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Duo)] - #03. 레이첼, 붉은 남자
시레가 ‘농땡이 부리지 마!’라며 누나에게 귀를 잡혀 끌려 나간 뒤 우리는 시레네 집을 나섰다. 그 이후로 레오는 무언가 계속 생각에 잠겨있다. 레오답지 않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몇 번 말을 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아침부터 불안한 일 들 뿐이다. 이상한 꿈, 갑자기 나타난 붉은 머리의 남자, 평소 같지 않은 레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닌 일들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하다못해 레오만이라도 평소처럼 밝게 웃어준다면 좋겠는데.
“불안해?”
“……!”
앞서 걷던 레오가 어느새 나를 돌아보고 묻고 있다. 나는 멍하니 레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올려다’보았다. 레오는 나보다 한 뼘쯤 키가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5분 차이의 쌍둥이이면서도 나는 레오를 형으로써 굳게 의지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슬그머니 레오의 옷자락을 손에 꼬옥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는 피식 웃었다.
“뭐가?”
레오의 목소리는 밝았다.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돌아와 있어서 나는 안도했다. 평소와 똑같은 레오다. 그러니까 오늘도 언제나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인 평범한 하루가 될 거야. 평소와 똑같은 하루.
편안해진 마음으로, 나는 레오에게 밤에 꾼 꿈에 대한 것과 붉은 머리 남자를 보았을 때의 불안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레오는 팔짱을 낀 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새가 널 잡아갔단 말이지? 그리고 그 남자가 나타났고?”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레오가 갑자기 손을 들더니 내 머리에 턱 얹어놓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마구 헝클어졌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뭐하는 거야!”
“바보 아냐?”
“뭐라고?”
레오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레오와 내 이마가 맞닿았다. 레오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 듣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화내던 것도 잊어버릴 만큼 놀랐다.
“내가 그렇게 안 놔둬.”
“……레오?”
눈앞에서 번뜩이던 푸른 눈동자가 멀어졌다. 레오는 뒤로 물러나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바보같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꿈 때문에 하루 종―일 불안에 떨고 있었던 거냐고, 너. 별로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정 걱정되면 날 믿어. 내가 널 그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 아니면 나도 못 믿는 건가?”
“아냐, 그런 거.”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불안하다는 것을 저렇게 해석할 줄은 몰랐다. 난 단지…….
퉁.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레오가 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기 때문이다. 아파! 나는 머리를 문지르며 레오를 노려보았다. 눈에 눈물까지 글썽 맺힐 정도로 아팠다.
“아무 걱정 말라고. 내가 지켜줄 테니까.”
“내 머리부터 지켜달라고. 머리 맞으면 머리 나빠진단 말이야.”
“하하핫, 미안!”
레오는 손을 깍지 껴 뒷머리에 대며 몸을 돌려 경쾌하게 걸어갔다. 투덜투덜 하긴 했지만 레오의 반응에 속으로 안심하면서, 나는 레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나저나 레이, 그 새끼고양이들 귀엽지 않았냐? 나중에 젖 떼면 시레한테 한 마리 달라고 할까?”
“으음. 레오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왜? 문제 있어?”
“고양이가……불쌍해.”
“뭐얏!”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레오의 펀치를 피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할 때 까지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맹렬히 달리는 바람에 한동안 가슴부근이 당겨서 웅크리고 앉아있어야 했다. 이게 뭐야! 지켜준다며!
집에 도착했더니 엄마가 없어서, 우리는 시레 집에서 바꿔 온 우유를 부엌에 가져다 두고 이층에 있는 우리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위로 펄쩍 뛰어오르자 낡은 침대 다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청거리며 삐걱삐걱 비명을 지른다. 뒤따라 들어온 레오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살살 좀 올라가. 그거 침대 부러지면 우린 어디서 자냐? 바닥에서 자는 건 율법 위반인데.”
“바닥에 매트만 깔면 되잖아.”
“난 조금이라도 높은 게 좋단 말이다.”
투덜거리며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는 레오를 무시하며 나는 베개 뒤에 놓아두었던 소설책을 꺼냈다. 섬 2층에 사는 어느 모험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모험소설인데 페어리, 엔트, 엘프의 땅을 여행하면서 겪은 사건사고들을 기록하고 있다. 솔직히 요정이 사는 땅에 인간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렵고 또 사건들은 황당무계하기 그지없지만 재미도 있고 심심풀이로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어제 밤에 주인공이 엘프의 여왕을 만나는 대목까지 읽고 잤었지.
책을 들고 편안한 자세를 잡은 뒤 발 아래를 보니 레오는 침대에 앉아 방안의 물건들 중 가벼운 것들, 그러니까 어제 벗어던진 양말이나 연필, 종이뭉치 같은 것들을 공중에 띄우며 놀고 있었다. 아니, 정정. 그것들이 공중에 머물러 있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있다. 감자보다 가볍긴 하지만 수가 많아지니 조절을 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뭐라 말을 걸려다 집중이 깨지면 또 물건들이 와르르 떨어질까 봐, 그래서 자존심이 상해 할 까봐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책을 펼쳤다.
삐걱! 몸이 격렬하게 출렁인다.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흔들리는 침대인데 레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날뛰는 말 등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흔들림을 겪게 되었다. 투두둑 하고 공중에 떠 있던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지럼증을 느끼며 벌떡 일어선 레오를 올려다보았는데, 레오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창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에 그으래에?”
흔들리며 말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울린다.
“목소리……. 엄마?”
레오는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레오의 뒷모습이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책을 덮은 뒤 일어나 창가로 갔다. 레오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
레오를 따라 창밖을 내다본 나는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한 남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걸어오고 있는 것은 ……아침에 만난 붉은 머리의 남자였다.
레오는 홱 몸을 돌려 방을 뛰쳐나갔다. 눈앞에 붉은 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붉은 머리 남자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지만 혼자 남겨져 있는 것 역시 불안했기 때문에 나는 레오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1층에 내려갔을 때는 마침 엄마가 붉은 머리의 남자와 함께 현관을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의 굳은 표정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어머. 레오, 레이 집에 돌아와 있었구나? 엄마는 너희가 아직 밖에 있을 줄 알았지 뭐니. 자, 인사하렴. 오늘부터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실 분이란다.”
엄마는 손으로 붉은 머리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화사하게 웃었다. 나는 레오의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었다. 내 손의 떨림을 느꼈는지, 레오가 내 앞을 막아서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우리 집에서 일할 사람이라고?”
“레오! 어른을 당신 이라고 부르다니!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배워 온 거니!”
엄마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붉은 머리의 남자는 여전히 얼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로 부드러운 미소였고, 그래서 나는 더 무서워졌다.
“괜찮습니다. 사실 아침에 우연히 숲에서 이 아이들을 만났거든요. 귀여워서 조금 놀려주었는데 그게 아마 화가 많이 났나 봅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제 잘못이니 야단치지 마세요. 하하하.”
“벌써 만나셨군요. 그래도 죄송해요,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괜찮다니까요. 차라리 제가 혼나야 마땅하죠.”
여전히 미안해하는 표정인 엄마를 뒤로 하고, 남자는 우리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아침보다도 키가 더 커 보인다. 등 뒤에서 빛을 받아, 높은 곳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새카맸다. 그는 허리를 굽혀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씨익 웃었다.
“안녕? 난 케이 크랙팟. 괴상한 이름이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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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마약 이름이더라구요 크랙팟.
시레가 ‘농땡이 부리지 마!’라며 누나에게 귀를 잡혀 끌려 나간 뒤 우리는 시레네 집을 나섰다. 그 이후로 레오는 무언가 계속 생각에 잠겨있다. 레오답지 않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몇 번 말을 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아침부터 불안한 일 들 뿐이다. 이상한 꿈, 갑자기 나타난 붉은 머리의 남자, 평소 같지 않은 레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닌 일들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하다못해 레오만이라도 평소처럼 밝게 웃어준다면 좋겠는데.
“불안해?”
“……!”
앞서 걷던 레오가 어느새 나를 돌아보고 묻고 있다. 나는 멍하니 레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올려다’보았다. 레오는 나보다 한 뼘쯤 키가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5분 차이의 쌍둥이이면서도 나는 레오를 형으로써 굳게 의지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슬그머니 레오의 옷자락을 손에 꼬옥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는 피식 웃었다.
“뭐가?”
레오의 목소리는 밝았다.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돌아와 있어서 나는 안도했다. 평소와 똑같은 레오다. 그러니까 오늘도 언제나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인 평범한 하루가 될 거야. 평소와 똑같은 하루.
편안해진 마음으로, 나는 레오에게 밤에 꾼 꿈에 대한 것과 붉은 머리 남자를 보았을 때의 불안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레오는 팔짱을 낀 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새가 널 잡아갔단 말이지? 그리고 그 남자가 나타났고?”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레오가 갑자기 손을 들더니 내 머리에 턱 얹어놓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마구 헝클어졌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뭐하는 거야!”
“바보 아냐?”
“뭐라고?”
레오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레오와 내 이마가 맞닿았다. 레오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 듣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화내던 것도 잊어버릴 만큼 놀랐다.
“내가 그렇게 안 놔둬.”
“……레오?”
눈앞에서 번뜩이던 푸른 눈동자가 멀어졌다. 레오는 뒤로 물러나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바보같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꿈 때문에 하루 종―일 불안에 떨고 있었던 거냐고, 너. 별로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정 걱정되면 날 믿어. 내가 널 그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 아니면 나도 못 믿는 건가?”
“아냐, 그런 거.”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불안하다는 것을 저렇게 해석할 줄은 몰랐다. 난 단지…….
퉁.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레오가 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기 때문이다. 아파! 나는 머리를 문지르며 레오를 노려보았다. 눈에 눈물까지 글썽 맺힐 정도로 아팠다.
“아무 걱정 말라고. 내가 지켜줄 테니까.”
“내 머리부터 지켜달라고. 머리 맞으면 머리 나빠진단 말이야.”
“하하핫, 미안!”
레오는 손을 깍지 껴 뒷머리에 대며 몸을 돌려 경쾌하게 걸어갔다. 투덜투덜 하긴 했지만 레오의 반응에 속으로 안심하면서, 나는 레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나저나 레이, 그 새끼고양이들 귀엽지 않았냐? 나중에 젖 떼면 시레한테 한 마리 달라고 할까?”
“으음. 레오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왜? 문제 있어?”
“고양이가……불쌍해.”
“뭐얏!”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레오의 펀치를 피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할 때 까지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맹렬히 달리는 바람에 한동안 가슴부근이 당겨서 웅크리고 앉아있어야 했다. 이게 뭐야! 지켜준다며!
집에 도착했더니 엄마가 없어서, 우리는 시레 집에서 바꿔 온 우유를 부엌에 가져다 두고 이층에 있는 우리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위로 펄쩍 뛰어오르자 낡은 침대 다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청거리며 삐걱삐걱 비명을 지른다. 뒤따라 들어온 레오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살살 좀 올라가. 그거 침대 부러지면 우린 어디서 자냐? 바닥에서 자는 건 율법 위반인데.”
“바닥에 매트만 깔면 되잖아.”
“난 조금이라도 높은 게 좋단 말이다.”
투덜거리며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는 레오를 무시하며 나는 베개 뒤에 놓아두었던 소설책을 꺼냈다. 섬 2층에 사는 어느 모험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모험소설인데 페어리, 엔트, 엘프의 땅을 여행하면서 겪은 사건사고들을 기록하고 있다. 솔직히 요정이 사는 땅에 인간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렵고 또 사건들은 황당무계하기 그지없지만 재미도 있고 심심풀이로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어제 밤에 주인공이 엘프의 여왕을 만나는 대목까지 읽고 잤었지.
책을 들고 편안한 자세를 잡은 뒤 발 아래를 보니 레오는 침대에 앉아 방안의 물건들 중 가벼운 것들, 그러니까 어제 벗어던진 양말이나 연필, 종이뭉치 같은 것들을 공중에 띄우며 놀고 있었다. 아니, 정정. 그것들이 공중에 머물러 있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있다. 감자보다 가볍긴 하지만 수가 많아지니 조절을 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뭐라 말을 걸려다 집중이 깨지면 또 물건들이 와르르 떨어질까 봐, 그래서 자존심이 상해 할 까봐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책을 펼쳤다.
삐걱! 몸이 격렬하게 출렁인다.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흔들리는 침대인데 레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날뛰는 말 등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흔들림을 겪게 되었다. 투두둑 하고 공중에 떠 있던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지럼증을 느끼며 벌떡 일어선 레오를 올려다보았는데, 레오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창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에 그으래에?”
흔들리며 말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울린다.
“목소리……. 엄마?”
레오는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레오의 뒷모습이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책을 덮은 뒤 일어나 창가로 갔다. 레오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
레오를 따라 창밖을 내다본 나는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한 남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걸어오고 있는 것은 ……아침에 만난 붉은 머리의 남자였다.
레오는 홱 몸을 돌려 방을 뛰쳐나갔다. 눈앞에 붉은 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붉은 머리 남자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지만 혼자 남겨져 있는 것 역시 불안했기 때문에 나는 레오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1층에 내려갔을 때는 마침 엄마가 붉은 머리의 남자와 함께 현관을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의 굳은 표정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어머. 레오, 레이 집에 돌아와 있었구나? 엄마는 너희가 아직 밖에 있을 줄 알았지 뭐니. 자, 인사하렴. 오늘부터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실 분이란다.”
엄마는 손으로 붉은 머리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화사하게 웃었다. 나는 레오의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었다. 내 손의 떨림을 느꼈는지, 레오가 내 앞을 막아서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우리 집에서 일할 사람이라고?”
“레오! 어른을 당신 이라고 부르다니!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배워 온 거니!”
엄마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붉은 머리의 남자는 여전히 얼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로 부드러운 미소였고, 그래서 나는 더 무서워졌다.
“괜찮습니다. 사실 아침에 우연히 숲에서 이 아이들을 만났거든요. 귀여워서 조금 놀려주었는데 그게 아마 화가 많이 났나 봅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제 잘못이니 야단치지 마세요. 하하하.”
“벌써 만나셨군요. 그래도 죄송해요,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괜찮다니까요. 차라리 제가 혼나야 마땅하죠.”
여전히 미안해하는 표정인 엄마를 뒤로 하고, 남자는 우리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아침보다도 키가 더 커 보인다. 등 뒤에서 빛을 받아, 높은 곳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새카맸다. 그는 허리를 굽혀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씨익 웃었다.
“안녕? 난 케이 크랙팟. 괴상한 이름이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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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마약 이름이더라구요 크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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