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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y(공허) -거짓- ~part 8~

by 투명인간 posted Aug 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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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진과 박보람은 체육관의 상층부에 있었다. 아파트로 따지면 대략 6층 정도의 높이. 여기에서 떨어지면 말 그대로 국물만 남을 것 같은 정도의 높이였다.




두 사람 모두 심폐능력과 지구력의 한계까지 달렸다. 정철진은 끝내는 구석까지 오지 못하고 빈혈증상을 일으키듯 주저앉았다. 그런 와중에도 적의 단도만은 반드시 들고왔다는 것이 정철진의 집념을 알려주고 있었다. 박보람은 소형 소화기를 깔고 앉아서 벽에 기대었다. 아마 맥박은 1분에 210이상. 시간적으로는 1시간이 될까 말까 하는 시간이지만, 그 동안 줄곧 전력질주를 거듭한 것이다. 생명의 위험이 닥쳐오면, 남은 체력과 관계없이 뇌에서는 본능적으로 뛰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층부는 'ㄷ'자 형이었다. 출입구에서 나오면 오른쪽으로 길이 이어져 있었고, 물론 출입구에서 난간을 포함해 다섯 발자국이면 사망확정이었다. 아주 특이한 경우로, 지금 두 명이 숨을 고르고 있는 곳 바로 아래에 있는 매트라면 간신히 목숨은 구할 정도겠지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행운을 바라는 것이었다.




손전등은 박보람의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꽉 쥐고 달려서 그런지, 아니면 몇 번이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손아귀가 찢어져서 상처에서 나온 피가 눌어붙어 있었다.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박보람의 몸은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폐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듯 했다.




단도도 역시 정철진의 손에 엉겨 붙어 있었다. 손아귀가 찢어지고, 다시 피가 굳고, 찢어지기를 반복한 것이 대략 여섯 번. 피부가 찢어지면서 단도가 날아간 것도 두 번인가 있었다. 그 때마다 벽에 튕겨 돌아오거나 박보람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기에 망정이지, 모조리 회수 불능이면 지금 갖고 있는 무기는 절망적일 정도로 허술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상처는 여러 군데가 터져 있었다.




왼쪽 신장이 있을 자리에서는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붕대가 어떻게든 압박해서 가만히 있었으면 굳어졌을 것이지만, 붕대는 이전의 공격으로 찢어졌고, 횡격막에 근접해서 얇은 상처가 생겼었다. 거기에 발에 차이고, 벽에 부딪치고, 단검이 꽂혔고, 최후에는 보디블로까지 맞아 얕게 기절한 적도 있었다. 바닥에 부딪치는 충격으로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운동화에 머리가 수박처럼 으깨졌을 것이다.
빈혈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중상이었다. 정철진은 털썩 주저앉아서 어깨에 맨 헝겊주머니에서 소독약과 지혈제를 꺼내 치료하기 시작했다. 혈압이 너무 높아져서 손이 덜덜 떨렸지만, 이것보다 체온이 더 떨어지면 저체온증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둘은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치료를 하려던 정철진이 지혈제를 튜브에서 짜내려다가 힘조절을 잘못해서 내용물을 바닥에 흩뿌려버렸다. 어이없다는 듯이 웃은 정철진은 지혈제를 하나 더 꺼내서 바닥에 두고 몸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왜 나가지 못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학교건물은 방범장치만 철저한 것인지, 비상용 밸브를 누르면 내장배터리로 입구의 셔터까지 닫히는 구조였던 것 같았다. 후에 심상민도 '셔터가 닫혔어. 창문으로 나와야 해'라고 알렸지만 도망치는 입장에서 그런 것이 들릴 리 없었다. 아무리 정철진이라도 몸과 한 쪽 팔의 변혁을 지속하는 것이 한계였다. 어떻게 변혁된 것인지도 모르고 계속 지속시키는 것에도 벅차서 몇 번인가 원래대로 돌아갈 뻔 한 적이 대략 10번 정도였다. 그런 상태에서 다리의 변혁을 했다면 일단 다리를 무리하게 움직이느라 과다출혈로 죽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양 쪽 발을 변혁하지 않으면 디딤발이 없으므로 무의미하므로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고, 몇 억 보정도 양보해서 양 다리가 다 변혁되었다고 하더라도 화재에 대비한 셔터를 부수고 있으면 괴물에게 분해될 것이다.




"이상한 일이네."




"예에. 어째서 셔터가 내려왔을까요."




어느 정도 진정한 두 명이 그렇게 말했다. 남은 탈출구라면 1층과 2층의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것 정도. 화장실이 있지만 창문이 너무 좁았다. 실제로 1층의 화장실로 갔다가 뒷덜미를 잡혀서 죽을 위기를 넘겼다.




"그……. 밖에서 쫓고 있는 선배가 열었을까요?"




"Non. 그럴 정도로 머리가 돌아갔다면, 그 자리에서 기다렸겠지. 우리가 그쪽으로 갈 것을 알았을 테니까."




"그럼 매정한 학교네요. 화재가 나면 깡그리 다 타 죽으라는 걸까요?"




"……. 부정할 수 없는데. 확실히 사회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쪽이 더 이득이지."




정철진이 넝마가 되어서 오른팔의 상처에 눌어붙어 있는 붕대를 치우고 지혈제를 발랐다. 소독약을 잊었지만 다시 지운다는 것도 멍청해 보여서 그냥 그 위에 봉대를 덧씌우기로 했다.




"얼마 정도 있을 계획이에요?"




박보람이 1분 정도 숨을 고른 후에 말했다. 정철진도 힘든지 곧바로 말하지 못했다.




"대략 20분에서 30분 정도. 길면 40분."




시야가 외곽부터 까마득해지고, 동시에 시야의 중심에서 검은색의 점이 퍼져가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샌드위치다, 라고 정철진이 생각했지만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시력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부분이 빈혈증상을 일으키고 있다면 호르몬의 변화로 어떻게든 제어할 수 있었다.




박보람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민 후에 쓴 맛이 나는 위액을 토해냈다.




"선배."




"어?"




정철진은 눈을 감고 맥박을 재려는 듯이 벽에 등을 기대고 왼손으로 오른손의 손목을 짚고 있었다.




"알고 있죠? 저……. 선배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




박보람은 편한 청바지가 좋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달도 거의 완벽하게 구름에 가려져서 손전등이 없으면 뛰기 전에 어둠에 대한 공포로 자살했을 것이다. 박보람은 정철진이라면 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치마속이 보일리가 없었다.




"궁금한 점이 그것뿐이라면 내가 먼저 묻고 싶은데."




"예에……. 그것뿐이에요."




박보람이 손전등에 묻은 피를 교복에 닦으면서 말했다. 검은색 오리털 외투는 잡혔을 때 버리고 도망쳤다. 차갑고 어두운, 그래서 입김이 새하얗게 나올 정도로 심각하게 추운 겨울날의 날씨에 그것은 꽤 심한 고통이었다.




"묻고 싶은 것은 둘. 그 투척기술을 어디에서 배웠는가, 하는 것과……."




정철진이 아직도 거친 호흡을 억누르지 못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




"양호실에 있던 주사기를 내게 내민 이유."




주사기에 담겼던 아드레날린의 양은 꽤 미묘한 수치였다. 눈금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분량. 하지만 호르몬의 특성상 너무 많으면 향상성(항상 몸의 비율을 유지하려는 성질)의 유지를 위해 신장이라거나 간, 이자 같은 기관에서 필요 이상 되는 분량만큼은 쓸모없는 것으로 판단해버린다. 무턱대고 다다익선을 취하다가는 호르몬 과다, 내지는 부작용으로 현기증 정도가 아니라 쇼크사도 있을 수 있었다. 박보람이 건넨 눈금의 양은 정확히 그 향상성에 지장을 주지 않고, 충분히 작용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억누를 수 있는 양이었다.




거기에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은 강력한 혈압상승을 유도하는 약물이다. 정맥에 직접적으로 주입시 맥박의 강도가 증가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투여직후 혈압이 급격히 높아졌다가 다시 떨어진 후, 약 2분 후부터 천천히 혈압상승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을 겪게 되면 과도한 혈류량의 변화와 심장효율 감소로 인해 현기증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정맥이나 동맥의 내출혈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치 전에 아트로핀(유기성 극약)을 0.1mg정도 투여하면 부교감신경이 마비되므로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맹독성이지만 동공확장과 내부 장기 경련완화에도 효과가 있었다. 물론 말만 맹독성이 아닌지라, 1mg이상 투여시 사망확정이므로 미량으로 효과를 보는 약물이었다.




그렇다. 약 100배 이상 희석시켜서 분홍색 알약으로 아트로핀이 쓰인다는 것이나, 아드레날린의 적정투여량을 아는 것은, 보통 모르는 사항이다. 정철진은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투척… 이 뭔가요?"




정철진은 아이들링을 하다 말고 잠시 웃어보였다. 아무리 이과생이지만 심하다, 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던지는 것. 단검을 던지는 기술은, 일류였는데."




정철진이 명치를 맞고, 괴물이 정철진에게 올라타서 죽이기 직전의 일이었다. 아마 박보람이 아니었다면 정철진은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머리에 구멍이 나서 뇌수를 쏟았을 것이다.




"아, 그건 선배가……."




"문제가 그거야. 자세는 딱 내 자세인데 난 알려준 기억이 없거든."




"선배가 맞은 적이 있었잖아요."




몇 시간 전에, 쓰레기통의 위에 올려져 있던 초록색 녀석의 얼굴 가죽을 태우러 갔다가 오른쪽 팔에 단검이 꽂혔던 일이었다. 아마 박보람이 보았던 것은 그 첫 번째 공격 다음에 정철진이 후퇴하다가 방어해낸 세 번의 공격. 박보람은 아마 창문에 반사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정철진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실패한 형식주입을 그만두고 박보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철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로 어떻게 표현하지 못할 감정을 느끼고 도망치듯 형식주입으로 돌아왔다.




"그 세 번으로 알았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시간이 없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주사기는?"




"……."




박보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화를 풀려는 듯이 필요가 없어진 핸드폰을 창밖으로 던진 박보람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뭘 감정적이 되어서."




박보람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이들링에 집중하고 있던 정철진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제 부모가, 그런 일을 했으니까요."




"부모……. 인가. 알았어.




그리고 좀 일어나줄래?"




정철진의 말에 박보람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일어나서 옆으로 비켜섰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정철진이 소화기를 들고 입구 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아직까지 손전등이 켜져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얼른 손전등의 전원을 내리고 정철진과 같이 입구를 바라보았다.




"늦었어. 녀석은 이미 밖에서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정철진이 말했다. 그 말대로 잠긴 철문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저 기세라면 경첩 째로 뜯겨나갈 것이다.




"죄송해요."




"아니, 녀석을 끌어들이기에는 가장 좋았지."




정철진이 희미하게 웃었다. 만일 잘 풀린다면, 여기에서 저 자식을 보낼 수 있었다.




"지시할게. 손전등을 들고있다가 내가 달리라고 하면 곧바로 켜고, 달려. 노리는 것은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이야. 아마 전력질주로 뛴다면 2분내지 3분이면 충분하겠지. 그리고 창문을 열고 나가는 거야."




정철진이 헝겊주머니의 지퍼를 채우면서 말했다.




정철진이 노리는 것은 단순했다.




[쾅]




저 초록색의 철문이 부서지고, 만일 '멀쩡한 상태'의 정철진이라면 분명히 '돌아서' 올 것이다. 하지만 저 괴물에게 그런 가치판단이나 사고의 회로는 없어 보이고, 있다고 해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본능에 끌리는 저 괴물은 분명, 먹이가 앞에 있다면 무조건 자신의 상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반격 따위 안중에도 없이 최단거리로 공격해 올 것이다.




[덜컹]




문은 정철진의 예상대로 연결되고 있던 콘크리트와 경첩 째로 뜯겨나갔다. 그것을 본 정철진은 양 손으로 빨간 소화기를 으스러질 듯이 잡고 오른쪽 다리는 앞으로 놓고, 왼쪽 다리를 뒤로 놓은 뒤 소화기를 자신의 왼쪽으로 옮겼다.




최단거리. 물리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변위'. 사이의 장애물이라거나, 길이 안 뚫려있다거나, 갈 수 없다는 의견은 모두 집어치우고, 오로지 출발지와 목적지의 사이만을 일컫는 말이다.




정철진이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녀석은 말 그대로 옆을 보지 않고, 반대편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자마자,




"날았어……?"




박보람의 말대로, 지극히 본능적이고 가장 알기 쉬운 거리를 택했다. 어떤 비유나 미사여구를 붙인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교복차림의 괴물은 노란색 페인트와 먼지로 칠해진 그 난간에 발을 딛고, 반대편에 있는 먹이만을 노리고 체육관의 끝에서 끝까지를 관통하고 있었다.




정철진은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딛으며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덜 변혁된 왼손은 뒤로, 다 변혁된 오른손은 앞으로 놓고, 정확히 괴물을 향해 그 빨간색의 소화기를 던졌다.




아무리 저런 괴물이라고 해도, 인간의 잠재력을 모두 뒤흔들어 깨웠다고 해도, 전두엽이 헐거워서 300%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해도, 공중을 나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즉, 아무리 도약해도 '운동에너지가 떨어지게 되면'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추락에 날개가 있다고 해도, 물리적인 날개가 생기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저 괴물은 아파트 6층 정도에 해당하는 높이에서 추락하는 저 괴물은 분명히 죽을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대략 1분 정도 돌아가는 초침의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 남자와 내 눈이 마주치고 대략 1분 정도가 지났을 때, 미지근하던 '의구심'이라는 감정이 용암같이 뜨거운 '분노'라는 감정으로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몸의 모든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략, 원조교제라는 녀석인 것 같았다.




동생은 나를 보고도 소파위에 누워서 요염하게 나를 바라보며 남자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남자도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마 잘못 찾아온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겠지.




"아는 사람이야?"




"뭐야, 언니?"




동생이 아침에 나를 바라보았던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할 말이 없었다. 머리가 심장이 된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울리고, 스스로의 얼굴이 빨개졌다고 느낄 정도로 머리로 피가 몰렸다. 그런데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언어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이 목까지 치밀어 오른 감정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 언어가 되지 않았다.




"다시 묻겠는데, 갑자기 들이닥쳐서 뭐 하는 짓이냐니까? 나 지금 바쁘니까 급한 일이 없으면 나가주길 바래."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꽉 물었던 이를 간신히 서로 떼어놓고 입술을 벌렸다. 할 말이 생각났다. '여기에서 뭘 하고있는거야'라던가, '이런 일을 하면 안 돼'라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뭐라 말을 해서 동생을 타일러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시야의 반 정도가 잠시 흐려지더니 내 발은 멋대로 움직여서 밖으로 나와 있었다.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번화가를 떠돌아다니다가 시비가 붙었다. 뭐라 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머리채를 잡아서 벽에 처박았다. 그것으로 끝.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발 닿는 대로 갔다가 내가 이 시간까지 교복을 입고 나돌아 다니는 것이 싫었는지, 봉천중학교의 교장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산 하나를 돌아서 다닐 정도로 정신이 나가있던 것 같다. 날이 어둑해지고,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그저 걷기만 해서 한 구를 떠돌아다녔다.




가로등이 켜진지 대략 반나절정도 지나서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고, 지하철도 셔터가 내려갔을 때서야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이 세상이 싫었다. 눈물이 그쳐지고 진폭이 큰 떨림으로 바뀔 무렵, 처음으로 부모와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절반은 부서진 의자를 들고 있었다. 왼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이 살짝 끊겼다. 검은색 테이프가 지속적으로 눈을 가리는 것 같았다.




부서지다 만 TV를 완전히 깨부숴서 불꽃이 일어날 때까지 부쉈다. TV의 아래 있던 책장을 밟고, 부수고, 집어던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그러뜨렸다. 집에서 남은 큰 가구인 침대와 옷장을 접어버렸다. 책을 양 손으로 잡고 어떻게든 찢어놓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거실은 종이를 밟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있었다. 애초에 냉장고는 2년 전에 부서져 있었으니 그렇다 치고, 드디어 멀쩡한 가전제품과 가구가 하나도 없는 집안이 되었다.




이렇게 해도 내일은 오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처참할 정도로 집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도 분은 아직 덜 풀려있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오기 전에 모두 다 때려 부수고 싶었다.




땅도 하늘도 전부 다 부숴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