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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악] -3- 시작(2)

by 키드리어 posted May 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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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고한대로 내일 축제 준비로 인해 자율학습은 없다. 각자 집에 돌아가 공부하도록.”
“네!”
“대답소리 한번 우렁차네. 공부 할 놈들 하나도 없는 것 다 안다. 그래도 PC방이나 오락실처럼 건전한 곳에 잠깐 들려라. 뒷골목에서 담배피고 본드같은 질나쁜 것 하지말고. 그런 것 많이 하다보면 늙어서 나처럼 고생한다. 알았나?”
“······.”
“그럼, 이상. 주번은 잠깐 교무실로 따라 오도록.”
충격적인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담임선생님이 교탁에서 출석부를 집어 들고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학생들은 3초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복도에서 담인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그제야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어이없다 담탱이. 어디까지 앞서나가는 거니?”
“본드? 무슨 미국 고등학교냐 여기가. 마약이잖아 그건······.”
“그것보다 늙어서 나처럼 고생한다는 말은 뭐야 도대체?”
왁자지껄하게 교실을 빠져나가는 학생들 사이에 주영과 인성도 포함되어있었다.
“일찍 마쳤는데 어디 갈꺼야?”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누나가 오늘 빨리 오라고 했단 말이야.”
“오호. 통제로고. 언제까지 누님에게 잡혀 잘 것인가.”
“아 그러니까 그런 말은 누나 앞에서 하라고.”
“······그건 패스.”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고 있는 인성의 어깨에 주영이 팔을 둘렀다.
“재밌는 곳 갈래?”
“일 없다.”
“뭐야 그게. 진짜 집에 가는거야?”
“안그럼 어쩔껀데. 나도 너처럼 맞아 죽는건 사양이야.”
운동장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가 풍겼다. 여기저기서 학생회의 통솔 아래 천막들이 쳐지기 시작했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도 내일 축제 이야기를 하며 들뜬 얼굴로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인성은 그런 모습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듯 주영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하며 교문으로 걸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인성도 저 아이들처럼 주영과 함께 내일 축제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겠지만, 유난히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인성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어이없게도 그것은 매일 보던 여자 아이를 못 봤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
‘내가 이상한건가.’
인성은 그렇게 자기 자신이 예쁜 외국여자타입인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바라만 보던 아이에게, 그것도 외국인 여자 아이에게 끌리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인성이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주영은 인성의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계속 그를 졸랐다.  
“그러지 말고, 누님한테는 내가 말 잘해 볼테니까 오늘 한번만 같이 가자.”
“네가 잘도 누나한테 말 할 수 있겠다. 도대체 뭔데 그래?”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던 인성은 꽤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주영을 보며 물었다. 주영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더니 인성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소개팅.”
“됐다.”
“악! 왜 0.1초도 고민을 안하는건데!”“다른 사람 데리고 가라. 난 그런데 관심 없는 것 알잖아.”
“아 진짜. 너무하네. 그러지 말고 이번 한번만 나가 주라. 응?”
“싫어. 왜 날 데리고 가려는 건데? 다른 애들도 많잖아.”
“그 쪽에서 널 소개시켜 달라고 했단 말이야. 한번만, 딱 한번만. 응? 응?”
“아 진짜 안간다니까······응?”
인성이 주영을 돌아보며 짜증을 내려던 순간, 주영의 너머로 횡단보도 반대편에 낯익은 얼굴이 포착되었다. 인성이 오늘 그렇게 보려고 했던 여자 아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타이트한 가죽 자켓과 바지를 입을 그녀는 길게 늘어뜨리고 있던 머리를 모자 속에 감춘 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성은 멍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왔었구나······.”
“응? 뭐가?”
주영은 갑자기 멍하게 서서 한 곳을 바라보는 인성을 보고는 의문을 표하면서 인성의 신선이 닿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영의 눈에는 많은 인파들에 묻혀 있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왜 그래?”
주영이 인성에게 물었지만 인성은 횡단보도의 불이 파란색으로 바뀌었지만 인성은 건널 생각도 안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녀는 불이 바뀌자 인성을 향해 걸어왔다. 인성은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 인성은 빨개진 얼굴을 애써 감추며 서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횡단보도 중간에서 인성과 그녀는 마주쳤다. 확실히 그녀는 인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뼘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 졌을 때 그녀가 입을 열어 인성에게 말했다.
“뛰어.”
“······?”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인성은 그녀가 한국말을 했다는 신기함보다,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을 느꼈다. 혹시나 그녀가 하는 말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닐지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빨간 불이 임박했다는 파란불의 경고등이 빤짝거리는 횡단보도에는 이미 사람들이 다 건너고 자신과 주영, 그리고 그녀밖에 서있지 않았다. 인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뛰라니. 어디로······?”
그때 뒤따라오던 주영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크악!”인성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영을 바라보았다.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있는 그의 어깨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교복을 적시고 있었다.
“주, 주영아!”
인성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주영에게 다가가려 하자 그녀가 인성의 손목을 잡고는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다. 인성은 그녀의 힘에 의해 휘청거리며 그녀 쪽으로 넘어졌고, 그와 동시에 인성이 서있던 자리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아스팔트위에 구멍을 뚫었다. 인성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총알인 것을 알았다. 인성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게 찰나의 순간이었다.
“따라오세요. 빨리!”
인성은 자신을 잡고 끌고가는 여인을 한번 바라보다가 주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피.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지는 주영의 모습이 인성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인성 주위로 차들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보였다. 어떤 이는 소리를 지르고 어떤이는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인성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인적이 드문 골목 어귀까지 달렸다. 주영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인성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거 놔!”
인성은 그녀를 뿌리치고 주영에게로 달려가려고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총알이 자신에게 날아왔었다. 주영은 거기에 맞은 것이다. 왜 총탄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날아온 것인지 따질 겨를은 없었다. 우선 주영의 안위를 살피는게 급선무였다. 얼른 그에게 가야된다. 인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누나와 비슷한 완력으로 그를 제지했다. 잡혀서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놔! 놓으라고!""진정하세요.”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친구가 지금 다쳤는데. 죽을지도 모르는데!”
악을 쓰는 인성을 보며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총상은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부상은 아닙니다. 장기나 급소가 아니라 어깨를 스쳤을 뿐입니다.”“놔 이거!”
“정신 차리세요. 타킷은 그가 아니고 당신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인성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주영이가 총을 맞아야 되며, 이 여자는 왜 자신를 끌고 왔으며, 타킷은 무엇인지 아무런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인성을 안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들이 타킷 외 대상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드문데, 아마도 주영이란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감싼 듯 합니다. 일단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들고 목격자도 1명이 아닌 다수가 되었으니 아마 네 친구를 다시 제거하려 하진 않을 것입니다.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치명상도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으면 괜찮아 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인성은 눈물을 닦고는 심호흡을 했다.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다. 18년을 평범하게 살아온 인성에게 오늘의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주영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보다 당신이 더 문젭니다. 타킷을 놓쳤기 때문에 곧 있으면 그들이 올 겁니다. 빨리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인성은 눈을 크게 떴다.
“왜, 왜 나를······?”
“이유는 나중에·······왔습니다!”
머리 위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파편이 인성과 그녀의 주변으로 떨어져 내렸고 인성은 질색을 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인성을 끌어당겨 유리창이 깨진 쪽 반대편 건물로 들어갔다. 그 곳은 폐점된 백화점이었는지 먼지가 쌓인 진열장 사이로 기동이 멈춘 에스컬레이터가 눈이 들어왔다. 그녀는 인성을 끌고 건물 안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화장실 칸막이가 있는 곳으로 가 그 중 비교적 작은 것 하나를 잡아 당겼다. 쇠로 칸막이는 놀랍게도 그녀가 당기자 이음새 부분이 찌그러지더니 팅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녀는 내모난 칸막이를 들고 입구 반대편에 위치한 화장실 창문에 갖다 대고는 발로 힘껏 찼다. 그러자 창문이 깨지고 칸막이가 창문 모양으로 우그러지면서 그 자리에 박혀 버렸다. 엄청난 괴력이었다.
‘인간이 아니야······!’
누나와는 비교도 안되었다. 아니, 평범한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인성은 그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인성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인성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가 나가면 문을 잠구고 절대로 움지이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인성은 깜짝 놀랐다.
“나가서 어쩌려고?”
“제거해야겠지요.”
“위, 위험하잖아!”
인성이 그렇게 외치자 그녀는 문을 열고나가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인성을 향해 웃었다.
“당신이 위험한 거지, 나에겐 해당 사항이 못 됩니다.”
“그래도······잠깐만!”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녀는 인성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인성은 말없이 서서 화장실 문을 쳐다보다가 그녀가 나가면서 한 당부를 생각해 내고는 비척거리며 걸어가 문을 잠궜다. 그리고는 문에 등을 대고 다리가 풀린 듯이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 보았다. 부러져서 너덜 너덜한 칸막이들과 걸이 붙어 있는 세면대. 전력이 끊겨 바람에 의해 천천히 돌아가는 통풍구. 약간 어색한 풍경이었다. 무엇인가가 빠졌다는 것을 느낀 인성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왜 하필 여자 화장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