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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건물에 가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태어날 때부터 밑바닥 인간이란 꼬리표를 달아야만 했던 금발 소년은 오늘도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다섯 살이나 많은 골목대장을 거꾸러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사기에 가까운 이적을 행하고도 태양을 박아 넣은 듯한 황금색 눈동자, 다른 한 쪽 눈은 달을 박아 넣은 듯한 오드아이의 소년은 자신의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겐 우스울 정도로 하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비가 없는 늙은 창녀에게서 태어난 피오람에게 유일한 빛은 이란성 쌍둥이인 피아나였다. 불과 열 살이던 해에 작은 주먹과 좁은 어깨로 이 동네 꼬마 아이들의 영웅이 된 금발의 소년이 스스로 작은 카이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을 닮은 금발의 아름다운 누이 때문이었다.
 늙은 창녀인 어머니 밑에서 누이인 피아나가 배운 것이라곤 그녀가 일하는 주점에서 어떻게 하면 손님의 비위를 더 끌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교태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능숙하게 남자를 만족시키는 법과 같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늙은 창녀의 뒤틀린 모성애는 그것이 원치 않은 세상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생존방식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미로써 최선을 다해 나름의 살아갈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밑바닥 인생의.
 피오람과 같은 오드아이를 가진 누이, 피아나는 아직 열 살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피오람과 같이 주점에서 일을 해야 했다. 특이한 눈 색깔과 만지면 깨져버릴 것 같은 유리 같은 외모 덕에 주점 등극 이래 변태 성욕자들의 표적이 된 사랑하는 누이는 아직 여물지 않은 나이 덕에 다행히 순결을 빼앗기진 않았다. 하지만 종종 수치스러운 일을 겪고 와선 헛간의 낡은 침대에서 피오람의 품에 안겨 하루 종일 울곤 했다.
 피오람이 독해지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소년의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환경적인 영향이 컸다. 아니, 천재적인 그의 유전자가 극한 상황에 맞물려 그 개화시기를 소년기란 극히 이른 시기로 앞당긴 것이다.
 생계를 위해 누이와 같이 주점에서 일하면서도 소년의 오트아이는 태양과 달처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때로는 짝눈이 불쾌하다며 욕설을 퍼붓는 주정뱅이의 폭행에서 누이를 막아 자신의 순결한 좁은 등을 고통스럽게 내어 줄 때에도, 삼시 세끼를 굶주리다 결국 누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주인에게 붙잡혀 개처럼 두들겨 맞았을 때에도. 여름 감기에 걸려 온 몸이 펄펄 끓는 누이와 함께 고된 주점 일을 할 때에도 그의 두 눈은 그 집요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을 한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
 쌍둥이지만 누가 먼저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멍청한 산모는 누구였더라? 라고 지껄이며 대머리 독수리를 연상케 하는 자신의 반쯤 빠진 백발을 긁적일 뿐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다 하지만 늘 피아나를 지켜온 것은 피오람이었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몇 초 빠른 오빠가 되어 있었다.
  “피아나에게 저 흰 건물을 줄게.”
 아홉 살 되던 해, 피아나의 생일날 피오람은 피아나의 예쁜 새끼손가락을 걸며 그런 약속을 했다. 빛이 잘 들어오지도 않는 골목길의 하늘 구멍엔, 아늑할 정도로 아름다운 흰 건물이 신기루처럼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오람이 그 흰 건물의 정체가 비더젠 제국의 도르트문트 본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그는 이미 열한 살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오히려 피오람은 현실의 벽에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그 성이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성과 같은, 신기루가 아니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열두 살이 되던 해, 피오람은 결국 누이 피오나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과도로 어떤 미친 귀족의 등을 찌르게 된다. 아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피오나나 피오람이나 유리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것이 문제였다. 오누미의 외모는 술집이란 거친 곳에서 너무나 빛났다.
 첫 살인의 떨림이, 아직도 뜨거운 피의 감촉과 비릿한 혈향이 가시기도 전에 피오람과 피오나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도망은 생각 이외로 어렵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명석한 두뇌로 유용한 탈주로를 생각해 둔 상태였다. 언젠가는 도망칠 생각이었다. 돈을 생각보다 적게 모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피오나, 네게 저 흰 건물을 줄게.”
 소년은 도망치면서도 누이의 손을 잡고 그 약속을 맹세했다. 아직도 두려움에 작은 어깨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름다운 동생, 피오나는 오빠가 말하는 의미조차 깨닫지 못한 채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훗날 그 고개의 끄덕임이 나비효과가 되어 비더젠의 대지를 아래위로 뒤흔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성이야.”
 피오람은 말했다. 


 


#



 
 1514년의 같은 날, 같은 시각. 주신의 장난인 걸까. 수도 도르트문트를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12세의 소년은 창녀촌이 아닌 다른 곳에도 있었다. 그곳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결정. 오트아이의 소년 피오람이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하던 백색의 성, 도르트문트였다.
  “왜 도망쳐야 하지?”
 12세의 금발 소년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유모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유모는 가끔씩 이런 엉뚱한 질문을 던져대는 꼬마 철학자에게서 심심찮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지 않으면 나쁜 어른이 왕자님을 다치게 합니다.”
  “좋은 어른은 날 지켜주지 않는 건가?”
  “지금은 왕자님을 누구도 지켜드릴 수 없답니다.”
  “이거 치명적인 오류군, 나쁜 어른이 있다면 좋은 어른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 이래선 너무나도 수지가 안 맞아. 궁정엔 누구도 날 구할 수 없다. 그렇다는 건 좋은 어른이 하나도 없다는 증거 아닌가.”
  “왕자님, 지금은 농담 하실 때가 아닙니다.”
 유모는 급했다. 여섯 번째 후궁에게서 나온 왕자. 빈말로라도 총명하다곤 할 수 없지만 대신 특이한 이 왕자는 위험했다. 흉포한 후궁, 마리안느 왕비가 실권을 장악한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농담이 아냐. 정말로 궁금해.”
  “지금은 저도 그에 대한 해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꼬마 왕자님.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는 것이죠.”
  “아, 확실히 그렇군.”
 황금빛 꼬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빨간 볼 터치가 귀여운 소년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품격 있는 포즈로 외투를 챙긴 왕자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살던 성을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크기만 한 성이군.”
 왕자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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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맛뵈기로 프롤로그만 올려봅니다.


 


게시판 스킨이 자동 줄 띄우기 기능이 안 먹는듯..


결정적으로 보안문자의 귀차니즘이 상당하군요.


 


지금 쓰고 있는 레드사이드 때문에 그렇게 자주는 못 올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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