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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모스는 10년 전, 마지막으로 플랑크를 보았을 때를 회상했다. 서로를 없애기 위해 증기선 갑판 위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때를 말이다.

과거, 아구모스는 '호크아이'로 불리던 최고의 현상금사냥꾼이었다. 그는 누구의 의뢰든지 고액을 준다면 마다하지 않았던 냉혈한이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세를 탄 그에게 마지막 의뢰가 들어온 때를 아구모스는 평생 잊은 적이 없다.

【올빼미를 사냥하라. 그리고, '물건'을 가져와라】

아구모스에게 그 임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실패를 가져다 준 쓰라린 것이었다.

"외눈박이(Cyclops) 바헤스 넥스웰(Bahes Nexwell)……"

"아저씨? 아까부터 왜 자꾸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는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네플레어는 감상에 젖어 잠시 멍해져 있던 아구모스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퉁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핫, 심심했었나 보구나. 아저씨는 잠시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어. 이 편지……오래 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보낸 거거든."

아구모스는 미소를 지으며 네플레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등에 매고 있는 큰 배낭에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빵을 두어 조각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얼마간 끼니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플 텐데, 이걸로 대신하렴."

네플레어는 빵을 냉큼 받아들고는 우물거리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저씨. 얼마 전에는 내가 아저씨의 과거를 캐물었다고 엄청 심각해지더니, 이제는 왜 또 오랜만의 편지를 받고 좋아하는 거야? 지긋지긋한 과거가 있던 거 아니었어? 앞뒤가 안 맞잖아."

"거참 끈질기구나. 이왕지사 이 편지도 온 김에 이야기 해줘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네가 듣기에 괜찮겠니? 이래 보여도 아저씨가 왕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 총으로 쐈었다구……"

네플레어는 순간 질겁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싱글벙글한 아구모스의 얼굴을 보고는 그의 과거가 어떻든지 간에 현재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인지 다시 씩 웃어 보였다.

"좋아요!"

아구모스는 소탈한 웃음을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모습은 약간 침울해 보이기도 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그러니까 그가 18세 청소년 일 때의 이야기다.

그는 엠베르카 동쪽의 어느 조용한 시골 지방에서 태어났다. 사냥꾼을 아버지로 둔 평범한 가정의 외아들이었던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거의 인간 초월 적인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움직이는 것을 아주 잘 보았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와 같이 사냥을 나가면 큰 짐승을 많이 잡아오고는 했다. 아버지도 그의 실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의 가족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중산층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아주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그가 18살 이던 한창의 꽃다운 시절에 일어났다.

아버지가 급한 일 때문에 꾸게 된 돈을 갚지 못하자 고리대금업자 바헤스 넥스웰이라는 자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는 젊고 유능한 수완가로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뒷꽁무니에서 깨끗하지 못한 일을 하는 이중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돈을 갚을 수가 없었던 그의 부모님은 모두 그의 손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 때 숲에 나가있었기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아구모스는 집으로 돌아와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바헤스를 추적하게 된다.

…………

"이건……말도 안돼. 아버지? 어머니?"

아구모스는 집안 사방이 피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거의 기절할 듯 휘청거렸다. 아직 어린 그에게 갑작스런 부모님의 죽음은 너무나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즉시 방금 숲에서 사용했던 장총을 꺼내 들고는 재빨리 지붕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이고 달아나던 그 자는 마치 매와 같이 날카로운 아구모스의 눈에 금세 포착되었다. 그러나 멀리서 쏘기에는 총의 유효거리가 너무 짧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살인자는 말을 타고 있지 않았고, 그의 집에는 말이 있었다. 게다가 살인자는 아구모스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훔치며 쏜살같이 마구간으로 내려가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그와 살인자와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아뿔싸!"

그는 빨리 상대방을 쏘아 맞출 생각만 하고는 총알을 두둑이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숲에서 쓰고 남은 총알은 한 개뿐.

단 한 발 밖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딱히 던질만한 단도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는 오직 한 번의 기회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살인자 또한 이제 말발굽 소리로 인해 아구모스의 접근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구모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ㅡ탕, ㅡ!?

그가 총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살인자는 뒤를 돌아보며 단도를 던졌다. 아구모스는 몸을 숙여 목이 날아가는 것은 막았지만 그것은 말에게 꽂혔고, 그 즉시 말이 쓰러져 버렸기 때문에 아구모스는 살인자의 머리를 정확히 겨냥할 수 없었다.

그의 탄알은 뒤를 돌아보던 살인자의 왼쪽 눈에 그대로 박혔다. 그러나 살인자도 보통의 내기는 아니었던지 그 상처를 대충 손으로 가리고는 냅다 빼기 시작했다.

그는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는 있었지만 그는 아구모스가 여러 발의 총알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와 싸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도망한 것이었다.

아구모스는 숲 속으로 도망쳐 버린 그를 결국 잡을 수 없었다. 그는 허탈한 마음에 장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발사했다.

ㅡ턱!

총알은 없었다. 그는 일순간 자신이 죽으려고 했던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죽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평생 어느 때 보다 큰 슬픔을 느꼈지만 강렬한 분노는 그것을 뛰어넘게끔 해주었다.

그는 다음 날 얼굴을 붕대로 감고 눈 만 살짝 드러낸 채 자신의 마을 근처 작은 도시의 시장을 찾아가 보았다.

그는 직접 자신이 그린 살인자의 몽타주를 가지고 평소 인맥이 넓은 장사치들을 대상으로 이 사람을 아느냐고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해서 그가 얻은 결과는 '바헤스 넥스웰'.

그가 하는 일을 알게된 아구모스는, 아직은 그가 부모의 원수를 갚을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부유한 사채업자가 부리는 거대한 집단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범죄집단을 처리하려면……내가 범죄자가 되는 수 밖에."

…………

네플레어가 곧 눈물을 흘릴 듯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그렇게 슬픈 과거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허허……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인생의 쓴맛을 겪기 마련이잖니."

"하지만 아저씨 같은 경우는 남들보다 좀 더 고달픈 인생을 살았잖아요. 정말 불쌍해요. 물론 저도 아버지를 어린 시절에 잃어서 슬프긴 하지만요."

"너희 아버지?"

"네. 아버지께서는 원래 선원이셨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먼 바다로 나가셔서 오랫동안 돌아오시지 않으셨대요. 그러다가 제가 태어나기 3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농사를 지으며 지내셨어요. 그러다가 저도 낳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죠.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항상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 듯 썩 편한 얼굴이 아니셨어요."

"그렇게 오래 전 일을 자세히 기억하니?"

"전 기억력이 아주 좋거든요. 어쨌든……아버지께서는 그 근심을 떨쳐내시지 못하고 결국 병에 걸리시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저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거라고는 무슨 알 수 없는 지명이 적혀있는 종이 쪽지였죠. 그 유품이 그다지 쓸모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보관하려고 했는데 결국 잃어버렸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거기에 적혀있던 말은 다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아마도 우리의 처지가 비슷한 건가. 하핫……어쨌거나 아까 중간에 끊겨진 이야기를 마저 하자구나."

…………

처음 범죄자가 된 목표는 말 그대로 '바헤스를 잡아서 복수를 하자' 라는 일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범죄자랄 것도 없었다. 그저 한량 같은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끊임 없이 정보를 캐내고 은근히 수배범이나 탈옥수 같은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되는 것뿐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바헤스를 저격할 기회도 많이 포착하기는 했지만 매번 실패했고 종래에는 오히려 그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자신의 별명을 외눈박이(Cyclops)로 만들어준 아구모스는 이제 그에게도 충분한 골칫덩어리가 될 만큼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흐른 시간이 거의 2년이었다. 그가 바헤스의 부하들을 피해 제국으로 피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올빼미, 플랑크 가니메데를 만날 수 있었다.

플랑크는 바헤스가 부리는 사람들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암살자라고 할 수 있었다. 바헤스가 그로 하여금 아구모스를 저격하라고 한 것은 그만큼 아구모스 또한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구모스가 비록 타고난 시력에 힘입어 당대 최고의 총잡이라고 할지언정, '저격'이라는 기술에 있어서는 올빼미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저격'이라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정확히 조준하는 것 그 이상으로, 자신의 몸 또한 은폐시켜야 하는 것이다. '저격'이라는 것은 자신이 쏘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아구모스는 바헤스를 피해 제국 뤼틸그의 리아벨의 숲 북쪽에서 남쪽으로 급히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

"제길……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아구모스는 불만을 내뿜으며 터벅터벅 숲 속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 사이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이 괴로운 듯이 눈을 찡그렸다.

그 순간, 공중에서 날아온 뜨거운 탄알 하나가 그의 왼쪽 팔에 박혔다. 다행인 것은 총알이 관통했다는 것이었다.

비록 관통을 당했기 때문에 출혈이 많이 일어났지만, 총알이 몸에 박혔을 경우 신체조직을 더 훼손하여 상대방에 의한 저지력을 약화시켜 몸을 빨리 움직일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즉시 도망치거나 대응해야 했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자신에게 총을 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을 동물로 오인하고 사냥꾼이 자신을 쏘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현재 자신 주위에는 사냥할 만한 큰 동물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통을 인내함과 함께 왼팔을 부여잡고 습한 땅바닥을 이리저리 굴렀다. 총알은 그가 있던 곳 뒤쪽에서 날아와서 왼쪽 팔의 앞쪽을 뚫고 나왔기 때문에 적은 그의 뒤에서 그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구모스는 자신이 있던 곳의 뒤쪽 50m 정도를 중심점으로 하여 그로부터 오른쪽 대각선을 45˚정도의 각도로 70m 가량 그은 위치에 있었다. 노련한 사냥꾼이었던 그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육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빽빽한 나무를 엄폐물로 하여 몸을 보호한 그는 오른팔로 힘겹게 장총을 들었다. 한 쪽 팔로 총을 계속 들고 있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총 자루를 걸쳐야만 했다.

"어디 있는 거지……"

그의 날카로운 눈은 적이 있을만한 위치에서 저격수를 찾고 있었다. 일 순간, 그의 총대 위에 놓여진 조준점의 정중앙이 검은 붕대로 얼굴을 둘둘 감아서 눈 만을 내놓은 적의 얼굴을 겨누었다.

ㅡ탕, ㅡ탕

아구모스와 적의 총은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리고 가히 천문적인 수치의 확률.

공중을 회전하며 서로를 향해 날아가던 두 총알은 중간 지점에서 비껴나가듯이 부딪치며 강하게 튀기는 불꽃과 함께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아구모스와 상대방은 적의 위치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구모스의 생애에 있어 최장시간의 총격전이 앞으로 벌어지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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