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Memory Seeker
-유적: 1) 과거 인류가 남긴 잔존물로 형태가 크며 위치를 변경시킬 수 없는 신전 고분 주거지 거석기념물, 등을 가리킨다
2) 하늘섬이라는 전설의 섬이 남긴 잔존 흔적들.
-유적 탐험가: 위에 명시된 장소들을 찾는 사람들.
“……또 하나의 소중한 유적이 파괴됐군요.”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힌 노인이 안경을 벗으며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펜을 들어 지도의 한 부분에 가위 표를 쳤다. 이미 지도 위엔 8 개
의 가위 표가 그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20번 째 목숨이 사라지기도 했고요.”
마주 앉은 중년의 여자는 상대방에 대한 모멸감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푸른 눈동자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한 파일을 살짝 훑고 지나
갔다. 중급 고대어 해석자라고? 정말 아까운 인재가 사라졌군. 그녀는 오
른 손으로 어깨를 살짝 덮는 자신의 금발을 귀 뒤로 살짝 넘기며 다른 손
으로 20번 째 희생자의 신상명세서를 테이블에 던졌다.
그것에는 약간 마른 사내의 흑백사진이 페이지 왼쪽 상단에 붙여져 있었다.
마른 얼굴과 대조되는 풍성한 흑발은 흑백사진이라 더욱 검게 보였고, 얼굴
의 반을 덮은 머리카락 아래엔 날카로운 한 쌍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노려보
고 있었다. 그 시선을 외면하듯 남자가 고개를 살짝 돌리자, 여자가 힐난하
듯 말했다.
“할버트, 당신이 고대 유적지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저도 깊은 감명과 존경심을 느껴요. 하지만 그것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먼저 생각하면 전 당신을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여자의 말에 할버트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게 아직 여성분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지는 몰랐군요.
감사합니다, 시봇 교수님.”
시봇의 아름다운 눈매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본 할버트는 급히 말을 이었다.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싶지만……그게 힘들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군요. 하지만 용감한 모험가들의 목숨
이 사라진 것에 대해 저도 나름대로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합
니다.”
알다마다요. 시봇은 생각했다. 물론 유적이 사라진 것보다는 덜 슬프겠지
만요. 시봇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감정싸움을 할 때가
아니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이젠 어쩌실 거죠? 고대 문명의 실마리를
잡았다 싶으면 폭발하는 것이 유행인 지금, 조사 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실 것 같은데……”
좀 느껴라, 이 늙은 너구리 같은 영감. 하지만 할버트라는 너구리는
쉽게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그리고 총을 쏠 틈도 주지 않는다.
“그 점에 대해서 저희 제단도 많이 생각하고 토론해 보았습니다만,
정확한 폭발 이유와 과정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으로썬 어떤 공식적인
대답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군요. 다만 당분간 제단 소속의
탐험대의 공식적인 발굴은 없을 것이라는 대답만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현장답사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시봇 교수님 말씀대로, 유적들이 폭발하는 것이 유행인 이 시국에서
젊은이들을 위험한 곳에 들여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안전하다고 확정된 곳은…….”
“세상에 절대 안전구역은 없습니다.”
“그럼 당분간 저희 대학의 연구는…….”
“잠시 쉬실 때가 된 것 같군요.”
부드러운 목소리 안에 단호한 뼈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답이었기에 시봇은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한 마디를 덧붙
였다.
“그래도 예상 외의 변수가 있을 수는 있죠.”
할버트의 무표정의 균열이 생겼다.
“무슨……?”
시봇을 알 수 없는 승리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세상에는 할버트 제단 소속의 탐험가들만 있는 것이 아니죠.
제단 소속 탐험가들보다 휠씬 뛰어난 모험가들이 많습니다. 그리
고 법의 사각 지대도 많지요. 예를 들어…….”
----------------------
치익-!
칼과 부싯돌이 마찰되는 순간 기름을 먹인 풀에 날카로운
불꽃이 피어났다. 어둠 속에서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불꽃은
횃불의 끝에 닿는 순간 게걸스럽게 어둠을 훑어 삼켰다. 그에
따라, 그때까지 어둠 속에 숨어있던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적당히 짧은 검은 머리카락과 같은 색인 눈동자가 번뜩거리며
방의 이곳 저곳을 훑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야야, 커튼을 좀 더 잘 쳐. 밖에서 보이면 안되니까.”
“오케이.”
뭔가 투두둑 거리고 탁탁 소리가 나자 방은 완전한 어둠으로
밀폐되었다. 문 아래의 틈까지 검은 천으로 확실히 막고 나서
야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거참, 일 한 번 복잡하군. 안 그래 메이?”
“음.”
중 저음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당히 거구의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상당히 모범생 타입의
얼굴이었다. 그에 비해 메이라고 불린 청년은 20대 중반 정도였다.
키도, 덩치도 그렇게 크진 않지만, 상당히 단련된 체구였다. 하지만
입가가 살짝 올라가있어, 어찌 보면 장난끼 많은 소년처럼도 보였다.
“뭐,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메이는 콧노래를 부르듯이 흥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빛으로
밝혀진 방 안에는 책들이 빼곡했다. 도서관이었다. 한 권, 한 권이 역
사의 한 장을 이루고 있는, 마치 집을 이루는 벽돌들처럼 사방을 메운
책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들은 각자 몇 권씩의
책들을 집어와 책상에 쌓았다. 그런데 마침 메이가 앉은 책상 위엔 신
문 한 부가 놓여 있어, 그는 신문지를 옆으로 치우려고 했다.
“음?”
그때 갑자기 그의 손길이 멈추더니,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의
시선은 한 줄의 머리글에 고정되어 있었다.
<의문의 유적 폭발 사고 또 발생! 할버트 제단, 급히 발굴을 중단시켜>
메이가 신문지를 접으며 혀를 찼다.
“결국 할버트 제단은 유적 연구를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군.”
대학신문지를 던지고 의자 뒤로 몸을 기대었다.
“그 영감, 기분이 아주 좋겠어.”
마침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야? 탐사가 중단됐는데 연구를 독점한다니?”
“뭐, 공식으로야 탐사를 중단시키겠지만, 이제까지 발견된 유적
들을 조사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거 아니야. 대학들이야 힘
도, 돈도 없으니 떨어지는 고물이나 받아 먹을 수 밖에 없을 테고.
법적으로도 할버트 제단은 발견한 유적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한
을 갖고 있으니까 대학이 관여하면 복잡한 재판으로 몰고 가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지. 무엇보다 대학 제단이 법정소송으로 파탄 날
것을 감수하고 고고학을 지원할 대학이 몇이나 있을지도 궁금한데?
하지만…….”
“하지만?”
“그 시봇 교수가 순순히 물러갈 위인은 아니란 말이지. 아마 분명
어떤 수를 쓸 거야.”
“휘이-!”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넌 이쪽 방면으로는 천재적이야, 메이.”
메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잔머리 쪽 말이겠지, 로힌?”
로힌 역시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로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따라 그가 입고 있던
두꺼운 옷 위로 걸친 갑주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냈다.
상당히 거구였기에 덜컹거리는 소리는 꽤 컸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아니겠어?”
메이는 공범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건물 안, 방은 특이하게 팔각형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팔각
의 방을 채우고 있는 것은 보물들이었다.
“다 좋은데 말이야, 보물치고는 너무 팔랑거리는데?”
로힌은 고서(古書) 한 권을 들어 내용을 훑어보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냄새도 나고 말이지.”
메이는 그런 로힌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이럴 때면 네가 어떻게 대학을 졸업했는지 궁금할 뿐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빨리 필요한 내용만 찾자고. 이러다간 밤이 모자라겠어.”
실제로 창 밖은 어둑어둑했고, 그들에게는 시간이 모자랐다. 로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서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고서들을 뒤적이는 그들의 손길은 빨랐으나 섬세했다. 마치 어린 아이를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럽게 책장을 넘기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의 눈은 마
치 독수리처럼 페이지의 중요한 부분을 낚기 위해 번뜩이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그들이 잠입한 곳은 최고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하나텔
대학의 고고학 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교수
들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이들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지만, 한 달을 잠
복하며 기회를 본 끝에 들어온 곳이기에 그들의 갈증은 더더욱 심했다.
수천 권이 넘는 책들을 보며 두 사람은 시간만 있다면 모두를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잠입하기 전,
시내의 유명한 도둑들과 사서(史書)들에게 돈을 줘가면서, 조사에 조사를
거쳐 확인해야 할 목록을 십 수 권으로 줄인 상태라 큰 걱정이 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한 장이라도 빼먹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손놀림은 시간이 갈수록 떨리고 있었다. 그 동안 고생한 것
을 되새기며 종이를 넘기는 그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필사적이었다.
그들이 찾는 문서는 새벽이슬이 내려 앉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발견되었
다. 로힌이 감격하며 물었다.
“이것인가? 그것이?”
메이 역시 감동에 몸을 떨며 대답했다.
“응. 이게 그거야.”
“그럼, 뜨자.”
뒤처리는 빨랐다. 마치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것처럼 책과 자료들을
원래 위치에 놓은 두 사람은 마치 그림자처럼 도서관을 빠져 나왔다.
행여 누가 볼세라, 전날 미리 잡아놓은 여관에 들어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두 사람은 미리 잡아 놓은 여관방에 들어가자 마다 크
게 숨을 몰아 쉬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푸하!”
그들은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빼내온 물건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것
은 한 권의 얇은 책이었다. 가죽으로 된 표지는 낡았지만 보관이 잘
되어 다른 고서들에 비해 깨끗한 편이었다. 메이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
지 못하며 책의 가운데 부분을 펼쳤다. 그곳엔 한 장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거대한 다섯 개의 섬이 꽃에서 막 떨어진 꽃잎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하나의 거대한 섬, 제국이 꽃봉오리처럼 그 꽃잎
들을 받치고 있었다. 상당히 오래된 지도이긴 하지만 이런 저런 주석
이나 표시는 새 것처럼 보이는, 상당히 보존이 잘 된 지도였다.
바다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것 같은 꽃 위에는 수십 개의 작은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다만 가장 거대한 대륙들인 제국과 미개척지에는 아무 표
시도 되어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잉크를 긁고 살짝 약품처리를 해서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어차피 제국에서 그들의 영토
내의 유적들의 소재를 숨기거나 정보를 왜곡한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퍼져
있던 터라 메이는 크게 실망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타가트라와 류오스였다.
기대했던 대로, 타가트라와 류오스에는 별표들이 꽤 많이 찍혀있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메이가 가봤던 곳들이었다. 기술의 혁명이라는 명
목으로 나라의 대부분을 개발지역으로 만들어버린 류오스와 이리저리 탐험
가들과 발굴단의 왕래가 잦은 편이었던 타가트라의 실정으로는 당연한 결과
였다. 하지만 윰에 찍힌 별표들은 메이의 눈에 꽤 생소한 것들뿐이었다.
“이거 정확한 거 맞아?”
메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난 이런 곳에 유적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윰의 영향 아래
있는 섬들에도 몇 개씩 별표가 있잖아?”
“너라면 너네 집에 보물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겠냐?”
“그렇다면 이 곳에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고대의 유적들이 있다는
말이겠지?”
“아마도? 그럼 가장 가까운 곳부터 한 번 가볼…….”
기뻐하는 와중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한 장의 편지가 팔랑거리면서
떨어졌다.
“언제 이런 것이 들어가 있었지?”
조심스럽게 편지를 들어 관찰하던 메이는 그것이 최근에 쓰여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봉투의 앞 부분에 쓰여있는 것은 자신
의 이름이었다. 그는 급하게 편지를 펼쳐보았다.
=친애하는 메이군
전 하나텔 대학의 고고학 교수로 재임 중인 시봇 하얀 이라고 합니다. 우선 저희 대학의 도서관에 잠입한 그 실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시겠지요? 다른 말은 드리지 않겠지만 다음부터 정보를 살 때는 상대를 신중하게 고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겠군요.
로힌이 으르렁거렸다.
“어떤 놈인지 잡히면 죽인다.”
=각설하고, 어떤 일에 대해 절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의 전문분야인 고고학이나 옆에 있을 다른 분이 흥미 있어 하실 고대생물에 관련된 것이니 후회는 없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내일 정오쯤, 제 방에서 뵙겠습니다. 밤을 새셔서 피곤하실 텐데 눈을 붙이시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메이는 졸도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친절하군, 여우 같은 아줌마 주제에.”
=추신. 근데 당신들이 정보를 산 가격이면 도서관 열람을 한 달 동안이나 할 수 있었던 가격인데, 모르셨던 모양이군요. 다음부터 정보를 사실 때는 좀 더 알아보시고 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메이는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졸도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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