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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01:35

고양이가 울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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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5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얼마정도 앞서가다가 나를 뒤돌아서 바라보고 다시 앞으로 가길 반복해대는 이상한 고양이다. 내가 모퉁이로 돌려고 하면 용캐 알아차리고 내 앞으로 달려나간다. 발소리를 그리 크게 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는건지 꽤 신기하다. 피시방이나 당구장에 연락처를 남기려고 들어가면 계단 앞에서 얌전히 '야옹'하고 울어준다. 내가 다시 올라오면 꼬리를 휘적거리면서 앉아있다가 나를 따라서 걷기 시작한다. 연비도 좋은건지 내가 밥을 먹기 전까지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사람들이 들고다니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가 라면이라도 사먹으려고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면 어느새 사라졌다가, 얼마남지 않은 면을 끄적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편의점의 유리를 긁고있다. 안아들려고 해도 거절하지 않고, 물지도 않는다. 단지 애정표현으로 뺨을 핥는 것 같은데, 뺨의 상처가 굉장히 쓰라리니까 그만뒀으면 한다. 그 외에는 나보다 더 쓸모있어 보이는 고양이다.

널려진 것이 시간이고, 없는 것은 돈과 일자리다.

이미 해가 떨어진지 오래다. 오전서부터 오후까지 쭉 돌아다녔다. 단란주점에서 유치원까지 문이 있는 곳이면 반사적으로 열고 들어가서 연락처를 남겼다. 화장실은 예외로 치더라도, 대략 50군데는 족히 다닌 것 같은데 연락이 없다. 핸드폰 설정이 잘못되어있는 것인지 확인해보려고 공중전화로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휴대폰은 잘 울렸다. 진동도 아니고 벨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면서.

부모들이 보낸 메일은 전부 스펨편지함에 들어있기에 보지도 않고 몽땅 다 삭제시켰다. 제목으로 보아 후회한다는 내용이 절반이고, 미안하다는 말이 절반이고, 예외적으로 하나는 좀 봐달라는 내용인 것 같았다. 알게뭐야.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내 사정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에 숨겨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친척들은 부모들이 해외로 도망친날 공항에 남겨져 있던 나를 잡으러 왔었고, 부모라는 작자들의 아는 사람들은 비행기의 목적지를 말하라고 협박했다. 솔직히 말해 한 달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심장이라도 빼내주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날 버렸다. 한 달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런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벼나지 않는다. 쓸데없는 메일이고, 쓸데없는 수고다.

혹시 빼먹은 곳이 있나, 해서 길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녔다. 중간에 한 편의점에서 교체시간인지 종업원이 나오다가 아는 척을 했다. 아직 일거리 없냐는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안 마디라도 해버리면 주저앉아 울 것 같아서 말은 할 수 없었다. 고양이도 내가 동요하는 것을 알았는지 잠시 멈춰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들어서 계속 걷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승리성공인력소'라는 엄청 수상해보이는 간판이 달린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았다. 그 주변의 가로등이 낡은 것인지 그 곳이 어두웠고, 꽤 먼 거리였기 때문에 정담할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낯익은 사람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위험해보이는 건물이어서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곳이었다.

그나저나 굉장한 작명센스다.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인력소... 라는 뜻일까.

저거... 아무리 봐도 조폭 사무실인 것 같은데.



핸드폰은 충전기를 꽂아서 책상위에 놓아두었다. 전화라던가 문자가 오면 딱딱한 책상 위에서 굉장히 시끄럽게 반응하니까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맨 땅바닥에 별로 푹신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러다가 곧 등이 아파서 이불의 반은 깔고 반은 덮는 형식으로 침낭 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나 힘들게 걸어다녔으니까 잠이 솔솔 와야 할 것 같지만, 눈이 아플 정도로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은 오전 1시. 평소에 지금까지 깨어있으면 이유없이 필통을 던져서 그 안에 든 물건들을 다 박살내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지금은 착 가라앉아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있다. 앞일은 알수도 없고, 이런 생활을 시작한지 한 주도 되지 않아서 적응되지도 않았고, 여기에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안정되어있다.

고양이는 졸린지 계속 부스럭대는 나에 맞춰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끝내 내 얼굴의 상처를 핥았다. 잠깐 잠이 들 뻔 했는데 확 깨버렸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올리려다가 이 고양이마저 가버리면 진짜 혼자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나는 젼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고, 그 말은 즉 다음달이 되면 방에서 쫓겨나거나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디에선가 여유가 생긴 것인지 마음이 가라앉아서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나쁜 일이라면 그 원인이 사태를 해결하는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찾아봐야겠지만, 이건 오히려 좋은 일이니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20대를 생각했다. 날짜를 세다보니 시간이 연상되었고, 일단 10대는 거의 다 지나갔으니 20대가 생각난 것 같았다.

20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결혼한다... 는 것은 이미 고양이가 형광등을 씹어먹는 소리인 것 같다. 아마 간신히 일자리를 찾거나 합법적으로 단란주점에서 일할 것 같았다.

30대에는 잘 된다면 룸살롱에서 돈 많은 재벌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낳고 60까지 살 것 같다.

참 단조로운 인생이다. 눈물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인생이다.

꿈이 있었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픽션이든 논 픽션이든 좋으니까 그것들을 읽는 것과 관련된 직업이면 뭐든 좋았다. 어시스턴트도 좋을 것 같았고, 편집가도 좋을 것 같았고, 비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논평가는 다른 사람의 것을 깎아내린다는 점에서는 싫지만 많은 것들을 읽어볼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았고, 문장교열가도 맞춤법은 제대로 배워놨으니까 좋을 것 같았다.

그것도 이제 과거형이다. 내 학력은 중졸로 끝이다. 고등학교 중퇴라니, 무슨 80년대 공순이도 아니고.

우울하다기보다 어이가 없다. 열심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만큼은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이 어이없다.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내가 아직 자고있지 않은 것이 신기한지 잠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힘내라는 듯이 방긋 웃으면서 내 오른손을 핥아주었다. 사람의 말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이해할 줄 아는 고양이인 것 같았다.

만일 내가 아이를 낳게된다면,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면 나는 절대로 돈때문에 추락하는 인생을 살게 하지 않을거야.

그렇게 다짐했다. 아마... 아이는 고사하고 결혼도 연애도 해보지 못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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