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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조금 차가워 졌다. 10시를 넘어가는 시간이
었지만 갑판은 이런 저러한 목적으로 올라온 사람들
에 의해 조금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며
담화를 나누는 사람들. 총총히 떠오른 별들을 보며
시를 쓰는 이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수평선을 응
시하는 남자에겐 이미 몇 명의 여자가 눈빛을 보내
고 있었다.
자기, 당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수평선보다 나를
보는 건 어때요? 그리고 그를 따라 하는 다른 남자들.
하지만 여인들의 시선은 그 우수에 잠긴 남자의 눈만
응시할 뿐이다.
금연구역인 실내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애인을 잠시 내버려두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깐 올라온 사람들은 잠시 뒤, 바(bar)
에 애인을 혼자 남겨둔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의 목적으로 올라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배 여행이라는 것은 사람을 로맨틱하게 만드는 무
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메이 일행(?)은 그나마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잘 찾지 않는 선미
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쪽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 같았다. 자신의 뒤로
날아가버리는 듯한 바람을 따라 등을 꺾으며 그 여자
(아직도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가 기분 좋게 소리
쳤다.
“아우우! 잘 마셨다. 몸도 찌뿌뿌 했는데, 자기랑 바
람 쐬니까 좀 괜찮아 진 것 같아. 메이 씨도 기분 좋았지?”
“아아……근데…….”
“에이, 너무 부끄러워하지는 말고, 호호.”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 때문에 말
을 못하는 거야.
물론 그의 입 속에서만 맴돈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주 잠깐의 침묵 뒤, 그녀가 자신의 팔을 비비며 말
했다.
“좀 쌀쌀하다, 그치?”
“아아, 안에 들어갈까?”
“피, 괜찮아. 여기가 더 좋은 걸? 이 정도 바람에 감
기가 들 정도로 몸이 약하진 않다고.”
“그래, 그래.”
고개를 살짝 저으며 동의하는 메이를 그녀가 재미있
다는 듯한 표정으로 봤다.
“메이 씨는 참 특이한 것 같아.”
“뭐가?”
“보통 남자들은 여자랑 있으면 멋진 말 하려고 하
잖아. 들이댄다고 하던가? 음, 음. 아마 그럴 것 같
아. 근데 자긴 안 그러는 것 같거든?”
“말 했잖아. 보통 날 보면 폭력적으로 해석을…….”
그녀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냐, 그런 게. 나,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거든? 자긴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기는 하
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폭력을 휘두를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날 잘 아는 듯이 이야기 하
는군?”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그녀는 살짝 풀
이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
고 대답했다.
“뭐, 그렇다는 거지. 내가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다면
미안해. 그래도 악의는 없는 것, 알지?”
네가 모르는 것을 낸들 어찌 알겠나? 그래도 메이는
사과하는 그녀를 보고 살짝 놀랐다. 물론 그녀는 자신
에 대한 정보를 거의 주지 않았기에 이렇게밖에 추
측을 할 수 없었지만, 사실 이제까진 멋도 모르고
설치는 아가씨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 그래서 그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아, 뭐 사과할 것 까지는 없고…….” “무엇보다 나처럼 예쁜 여자랑 대화하는데, 뭐.”
……이미지는 만드는 것도, 무너지는 것도 금방이
구나. 그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자, 그
녀가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메이 씨는 여자랑 대화해 본 적이 많이 없나
보네?”
“……아, 뭐.”
“거짓말도 못하고?”
“설마…….”
이 여자 눈썰미 하난 끝내주는데?
“나 눈썰미 하난 끝내준다고 생각했지? 생각도 잘
읽히는 스타일이네?”
결국 메이는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심리학이라도 공부한 거야? 아님 길거리에 돗자리
라도 펴본 경력이 있는 거야?”
“흐음……두 번째에 가깝겠지, 아무래도? 여자의 직감
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또 그 여자의 직감이군.”
메이가 질렸다는 듯이 말하자 그녀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검지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살짝 찔렀다. 순
간 향긋한 향이 그의 후각에 감지되었다. 레몬 향수인
가? 아니면 사과?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여자의 직감으로 한 마디 할게. 아마 당신, 얼마
안 있어 큰 일에 휘말릴 거야. 하지만 굳이 그걸 피하
지는 않아도 돼. 그냥 즐기도록 노력해봐, 알았지?”
“……뭔가 불길한 예감, 뭐 그런 거야?”
“그리고, 아마 인연이 있다면 우린 다시 만날 거야. 그
때는 내가 식사 한 번 대접할게.”
그래? 메이는 생각했다. 그런 예감이면 한 번 믿어봐
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들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잡담을 멈추고 숙면을
결정했다. 괜찮다고 우기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복합
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현대 사회
의 여성들이 겪는 일들을 설명해주고 나서야 방 앞까
지 대려다 줄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변론 안에는 그 자신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안
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
만, 그녀도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갑판을 내려갈 때도, 선실이 있는 복도를 지날 때도 메
이의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는 없었다.
‘도대체 이름은 언제 물어봐야 하는 것이지?’
어쩌면 여자랑 많이 대화를 못 해본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실제로 최근에 가장 많은 대화
를 나눈 여자를 꼽자면 시봇 정도였으니. 시봇 교수를
생각하자 머리에 잔잔한 두통이 왔다. 그때 그녀의 목
소리가 들렸다.
“아, 이 방이야.”
그녀의 방은 213호. 그의 위 층 방이었다.
“바래다 줘서 고마워. 오늘 즐거웠고, 그럼 다음에 또
봐.”
‘이름을 물어봐야 하는데……지금 물어보면 너무 늦게
물어봤다고 놀리려나? 아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
잖아!’
메이는 그녀가 방문에 몸을 반 정도 걸쳤을 때가 돼서
야 겨우 용기를 내 그녀를 불렀다.
“저기.”
그녀가 방에 들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는군. 이름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없을까?”
“참 빨리도 물어보네.”
“수줍음이 많아서.”
그녀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멜로디. 멜로디 하얀. 내 이름이야.”
쿵-!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긴 여운을 남기며 문 뒤로 사
라졌다. 멜로디, 멜로디 하얀. 그는 그 이름을 몇 번이
나 되새기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미소가 아
까 태워버린 여신 상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
글의 제목과 멜로디의 이름은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름 짓기 귀찮아서
멜로디 하얀
...혹은 하얀 멜로디로 지은 것 또한
절대 아닙니다
....(후우)
바람이 조금 차가워 졌다. 10시를 넘어가는 시간이
었지만 갑판은 이런 저러한 목적으로 올라온 사람들
에 의해 조금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며
담화를 나누는 사람들. 총총히 떠오른 별들을 보며
시를 쓰는 이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수평선을 응
시하는 남자에겐 이미 몇 명의 여자가 눈빛을 보내
고 있었다.
자기, 당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수평선보다 나를
보는 건 어때요? 그리고 그를 따라 하는 다른 남자들.
하지만 여인들의 시선은 그 우수에 잠긴 남자의 눈만
응시할 뿐이다.
금연구역인 실내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애인을 잠시 내버려두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깐 올라온 사람들은 잠시 뒤, 바(bar)
에 애인을 혼자 남겨둔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의 목적으로 올라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배 여행이라는 것은 사람을 로맨틱하게 만드는 무
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메이 일행(?)은 그나마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잘 찾지 않는 선미
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쪽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 같았다. 자신의 뒤로
날아가버리는 듯한 바람을 따라 등을 꺾으며 그 여자
(아직도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가 기분 좋게 소리
쳤다.
“아우우! 잘 마셨다. 몸도 찌뿌뿌 했는데, 자기랑 바
람 쐬니까 좀 괜찮아 진 것 같아. 메이 씨도 기분 좋았지?”
“아아……근데…….”
“에이, 너무 부끄러워하지는 말고, 호호.”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 때문에 말
을 못하는 거야.
물론 그의 입 속에서만 맴돈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주 잠깐의 침묵 뒤, 그녀가 자신의 팔을 비비며 말
했다.
“좀 쌀쌀하다, 그치?”
“아아, 안에 들어갈까?”
“피, 괜찮아. 여기가 더 좋은 걸? 이 정도 바람에 감
기가 들 정도로 몸이 약하진 않다고.”
“그래, 그래.”
고개를 살짝 저으며 동의하는 메이를 그녀가 재미있
다는 듯한 표정으로 봤다.
“메이 씨는 참 특이한 것 같아.”
“뭐가?”
“보통 남자들은 여자랑 있으면 멋진 말 하려고 하
잖아. 들이댄다고 하던가? 음, 음. 아마 그럴 것 같
아. 근데 자긴 안 그러는 것 같거든?”
“말 했잖아. 보통 날 보면 폭력적으로 해석을…….”
그녀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냐, 그런 게. 나,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거든? 자긴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기는 하
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폭력을 휘두를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날 잘 아는 듯이 이야기 하
는군?”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그녀는 살짝 풀
이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
고 대답했다.
“뭐, 그렇다는 거지. 내가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다면
미안해. 그래도 악의는 없는 것, 알지?”
네가 모르는 것을 낸들 어찌 알겠나? 그래도 메이는
사과하는 그녀를 보고 살짝 놀랐다. 물론 그녀는 자신
에 대한 정보를 거의 주지 않았기에 이렇게밖에 추
측을 할 수 없었지만, 사실 이제까진 멋도 모르고
설치는 아가씨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 그래서 그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아, 뭐 사과할 것 까지는 없고…….” “무엇보다 나처럼 예쁜 여자랑 대화하는데, 뭐.”
……이미지는 만드는 것도, 무너지는 것도 금방이
구나. 그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자, 그
녀가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메이 씨는 여자랑 대화해 본 적이 많이 없나
보네?”
“……아, 뭐.”
“거짓말도 못하고?”
“설마…….”
이 여자 눈썰미 하난 끝내주는데?
“나 눈썰미 하난 끝내준다고 생각했지? 생각도 잘
읽히는 스타일이네?”
결국 메이는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심리학이라도 공부한 거야? 아님 길거리에 돗자리
라도 펴본 경력이 있는 거야?”
“흐음……두 번째에 가깝겠지, 아무래도? 여자의 직감
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또 그 여자의 직감이군.”
메이가 질렸다는 듯이 말하자 그녀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검지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살짝 찔렀다. 순
간 향긋한 향이 그의 후각에 감지되었다. 레몬 향수인
가? 아니면 사과?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여자의 직감으로 한 마디 할게. 아마 당신, 얼마
안 있어 큰 일에 휘말릴 거야. 하지만 굳이 그걸 피하
지는 않아도 돼. 그냥 즐기도록 노력해봐, 알았지?”
“……뭔가 불길한 예감, 뭐 그런 거야?”
“그리고, 아마 인연이 있다면 우린 다시 만날 거야. 그
때는 내가 식사 한 번 대접할게.”
그래? 메이는 생각했다. 그런 예감이면 한 번 믿어봐
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들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잡담을 멈추고 숙면을
결정했다. 괜찮다고 우기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복합
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현대 사회
의 여성들이 겪는 일들을 설명해주고 나서야 방 앞까
지 대려다 줄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변론 안에는 그 자신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안
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
만, 그녀도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갑판을 내려갈 때도, 선실이 있는 복도를 지날 때도 메
이의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는 없었다.
‘도대체 이름은 언제 물어봐야 하는 것이지?’
어쩌면 여자랑 많이 대화를 못 해본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실제로 최근에 가장 많은 대화
를 나눈 여자를 꼽자면 시봇 정도였으니. 시봇 교수를
생각하자 머리에 잔잔한 두통이 왔다. 그때 그녀의 목
소리가 들렸다.
“아, 이 방이야.”
그녀의 방은 213호. 그의 위 층 방이었다.
“바래다 줘서 고마워. 오늘 즐거웠고, 그럼 다음에 또
봐.”
‘이름을 물어봐야 하는데……지금 물어보면 너무 늦게
물어봤다고 놀리려나? 아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
잖아!’
메이는 그녀가 방문에 몸을 반 정도 걸쳤을 때가 돼서
야 겨우 용기를 내 그녀를 불렀다.
“저기.”
그녀가 방에 들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는군. 이름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없을까?”
“참 빨리도 물어보네.”
“수줍음이 많아서.”
그녀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멜로디. 멜로디 하얀. 내 이름이야.”
쿵-!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긴 여운을 남기며 문 뒤로 사
라졌다. 멜로디, 멜로디 하얀. 그는 그 이름을 몇 번이
나 되새기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미소가 아
까 태워버린 여신 상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
글의 제목과 멜로디의 이름은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름 짓기 귀찮아서
멜로디 하얀
...혹은 하얀 멜로디로 지은 것 또한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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