죽이 거의 뜯어져서 비닐 테이프로 감겨져 있었다. 지쳐서 쓰러지듯 누웠지만 푹신하기는커녕 오히려 테이프의 날카로운 부분에 베여버렸다. 어찌된 집안인지 쿠션마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2일째에 정철진이 학교에 다시 돌아왔을 때 머리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 정철진과 연관된 피임에 틀림없었지만, 조급한 이동규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오는 길에 시체도 발견했다. 얼굴이 타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토론부의 누군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발견한 이동규는 안이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소 피워보지 못했던 시가도 윗 주머니에 두둑히 챙겨 넣고, 이미 단종된 희귀담배도 발견했다. 종업원이 피웠었는지 편의점의 계산대 위에 놓여있었다. 얻기 위해서는 청계천의 담배수집상 정도는 가서 담배 한 갑에 몇 만원은 주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런 곳에서 얻다니 이동규는 오늘 운수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칼을 가는 숫돌도 보였지만 코팅도 다 벗겨지지 않았고, 기껏해야 정철진의 침대에서 여행용 가방만 발견했을 뿐이다.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알려주듯 시계와 여행 가이드만이 이동규를 반겨주었다.
컴퓨터는 그냥 지나쳤다. 전원도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다시 혼자서 노을 지는 낡은 아파트에 들어가 그 소름끼치는 영상을 다시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바에야 나가서 빵을 가져오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다.
비닐로 도배된 소파에 앉아 이동규는 타임 한 개비를 피우고 있었다. 간신히 발견해낸 작은 수첩의 첫 장을 넘기면서 이동규는 오늘의 수확에 만족감을 표했다.
1/5
초기작 넘버 A0001은 성공적이다. 부수입도 짭짤하다. 왼쪽 신장을 떼어내 430만원을 챙겼고, 상부에서도 그 정도는 부수입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팔의 강도 실험에서 약 14배의 악력강화와 근력강화, 강도와 내성의 강화가 확인되었다.
1/9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오늘 B2108번이 도망치자, 1분도 되지 않아서 잡았다. 살해명령이 떨어지자 흰색 단도와 투척용 단검으로 200m거리에서 점점 거리를 좁혀가며 살해했다. 후에 책임자로서 감상을 물었지만 어린아이인지, 그것을 일 이외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 했다.
이동규는 갑자기 10월이 된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10/3
A0001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한지 약 100일이 지났다. 웃고 떠들지만 밤이 되어서 누군가를 살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그 송곳니를 드러내고 확실히 표적을 죽인다. 테스트를 위해 가장 꼭대기 층의 밀실에 사는 이 집안의 후계자를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결과, 성공.
4층의 창문을 주시하다가 표적이 고개를 내밀고 2초 정도가 지난 순간 즉시 오른팔을 강화시켜 단검을 던졌다. 3초가 지난 시점에서 정확히 이마를 관통해 사망.
10/5
후계자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래도 이 꼬마아이가 범인이라는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원래부터 안중에 없던 녀석이라 차라리 죽었다고 좋아하는 쪽이 훨씬 많다. 이 괴물을 잘 이용하면, 내 출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10/6
A0001이 B0201과 접촉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복부에 자상을 입었다. 신장이 없는 왼쪽이어서 다행이지 만일 오른쪽이었다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였다.
약간 충격이다. 온 몸을 완전히 강화시키고 뒤를 잡았건만 결과가 이 모양이다. 의외로 쓸모없는지도 모른다.
10/10
A0001은 수시로 B0201과 만나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눈빛도 정상이고 딱히 강화한 흔적도 없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더니, 설마 연애감정이라도 있는 건가?
최근에 총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딱히 가르칠 것이 없다. 오토매틱의 분해는 한번 알려주었더니 요령껏 후드득후드득 잘 분해해냈고 조립도 문제없다. fiveseven 권총이 잘 맞는 듯 하나 자신이 개조하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 내일은 베레타와 소콤을 가져다 둘 생각이다.
10/20
의외로 투척계열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딱히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단검을 던져서 10개중 8개가 정확히 꽂힌다. 직선으로 던지는 방법도 혼자 개발해낸 것 같다. 디딤발이 살짝 약하지만 그 부분만 고치면 내 적중률보다 더 우수하다. 더 웃긴 점은, 전혀 강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22
트러블 발생. A0001은 의외로 불안정한 타입인 듯하다. B0201과 마찰이 있었는데, 순간 미쳐버린 것인지 전투불능이 되어도 억지로 일어나서 공격, 결국 B0201의 경동맥을 베었으나 빠른 치료로 살아났다. 그 후로 2시간 동안 보이는 사람마다 공격해서 결국 묶어놓았다.
특징 - 충혈된 눈, 보통의 강화할 때 보다 더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 광소하는 입,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댄스'.
…….
이동규는 이 이상 읽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A0001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짐작 가는 바로는 정철진이 분명하겠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또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고, 지금 갈 수 있을 리도 없다. 읽어봐야 헛수고. 확실한 단서를 찾아서 정철진을 몰아넣지 않으면 도리어 이쪽이 당할 뿐이었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둔하게 들리고, 단검은 정철진을 위에서 내리찍는 괴물의 복부에 정확히 명중했다. 비틀거리던 괴물은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정철진은 냉정하게 방문을 들어 녀석에게 던지고, 단도가 두 개 확실히 박혔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방문을 녀석 쪽으로 밀었다.
너덜너덜해진 방문이었다. 계속 구멍이 나면서 나무조직들은 구멍이 없는 쪽으로 몰렸다. 물론 찌른 반대편으로 조직이 튀어나오지만, 단도의 모양대로 나무조직이 없어지고 그 곳에 구멍이 난 것이다. 몇 개의 조직은 떨어져 나가고, 몇 개의 조직은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서로 밀려서 압축되는 경우도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런 짓을 수십 번 반복한 방문의 나무조직 사이에 단도가 끼인 것이다. 쉽게 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달려! 부엌의 창문으로 나간다!"
숨을 몰아쉬는 정철진이 말했다. 등뼈에서 척수가 과로로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소리가 귀까지 들리고, 연골조직의 찌걱거리는 소리가 안쪽으로 들려왔다. 넘어졌어도 큰일이었다. 방문과 침대 사이에 허리가 끼인다. 그렇게 되면 아마 녀석은 분명 허리를 노려왔을 것이다. 정철진의 선택은 현명했다.
그리고 박보람과 심상민이 밖으로 나가고, 방문이 양쪽으로 잡아 뜯기는 소리가 났다. 정철진은 서둘러 가스 밸브의 양쪽을 뜯어놓았다. 부엌 바닥에 수건이 깔려있어서 약간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난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마음먹었다.
괴물은 정철진을 바로 뒤에서 쫒아가다가 생명을 위협하는 직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 너머에는 정철진의 종이를 꼽아서 가스가 계속 나오도록 조작된 라이터와, 그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마른 수건의 모습이 있었다. 그 라이터와 수건이 있는 곳은 레버가 돌려진 가스레인지의 위였다.
-----------------------------------------------------------------------
대략 간만.
기억하시는 분은 있어요?
* 현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5-19 22:55)
이동규가 말했다.
허탕이었다. 그런 성격이지만 일기를 쓸 정도로 치밀하지는 않은 듯 했다. 최대한 왔다는 표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열어보고 조용히 서랍을 닫았지만, 이것만은 좀처럼 진정하기 힘들었다.
문은 열려있었다. 열려있지 않더라도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창문의 낡은 방범창을 뜯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무려 60년 된 아파트였다. 방범창은 나사가 거의 다 빠져서 단 하나의 나사만이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그것도 먼지가 끼어서 관리도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동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현관을 열어보았고 이런 세상에도 신은 있는 것인지 이동규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이동규는 한 손에 자신과 비슷한 유령회원이 살해당한 단검을 들고 방안을 오가고 있었다. 정철진의 방으로 추정되는 방에 도착해서 잔뜩 긴장했지만, 그 곳에 정철진은 없었다. 우라질, 이라고 욕해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TV는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의 모니터만한 TV는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대변하듯 뒤쪽으로 검은색의 선이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그 옆의 소파도 겉의 가죽이 거의 뜯어져서 비닐 테이프로 감겨져 있었다. 지쳐서 쓰러지듯 누웠지만 푹신하기는커녕 오히려 테이프의 날카로운 부분에 베여버렸다. 어찌된 집안인지 쿠션마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2일째에 정철진이 학교에 다시 돌아왔을 때 머리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 정철진과 연관된 피임에 틀림없었지만, 조급한 이동규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오는 길에 시체도 발견했다. 얼굴이 타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토론부의 누군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발견한 이동규는 안이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소 피워보지 못했던 시가도 윗 주머니에 두둑히 챙겨 넣고, 이미 단종된 희귀담배도 발견했다. 종업원이 피웠었는지 편의점의 계산대 위에 놓여있었다. 얻기 위해서는 청계천의 담배수집상 정도는 가서 담배 한 갑에 몇 만원은 주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런 곳에서 얻다니 이동규는 오늘 운수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칼을 가는 숫돌도 보였지만 코팅도 다 벗겨지지 않았고, 기껏해야 정철진의 침대에서 여행용 가방만 발견했을 뿐이다.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알려주듯 시계와 여행 가이드만이 이동규를 반겨주었다.
컴퓨터는 그냥 지나쳤다. 전원도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다시 혼자서 노을 지는 낡은 아파트에 들어가 그 소름끼치는 영상을 다시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바에야 나가서 빵을 가져오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다.
비닐로 도배된 소파에 앉아 이동규는 타임 한 개비를 피우고 있었다. 간신히 발견해낸 작은 수첩의 첫 장을 넘기면서 이동규는 오늘의 수확에 만족감을 표했다.
1/5
초기작 넘버 A0001은 성공적이다. 부수입도 짭짤하다. 왼쪽 신장을 떼어내 430만원을 챙겼고, 상부에서도 그 정도는 부수입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팔의 강도 실험에서 약 14배의 악력강화와 근력강화, 강도와 내성의 강화가 확인되었다.
1/9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오늘 B2108번이 도망치자, 1분도 되지 않아서 잡았다. 살해명령이 떨어지자 흰색 단도와 투척용 단검으로 200m거리에서 점점 거리를 좁혀가며 살해했다. 후에 책임자로서 감상을 물었지만 어린아이인지, 그것을 일 이외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 했다.
이동규는 갑자기 10월이 된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10/3
A0001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한지 약 100일이 지났다. 웃고 떠들지만 밤이 되어서 누군가를 살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그 송곳니를 드러내고 확실히 표적을 죽인다. 테스트를 위해 가장 꼭대기 층의 밀실에 사는 이 집안의 후계자를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결과, 성공.
4층의 창문을 주시하다가 표적이 고개를 내밀고 2초 정도가 지난 순간 즉시 오른팔을 강화시켜 단검을 던졌다. 3초가 지난 시점에서 정확히 이마를 관통해 사망.
10/5
후계자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래도 이 꼬마아이가 범인이라는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원래부터 안중에 없던 녀석이라 차라리 죽었다고 좋아하는 쪽이 훨씬 많다. 이 괴물을 잘 이용하면, 내 출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10/6
A0001이 B0201과 접촉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복부에 자상을 입었다. 신장이 없는 왼쪽이어서 다행이지 만일 오른쪽이었다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였다.
약간 충격이다. 온 몸을 완전히 강화시키고 뒤를 잡았건만 결과가 이 모양이다. 의외로 쓸모없는지도 모른다.
10/10
A0001은 수시로 B0201과 만나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눈빛도 정상이고 딱히 강화한 흔적도 없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더니, 설마 연애감정이라도 있는 건가?
최근에 총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딱히 가르칠 것이 없다. 오토매틱의 분해는 한번 알려주었더니 요령껏 후드득후드득 잘 분해해냈고 조립도 문제없다. fiveseven 권총이 잘 맞는 듯 하나 자신이 개조하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 내일은 베레타와 소콤을 가져다 둘 생각이다.
10/20
의외로 투척계열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딱히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단검을 던져서 10개중 8개가 정확히 꽂힌다. 직선으로 던지는 방법도 혼자 개발해낸 것 같다. 디딤발이 살짝 약하지만 그 부분만 고치면 내 적중률보다 더 우수하다. 더 웃긴 점은, 전혀 강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22
트러블 발생. A0001은 의외로 불안정한 타입인 듯하다. B0201과 마찰이 있었는데, 순간 미쳐버린 것인지 전투불능이 되어도 억지로 일어나서 공격, 결국 B0201의 경동맥을 베었으나 빠른 치료로 살아났다. 그 후로 2시간 동안 보이는 사람마다 공격해서 결국 묶어놓았다.
특징 - 충혈된 눈, 보통의 강화할 때 보다 더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 광소하는 입,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댄스'.
…….
이동규는 이 이상 읽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A0001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짐작 가는 바로는 정철진이 분명하겠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또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고, 지금 갈 수 있을 리도 없다. 읽어봐야 헛수고. 확실한 단서를 찾아서 정철진을 몰아넣지 않으면 도리어 이쪽이 당할 뿐이었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둔하게 들리고, 단검은 정철진을 위에서 내리찍는 괴물의 복부에 정확히 명중했다. 비틀거리던 괴물은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정철진은 냉정하게 방문을 들어 녀석에게 던지고, 단도가 두 개 확실히 박혔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방문을 녀석 쪽으로 밀었다.
너덜너덜해진 방문이었다. 계속 구멍이 나면서 나무조직들은 구멍이 없는 쪽으로 몰렸다. 물론 찌른 반대편으로 조직이 튀어나오지만, 단도의 모양대로 나무조직이 없어지고 그 곳에 구멍이 난 것이다. 몇 개의 조직은 떨어져 나가고, 몇 개의 조직은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서로 밀려서 압축되는 경우도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런 짓을 수십 번 반복한 방문의 나무조직 사이에 단도가 끼인 것이다. 쉽게 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달려! 부엌의 창문으로 나간다!"
숨을 몰아쉬는 정철진이 말했다. 등뼈에서 척수가 과로로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소리가 귀까지 들리고, 연골조직의 찌걱거리는 소리가 안쪽으로 들려왔다. 넘어졌어도 큰일이었다. 방문과 침대 사이에 허리가 끼인다. 그렇게 되면 아마 녀석은 분명 허리를 노려왔을 것이다. 정철진의 선택은 현명했다.
그리고 박보람과 심상민이 밖으로 나가고, 방문이 양쪽으로 잡아 뜯기는 소리가 났다. 정철진은 서둘러 가스 밸브의 양쪽을 뜯어놓았다. 부엌 바닥에 수건이 깔려있어서 약간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난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마음먹었다.
괴물은 정철진을 바로 뒤에서 쫒아가다가 생명을 위협하는 직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 너머에는 정철진의 종이를 꼽아서 가스가 계속 나오도록 조작된 라이터와, 그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마른 수건의 모습이 있었다. 그 라이터와 수건이 있는 곳은 레버가 돌려진 가스레인지의 위였다.
-----------------------------------------------------------------------
대략 간만.
기억하시는 분은 있어요?
* 현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5-19 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