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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년 11월. 아른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소금기를 머금어 약간 짠 듯한 느낌이 들지만 바다에 익숙한 아른헴의 시민들에겐 그런 것 정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것은 엘베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그저 손을 들어 눈을 향해 내리쬐는 햇빛을 막으며 바다를 바라 보았다.
 연한 녹색이 어른거리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부두가 보였다. 직선 길이만도 반 마일이나 되는 그곳엔, 수많은 함선이 닻을 내린 채 각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프리깃, 그리고 슬루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외로 어선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어림잡아 천여 척이 넘는 함선 중에서 눈에 보이는 어선은 백을 넘지 않았다. 물론 구석진 자리엔 몇 척의 어선이 더 정박해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조금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항구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나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른헴.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알스터의 수도인 이곳은 해양 무역의 중심지다. 그렇기에, 어선보다는 무역선과 그것을 호위하는 함선의 수가 많은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 많은 함선 중에서, 정부에 귀속된 함선은 단 한 척도 없다.
 너무도 역설적이게도, 대륙 최대의 해양력을 자랑하고 있는 알스터의 정부는 단 한 척의 함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가질 수 없었다.’ 라고 말해야 했다.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에겐 육로로 공격을 가해 올 수 있는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도서(島嶼) 국가는 빈약한 육군과 강력한 해군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알스터는 강력한 육군을 자랑하고 있었다.
 700년이라는 역사는 타국에 비하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일어난 일은 대륙의 국가들마저 한수 접어 줄 정도로 복잡했다.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 현재 알스터의 지배층을 차지하고 있는 아란 인(人)들과 원주민인 슈베린 인들과의 갈등을 시작으로, 200년 전에 있었던 사회주의 혁명과 100여 년에 걸친 내전을 거친 알스터의 육군은 다른 어느 국가 못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군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내전은 종료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 뿌리를 내린 채 숨어있는 사회주의 세력들과의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알스터의 육군은 대륙 최강을 자랑하는 비더젠과도 한번 붙어 볼 만 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강병(强兵)이 되어 있었다.
 반면에, 알스터의 해군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규 해군은 없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었다.
 몇 세기에 걸친 내란으로 인해, 알스터의 주민들은 내륙이 아닌 바다로 눈을 돌렸다.
 좁은 섬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전투에서 발을 뺀 유력자들은 각자의 함대를 만들어 넓은 바다를 누볐다. 그에 비례해 선원들의 항해술은 계속 늘어갔다. 다른 국가의 함선이 수평선에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때에 바다의 끝을 보려 했고, 결국 카한이나 마이엔 등의 대륙을 발견하기도 했다.
 새로운 대륙의 발견과, 그곳에 있는 국가들과의 교류로 인해 엄청난 부를 얻게 된 알스터엔 하루에도 수많은 함대가 새로 생겼고, 그만큼 많은 숫자의 함대가 사라져갔다. 그러나 항해 붐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대륙과의 교역은 농업으로는 얻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이득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례해 늘어난 해적과, 그 해적을 격퇴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설 전함대…….”
 낮은 한숨을 토해낸 엘베는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함선의 대부분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설 함대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시엔 이 알스터의 해군으로 동원되었다.
 교역품을 노리는 해적들과의 전투가 생활이 된 그들은 내전에 단련된 알스터의 육군들도 한 수 접어 줄 만큼 강했다.
 그래서, 정규 해군을 갖추어야 한다는 정부의 외침은 항상 무시되었다.  
 “사실은, 정규군이 생긴다면 더 이상 불법 무역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아?”
 “그렇겠지.”
 어느새 엘베의 뒤로 다가온 사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가 온 건 어떻게 안 거야?”
 “소리가 들렸으니까.”
 “…모래밭인데?”
 “들렸어.”
 “이 괴물 같은 놈.”
 고개를 저으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에른슈타인 경이 찾으셔.”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쳇.”
 나이답지 않게 투덜거리는 엘베를 본 사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익숙한 일이기 때문인지 별 말은 하지 않았고,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본 엘베는 계속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경은 무슨 얼어죽을.”
 “어이.”
 “솔직히, 왕국도 아닌 공화국에서 경이 뭐냐. 마지막으로 왕이 사라진 게 벌써 100년이 넘는데 말야. 게다가 왕이라면 아직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경이니 공이니 하면서 떠들어 댈 때마다 우습다구. 안 그래?”
 “그래도 네 할아버지잖아.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그러니까 더 심각한 거라구.”
 팔꿈치 부근까지 흘러내린 옷깃을 여민 엘베의 눈이 언덕을 향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시청의 모습이 그의 눈을 가득 채웠다. 마치 거대한 신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엄한 건물. 그러나 그것을 본 엘베의 눈은 웬지 흐려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모른다니까.”
 “보좌관이라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윽.”
 “그러니까 월급 도둑이라는 소리나 듣지.”
 “시끄러워. 이게 바로 모범적인 공무원의 전형이란 말이다!”
 “…그래. 너 잘났다.”
 한심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은 엘베는 그대로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회색 빛이 도는 편마암으로 포장된 도로. 그것은 현재의 알스터가 가진 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알스터가 가진 모습의 단편일 뿐이다. 굳이 에더까지 가지 않더라도, 몰락한 시민들의 모습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일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세력을 넓혀 알스터 전체의 부를 늘리는 일에만 골몰할 뿐이다.
 그들은, 부를 가지지 못한 시민은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시청 앞에 도착한 것을 느낀 엘베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건물 안으로 발을 옮겼다.
 건물 안은, 그 외면과는 달리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화려한 그림이 수놓인 붉은 비단이 복도 양 측면을 장식하고 있다. 수놓인 용이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만 같은 그것을 보며, 엘베는 눈을 찌푸렸다.
 “왜 또?”
 “저거, 카한에서 사 온 거라고 했지?”
 “응.”
 “얼마 짜리야?”
 “3700만 마르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젠장.”
 손을 들어 잔뜩 찌푸려진 눈을 가린 엘베는 작은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사회주의자냐?”
 “무슨 헛소리야?”
 “아니, 어차피 세금으로 산 건데 그렇게까지 짜증 낼 건 없잖아.”
 “…역시 넌 공무원이 딱이다.”
 “무슨 의미냐?”
 “아니. 그냥 그렇다구.”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시선이 따가웠던지, 엘베는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덕분에, 그는 평상시보다 일찍 집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응?”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집무실 안에 있던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왔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냐.”
 “무슨 일입니까?”
 “일단 앉아라. 아, 카츠만 군도 앉게나.”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엘베는 붉은 빛이 도는 가죽의자에 몸을 묻었다.
 자리에 앉은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노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서류를 뒤적이고 있는 그를 본 엘베는 입매를 조금 비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었지만, 노인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서류만 뒤적이고 있었다.
 “…가도 되겠습니까?”
 “앉아 있어.”
 ‘젠장.’
 괜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딱히 중압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몸을 일으키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엘베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열린 창을 통해 그것을 본 엘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앉아있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루함을 느낀 엘베의 입이 열리려 할 때, 서류를 뒤적이던 손을 멈춘 노인은 그를 향해 말을 건넸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이제 두 건만 처리하면 되니까.”
 “그럼 애초에 다 처리한 다음에 부르셨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젊은 놈이 겨우 그거 가지고 불평은.”
 어쩐지 비웃음이 섞인 것 같은 반응에, 엘베는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고개를 돌린 그를 향한 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다.
 “함대를 하나 맡아줘야겠다.”
 “……?”
 잔뜩 찌푸려진 얼굴을 돌린 엘베는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알스터의 법은 법무관 이상의 직위를 가진 사람은 사설함대를 가질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달고 있었다. 그것은 부패를 막기 위한 조항이었지만, 더불어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계로 입문하는 것을 막는 조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조항은 정치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력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 법에 근거를 둔 미묘한 균형은 이 알스터라는 국가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계와 재계는 이 법에 불만보다는 만족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어느 한 쪽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이 가진 이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상대편에 의해 그 불만은 억눌러지기 마련이었고, 그런 균형을 깨려 하는 사람은 양쪽 모두의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이 법은 긴 시간 동안 유지되었으며, 이 법을 폐지하려 하거나 법망을 피하기 위한 편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사회에서 매장당했다.
 그리고, 그 균형은 지금도 유효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잠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본 엘베는 굳이 의문을 담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엘베의 앞에 앉아있는 노인, 아론 반 에델슈타인은 알스터의 법무관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설함대를 조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직계인 엘베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텐데도 함대를 맡으라는 말을 하는 이유를, 엘베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법무관에서 은퇴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죽을 때까지 해 먹을 생각이다.”
 “그럼?”
 “해군이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당황한 나머지 얼빠진 얼굴을 한 엘베와, 그와는 정 반대의 표정을 짓고 있는 아론의 얼굴을 본 사내, 셰어도어 반 카츠만은 그 둘 사이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미묘한 상황을 지워낸 것은, 정신을 차린 엘베가 내뱉은 말이었다.
 “재계에서 해군 창설을 반길 리가 없을텐데요.”
 “물론.”
 “…그런데,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편법이지.”
 “편법?”
 몸을 조금 일으킨 엘베는 고개를 돌려 셰어도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당황을 머금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시선을 옮겨 아론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해적이지.”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해적이 되라는 거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두 청년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아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현재 우리 알스터는 대륙간 무역을 통해 많은 이득을 보고 있다.”
 “저기, 법무관님.”
 “질문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만, 법무관님. 그건 너무…….”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의외로 강경한 아론의 자세는 반론을 펼치려던 셰어도어의 입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것은 막 말을 꺼내려 하던 엘베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래서, 엘베는 입을 다시 다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계속 하시죠.”
 “건방진 놈.”
 씹어뱉듯이 소리를 낮춘 아론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이엔과 이 대륙 사이의 무역 중에서 알스터가 취급하지 못하는 물건이 하나 있지.”
 “…담배를 말하는 거군요.”
 “그렇지.”
 “그럼, 교회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겁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안 그런가, 카츠만 군?”
 “무,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알스터가 그것을 취급하려면…… 아아.”
 “알겠나?”
 엘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무리 최강의 해군력을 지닌 알스터라 해도 교회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아니, 사실 교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교회를 따르는 대륙의 국가들이다.
 따라서 교회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이엔과의 무역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았다. 아니, 비율이 아닌 금액으로 따져도 그 액수는 천문학적이다. 그 거리 탓에 일년에 벌어지는 교역은 겨우 스무 회를 넘기지 못하지만, 그 적은 숫자의 교역에서 얻어지는 이득은 거의 알스터의 일년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다. 따라서, 교회의 일방적인 횡포로 인해 담배무역에서 손을 떼게 된 알스터로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국제법에 따르면, 해적선을 나포했을 시 그곳에 실린 교역품은 나포국의 소유가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담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합법적인 무역은 불가능하지만, 해적선을 나포했을 경우 그 함선에 실린 담배는 합법적으로 팔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알스터는 그런 조항을 이용해 담배 무역에 뛰어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에서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요.”
 “아니. 오히려 이 계획은 그쪽에서 먼저 내놓은 거다.”
 “그렇습니까?”
 “물론 교회에게서 빼앗은 담배는 원가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가격으로 넘겨야 하지만 말아.”
 “…대단한 선심이군요.”
 한껏 비꼬는 심정을 충분히 담아 말을 내뱉은 엘베는 고개를 조금 비틀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어쨌든 해적이라면 국가로부터의 원조는 기대할 수 없겠군요.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오히려 알스터는 해적 토벌이라는 명분 하에 그 함대를 공격할테고, 끝내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거나 교수대에 매달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지.”
 “차라리 이 계획을 교회에 밀고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군요.”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는 놈이 말은 잘 하는군.”
 “뭐, 그렇긴 합니다만.”
 두 손을 들어올리며 고개를 저은 엘베는 셰어도어를 바라보았다.
 “넌 어때?”
 “안정적인 직장을 잃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역시 넌 모범적인 공무원이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야?”
 “칭찬이야.”
 전혀 그럴 리가 없다는 셰어도어의 표정을 무시한 채, 엘베는 다시 아론을 바라보았다.
 “뭐냐.”
 “그럼 함대도 소규모겠군요.”
 “1함대는 전열함 1척, 프리깃 3척에 슬루프 3 척이다.”
 “1함대? 그럼 더 있다는 뜻입니까?”
 “3함대까지 있다. 그리고 네가 맡을 함대가 3함대고.”
 “함선은?”
 “슬루프 한 척.”
 “의외군요.”
 “적다는 거냐?”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법무관 손자에게 주는 것 치곤 너무 과하군요.”
 “그렇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을 본 셰어도어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표정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아론과 엘베의 표정에 그가 먼저 질려버렸고, 그래서 그는 잔뜩 힘이 빠진 얼굴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1함대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단순한 해적이 그 정도의 규모로 시작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요.”
 “2함대도 비슷한 규모다. 그리고, 어차피 선상 반란으로 해적이 된다는 시나리오니까 별 문제는 없어.”
 “…그것 참 편리하군요.”
 “함대 전체가 선상 반란이라는 건 아무도 믿지 않을 텐데요.”
 “좋은 지적이네, 카츠만 군.”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서류를 뒤적이던 아론은 쌓여있는 서류 더미에서 한 장의 양피지를 꺼내들었다.
 “일단, 1함대는 선상반란으로 설정되어 있지. 그리고 2함대는 그 1함대를 추격하다 패해서 해적에 합류하는 걸로 되어 있어.”
 “그럼, 3함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1함대를 맡을 녀석이 사샤 폰 케즈만이지.”
 “그런 겁니까.”
 “그래. 친구가 해적이 되었다면 친구를 잡기보다는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
 “물론 제 목엔 현상금이 걸리겠군요.”
 “3만 마르크 정도를 걸 생각이다.”
 “…정말 감사하군요.”
 비교적 큰 소리로 투덜거리며, 엘베는 다시 의자에 몸을 묻고는 눈을 감았다.
 알스터라는 국가의 입장에선 너무도 매력적인 선택안이다. 어차피 잘못된다 해도 잃을 것은 아주 적다. 아니, 오히려 얻을 것이 더 많다. 설령 채 1년도 되지 않아 함대 셋을 전부 잃어버린다 해도 교회의 함대를 격침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 교회의 함대 중엔 알스터에 소속된 함선도 일부 있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교회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할 알스터인은 거의 없었다. 설령 알스터에 소속된 함선이라 해도, 교회의 세력인 이상 그것이 깎인다면 알스터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선원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물론 죄수나 국가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선원이 동원될 거다.”
 “당연히 일반 선원에겐 이 계획을 비밀로 하겠지요?”
 “당연하지.”
 “결국, 저만 나쁜 놈이 되는 거군요.”
 “다른 제독들도 있다.”
 “그거나 그거나…….”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해라.”
 “어차피 거절할 리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잖습니까.”
 “그냥 해 본 말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베는 시선을 돌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위엔 둥근 달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물결이 일렁이는 것에 맞춰 조금씩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하는 모습. 언제나와 같지만, 어쩐지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엘베?”
 “아아.”
 조금 흥분했는지, 시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는 걸 느낀 엘베는 손에서 힘을 뺐다.
 “멍청한 놈.”
 “물어주면 될 거 아닙니까.”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 엘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오른손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가죽은 물론 나무로 만들어진 손 받침대마저 완전히 뒤틀려있었다. 마치 거인이라도 다녀 간 듯한 모습. 그것을 보며, 엘베는 쓴웃음을 지었다.
 “진수식은 언제 하는 겁니까?”
 “내일.”
 “…참 빨리도 말해주십니다.”
 “어차피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따로 준비할 거라도 있는 거냐?”
 “있을 리가 없지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킨 엘베는 또 다시 흘러내린 옷자락을 여미며 몸을 돌렸다.
 커튼에 가려진 창으로 다가간 그는 은빛 커튼을 걷었다. 모습을 드러낸 창을 조금 거친 동작으로 밀어낸 엘베의 눈이, 화려한 불빛에 싸여있는 항구로 향했다.
 잠시 무언가를 찾는 듯이 움직이던 그의 눈이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네 개나 되는 마스트(돛대)를 달고 있는 함선이 보인다. 값비싼 보라색 염료로 물들인 스팽커에 그려진 다섯 개의 날개. 그것은, 저 함선이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주 돈으로 처발랐군.”
 “기부금만 해도 넘칠테니까.”
 “그런데 무역에 뛰어든 걸 곱게 볼 수 없다… 는 겁니까?”
 “그렇지.”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한 건 세상의 진리인가 보군.’
 누구를 향해 비꼬는 건지 모를 말을 되뇌면서, 엘베는 다시 조금 전에 눈에 담았던 함선을 자세히 살폈다.
 약 40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는 함선이다. 이 알스터 외엔 저런 거함(巨艦)을 건조할 수 있는 구각는 없다. 그렇기에 저런 거함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알스터뿐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것에서도 예외적인 존재였다.
 교회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알스터지만, 교회에 뿌리를 둔 세력은 다른 국가에 근거를 둔 비슷한 존재들처럼 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알스터 전체를 뒤집을만큼 강하지는 않아도 정부의 골머리를 썩일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었고, 그 세력은 느리긴 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존재는 교회가 강한 해양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교회가 대륙간 무역에 뛰어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력을 키운 교회는 다시 그들에게 힘을 보탰고, 더 커진 교회를 등에 업은 그들은 계속해서 알스터를 집어삼키려 했다.
 만약, 교회가 가진 거함을 모두 빼앗을 수만 있다면 알스터가 가진 골칫거리는 사라질 것이다.
 “겨우 슬루프 하나로 저런 거함을 상대하라니, 기가 막혀서.”
 “엄살은.”
 “남의 일이라고 말 막하는 거 아니다.”
 “남의 일은 아니지.”
 “에?”
 “카츠만 군도 3함대 소속이니까.”
 “에엑!”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지나치게 당황한 듯한 셰어도어를 본 엘베는 시선을 돌려 아론을 바라보았다.
 “이런 약골을 데리고 나가라는 겁니까?”
 “장부 정리할 사람은 필요할 거 아니냐.”
 “버, 법무관님!
 극도로 당황한 셰어도어는 아론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당황한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 소리도 담지 못한 바람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잠시 그를 바라보던 아론은 고개를 돌려 그를 무시한 채 다시 엘베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만.”
 “뭡니까?”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습니다만, 어차피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다행이군.”
 “저, 법무관님…….”
 “뭔가?”
 “저, 아무래도 전 지병이 있어서 말입니다. 게다가 공무원이 해적이 된다는 건 좀 우습지 않습니까?”
 “걱정 말게. 자네는 어제부로 해고 된 걸로 되어 있으니까.”
 “법무관님!”
 기절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붉어진 얼굴을 한 셰어도어를 보며, 아론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왜, 실업수당이나 받으면서 방바닥이나 긁고 싶은 건가?”
 “…….”
 너무도 태연히 말하는 아론에게 질렸는지, 더 이상 셰어도어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한편의 코미디같은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엘베는 작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그의 눈에 다시 들어온 교회의 함선은 달빛을 받아 신비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돛에 뿌려진 진주 가루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엘베로서는 그것을 신의 기적이라기보다는 돈의 힘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는 생각을 하며 입매를 비틀었다.
 ‘저런 걸 보면서 신은 위대하다고 말하는 건…….’
 우습다.
 과거의 한 철학자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의 사상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간혹 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지만, 그들은 이단으로 몰려 교수대에 매달리는 것으로 생을 끝냈다.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떠올리면서, 엘베는 짙은 비웃음을 입에 물었다.
 과연 신성은 있는가… 라는 질문은 아르케에 의해 세력이 커진 교회가 대륙을 집어삼킨 순간부터 계속해서 던져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여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얻지 못했다.
 신이 아닌 아케인에 근거를 둔 힘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교회의 주장을 비웃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교회에 반기를 드는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열렬한 신자가 되곤 했다. 인간의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능력을 사용하는 그들에게 있어, 이단 재판이라는 교회의 칼날은 언제라도 자신들의 목을 벨 수 있는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초 자연적인 존재에 근원을 뒀으면서도, 권력과 재력이라는 세속의 무기를 휘두르는 교회를 떠올린 엘베의 입에 물린 비웃음은 계속해서 그 크기를 키웠다.
 ‘한방 먹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리고 위험도 크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일. 그러나 엘베에게 있어 그런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약간의 트러블에 불과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오면 되는 겁니까?”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시 까지 오면 된다.”
 “의외군요.”
 “함장이니까. 간단한 준비 정도는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런 겁니까.”
 “그렇지.”
 귀찮게 됐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엘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연신 불평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아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곧 입을 다문 채 셰어도어를 바라보았다.
 “실업수당이나 받으면서 방바닥 긁을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오는 게 좋을 거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고작 일년에 80마르크로 버티겠다는 거야?”
 “미치겠네.”
 머리를 벅벅 긁던 셰어도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일년에 쓰는 담배 값만 60마르크라구. 그런데 고작 80마르크라니, 이거 너무한 거 아냐?”
 “그럼 배를 타면 되는 거 아닌가.”
 “…적어도 담배는 원 없이 피울 수 있겠군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셰어도어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연봉은 얼맙니까?”
 “하기에 따라서 다르겠지.”
 “결국 알아서 해먹으라는 말이시군요.”
 “그런건 익숙하지 않은가.”
 “공무원이 그거 말고 또 뭐에 익숙하겠습니까.”
 체념한 듯이 말하는 그를 보면서, 아론은 엘베를 향해 다시 말을 건넸다.
 “내일 항구로 오면 붉게 칠해진 슬루프가 하나 있을 거다.”
 “이름은 뭡니까?”
 “핫스퍼(hotspur).”
 “좋은 이름이라는 말은 못 하겠군요.”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름이지.”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을 한 엘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핫스퍼… 무모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받아들인 상황과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어쩐지 재밌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을 느끼며, 엘베는 창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한동안 항구를 바라봤지만 붉게 칠해진 함선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조선소에 있거나, 아니면 다른 함선에 가려진 탓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엘베는 어쩐지 불쾌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핫스퍼… 라.’
 무모함으로 끝날 생각은 없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군.’
 웃고 있는 건지, 아니면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모를 기묘한 표정을 얼굴에 띄우며,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정말 잘린 겁니까?”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질 걸세.”
 “…….”
 짙은 한숨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 소리에 눈을 뜬 엘베는 고개를 돌려 셰어도어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떨군 채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렇게 잘릴 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못 해 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돈 좀 빼돌릴 걸 그랬군요.”
 “그게 법무관 앞에서 할 소린가?”
 “어차피 해적이 될 몸인데요.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자네, 아주 막 나가기로 했군.”
 “에휴.”
 다시 한숨을 내쉰 셰어도어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는 엘베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지만, 그 동공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진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가 공무원이 되려고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데…….”
 “나도 놀고 먹으려고 공부 많이 했어.”
 “이봐.”
 “왜?”
 “…아니다.”
 황당함과 허탈함이 결합된 기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다 고개를 떨구는 셰어도어를 본 엘베는 희미한 웃음을 물며 다시 항구를 바라보았다.
 환한 불빛을 담은 전등이 가득 펼쳐진 항구의 모습. 익숙한 모습이지만, 웬지 조금은 달라보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당하는 건 억울하단 말야.’
 해적이라는 편법을 사용해 해군을 창설하겠다는 것은 사실의 절반일 뿐이다.
 재력을 가진 자와 권력을 가진 자의 공조는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 어느 한쪽이라도 돌아서고자 마음먹는다면 갈라지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둘 사이에 끼인 해군은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진짜 해적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다.
 고개를 돌려 아론을 보며, 엘베는 비웃음을 입에 물었다.
 아마, 먼저 공조를 깨는 것은 정계일 것이다.
 해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군을 운용한다는 것은 지나친 부담이다. 게다가 그런 해군으로는 점점 힘을 키우고 있는 재계를 견제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정계는 국가를 배신한 해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정규 해군을 키울 것이다. 물론 재계의 반발이 있겠지만, 그것은 해적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회를 등에 업으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재계가 몰락하면 교회에게서도 등을 돌릴 것이다.
 재계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법무관의 손자인 자신이 필요한 것이다.
 ‘순순히 당해 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어쩌면 자신의 반발마저도 생각하고 계획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그 편이 옳을 것이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은, 오히려 그렇게 하라는 강요다.
 ‘결국, 내가 급조한 해군을 격파하면 더 큰 세력을 키우겠다는 뜻이군.’
 1함대와 2함대를 맡은 사람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수락한 것은, 아직은 알 수 없는 뒷거래가 있었다는 뜻이다.
 아주 잠깐,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렇군.”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엘베는 그것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복도에 난 창으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한심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그저 기분이 나빠졌을 뿐, 그러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창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곧 허전함이 그의 손에 닿았다. 시선을 조금 내린 그의 눈에 완전히 바스러진 창틀의 모습이 들어와, 그 허전함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또 흥분했군.”
 손을 털어 부스러기들을 떨쳐낸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붉게 물들어가는 수평선의 모습과, 붉은 빛을 받아 돛의 끝이 주황색으로 변한 함선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핫스퍼…….”
 무모함이, 어떻게 바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묘한 웃음이 그의 입에 물렸다. 섬뜩한 느낌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웃음. 그것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입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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