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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Duo)] - #04. 레오닐, 붉은 남자

빨간머리 녀석이 우리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지도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처음에 레이는 녀석이 보일 때 마다 벌벌 떨거나 방으로 뛰어들어 숨어 버렸고 나 역시 녀석을 대할 때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녀석은 어떤 특이한 행동도 한 적이 없었다. 음, 아니 정정. 녀석은 특이한 행동을 자주 했지만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은 없었다.

녀석이 하는 특이한 일이란 것은 주로 사물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뭐 단 한번도 말을 건 사물이 대꾸를 해 주는 적은 없었지만 녀석은 끈질기게 무너진 울타리나 제대로 묶이지 않는 신발 끈 등과 대화를 시도했다. 이 정도 힘은 버텨줘야 울타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니 라든지. 어지간하면 한 번에 좀 묶여주지 않겠니 라든지. 처음에는 녀석이 혼잣말로 무언가를 꾸미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 녀석이 중얼거릴 때 일부러 근처를 배회하며 엿듣곤 했지만 녀석이 어느 날 시레네 집 사과나무에게 ‘오늘은 빛깔이 예쁘구나. 태닝 했니?’라고 묻는 것을 본 뒤로는 관심을 끊기로 했다. 정말 이름만큼이나 괴상한 녀석이다.

나는 완전히 레이의 꿈이 그저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빨간머리 녀석을 보아도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혼자 숲에서 나무에 기대 솔방울을 공중에 띄우며 놀고 있는 내게 녀석이 말을 걸어왔을 때도 별로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레이는 새벽까지 읽던 소설책을 마저 읽다가 잠이 든 모양이라, 아침에 아무리 깨우려고 애를 써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에 훅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고, 와락 끌어안아보기도 하고,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목을 졸라도 보고 걷어 차 보기도 했지만 일어나지 않아서 혼자 밖에 놀러 나왔으나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솔방울 세 개를 공중에 띄워 뱅글뱅글 원을 그리고 있었다.

“헤에. 재미있어 보이는데?”

투둑. 어느 새 내 뒤에서 나타난 빨간머리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집중력이 흐트러져 솔방울을 떨어뜨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출현은 늘 그렇듯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을 만큼 갑작스러웠다. 방해받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짜증이 난다.

“뭐, 할 말 있어요? 없으면 가서 일해요.”
“흐응.”

녀석은 솔방울을 집어 들고 손장난을 치더니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섰다. 녀석과 가까이 있는 게 왠지 기분 나빠서 나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녀석은 피식 웃었다.

“중력을 조절해서 물건을 움직이는 건가? 아니면 마력 자체를 물리적인 힘처럼 사용하는 거? 하긴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알고 사용하는 것도 아닐 테지.”
“……무슨 말이죠?”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쓸 필요 없어. 물건에게 중얼거리는 거나 같은 기분으로 말 한 것 뿐이거든.”

녀석은 발로 바닥의 돌을 치우더니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손을 깍지 껴 턱을 받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세 개가 한계야?”
“…….”
“……이건 신경 써 줘. 질문이라구.”

녀석의 눈은 마치 밥그릇을 바라보는 배고픈 고양이마냥(시레에게 들은 표현이다.)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지?

“그건 왜 묻죠?”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 궁금한 게 있을 때 질문을 하는 건 좋은 습관이라고. 순수한 호기심이야.”

물론 우리 엄마도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은 든다. 기분만. 근데 그런 건 다 어릴 때 이야기 아니야?

“가벼운 물건이라면 대여섯 개 쯤. 감자정도 무게라면 두 개.”

무거운 상자를 척척 옮기던 레이를 떠올리니 좀 부끄럽긴 하지만 섬의 1층에 사는 녀석들 중엔 전혀 마법을 못 쓰는 녀석들이 태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딱히 못난 것도 아닌데다 굳이 숨길 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빨간머리 녀석은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한개만 들어 올린다면 어느 정도 무게까지 들 수 있는데?”
“개수를 늘리는데 신경을 쓰고 있어서 무게 한계는 실험해 본 적 없는데요. 감자 두 개 합친 무게 정도는 들겠죠. 그런데 왜 아저씨 이런 걸 궁금해 하는지 저도 궁금한데요?”

녀석은 팔을 펴서 깍지 낀 손을 그대로 뒤통수에 갖다 대며 몸을 젖혀 상체를 나무에 기댔다.

“아저씨? 듣기 거북한데. 아직 장가도 안 갔고 너랑 나이차도 별로 안 난다고. 형이라 불러 주면야 좋겠지만 보아하니 네 녀석은 그런 싹싹한 성격은 아닌 것 같고 나도 나이 많다고 윗사람 노릇 할 생각 없으니 편하게 케이라고 불러.”

“흐흠. 그러니까 왜 이런 걸 궁금해 하죠? ……케이.”

녀석과 맞먹을 수 있는 기회를 녀석이 직접 제공했다. 막상 부르려니 어색하긴 하지만.

“그냥 호기심이라니까. 그럼 하나 묻지.”

지금까지도 계속 묻고 있었잖아, 하고 항의하려다가 나는 멈칫했다. 녀석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어있었다. 녀석은 진지하게, 그러나 여전히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질투하고 있지?”
“뭘 말이죠? 케이의 눈에 띄는 붉은 머리?”

나는 대수롭지 않게 녀석의 질문을 넘기려 했다. 녀석이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표정은 평온했고 말투는 조용했지만 케이의 말을 들은 나는 바로 얼어붙었다.

“네 동생이 갖고 있는 힘.”
“……!”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녀석이 어떻게 레이의 능력을 알고 있지? 내, 나의, 나는……나는, 나는 그저 궁금했을 뿐이야. 쌍둥이인데, 왜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인데 나와 레이의 힘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그저 궁금했을 뿐이라고! 질투 같은 것 하지 않았어. 단지 레이가 가진 능력만큼 따라가기 위해 최선을……. 정말, 일까? 나는 레이를 질투하지 않았나? 나는 레이를 부러워하지 않았나……?

그러다 문득 케이의 표정을 본 나는 내가 녀석의 장난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녀석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듯 녀석의 몸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당했다!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젠장, 너무 드러나게 빨갛게 변하지 않았어야 할 텐데!

“이야, 이렇게 쉽게 걸려들 줄은 몰랐는데? 몇 번 정도 더 건드려야 할 거라 생각했어. 굉장히 의식하고 있었나 보지, 동생을? 아-,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놀려먹기 적격인 녀석이군. 귀여워, 귀여워.”

“사람을 뭘로 보고……!”
“레오닐 크래그. 새빨개.”
“이익!”

아악! 열 받아!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 저 놈의 얼굴을 한 대 후려치면 속이 시원 할 것 같지만 애와 어른이다. 덤벼봤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채 머릿속으로나마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명치에 무릎을 찍어 올리고 있다가 갑자기 녀석이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왜 묻지 않아?”
“에?”
“분명히 궁금해 했을 텐데 왜 묻지 않느냐고.”
“또 뭘…….”

케이는 부스스 일어나더니 바지를 털었다. 옆으로 다가온 그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어떻게 네 동생의 힘을 알고 있지?”
“아!”

순간적으로 잊어버렸었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몸을 돌리더니 어깨너머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갔다.

“그럼 난 일을 해야 하니까. 나중에 또 놀자고, 귀염둥이.”

녀석은 나타날 때 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녀석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았다. 딱히 레이가 힘을 감추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내 기억에 레이는 녀석이 우리 집에 온 뒤로 한 번도 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녀석은 레이에 대한 것을 어떻게 안 걸까.

그래, 일주일 전 시레네 집 창고에 고양이를 보러 갔을 때. 그때 나는 창고 밖에서 움직이는 붉은 물체를 보았다. 다람쥐가 아니었던 거지. 케이, 저놈이었을 거다. 그저 놀려먹기 좋은 소재라고 생각하고 숨어서 지켜 본 걸까? 하지만 녀석을 처음 만난 곳에서 보면 시레네 집과 우리집은 정반대방향이다. 우리 집을 찾아왔어야 할 녀석이 왜 시레네 집 창고에 있었을까. 케이는……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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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어떻게 진행이 되..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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