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모스와 네플레어는 늦은 새벽, 모든 준비를 마치고는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외지로 가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될 정도의 일은 전혀 아니었다.
네플레어는 원래 부모님을 어릴 때 잃고서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소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구모스의 경우는 마을에 저주를 내리는 듯이 이상한 기운을 풍기던 광인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축하를 할 일이었고 말이다.
단지 마지막 떠나는 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격 따위를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깨우지 않고 샛길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었어요?"
막무가내로 질문 공세를 날리는 이 네플레어라는 소녀가 아구모스와 친분을 쌓게 된 것은 자신 처럼 혼자인 쓸쓸한 처지의 그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가 그에게 끊임 없이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도, 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였다.
아구모스는 아무 생각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난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지. 10년간 참 많은 곳을 휘젓고 다녔어. 내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구……"
"여행자요? 아저씨 나이가 이제 갓 서른 다섯 정도 되지 않았어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곳을 다닌 거에요?"
"모든 사람이 가지 않는 땅, 개척되지 않은 대륙을 제외한 모든 땅덩어리는 다 다녀봤어."
소녀는 잠시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아마도 딱히 말할 주제가 생각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 5분쯤 정적이 흘렀다. 소녀는 아저씨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이 조금은 섭섭했다.
"아저씨!"
갑작스레 소리를 꽥 지르는 소녀에 놀란 것인지, 아구모스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저씨 하고 부르기는 했지만 소녀는 딱히 할 말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네플레어는 대충 아무 말이나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그럼, 그 여행……왜 한 거에요? 세계를 떠도는 것은 힘든 일이잖아요?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열차를 타고 했을 지 모르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거렁뱅이였다면 걸어 다녀야 했을 테고……그 힘든 길을 왜 선택한 거죠?"
아구모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다시 회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소녀에 의해 떠오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사람이라는 게, 다 비밀이 있기 마련이잖니?"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잖아요?"
그러나 이번에는 아구모스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상당히 무거운 표정을 하고서는, 길바닥에 주울 만한 보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터벅터벅 발걸음만 이어나갔다.
네플레어도 그 모습에 압도되어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침묵이 한참 동안 자리를 잡았다. 여명이 다가올 쯤의 어스름한 푸른 새벽이 될 때까지.
한편, 그곳으로부터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엠베르카의 수도 디하튼의 군부(軍部)의 회의장에서는 두 형제의 대화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호크아이(Hawk Eye)'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믿을 수가 없군요."
작게는 엠베르카라는 나라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반국가세력에 포함되기도 하며 크게는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목숨을 거두어간 금세기 최고의 총잡이.
그는 오직 홀로 활동하며, 자신에게 의뢰를 한 자에게 거액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 돈은 금세 써버려서 언제나 가난한 생활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도대체 그 녀석이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는 거지!"
엠베르카 군부의 장관 쥐라트 큘긴(Zuirate Kuelghin)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 그가 '호크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후 처음으로 보여준 감정적인 태도였다.
"10년 전에 르티아 산맥의 자원들을 팔아 넘기려고 했다가 국외로 달아난 '호크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벌써 5년 전에 그 신출귀몰한 행적이 잦아든 이후로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니, 전혀 금시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부의 차관이자 쥐라트의 친동생인 사토프 큘긴(Satoph Kuelghin)이 그를 진정시켰다. 그는 그의 형과는 달리 '호크아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보다 강한 회의를 품고 있었다.
"나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물론 그가 다시 사람을 사냥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목격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
"정보요……? 누구에게서 받은 정보를 말씀하시는 거죠?"
장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생각엔 누구일 거 같은데?"
사토프는 약간은 불안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설마, '올빼미(Owl)'가 정보를 전해준 건가요?"
"그래. 며칠 전에 그가 나에게 서신을 보냈거든. 이게 그 편지다."
쥐라트는 바지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구겨 넣은 그것을 펼쳐 보였다. 편지의 가장 아래 부분에는 역시나 '올빼미'가 보냈다는 증표인 큰 동공의 눈 모양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문체 또한 그의 성격답게 단도직입적이고 간단명료했다.
친애하는 큘긴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동안 잠적해오던 '호크아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그 녀석은 멀쩡히 살아있으며, 제가 녀석에게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읽는다면 분명히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장관님께 알려드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리 경고를 드리는 거죠. 어차피 제가 지금 알려드리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호크아이'가 재림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놈은 제 목표물이니 엠베르카에서는 조용히 해주십사 하는 겁니다.
그럼, 안녕.
"형님,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지금으로서는 '올빼미'를 추적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듯하다. 적어도 소재를 알 수 없는 '호크아이'와는 달리 '올빼미' 녀석은 윰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도적단 모스트루퍼(Mosstrooper)의 두목이기도 하니 정보만 어떻게 구할 수 있다면 추적할 수 있잖나."
"그리고 녀석이 '호크아이'를 추적할 것은 불 보듯 뻔하므로 '올빼미'를 찾게 되면 '호크아이' 또한 잡을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둘 다 일망타진을 해버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우리를 가지고 놀듯이 10년간 숨어왔던 그 망할 녀석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악명이 높은 도적단의 두목 또한 체포하게 된다면 우리의 위상은 올라갈 거라 말이지."
세상 어딘가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반면에 두 여행자는 오솔길을 통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한적하게 걷고 있었다.
"아저씨.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목적지는 있는 건가요?"
"하핫? 목적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인데……"
아구모스의 그런 대응에, 네플레어는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구모스의 집으로 가는 밤길.
평소와는 다르게 거리에 자신 외에 다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건물 벽에 기대어 조용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는 보기 드문 큰 키였던 아구모스와 거의 비슷한 키를 가진 장신이었고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또한 그처럼 긴 장총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은 단정하고 몸집도 아구모스에 비해서 마른 편이었지만 네플레어는 어둠 속에서 그를 아구모스로 착각하고 말았다.
"아구모스!"
그 말에, 감고 있던 남자의 눈이 열리며 목소리의 흔적을 찾아 사납게 번뜩였다.
남자는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네플레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몸을 낮추어 소녀와 눈높이를 같이했다.
"너……방금, 아구모스라는 이름을 말했니?"
그제서야 네플레어는 그가 아구모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남자의 얼굴빛이 마치 '도망가면 넌 죽어' 라고 말하는 듯 번뜩거리고 있어서 차마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예……그런데요?"
"혹시 그 남자가 총을 잘 쏘지 않니?"
"평소에 장총을 가지고 있는 건 봤지만 한번도 쏘는 것을 본 적은 없어요."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잉크와 펜, 종이를 급히 꺼내 들고는 무언가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희안한 도장을 꺼내서 편지 하부에 쾅 하고 찍었다.
"이것을 아구모스에게 좀 전해주지 않겠니? 아, 하지만 오늘 보자마자 바로 줘서는 안돼. 분명 그는 언젠가 이 마을을 떠날 텐데 그 때 이걸 보여주렴. 꼭 그렇게 해줘야 해! 알겠지?"
네플레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자는 골목길로 재빨리 달음박질을 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네플레어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편지를 이제 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근데 말이지. 며칠 전에 어떤 이상한 남자가, 그러니까 아저씨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아저씨한테 전해주라고 무슨 편지를 줬어."
아구모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그 편지 어서 이리 줘봐. 아니……그것보다, 어째서 아직까지 편지를 주지 않은 거야?"
네플레어는 넝마 같은 옷 속에서 곱게 접힌 편지를 그에게 건네주며 답했다.
"그 남자가 그랬어. 아저씨가 마을을 떠나게 되면 주라고. 그런데 나는 아저씨랑 같이 가기로 했잖아. 그래서 지금 준거야."
아구모스는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그의 관자놀이가 터질듯이 꿈틀거렸다.
"올빼미……플랑크 가니메데(Planck Ganymede). 10년 만의 재회인가. 정처 없이 도망만 치던 이 인생에 새로운 타겟을 주다니……이거 참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군."
"아저씨.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하핫, 별거 아니란다. 단지 이제 목적지가 생겼다는 것 뿐이야. 그럼 이제 갈 곳도 생겼으니 이럴 때가 아니지. 열심히 나아가자구!"
네플레어가 보기에, 그의 얼굴은 마을을 떠날 때보다도 훨씬 활기차보였다.
네플레어는 원래 부모님을 어릴 때 잃고서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소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구모스의 경우는 마을에 저주를 내리는 듯이 이상한 기운을 풍기던 광인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축하를 할 일이었고 말이다.
단지 마지막 떠나는 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격 따위를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깨우지 않고 샛길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었어요?"
막무가내로 질문 공세를 날리는 이 네플레어라는 소녀가 아구모스와 친분을 쌓게 된 것은 자신 처럼 혼자인 쓸쓸한 처지의 그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가 그에게 끊임 없이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도, 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였다.
아구모스는 아무 생각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난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지. 10년간 참 많은 곳을 휘젓고 다녔어. 내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구……"
"여행자요? 아저씨 나이가 이제 갓 서른 다섯 정도 되지 않았어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곳을 다닌 거에요?"
"모든 사람이 가지 않는 땅, 개척되지 않은 대륙을 제외한 모든 땅덩어리는 다 다녀봤어."
소녀는 잠시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아마도 딱히 말할 주제가 생각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 5분쯤 정적이 흘렀다. 소녀는 아저씨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이 조금은 섭섭했다.
"아저씨!"
갑작스레 소리를 꽥 지르는 소녀에 놀란 것인지, 아구모스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저씨 하고 부르기는 했지만 소녀는 딱히 할 말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네플레어는 대충 아무 말이나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그럼, 그 여행……왜 한 거에요? 세계를 떠도는 것은 힘든 일이잖아요?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열차를 타고 했을 지 모르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거렁뱅이였다면 걸어 다녀야 했을 테고……그 힘든 길을 왜 선택한 거죠?"
아구모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다시 회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소녀에 의해 떠오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사람이라는 게, 다 비밀이 있기 마련이잖니?"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잖아요?"
그러나 이번에는 아구모스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상당히 무거운 표정을 하고서는, 길바닥에 주울 만한 보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터벅터벅 발걸음만 이어나갔다.
네플레어도 그 모습에 압도되어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침묵이 한참 동안 자리를 잡았다. 여명이 다가올 쯤의 어스름한 푸른 새벽이 될 때까지.
한편, 그곳으로부터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엠베르카의 수도 디하튼의 군부(軍部)의 회의장에서는 두 형제의 대화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호크아이(Hawk Eye)'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믿을 수가 없군요."
작게는 엠베르카라는 나라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반국가세력에 포함되기도 하며 크게는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목숨을 거두어간 금세기 최고의 총잡이.
그는 오직 홀로 활동하며, 자신에게 의뢰를 한 자에게 거액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 돈은 금세 써버려서 언제나 가난한 생활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도대체 그 녀석이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는 거지!"
엠베르카 군부의 장관 쥐라트 큘긴(Zuirate Kuelghin)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 그가 '호크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후 처음으로 보여준 감정적인 태도였다.
"10년 전에 르티아 산맥의 자원들을 팔아 넘기려고 했다가 국외로 달아난 '호크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벌써 5년 전에 그 신출귀몰한 행적이 잦아든 이후로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니, 전혀 금시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부의 차관이자 쥐라트의 친동생인 사토프 큘긴(Satoph Kuelghin)이 그를 진정시켰다. 그는 그의 형과는 달리 '호크아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보다 강한 회의를 품고 있었다.
"나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물론 그가 다시 사람을 사냥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목격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
"정보요……? 누구에게서 받은 정보를 말씀하시는 거죠?"
장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생각엔 누구일 거 같은데?"
사토프는 약간은 불안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설마, '올빼미(Owl)'가 정보를 전해준 건가요?"
"그래. 며칠 전에 그가 나에게 서신을 보냈거든. 이게 그 편지다."
쥐라트는 바지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구겨 넣은 그것을 펼쳐 보였다. 편지의 가장 아래 부분에는 역시나 '올빼미'가 보냈다는 증표인 큰 동공의 눈 모양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문체 또한 그의 성격답게 단도직입적이고 간단명료했다.
친애하는 큘긴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동안 잠적해오던 '호크아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그 녀석은 멀쩡히 살아있으며, 제가 녀석에게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읽는다면 분명히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장관님께 알려드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리 경고를 드리는 거죠. 어차피 제가 지금 알려드리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호크아이'가 재림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놈은 제 목표물이니 엠베르카에서는 조용히 해주십사 하는 겁니다.
그럼, 안녕.
"형님,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지금으로서는 '올빼미'를 추적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듯하다. 적어도 소재를 알 수 없는 '호크아이'와는 달리 '올빼미' 녀석은 윰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도적단 모스트루퍼(Mosstrooper)의 두목이기도 하니 정보만 어떻게 구할 수 있다면 추적할 수 있잖나."
"그리고 녀석이 '호크아이'를 추적할 것은 불 보듯 뻔하므로 '올빼미'를 찾게 되면 '호크아이' 또한 잡을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둘 다 일망타진을 해버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우리를 가지고 놀듯이 10년간 숨어왔던 그 망할 녀석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악명이 높은 도적단의 두목 또한 체포하게 된다면 우리의 위상은 올라갈 거라 말이지."
세상 어딘가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반면에 두 여행자는 오솔길을 통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한적하게 걷고 있었다.
"아저씨.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목적지는 있는 건가요?"
"하핫? 목적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인데……"
아구모스의 그런 대응에, 네플레어는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구모스의 집으로 가는 밤길.
평소와는 다르게 거리에 자신 외에 다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건물 벽에 기대어 조용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는 보기 드문 큰 키였던 아구모스와 거의 비슷한 키를 가진 장신이었고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또한 그처럼 긴 장총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은 단정하고 몸집도 아구모스에 비해서 마른 편이었지만 네플레어는 어둠 속에서 그를 아구모스로 착각하고 말았다.
"아구모스!"
그 말에, 감고 있던 남자의 눈이 열리며 목소리의 흔적을 찾아 사납게 번뜩였다.
남자는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네플레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몸을 낮추어 소녀와 눈높이를 같이했다.
"너……방금, 아구모스라는 이름을 말했니?"
그제서야 네플레어는 그가 아구모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남자의 얼굴빛이 마치 '도망가면 넌 죽어' 라고 말하는 듯 번뜩거리고 있어서 차마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예……그런데요?"
"혹시 그 남자가 총을 잘 쏘지 않니?"
"평소에 장총을 가지고 있는 건 봤지만 한번도 쏘는 것을 본 적은 없어요."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잉크와 펜, 종이를 급히 꺼내 들고는 무언가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희안한 도장을 꺼내서 편지 하부에 쾅 하고 찍었다.
"이것을 아구모스에게 좀 전해주지 않겠니? 아, 하지만 오늘 보자마자 바로 줘서는 안돼. 분명 그는 언젠가 이 마을을 떠날 텐데 그 때 이걸 보여주렴. 꼭 그렇게 해줘야 해! 알겠지?"
네플레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자는 골목길로 재빨리 달음박질을 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네플레어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편지를 이제 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근데 말이지. 며칠 전에 어떤 이상한 남자가, 그러니까 아저씨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아저씨한테 전해주라고 무슨 편지를 줬어."
아구모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그 편지 어서 이리 줘봐. 아니……그것보다, 어째서 아직까지 편지를 주지 않은 거야?"
네플레어는 넝마 같은 옷 속에서 곱게 접힌 편지를 그에게 건네주며 답했다.
"그 남자가 그랬어. 아저씨가 마을을 떠나게 되면 주라고. 그런데 나는 아저씨랑 같이 가기로 했잖아. 그래서 지금 준거야."
아구모스는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그의 관자놀이가 터질듯이 꿈틀거렸다.
"올빼미……플랑크 가니메데(Planck Ganymede). 10년 만의 재회인가. 정처 없이 도망만 치던 이 인생에 새로운 타겟을 주다니……이거 참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군."
"아저씨.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하핫, 별거 아니란다. 단지 이제 목적지가 생겼다는 것 뿐이야. 그럼 이제 갈 곳도 생겼으니 이럴 때가 아니지. 열심히 나아가자구!"
네플레어가 보기에, 그의 얼굴은 마을을 떠날 때보다도 훨씬 활기차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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