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이 지난 후 남자의 일상은 언제나와 같이 별다름 없는 하루하루.
고백은 이미 가슴속 뒤로 넘긴체 그녀의 생일조차 잊어버려 이틀후에 전화하는 일상의 연속.
‘바뀐 것 하나 없구나.’
가슴속 속이려해도 할 수 없는 것. 이젠 이미 그녀를 남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냉담한 생일 축하와 그것에 대한 답이 넘겨지고 난 후, 남자의 손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었던 전화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나야, 너 지금 시간있어? 뭐하니?
-에? 뭐야? 연락 한동안 없던사람이 갑자기 뭘 물어보는거래?
-가고 싶은곳 있어서. 혼자 가기는 그렇고 그래서 그런다 시간 나?
-어? 어, 뭐 남친은 일나가니까. 시간 남아.
-아, 그래? 그럼 금방 나갈게 도심 광장에서 만나.
전화를 받았던 여자는 이제 남자와 만난지 8년째, 솔직히 처음 2년 후로는 연락도 뜸했지만 어떻게 아직도 연락이 되는 그런 친구다.
도심의 차들을 지나 밝디 밝은 햇살을 가르며 달린다.
추한곳을 가리지 않는, 가릴 수 없게 만드는 밝음.
‘내 가슴도 이런 빛이 들어 온다면…’
친구를 만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난 후,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계산적으로 이해타산을 따진다.
서로 감정은 있다. 좋아하기도 한다. 커다란 필요나 그런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허락하거나 그런것도 아니지만. 그냥 서로를 비교한다.
“나는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해.”
“그래, 하지만 여기서 그런 사람 찾기는 힘들걸?”
“그렇겠지… 그래서 시간은 많이 잡고 있어.”
시외로 달리는 차안에서 건성적인 표정으로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나와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 나 늙었다고… 이제 시간때우는 것 같은 사람은 만나기 힘들어”
“그래서 지금 남자친구는?”
“… 하, 큰 기대는 안하고 있어. 연하인데다가, 어디로 가려고 하기도 하니… 롱디는 힘들거든.”
“그런데 왜 지금 있는거야?”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 말한다
“뭐 그렇다고 서로 다른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제제를 가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지금은 이보다 나은게 없으니 사귀는 거랄까. 그쪽에서 죽어라 하니까 그런거지.”
“하, 관계중이면서 계속 업그레이드를 찾는 그거군.”
“그렇지 뭐.”
여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 남녀간의 평범한 대화와는 거리가 있는 이 대화는 아마 처음 만났을때 수많이 보낸 이 두 남녀의 시간때문일 것이다. 잠자리만 같이 하지 않았다 뿐이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며 보냈던 두명의 시간. 그리고 여자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며 비워왔던 술병들 때문에 이런 대화가 가능한 것일 것이다.
남자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기쁨과 착찹함이 섞인 이상한 표정. 자신의 가슴의 조각을 아직 가지고 있는 이 여자가 아직 만족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의 기쁨과… 자신은 전혀 이 여자와 함께 할 생각이 없다는 것에 대한 착찹함.
시외 행사장에 도착한 두명은 차에서 내려 천천히 시끄러운 그러나 즐거운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걸음한다.
“아, 처음이야 여기. 티비로만 보고 와본건 정말… 생각보다 다른데?”
“… 무슨 소리야. 아직 어디가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데? 여기 맞아? 파크가 왜이렇게 커.”
“그, 그런가?”
한참을 돌아다닌 후 입속 가득 고기를 집어넣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는 말한다.
“너 헤어진지 1년이지?”
“…음.”
얼마전 고백한 사건을 알 리가 없는 여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래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간거 신기하지 않아? 그래서 이제 감정은 정리가 다 됬어?”
“어, 뭐 일단은. 시간도 지났으니 말이지.”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거짓말 이었던가?’ 이젠 어느 것이 진실인지 남자 자신도 알 수 없게 됬다.
“아직도 만나고 연락을 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 특이하네. 아, 친구들이 같아서 그런거야? 친구 생일때 만난다든지.”
“아니, 둘이서만 만나. 데이트는 아니고… 그냥 데이트 같이.”
“아직도 감정이 있는거야?”
“아니, 서로 좋게 정리하려고 해서 이렇게 끝낸건데…. 감정이 있든 없든 상관 없어. 서로에게 나은게 이것 밖에 없는걸.”
“감정 있는거야?”
“…아니, 없어.”
“흐으음.”
여자는 남자를 수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그리고 한참을 쳐다본 후, 말한다.
“연락 하지 않는게 좋을걸?”
“음? 왜?”
“…이상하잖아 헤어졌는데 데이트라니.”
“그래 이상하지.”
남자는 여자에게서 삐져나온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못느낀체 흘려버린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헤어진 것이니. 1년이라는 시간을 지켜내었으니…’
그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던 그들은 위험한 놀이 기구를 타려고 여자가 치마를 거리에서 벗어던지는 자그마한 이벤트, 안에 입었던 핫팬츠가 아니였다면 커다란 이벤트였을 것을 뒤로한 체 집으로 향했다.
-딩동~ 딩동
[집으로 갈게]
그 후 몇일뒤 남자는 한 조그마한 여자와 함께 집을 나선다. 키가 작고 볼륨도 없기에 어린애같이 볼품 없는 몸매를 가진 여자는 어처구니 없게도 선정적이기를 바라는 듯한 도발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
“두껍게 입고오라고 했잖아. 비올 수도 있다고.”
“그래서 잠바 들고 왔잖아!”
남자는 여자에게 퉁명스러운 말을 던진다. 여자에게 보내는 눈빛으로 보아하건데 여자의 선정적이기를 바라는 옷은 남자에게는 10살짜리의 비키니보다도 더욱 형편없게 비춰지는 것 같다.
“그래 알았다 춥다고 나중에 나보고 뭐라고 하지 말아.”
이 말을 뒤로 남자는 여자와 함께 밖으로 걸어나왔다.
“여기서 버스타고 계속 가는거야?”
“아, 중간에 친구만나서 같이 갈거야.”
“그럼 우리 세명이야?”
“어, 친구놈 한놈 안오면 아마 세명이 될거 같아.”
도시 중심에서 만난 친구는 다름아닌 직설적인 핫팬츠. 하지만 차려입고 온 핫팬츠의 볼륨이나 얼굴은 10살 비키니와는 충분히 다른 무엇인가를 발산한다.
배고프다는 남자의 말로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난, 매더태리안 햄버거랑 슈퍼 프렌치 토스트.”
“응? 프렌치 토스트까지? 많지 않아?”
핫팬츠가 말한다.
“단거 좋아하니까. 탄수화물은 배가 잘 안차서 괜찮을거야.”
내 대답에 10살 비키니가 자신의 매뉴를 부른다.
“나는…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타이식 닭요리로 할래.”
“음….. 그러면 나는 파스타랑 네가 먹는 프렌치 토스트 뺏어먹을거야.”
“어, 뭐 그래라.”
담담하게 핫팬츠의 말을 받는 남자의 말에 10살 비키니의 얼굴 표정이 이상해진다.
‘아, 이런 감정이 상하려나?.’
하지만 남자의 결정은 곧 궅혀졌다. 비키니보다는 핫팬츠와의 우정과 보낸 시간이 더욱더 소중하다는 결론으로. 물론 핫팬츠가 더욱 매력적이다 라는것도 커다란 작용을 했다.
“와! 이거 정말 맛있다.”
자신의 앞에 프렌치 토스트 접시를 아주 가져다 놓고 먹는 핫팬츠에 비키니의 표정이 더욱 구겨진다.
“라라, 너는 내가 네가 마시는 컵에 손만대도 안마시잖아. 비위생적이라면서.”
나름대로 프렌치 토스트를 권하지도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는 남자에게 비키니, 아니 라라는 대답한다.
“이젠 아니야! 나는 너를 이제 받아들일 준비가 됬단 말이야!”
“…….”
이상하게 흘러간 대화는 벙찐 핫팬츠가 라라에게 남자의 프렌치 토스트를 마치 자기것 주는 것 같이 줌으로 끝이 났다. 물론 프렌치 토스트의 계산은 남자의 몫이였지만 말이다.
바닷가,
작은 비치타울을 깔고 뒤에 모래로 등받침을 만든 남자와 핫팬츠는 남자의 가방을 배게삼아 배고는 천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불편할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지만 별다른 거부감은 없다.
“비가 올것 같네.”
“응.
“라라는 어디있데?”
“공중 화장실에 사람 많을거야 지금 시간.”
-툭
빗방울 하나가 핫팬츠의 얼굴위로 떨어진다.
“어? 비온다”
“아… 이런, 일단은 버텨봐. 우산 가져 왔으니까.”
남자는 커다란 우산을 펴고 또 준비성 없는 핫팬츠를 위해 가져온 점퍼를 핫팬츠에게 건낸다.
“자, 이럴거 같아서 들고왔다 춥잖아.”
“어!? 고마워! 역시 준비성!”
꽤나 물기있는 바람에 추웠던지 핫팬츠는 냉큼 점퍼를 받아 입는다. 그에 남자의 입에 작은 웃음이 피어났지만 그건 핫팬츠의 커다란 미소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아, 미안 저기 줄이 너무 길었어.”
비좁은 비치타울 옆으로 끼워 들어오는 라라는 냉큼 핫팬츠 옆에 앉는다.
“아, 피곤하다 저 줄…”
“금방 시작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발라당 누워버린 라라를 보며 남자가 말한다.
-투캉- 펑!
대포의 발포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림에 주변 모든사람들의 눈은 하늘로 향한다.
“와… 나 이렇게 예쁜폭죽은 처음봐.”
“그렇게 예쁜건 아닌데…”
다시 누워서 중얼거리는 핫팬츠의 말에 남자가 대답한다.
“응, 그렇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건 처음인걸, 폭죽이 터질때마다 가슴이 울려.”
“아, 좋다니 다행이네… -투캉- 펑! - 와! 저건 크다.”
“아, 난 저거! 저게 제일 좋아.”
“어, 그래도 다행이네 보여주려고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어서.”
나란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와 핫팬츠 그리고 핫팬츠 옆에서 같이 올려다 보는 라라. 폭죽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담아서 이야기하는 남자와 핫팬츠와는 달리 폭죽이 끝날때 까지 별다른 말이 없는 라라. 하지만 오래간만에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남자와 핫팬츠는 그것에 상관없이 가깝게 붙어 폭죽을 즐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