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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를 보고 싶네
땅을 보고 싶네
그렇게, 그렇게
여신은 노래하네.

미소가 깃든 풀밭에 바람이 깃들고
손길이 머물렀던 곳에 비가 내려 앉고
사랑스런 시선이 닿은 곳에 생명이 피어나네

엘프는 추억을 노래하고
용들은 허무를 연주하고
난쟁이들은 영원에 춤추고
인간들은 그들에게 박수를 치지

하늘 위를 보고 싶네
땅을 보고 싶네
그렇게, 그렇게
여신은 노래하네.


메이가 정신이 든 것은 가을 해가 서녘으로 몸을 뉘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마 5시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가라앉히며 중얼거렸다.

“배고파.”

거의 반나절을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발굴, 혹은 일이 있으면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낮잠을 즐겨 자는 것은 그의 습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는 동안 역
시 절대로 갑옷을 벗지 않았다. 근처에 무기가 한 두 가지가 있어야 마음 편히
잘 정도로 투철한 성격이었다. 물론 그 만큼의 부작용도 있었다.

우두둑-!

“으갸갸갸갸갸!”

기지개를 펴니 등뼈와 가슴뼈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시원하기도 했다.

“밥 먹기 전에……좀 씻을까.”

갑옷과 옷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리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몸이
한결 가벼웠다. 욕실은 생각보다 좋았다. 거품목욕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
당히 깨끗했고, 뜨거운 물도 나왔다. 꼭지를 돌려 적당한 온도로 맞춘 물이 온
몸을 두드리니, 낮잠을 자고 나서 무거웠던 몸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근데 자면서 무슨 노랫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여신이 어쩌고 하는 노랫말
이었던 것 같은……아, 내가 너무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인가?”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는 일이 끝나자 마자 적성 테스트를 받아보리라 생각하며
몸을 씻기 시작했다.

‘일단 윰에 도착하면 필요한 물품을 좀 사고. 베이스는 어디로 잡는 것이 좋을까나.
어차피 하루 이상 묵지는 않을 것 같으니 뭐, 그건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고……마
탄을 좀 구입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마탄은 탄환에 특수한 성질을 입힌 것이다. 불과 얼음의 속성을 입혀 관통상 말고
도 큰 화상과 동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로, 괴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유적들과 탐험
에서는 꼭 필요한 물품 중 하나다. 다만 제국에서 엄중히 관리를 하기 때문에 큰 위
력을 가진 마탄은 시중에 판매되지 못한다. 류오스 내에서라면 윰보다 마탄을 구하기
가 수월하지만 해외 반출은 엄연히 불법이었기에 윰에 도착해서 따로 구입해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술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마탄은 위력 면에서 떨어지기에 이러한 큰 재제는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제국 외에서는 인력비가 적게 드는 주술력으로 만들어진 마탄
이 꽤 인기가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만들 수 있는 인력의 제한으로 값은 일반 탄환의
몇 배나 된다. 소문에는, 일류 모험가들은 비싼 돈을 주고 마탄을 만드는 주술을 배
운다고도 한다. 메이도 그런 주술사를 찾으면 마탄을 만드는 법을 배우리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이 따뜻한 물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꽤 오랫동안 나오는……앗,
차가!”

뜨겁게 쏟아지던 물이 갑자기 차가워지며 그의 몸을 강타했다. 꽤 오랫동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기에 적당히 차가운 물도 북해의 그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거의 뛰쳐나오듯이 하며 욕실을 빠져 나온 메이는 덜덜 떨며 투덜거렸다.

“은근히 일진이 더러운 날이군.”

물론 샤워실 구석에 적혀 있는 [뜨거운 물 사용은 10분입니다]라는 친절한 표지판을
보지 못한 것 역시, 그의 더러운 일진에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

“아우, 잘 먹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바람을 쐬기 위해 갑판으로 나오니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하루살이 태양의 마지막 끝물. 시인들이라면 멋진 운율
을 만들며 자신들의 감수성에 탄복하겠지만, 메이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었다.

“담배 피기 딱 좋은 경치구만.”

그러고는 종이에 만 담배를 한 대 물고 주머니의 성냥갑에서 성냥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성냥의 머리 부분을 벽에 그어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을 깊이 빨았다.

“후하…….”

담배 연기를 내뿜는 건지, 한숨을 쉬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뱉어진 연기는 배가
지나가며 만들어진 바람결을 타고 부서졌다. 갑자기 학창시절 생각이 그의 눈앞을
잠깐 스쳐지나 갔다.


그때도 분명 이렇게 배를 타고 유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4년 전이니 그가 20살 때일
것이다. 분명 윰 근처 섬의 탐사를 의뢰 받았었고, 탐사 대에는 메이 자신을 제외하고
6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고고학과 세 명과 고대생물학 한 명, 식물
학과 한 명, 그리고 건축학과 한 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상당히 밸런스가 잘 맞는 팀
이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팀이기도 했다. 하지만 메이가 이 팀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갑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






아직도 배 위에서 눈을 감으면 그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메이 씨, 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요!

그리고 연기를 한 모금 빨기도 전에 하얗고 길다란 손가락이 담배를 낚아채서
바다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바로 그의 눈 앞에 긴 검은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나타나는 아름다운 얼굴.

-담배 안 피기로 했잖아요!

상큼한 레몬향 향수가 그나마 남아있던 담배연기를 날려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번만 더 피면 그때는 진짜 화낼 줄 알아요!

그리고 웃는 주위 사람들.

-하하하, 뭐야. 벌써부터 잡혀 사는 거야?
-솔로 애태우지 말고 사랑싸움은 저쪽 가서 하라고!

그러면 그녀는 언제 화냈었냐는 듯이 수줍게 웃으며 볼을 붉힐 것이다.
언제나처럼.


‘에리아.’


그 이름을 떠올리자 가슴 한 곳이 저리듯 아프다. 그때 흘린 눈물은 아직 추억
속으로 스며들지 못했다. 언제쯤 잊을 수 있을까?

아마 노을이 바다 위로 지는 동안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부서지고 있는 연기를 보며 추억을 소화를 시키고 있는 그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처음엔 선수(船首)에 붙은 조각상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에리아?’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그곳을 봤다. 바람을
가르는 간판의 끝에 한 소녀가 지는 노을을 보며 서 있었다. 약간 마른 체형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은 노을의 끝물로 인해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메이처럼 가벼운 셔츠와 반바지를 입어서인지 약간 왜소하게 보이기도 했
다.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세워둔 2미터 높이의 펜스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그
녀는 바람이 부는 데로, 배가 움직이는 데로 휘청휘청거리면서도 용케 중심을 잡
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안전할 수는 없다. 메이가 그녀에게 위험하다
고 말하려고 할 때, 갑자기 그 소녀에게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늘 위를 보고 싶네
땅을 보고 싶네
그렇게, 그렇게
여신은 노래하네.

미소가 깃든 풀밭에 바람이 깃들고
손길이 머물렀던 곳에 비가 내려 앉고
사랑스런 시선이 닿은 곳에 생명이 피어나네…….”

달콤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멜로디가 만나자 빛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가, 형형색색의 날개를 가진 나비
가 되어 날아가기도 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찬트였다. 그는 자신도 모
르게 눈을 감았다.

“하늘 위를 보고 싶네
땅을 보고 싶네
그렇게, 그렇게
여신은 노래하네……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하지만 생소한 멜로디랑 뭔가 가사를 빼먹은……에?


갑자기 노래 소리가 멎었다. 메이가 움찔하며 눈을 뜨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소녀가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오똑한 콧날에 약간 도톰한 입술, 그리고 가늘
지만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 멀리서 봤을 때는 어리게 봤지만, 실제로 보니 자
신과 비슷하거나 약간 어릴 것 같은 여자였다. 그녀가 펜스 위에서 폴짝 뛰어내
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 살인방관 죄에요. 알아요?”
“……에?”

그녀는 허리에 양 손을 얹으며 당당한 어투로 말했다.

“제가 앉아 있던 펜스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에? 아, 뭐 그야……배 쪽으로 떨어지면 타박상, 바다 쪽으로 떨어지면
꼴까닥-일까나요?”
“그걸 잘 아는 사람이 그래요? 제가 떨어지면 어쩔 뻔 했어요? 바람이 불
거나, 혹은 배가 암초를 피하려고 갑자기 방향을 튼다면! 그리고 고래나 커
다란 바다 괴물이 배에 부딪쳐서 제가 떨어진다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제가 만약 실연을 당했거나, 혹은 가족에게 버림을 받아서 자살을 결심했다면,
어쩔 뻔 했어요? 자기 자신에게 저지르는 살인을 막지 않는 것 역시 커다란 죄!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원하는 것이 뭡니까?”

그때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맥주 사줘요.”


메이는 그녀의 능글맞은 얼굴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이라 생각했다.

++++++++++++

재수가 없어도 좋으니 여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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