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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8.06.16 04:50

비명

Rha
조회 수 2869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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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연 잿빛 물방울들의 집합체 아래 빼곡히 이름 모를
초록색의 식물들이 그 고고함으로 하늘마저 가를 듯 높게 자라나있다.
틈새라고는 그네들끼리의 가지들이 서로를 해하지 않을
최소한의 너비만큼일 뿐이다.

기둥마저 청아한 초록빛으로 뒤덮인 이곳은 그야말로 초록의 나라.



아아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마저도 이토록 초록색이구나,
분명 성대뿐 아니라 깃털, 부리, 눈알 모조리 초록색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만한다.

초록이 아니라면 초록뿐인 초록의 세계에
초록색의 것들이 살아가게 했을 리 만무하다.

초록이 아닌 것들은 의미도 없고, 위험할 뿐이니까.



그저 평화로운 숲에 위화감만을 안겨줄-.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초록의 목소리로 초록을 노래하는 초록의 새를 만끽하고 싶었다.
이미 온몸은 상상이 실제한다는 현실에 맞았을 때의
아찔함을 느끼고 있었다.



초록 초록 초록 초록 초록

아 이 얼마나 신비한 숲이로고.
행복에 젖은 동공이 감히 햇빛을 직시할만큼 정면으로 하늘을 마주하자
그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아아,

저것은…….











줍고 버리기의 연속 .



하늘에 ,

바다에 ,

땅에 .





떨어져나간 깃털들이 무수히 추락한다 -

아아 새들은 사라져가노니

어린 아기새들은 사냥꾼의 엽총에 맞아 찢긴 날개와 함께 타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부디 성불하소서 , 그래 .





비록 인간처럼 말도 못하고

지능도 없는 하찮은 미물이거늘

그래도 생명이건데 묘라도 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석에는 핏덩이 미물의 이름없는 비명(悲命)이라고 새기자,

바람이 동서로 흐를 때엔

언젠가 지어미가 슬피 울며 새끼의 유골을 찾지 않겠는가



바들바들 떨리는 부리는 선혈이 낭자해질 때까지 땅을 파헤쳐

양팔이 잘린 아이의 뼈다귀를 찾을 게다

먼 훗날 형태조차 미묘한 그 유골을 부리는 한웅큼 물어들고

어린새끼가 추락한 그 나락으로 뿌려대리라



만감이 교차한 어미새의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아름답더라



사계가 지나고

만년의 세월을 파묻고

억겁이 흐른 뒤에도



이 몸은 그대의 유골을 뿌리리라

삭고 삭아 백골이 진토되는 한이 있더라도

썩은 육신으로서

죽은 영혼으로서

그대의 유골을 만우주에 뿌리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보리수 아래 해탈한 그대가

이내 양날개를 얻어 다시 손을 뻗어줄 때

그때야말로



이 몸은 더 이상 여한이 없으리라 .





- 비명(砒鳴) -







그는  비명(砒鳴)에 비명(非命)하야 비명(碑名)에 비명(悲銘)을 새겼지 .

죽어서도 초록이 되지 못한 하얀 유골의 파랑새를 위해 기도하며,
어쩌면 이것은 그저 먼얘기가 아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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