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193년 9월 8일
메이 뉴에즈는 제국의 21번 째 섬, 조호란의 무사 집안의 넷 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들이 태어난 목적이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이라 믿는 부족의, 그리고 자신들이
자식을 낳는 목적이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이라 믿는 부모들 사이에서 태어난 덕분
에 딱딱한 것을 씹을 수 있을 무렵부터 검을 휘두르는 것을 배웠다.
휙! 휙!
나이가 들어 목검으로 자신의 팔뚝만한 나무를 꺾어낼 수가 되자 화약과 총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탕! 탕!
사격술은 날로 발전했다. 14세 정도가 되자 100미터 떨어진 곳의 원반을 맞출 정도의
실력이 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같은 거리에서 좀 커다란 동전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가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끼며 방황을 시작하던 때였다 (쉽게 말해 사춘기였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섬에 요양 차 온 늙은 역사학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은 그의 부모가 가장 슬퍼하며 저주하는 날임과 동시에 메이가 생의 목표를 새로 정한
날이었다.
그는 세로제라는 역사학자로부터 하늘 섬의 전설, 그리고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고대
문명의 잔재들에 대해 들은 메이는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자신을 말리는 아버지와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언쟁과 폭력 끝에 류오스로의 유학 길에 오른다. (한 편 그의 아버지
는 세로제라는 학자를 암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그는 이미 자연사한 뒤였다는 말
이 있다.)
메이는 약 반 년에 걸쳐서 필기시험을 준비한 끝에 겨우겨우 류오스의 국립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실 고고학 쪽은 하나텔 대학이 최고였지만 사립
인 하나텔 대학의 학비는 그의 경제수준으로는 힘들었다.
유학 생활은 편했지만 고달팠다. 편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는 것이고, 고달팠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잠자고 먹고 생리현
상을 해결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수행으로 보낸 그로서는 그 시간에 책을
보고 공부한다는 것이 지옥과도 다름 없었다. 때문에 필기 쪽은 평균보다 아래였지만 실
기 쪽은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어차피 연구 쪽이 아닌 현장을 뛸 생각이었기에 큰 걱
정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나이 19세였던 3학년 때, 류오스 동쪽의 폐광에서 새로운 유적을 찾은 공로
덕에 학계에서 꽤 유망주로 손 꼽히기도 했고, 덕분에 방학 때는 이런저런 일도 맡아서
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로힌이었다. 같은 대학이었지만 고대생물학을 전공했기에 만날 일이
없었던 두 사람은 성격 때문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메이는 편한 동네 형 같은 로
힌을 마치 형처럼 따랐고, 로힌 역시 단순하고 약간은 폭력적이지만 언제나 밝고 마음의
중심이 잡힌 메이를 좋아했다.
덕분에 메이는 로힌의 도움으로 (물론 약간의 편법이 존재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로힌 역시
공부와 연구를 더 하기 위한 논문 준비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발굴이 된 유적들을 공부하는 것은 그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작
정 새로운 발굴 작업을 하기엔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위치는 알지
만 아직 발굴이 시작되지 않은 곳들과, 이런 저런 사정 상 작업을 못하고 있는 지역들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런 것이죠.”
“……당신의 학구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주 잠깐 뜸을 들인 시봇 교수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좋습니다.”
“…….”
“……뭡니까, 그 손은?”
“도서관 반납 기간에 착오가 좀 있더군요.”
큰 소리 내고 싶지 않으면 돌려달라는 정중한 협박에 메이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책을 시봇에게 넘겼다. 책을 받아 들고, 그 안의 지도까지 확인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어두웠다.
“……또 뭡니까, 그 손은?”
“사본도. 이렇게 순순히 내놓는 것을 보니 사본도 만들었겠군요.”
“설마요? 사본까지 만들 시간도 없었습니다.”
“……불법 침입은 영창 1개월에 당분간 탐험도 제한될…….”
“알았어요! 아 진짜, 좀 봐주면 안돼요?”
메이는 품 속에 넣어둔 종이 쪽지를 책상 위에 던지며 볼멘 소리로 말했다.
“아니, 자유민주국에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지도 못한다면, 그리고 학문에 제한
을 둔다면, 이 나라의 발전은 누가 책임 집니까?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들이 사회에
서 적응을 못하고 사회의 어두운 쪽으로 빠지고, 정의를 사랑했던 순수했던 마음이
부패와 자기만족으로 얼룩지고 더러워지는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보시죠!”
어떻게 들으면 감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열변이었지만 시봇의 표정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었다.
“제가 알기론 메이 군은 유학생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호란 섬의 무사 집안 출
신에, 24세. 류오스 국립대학 졸업. 거기에 개인적으로 맡은 일들이 대부분 떳떳
하지 못…….”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
메이는 포기했다는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죠?”
메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봇의 눈빛에 오한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네사 시봇. 고고학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 엄청난 정보망으로 이미
자신과 로힌에 관한 것은 손바닥 보듯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현
대 고고학계의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상기하
자, 새삼스럽게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존재감이 크게 보였다.
무엇보다 이 곳은 하이텔 대학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권력을 가진 그녀의 방이다.
웬만큼 사는 가정집의 거실 같은 교수실의 한 쪽 벽은 각종 고서와 책들로 빽빽했
고, 다른 벽엔 각종 학위와 여러 가지 일에 기여했다는 표시인 훈장들도 있었다.
아직 40을 넘지 않은 나이에 비하면 대단한 업적들이었다. 메이는 어째서 자신의
앞에 앉은 여인이 아직 젊은 나이에 차기 학장 후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지 알 것
만 같았다. 시봇 교수가 짧은 금발을 귀 뒤로 살짝 넘기며 말했다.
“책 빌리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소설 쪽에 관심 있으면.”
“……에?”
“요즘 환상 소설이 재미있더군요. 저 쪽에, 백과 사전 껍데기 벗기면 있어요. ”
시봇은 책상 서랍에서 담배와 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파이프에 담배를 담으며
말했다.
“펴도 되죠?”
“아, 예……뭐.”
“이런 거 잘 못 보나요? 하긴 요즘엔 종이에 말아 피는 게 대세니.”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메이는 자신이 알고 있던 시봇 교수의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담배는 건강에 안 좋습니다만…….”
시봇은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한 번 뿜고 나서 대답했다.
“남이사. 나한테 관심 있나? 갑작스러운 관심은 사랑의 시작이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이……용건이 뭐냐고요!”
시봇은 킥킥거리며 말했다.
“성격 한 번 급하네. 좋아, 그럼 일 이야기부터 해볼까?”
그녀가 재떨이에 담뱃대를 올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유적 한 곳만 털어줘.”
“……에?”
아주 잠깐, 정적이 방 안을 맴돌았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로힌이었다. 그는 책
상에 팔꿈치를 짚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짐짓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저기, 교수님. 사람을 잘 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저흰 도굴꾼이 아닙니다만…….
만약 실수를 하신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하시는 게 아닙
니다.”
그의 말에 시봇은 답답하다는 듯이 파이프를 들며 메이를 돌아보며 설명을 부탁한
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메이 역시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유적을 털어달라는 말은 이쪽 세계의 은어야. 쉽게 말하자면, 소유권은
있지만 발굴이 되지 않은 곳 하나를 비밀리에 조사해 달라는 말이지. 뭐, 네 분야가
아니니 오해할 만도 해. 사실 합법적인 일도 아니고…….”
그의 말이 끝나자 시봇 교수가 박수를 몇 번 쳤다.
“역시 전문가의 설명이군. 이젠 거래가 쉽겠지?”
“이봐, 전문가라니요? 순진한 탐험가에게 그런 말은…….”
“턴 유적만 17곳, 그 중 정부 권한을 가진 곳은 9곳. 이거 영창만으로 끝나진 않겠는데?”
“……말씀만 하십시오, 누님.”
“좋아.”
시봇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할버트 재단과 나의 관계를 대충 알고 있지?”
메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할버트 재단. 전 세계에서 발견된 유적, 유물의 85 퍼센트를 소유. 하지만
비공식적 기록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라 추정됨. 아네사 시봇 교수. 전 세계
에서 발견된 유적, 유물의 85 퍼센트와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모든 것들을 알고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할버트 라는 집안을 유적에 쳐 박고 폭발시켜 버리고 싶은 사람.”
시봇이 토를 달자 메이와 로힌은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정상적인 여자는 아니었어. 하지만 시봇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뭐, 대충 상황은 알고 있네. 그러면 우선 보수부터 이야기 하는 게 편하겠군.”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와 같은 미소를 짓는 그녀 앞에 메이와 로힌은 음식을 훔쳐
먹다 잡힌 한 쌍의 쥐들처럼 떨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저 여자는 언제부터 우리한테 말을 놓은 거지?
하지만 말할 타이밍을 놓친 그의 절규는 그의 마음 속에서 메아리 칠 뿐이었다.
++++++++++++++++++++++
아 다음주부터 시험이군요.
이럴 줄 알고 미리 비축을 꽉꽉 했다는...훗...
...아
메이 뉴에즈는 제국의 21번 째 섬, 조호란의 무사 집안의 넷 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들이 태어난 목적이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이라 믿는 부족의, 그리고 자신들이
자식을 낳는 목적이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이라 믿는 부모들 사이에서 태어난 덕분
에 딱딱한 것을 씹을 수 있을 무렵부터 검을 휘두르는 것을 배웠다.
휙! 휙!
나이가 들어 목검으로 자신의 팔뚝만한 나무를 꺾어낼 수가 되자 화약과 총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탕! 탕!
사격술은 날로 발전했다. 14세 정도가 되자 100미터 떨어진 곳의 원반을 맞출 정도의
실력이 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같은 거리에서 좀 커다란 동전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가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끼며 방황을 시작하던 때였다 (쉽게 말해 사춘기였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섬에 요양 차 온 늙은 역사학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은 그의 부모가 가장 슬퍼하며 저주하는 날임과 동시에 메이가 생의 목표를 새로 정한
날이었다.
그는 세로제라는 역사학자로부터 하늘 섬의 전설, 그리고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고대
문명의 잔재들에 대해 들은 메이는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자신을 말리는 아버지와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언쟁과 폭력 끝에 류오스로의 유학 길에 오른다. (한 편 그의 아버지
는 세로제라는 학자를 암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그는 이미 자연사한 뒤였다는 말
이 있다.)
메이는 약 반 년에 걸쳐서 필기시험을 준비한 끝에 겨우겨우 류오스의 국립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실 고고학 쪽은 하나텔 대학이 최고였지만 사립
인 하나텔 대학의 학비는 그의 경제수준으로는 힘들었다.
유학 생활은 편했지만 고달팠다. 편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는 것이고, 고달팠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잠자고 먹고 생리현
상을 해결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수행으로 보낸 그로서는 그 시간에 책을
보고 공부한다는 것이 지옥과도 다름 없었다. 때문에 필기 쪽은 평균보다 아래였지만 실
기 쪽은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어차피 연구 쪽이 아닌 현장을 뛸 생각이었기에 큰 걱
정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나이 19세였던 3학년 때, 류오스 동쪽의 폐광에서 새로운 유적을 찾은 공로
덕에 학계에서 꽤 유망주로 손 꼽히기도 했고, 덕분에 방학 때는 이런저런 일도 맡아서
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로힌이었다. 같은 대학이었지만 고대생물학을 전공했기에 만날 일이
없었던 두 사람은 성격 때문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메이는 편한 동네 형 같은 로
힌을 마치 형처럼 따랐고, 로힌 역시 단순하고 약간은 폭력적이지만 언제나 밝고 마음의
중심이 잡힌 메이를 좋아했다.
덕분에 메이는 로힌의 도움으로 (물론 약간의 편법이 존재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로힌 역시
공부와 연구를 더 하기 위한 논문 준비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발굴이 된 유적들을 공부하는 것은 그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작
정 새로운 발굴 작업을 하기엔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위치는 알지
만 아직 발굴이 시작되지 않은 곳들과, 이런 저런 사정 상 작업을 못하고 있는 지역들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런 것이죠.”
“……당신의 학구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주 잠깐 뜸을 들인 시봇 교수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좋습니다.”
“…….”
“……뭡니까, 그 손은?”
“도서관 반납 기간에 착오가 좀 있더군요.”
큰 소리 내고 싶지 않으면 돌려달라는 정중한 협박에 메이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책을 시봇에게 넘겼다. 책을 받아 들고, 그 안의 지도까지 확인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어두웠다.
“……또 뭡니까, 그 손은?”
“사본도. 이렇게 순순히 내놓는 것을 보니 사본도 만들었겠군요.”
“설마요? 사본까지 만들 시간도 없었습니다.”
“……불법 침입은 영창 1개월에 당분간 탐험도 제한될…….”
“알았어요! 아 진짜, 좀 봐주면 안돼요?”
메이는 품 속에 넣어둔 종이 쪽지를 책상 위에 던지며 볼멘 소리로 말했다.
“아니, 자유민주국에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지도 못한다면, 그리고 학문에 제한
을 둔다면, 이 나라의 발전은 누가 책임 집니까?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들이 사회에
서 적응을 못하고 사회의 어두운 쪽으로 빠지고, 정의를 사랑했던 순수했던 마음이
부패와 자기만족으로 얼룩지고 더러워지는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보시죠!”
어떻게 들으면 감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열변이었지만 시봇의 표정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었다.
“제가 알기론 메이 군은 유학생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호란 섬의 무사 집안 출
신에, 24세. 류오스 국립대학 졸업. 거기에 개인적으로 맡은 일들이 대부분 떳떳
하지 못…….”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
메이는 포기했다는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죠?”
메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봇의 눈빛에 오한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네사 시봇. 고고학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 엄청난 정보망으로 이미
자신과 로힌에 관한 것은 손바닥 보듯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현
대 고고학계의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상기하
자, 새삼스럽게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존재감이 크게 보였다.
무엇보다 이 곳은 하이텔 대학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권력을 가진 그녀의 방이다.
웬만큼 사는 가정집의 거실 같은 교수실의 한 쪽 벽은 각종 고서와 책들로 빽빽했
고, 다른 벽엔 각종 학위와 여러 가지 일에 기여했다는 표시인 훈장들도 있었다.
아직 40을 넘지 않은 나이에 비하면 대단한 업적들이었다. 메이는 어째서 자신의
앞에 앉은 여인이 아직 젊은 나이에 차기 학장 후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지 알 것
만 같았다. 시봇 교수가 짧은 금발을 귀 뒤로 살짝 넘기며 말했다.
“책 빌리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소설 쪽에 관심 있으면.”
“……에?”
“요즘 환상 소설이 재미있더군요. 저 쪽에, 백과 사전 껍데기 벗기면 있어요. ”
시봇은 책상 서랍에서 담배와 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파이프에 담배를 담으며
말했다.
“펴도 되죠?”
“아, 예……뭐.”
“이런 거 잘 못 보나요? 하긴 요즘엔 종이에 말아 피는 게 대세니.”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메이는 자신이 알고 있던 시봇 교수의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담배는 건강에 안 좋습니다만…….”
시봇은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한 번 뿜고 나서 대답했다.
“남이사. 나한테 관심 있나? 갑작스러운 관심은 사랑의 시작이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이……용건이 뭐냐고요!”
시봇은 킥킥거리며 말했다.
“성격 한 번 급하네. 좋아, 그럼 일 이야기부터 해볼까?”
그녀가 재떨이에 담뱃대를 올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유적 한 곳만 털어줘.”
“……에?”
아주 잠깐, 정적이 방 안을 맴돌았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로힌이었다. 그는 책
상에 팔꿈치를 짚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짐짓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저기, 교수님. 사람을 잘 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저흰 도굴꾼이 아닙니다만…….
만약 실수를 하신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하시는 게 아닙
니다.”
그의 말에 시봇은 답답하다는 듯이 파이프를 들며 메이를 돌아보며 설명을 부탁한
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메이 역시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유적을 털어달라는 말은 이쪽 세계의 은어야. 쉽게 말하자면, 소유권은
있지만 발굴이 되지 않은 곳 하나를 비밀리에 조사해 달라는 말이지. 뭐, 네 분야가
아니니 오해할 만도 해. 사실 합법적인 일도 아니고…….”
그의 말이 끝나자 시봇 교수가 박수를 몇 번 쳤다.
“역시 전문가의 설명이군. 이젠 거래가 쉽겠지?”
“이봐, 전문가라니요? 순진한 탐험가에게 그런 말은…….”
“턴 유적만 17곳, 그 중 정부 권한을 가진 곳은 9곳. 이거 영창만으로 끝나진 않겠는데?”
“……말씀만 하십시오, 누님.”
“좋아.”
시봇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할버트 재단과 나의 관계를 대충 알고 있지?”
메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할버트 재단. 전 세계에서 발견된 유적, 유물의 85 퍼센트를 소유. 하지만
비공식적 기록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라 추정됨. 아네사 시봇 교수. 전 세계
에서 발견된 유적, 유물의 85 퍼센트와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모든 것들을 알고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할버트 라는 집안을 유적에 쳐 박고 폭발시켜 버리고 싶은 사람.”
시봇이 토를 달자 메이와 로힌은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정상적인 여자는 아니었어. 하지만 시봇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뭐, 대충 상황은 알고 있네. 그러면 우선 보수부터 이야기 하는 게 편하겠군.”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와 같은 미소를 짓는 그녀 앞에 메이와 로힌은 음식을 훔쳐
먹다 잡힌 한 쌍의 쥐들처럼 떨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저 여자는 언제부터 우리한테 말을 놓은 거지?
하지만 말할 타이밍을 놓친 그의 절규는 그의 마음 속에서 메아리 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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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음주부터 시험이군요.
이럴 줄 알고 미리 비축을 꽉꽉 했다는...훗...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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