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길한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인간들, 전형적인 도둑들의 모습이었다. 그 것도 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도둑이 된 녀석들이 아닌, 예전에는 한끼식사로 처리했을 상당히 사악한 녀석들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 오늘은 횡재했는걸. 저정도 외모면 남자 녀석이라도 팔면 꽤 돈이 되겠어."
음침한 목소리, 예전에는 식용으로 사용을 해서 그다지 무섭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녀석이 건방지게 감히 누구에게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하긴 악마도 아닌 내가 이런 소리를 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날 훑어보고 있는 눈길이, 젠장! 이 녀석, 보통 강도가 아닌 노예사냥꾼이었나? 인간 생활 첫날 아직 어색한 면이 많이 있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보아하니, 그다지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한테 곱게 잡히면 최고한 먹을 것 하나는 풍족하게 주지. 우리 고가의 상품이 마르면 곤란하니까."
녀석들 중에 제일 뺀질뺀질하게 생긴 녀석이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누더기와 비슷한 내 옷차림. 그렇게 보일만도 하지만. 휴, 아마, 저 녀석이 거래 담당이겠지? 다른 녀석들은 노예를 거래하기에는 외모상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도시에 나가면 경비병들에게 딱 잡히기 좋은 녀석들, 난 아무말없이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이런 녀석들이 곱게 풀어달라고 한다고 풀어줄 놈들도 아니란 것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악마였다는 것이 이럴 때는 최소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악마였을 때도 의문스러운 점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녀석들은 항상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내가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자, 그 중 제일 성질이 더럽게 보이는 녀석이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뭐, 그런 소리를 들어도 여전히 무섭지 않은 것은 마찮가지 였기에 여전히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잠간의 침묵, 노예사냥꾼으로 보이는 녀석들은 내 반응이 전혀 의외였는지. 흥분한 그 녀석을 제외하고는 조금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젠장, 조금 상처가 나도 상관없다! 저녀석을 그냥 잡아버려! 건방진 놈 오늘밤은 내가 귀여워해주지. 그 오만한 눈빛이 어떻게 바뀌는지 두고 보자."
흥분한 녀석이 두목이었는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검을 든 놈 다섯명, 아마 뒤에서 활을 들고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 되는 놈 두 명, 그 밖에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 다섯명정도, 작은 규모의 노예사냥꾼들이었다. 대규모라면 인간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정말 순순히 끌려갈 방법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규모라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천사장 앞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고작 노예사냥꾼들 때문에 내 소망, 내 꿈을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별말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녀석들 중 한 놈이 실실 웃으며 칼을 들고 다가왔다. 만만하게 보는 것인가? 오히려 잘됬다. 최소한 무기 하나는 뺏을 수 있으므로. 난 빠르게 녀석이 무기를 들고 있는 손을 쳤다. 녀석은 뜻밖의 공격이었던 듯 내 공격에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려버렸다.
난 녀석이 떨어트린 칼을 빠르게 들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수천년 간의 수련, 인간의 몸으로 바뀌어서 그런지 힘과 스피드 등 육체적인 조건이 전보다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순수한 검술실력만은 웬만한 인간보다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검을 뺏어들자 내 쪽으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오던 녀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휴, 또 죄를 짓게 되는 것인가? 노예 사냥꾼 녀석들은 죽이지 않으면 끝까지 쫓아와서 보복을 한다. 특히 이런 소규모의 사냥꾼 녀석들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고. 웬만하면 또 검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는데, 싸우지 않으면 죽거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녀석은 혼자다, 두려워하지마라! 모두 동시에 공격!"
잠시 머뭇거리던 놈들은 나를 향해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난 인간인 내 몸 상태도 실험해 볼 겸 난 녀석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악마였을 때라면 맨손으로 싸워도 이겼을 텐데, 이런 녀석들을 상대로 상급악마나 천사들과 전투를 벌릴 때만 사용했던 검술을 써야 하다니.
확실히 경험이 꽤 많아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보통 어설프게 한놈씩 덤비다가 죽는 경우가 많았는데 녀석들은 내가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도 못하면서도 철저하게 동시에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생각 외로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지 녀석들의 움직임 정도는 정확하게 내 눈 안에 다 들어오고 있었다. 감각, 이 감각만은 인간이 되어도 그다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우세함을 믿고 방심하며 내 옆구리 쪽을 향해 들어오는 녀석들의 칼을 피하며,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전투에서 방심은 곧 금물. 난 내 오른쪽에서 접근하던 녀석의 심장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칼을 꼽았다. 그리고 바로 칼을 뽑으며 녀석의 가슴부분을 베어버렸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놈들. 전투에서 방심을 하다니, 사자는 쥐 한 마리를 잡는데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는 인간들의 속담이 있다. 하물며, 아무리 인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난 쥐새끼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휴, 녀석들의 시체를 보며 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천사들도 인간들을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에 위안삼으며, 하긴 너무 인간의 피를 많이 뒤집어쓴 까닭에 타락천사가 되어버리는 경우역시 종종보아왔지만. 하지만 나중에 다시 악마가 되버리더라도, 아니, 최악의 경우 지옥의 업화에 휩싸이게 되더라도 지금은 죽을 수는 없다. 지금 죽는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될 필요가 없었을테니까.
"저 녀석! 보통 놈이 아니었잖아."
난 녀석들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며 놀란 표정을 한 채 빈틈을 보이는 대장 옆에 있던 녀석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엄습하는 살기, 난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급하게 피하였다. 활을 들고 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는 화살, 확실히 인간의 몸은 반응하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아차 하다가는 죽을 뻔 했을지도 모르겠군.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해오는 녀석의 배를 검으로 찌르며 뒤로 물러섰다. 날 포위하고 있던 포위망은 세 명이 죽어버림으로서 있으나 없으나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난리 중에서도 내가 느꼈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인간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살기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 잡혀가는 노예들인가?
이제 검을 든 녀석들 중 남은 것은 대장과 그 뺀질뺀질해 보이는 녀석 두명이었다. 난 나에게 그 뒤로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여유있게 피하며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아까는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기 때문에 위험했었지만 화살을 쏘는 놈들의 위치를 아는이상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살을 피하는데 더 이상 체력을 배았기고 싶지 않았기에 녀석들을 향해 검을들고 달려갔다. 두명의 긴장한 표정, 이제서야 실력차이를 느낀 것인가? 아무리 바보라고해도 수천년간 검술을 수련한다면 왠만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하긴 그사실을 저녀석들은 모르고 있었을테니까.
"당신 혹시 기사였소?"
뺀질 뺀질한 녀석이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쩝, 기사는 무슨, 그냥 지나가던 나그네일 뿐이지. 난 녀석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일단 약해보이는 뺀질뺀질한 녀석을 노리고 칼을 움직였다. 하지만 녀석은 생각 외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내 검을 막아내었다. 검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부러지는 검, 난 황당함에 내가 들고 있던 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가 검을 든 순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검은 전에 내가 들고 있던 드래곤의 뼈로 만든 그 검이 아니라, 녹이 조금 쓸어있는 노예사냥꾼의 검이라는 사실을.
난 내가 들고 있던 검이 부러진 직후 연속적으로 들어오는 화살과 검들을 피하며 뒤 쪽에 다른 녀석이 쓰던 검이 떨어진 곳을 향해 움직였다. 땅에 떨어진 검을 드는 순간 내 손등을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통증과 붉은색피,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회를 느끼며 난 피를 흘리는 오른손 대신 왼손에 검을 옴겨쥔체로 다시 녀석들을 향해 공격을 들어갔다.
두명을 상대로 조금씩 밀어붙였지만 이 녀석들은 먼저 죽은 나머지 세명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방어중심으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그래도 금방 승부를 낼 수 있었겠지만 가끔씩 날아오는 화살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대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혼자인 내가 불리하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서열 100위대의 악마 다섯명과 싸워었는데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았었다. 그 때도 간신이 이기긴 했었지만...그 때 내가 위험하게된 요인이 시간을 너무 끌었다는 점이었다.
다음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난 일부러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중심을 잃은척 몸을 비틀거렸다. 이 녀석들은 전투에서는 극한의 경지에 오른 상급 악마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머리에 떠올리며, 역시 그 순간을 참지못하고 대장 녀석이 공격을 해왔다. 난 뺀질한 녀석도 공격을 해오기를 바랬지만 녀석은 확실히 머리가 그 대장 녀석보다 좋은 까닭인지 공격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어깨를 내리고 휘두르는 그 대장 녀석의 검을 피하며 검을 휘둘러 빈틈이 생긴 녀석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제 한명, 한명을 상대로라면 화살 공격을 해온더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 수록 확실히 느끼는 점이지만 활을 쏘는 녀석들의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별로 먼거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중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내가 혼자 남은 녀석을 슬며시 쳐다보자 뺀질한 녀석의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난 아무꺼리낌 없이 일대일 대결용으로 개발했던 내 검술을 사용했다. 검이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내 몸도 약해졌으니 쓰기도 전에 박살나 버리지는 않겠지.
난 검기를 담아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악마였을 때에 비해 검에 맺히는 검기는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녀석의 검과 내 검이 부딪히는 순간, 녀석의 검이 부러지며 녀석의 몸에는 일자로 길게 상처가 났다. 그리고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녀석, 난 검에 금이 간것을 느꼈지만 이 정도로도 칼이 없는 궁수 두명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다.
나를 피해 잽싸게 도망가는 궁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 한명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활을 쏘고 있던 녀석을 쳐다보았다. 나무 위에 있었던 까닭에 마땅히 도망칠 곳을 찾지도 못한체 녀석은 계속 맞추지도 못하는 화살만 쏘고 있었다. 난 녀석의 화살을 피하며 기회를 보다 녀석이 내게 활을 쏘려는 순간 난 금이간 칼을 녀석에게 던져버렸다. 검이 부러지며 궁수의 이마에 검이꽂혔다. 그리고 중심을 잃고 나무아래로 떨어지는 궁수.
인간이 되자 마자 시작부터 이렇게 많은 살인이라니, 난 이제 다시 구원받기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녀석들의 사악한 마음을 확실히 꽤뚫고 있었던 까닭에 죄책감과 같은 것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과 다르게 조금 찝찝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아마 악마들이 이 시체들을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하겠지 아까운 식량을 누가 이렇게 버려놨냐고, 뭐, 악마 였을 때도 그다지 인육을 즐기지 않은 난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된마당에 먹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혹시나 녀석들의 패거리가 더 있을까 조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껴져지는 인간들의 기운을 따라 걸어갔다. 수풀 뒤에 있는 마차 두개, 다행히 경비를하고 있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마차의 철장안에는 내가 느꼈던 것 처럼 다섯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런대로 괜찮은 외모의 여자 세명과 어린 남자애 두명. 휴 어떤 용도로 팔려가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철장안에 있는 사람들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내모습을 보더니 어린애는 울어 버리고, 여자두명은 기절을 해버렸다. 쩝, 예전에 악마였을 때는 이보다 더 심각한 모습인 상태로 여자들과 마주쳤을 때도 여자들에게 이런반응이 오지는 않았는데, 하긴 그 때는 그 여자들이 흑마력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직접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오늘은 횡재했는걸. 저정도 외모면 남자 녀석이라도 팔면 꽤 돈이 되겠어."
음침한 목소리, 예전에는 식용으로 사용을 해서 그다지 무섭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녀석이 건방지게 감히 누구에게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하긴 악마도 아닌 내가 이런 소리를 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날 훑어보고 있는 눈길이, 젠장! 이 녀석, 보통 강도가 아닌 노예사냥꾼이었나? 인간 생활 첫날 아직 어색한 면이 많이 있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보아하니, 그다지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한테 곱게 잡히면 최고한 먹을 것 하나는 풍족하게 주지. 우리 고가의 상품이 마르면 곤란하니까."
녀석들 중에 제일 뺀질뺀질하게 생긴 녀석이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누더기와 비슷한 내 옷차림. 그렇게 보일만도 하지만. 휴, 아마, 저 녀석이 거래 담당이겠지? 다른 녀석들은 노예를 거래하기에는 외모상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도시에 나가면 경비병들에게 딱 잡히기 좋은 녀석들, 난 아무말없이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이런 녀석들이 곱게 풀어달라고 한다고 풀어줄 놈들도 아니란 것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악마였다는 것이 이럴 때는 최소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악마였을 때도 의문스러운 점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녀석들은 항상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내가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자, 그 중 제일 성질이 더럽게 보이는 녀석이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뭐, 그런 소리를 들어도 여전히 무섭지 않은 것은 마찮가지 였기에 여전히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잠간의 침묵, 노예사냥꾼으로 보이는 녀석들은 내 반응이 전혀 의외였는지. 흥분한 그 녀석을 제외하고는 조금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젠장, 조금 상처가 나도 상관없다! 저녀석을 그냥 잡아버려! 건방진 놈 오늘밤은 내가 귀여워해주지. 그 오만한 눈빛이 어떻게 바뀌는지 두고 보자."
흥분한 녀석이 두목이었는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검을 든 놈 다섯명, 아마 뒤에서 활을 들고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 되는 놈 두 명, 그 밖에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 다섯명정도, 작은 규모의 노예사냥꾼들이었다. 대규모라면 인간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정말 순순히 끌려갈 방법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규모라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천사장 앞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고작 노예사냥꾼들 때문에 내 소망, 내 꿈을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별말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녀석들 중 한 놈이 실실 웃으며 칼을 들고 다가왔다. 만만하게 보는 것인가? 오히려 잘됬다. 최소한 무기 하나는 뺏을 수 있으므로. 난 빠르게 녀석이 무기를 들고 있는 손을 쳤다. 녀석은 뜻밖의 공격이었던 듯 내 공격에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려버렸다.
난 녀석이 떨어트린 칼을 빠르게 들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수천년 간의 수련, 인간의 몸으로 바뀌어서 그런지 힘과 스피드 등 육체적인 조건이 전보다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순수한 검술실력만은 웬만한 인간보다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검을 뺏어들자 내 쪽으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오던 녀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휴, 또 죄를 짓게 되는 것인가? 노예 사냥꾼 녀석들은 죽이지 않으면 끝까지 쫓아와서 보복을 한다. 특히 이런 소규모의 사냥꾼 녀석들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고. 웬만하면 또 검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는데, 싸우지 않으면 죽거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녀석은 혼자다, 두려워하지마라! 모두 동시에 공격!"
잠시 머뭇거리던 놈들은 나를 향해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난 인간인 내 몸 상태도 실험해 볼 겸 난 녀석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악마였을 때라면 맨손으로 싸워도 이겼을 텐데, 이런 녀석들을 상대로 상급악마나 천사들과 전투를 벌릴 때만 사용했던 검술을 써야 하다니.
확실히 경험이 꽤 많아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보통 어설프게 한놈씩 덤비다가 죽는 경우가 많았는데 녀석들은 내가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도 못하면서도 철저하게 동시에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생각 외로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지 녀석들의 움직임 정도는 정확하게 내 눈 안에 다 들어오고 있었다. 감각, 이 감각만은 인간이 되어도 그다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우세함을 믿고 방심하며 내 옆구리 쪽을 향해 들어오는 녀석들의 칼을 피하며,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전투에서 방심은 곧 금물. 난 내 오른쪽에서 접근하던 녀석의 심장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칼을 꼽았다. 그리고 바로 칼을 뽑으며 녀석의 가슴부분을 베어버렸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놈들. 전투에서 방심을 하다니, 사자는 쥐 한 마리를 잡는데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는 인간들의 속담이 있다. 하물며, 아무리 인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난 쥐새끼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휴, 녀석들의 시체를 보며 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천사들도 인간들을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에 위안삼으며, 하긴 너무 인간의 피를 많이 뒤집어쓴 까닭에 타락천사가 되어버리는 경우역시 종종보아왔지만. 하지만 나중에 다시 악마가 되버리더라도, 아니, 최악의 경우 지옥의 업화에 휩싸이게 되더라도 지금은 죽을 수는 없다. 지금 죽는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될 필요가 없었을테니까.
"저 녀석! 보통 놈이 아니었잖아."
난 녀석들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며 놀란 표정을 한 채 빈틈을 보이는 대장 옆에 있던 녀석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엄습하는 살기, 난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급하게 피하였다. 활을 들고 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는 화살, 확실히 인간의 몸은 반응하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아차 하다가는 죽을 뻔 했을지도 모르겠군.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해오는 녀석의 배를 검으로 찌르며 뒤로 물러섰다. 날 포위하고 있던 포위망은 세 명이 죽어버림으로서 있으나 없으나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난리 중에서도 내가 느꼈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인간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살기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 잡혀가는 노예들인가?
이제 검을 든 녀석들 중 남은 것은 대장과 그 뺀질뺀질해 보이는 녀석 두명이었다. 난 나에게 그 뒤로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여유있게 피하며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아까는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기 때문에 위험했었지만 화살을 쏘는 놈들의 위치를 아는이상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살을 피하는데 더 이상 체력을 배았기고 싶지 않았기에 녀석들을 향해 검을들고 달려갔다. 두명의 긴장한 표정, 이제서야 실력차이를 느낀 것인가? 아무리 바보라고해도 수천년간 검술을 수련한다면 왠만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하긴 그사실을 저녀석들은 모르고 있었을테니까.
"당신 혹시 기사였소?"
뺀질 뺀질한 녀석이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쩝, 기사는 무슨, 그냥 지나가던 나그네일 뿐이지. 난 녀석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일단 약해보이는 뺀질뺀질한 녀석을 노리고 칼을 움직였다. 하지만 녀석은 생각 외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내 검을 막아내었다. 검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부러지는 검, 난 황당함에 내가 들고 있던 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가 검을 든 순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검은 전에 내가 들고 있던 드래곤의 뼈로 만든 그 검이 아니라, 녹이 조금 쓸어있는 노예사냥꾼의 검이라는 사실을.
난 내가 들고 있던 검이 부러진 직후 연속적으로 들어오는 화살과 검들을 피하며 뒤 쪽에 다른 녀석이 쓰던 검이 떨어진 곳을 향해 움직였다. 땅에 떨어진 검을 드는 순간 내 손등을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통증과 붉은색피,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회를 느끼며 난 피를 흘리는 오른손 대신 왼손에 검을 옴겨쥔체로 다시 녀석들을 향해 공격을 들어갔다.
두명을 상대로 조금씩 밀어붙였지만 이 녀석들은 먼저 죽은 나머지 세명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방어중심으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그래도 금방 승부를 낼 수 있었겠지만 가끔씩 날아오는 화살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대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혼자인 내가 불리하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서열 100위대의 악마 다섯명과 싸워었는데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았었다. 그 때도 간신이 이기긴 했었지만...그 때 내가 위험하게된 요인이 시간을 너무 끌었다는 점이었다.
다음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난 일부러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중심을 잃은척 몸을 비틀거렸다. 이 녀석들은 전투에서는 극한의 경지에 오른 상급 악마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머리에 떠올리며, 역시 그 순간을 참지못하고 대장 녀석이 공격을 해왔다. 난 뺀질한 녀석도 공격을 해오기를 바랬지만 녀석은 확실히 머리가 그 대장 녀석보다 좋은 까닭인지 공격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어깨를 내리고 휘두르는 그 대장 녀석의 검을 피하며 검을 휘둘러 빈틈이 생긴 녀석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제 한명, 한명을 상대로라면 화살 공격을 해온더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 수록 확실히 느끼는 점이지만 활을 쏘는 녀석들의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별로 먼거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중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내가 혼자 남은 녀석을 슬며시 쳐다보자 뺀질한 녀석의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난 아무꺼리낌 없이 일대일 대결용으로 개발했던 내 검술을 사용했다. 검이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내 몸도 약해졌으니 쓰기도 전에 박살나 버리지는 않겠지.
난 검기를 담아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악마였을 때에 비해 검에 맺히는 검기는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녀석의 검과 내 검이 부딪히는 순간, 녀석의 검이 부러지며 녀석의 몸에는 일자로 길게 상처가 났다. 그리고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녀석, 난 검에 금이 간것을 느꼈지만 이 정도로도 칼이 없는 궁수 두명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다.
나를 피해 잽싸게 도망가는 궁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 한명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활을 쏘고 있던 녀석을 쳐다보았다. 나무 위에 있었던 까닭에 마땅히 도망칠 곳을 찾지도 못한체 녀석은 계속 맞추지도 못하는 화살만 쏘고 있었다. 난 녀석의 화살을 피하며 기회를 보다 녀석이 내게 활을 쏘려는 순간 난 금이간 칼을 녀석에게 던져버렸다. 검이 부러지며 궁수의 이마에 검이꽂혔다. 그리고 중심을 잃고 나무아래로 떨어지는 궁수.
인간이 되자 마자 시작부터 이렇게 많은 살인이라니, 난 이제 다시 구원받기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녀석들의 사악한 마음을 확실히 꽤뚫고 있었던 까닭에 죄책감과 같은 것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과 다르게 조금 찝찝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아마 악마들이 이 시체들을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하겠지 아까운 식량을 누가 이렇게 버려놨냐고, 뭐, 악마 였을 때도 그다지 인육을 즐기지 않은 난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된마당에 먹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혹시나 녀석들의 패거리가 더 있을까 조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껴져지는 인간들의 기운을 따라 걸어갔다. 수풀 뒤에 있는 마차 두개, 다행히 경비를하고 있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마차의 철장안에는 내가 느꼈던 것 처럼 다섯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런대로 괜찮은 외모의 여자 세명과 어린 남자애 두명. 휴 어떤 용도로 팔려가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철장안에 있는 사람들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내모습을 보더니 어린애는 울어 버리고, 여자두명은 기절을 해버렸다. 쩝, 예전에 악마였을 때는 이보다 더 심각한 모습인 상태로 여자들과 마주쳤을 때도 여자들에게 이런반응이 오지는 않았는데, 하긴 그 때는 그 여자들이 흑마력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직접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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