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죠, 엘프여왕님은 나쁜 분이 아니세요."
이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하늘섬의 거대한 폭포중 하나를 넘어서, 엘프들이 많이 살고 있는곳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그녀가 말을 꺼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는 엘프여왕님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뇨,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는 저이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아마 누군가의 부탁, 혹은 명령을 받고서 엘프여왕님을 만나러 가는 거겠죠? 게다가 그 누군가로부터 엘프여왕님에 대해 무언가 나쁜 말을 들은게 틀림 없어요."
하, 한순간 멍해졌다. 정확히 정곡을 찔린 탓이었다. 허나, 인정할순 없으니까 부정해 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뇨, 분명히 그럴 거에요. 당신은 아마 엘프들의 변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터예요. 제가 '엘프여왕님' 이라고 말 할 때마다 당신의 안색이 미미하게 굳어지는걸요. 여왕님이라는 칭호가 싫은 거겠죠. 하지만."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서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왕님이란 호칭은 그다지 대단할 게 없어요. 당신, 엘프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죠? 그저 엘프들은 모두 미남미녀에 마법을 잘 다루고 자연과 조화를 사랑하는 종족? 하, 웃기지 마세요. 그 정도는 지나가던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말이에요. 그 정도 지식으로 우리 엘프들을 판단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거기서 내가 말을 잘랐다. 더 이상, 이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충고당하듯 이런 말 듣고 싶지 않다.
"그만하시죠. 제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려 하는지 얼굴이 약간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서 언성을 조금 높여 말을 이었다. 엘프 치고는 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아뇨, 당신은 들어두어야 해요. 다른 종족이, 아니 종족까지 갈 것도 없이 당신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당신의 친구나 가족 등이 그런 상황을 지켜본다면, 분명 저와 같은 마음일 거에요. 그게 얼마나 분하고 화가 나는 일인지 알기나 해요?"
"제가 엘프여왕님에 대해, 엘프에 대해 안 좋게 여긴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허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말해보아도 모를 거예요. 당신같이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한 예로 당신은 내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아요."
내가 끝까지 극구 사양했기에, 아직까지 그녀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시간 날 때마다 내게 달려들어 이름을 가르쳐 주고 싶어 했지만, 나에게 이름이란 의미가 없다. 대리자도, 나에게도 이름이 없으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겐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고. 이름을 붙인다던가 해서 무언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녀는 더더욱 화가 나는 듯 했다. 뭐가 그녀를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드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도 모르겠다. 지금 내 눈 앞의 이 엘프 여성은, 나에게 있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비상식이었다.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씩씩거리던 그녀가 화를 좀 가라앉혔는지, 아니면 흥분해 보아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는지 언성을 좀 낮추어서 말을 이었다.
"당신, 참 웃기는 사람이군요. 정말 뭘 몰라요. 모든 게 다 평등한 존재라구요? 웃기지 마세요. 당연히 모든것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예요. 일례로, 모두가 평등하다고 알려져 있던 우리 엘프들만 해도 엘프여왕님이 계셔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는 각자 의미가 있어요. 그 의미들을 구분하고 확연하게 해 주는 것이 이름이란 거지요. 알겠어요? 내가 당신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려 이렇게 애 쓰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써, 각인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부심을 가진 존재에게, 자신이란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큰 충격이라구요."
"그래도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해보죠. 이제 되었습니까?"
"아니요. 당신, 아직도 이름의 가치를 모르는군요. 모든 것은 평등하지 않아요. 자신이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 소중한 것, 싫어하는 것, 증오하는 것 등등 존재하는 이상, 인격을 가진 이상 좋고 싫음이 나타날 수 밖에 없어요. 이름이란 것 하나는, 이런 우리의 감정들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구요.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예요. 이름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담을 수 있어요. 사랑을 담아서, 애정을 담아서, 안타까움을 담아서 불리는 이름이 얼마나 가치있고 훌륭한 건지 몰라요. 당신은 이런 소중한 것들을 모르고 있어요. 나는 그런 당신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은 눈물이 흐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구요."
하지만 눈물 따위 나오지 않는다. 내 이름은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내가, 먼 옛날에 내 속에 가둬버렸으니까.
"엘프들에게 여왕이란 큰 의미가 없어요. 그저 능력있고 훌륭한 지도력을 갖춘 이로서 우리 엘프들에게 조금 더 발전과 희망을 가져다 주기 위한 지위일 뿐이에요. 우리는 여왕님께 공대를 하지만, 사실 이건 예의의 표현일 뿐이에요. 여왕이라고 부르거나, 여왕님의 이름을 부른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그저, 우리의 대표 정도일 뿐이에요. 우리도 격식과 예의를 알기에 높여드리는 것이에요. 이제 알겠나요? 엘프여왕님도 원해서 여왕님이라 불리시는게 아니란걸? 그 분 께서도 엘프들이 불평등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셔요. 하지만 전 안답니다. 이건 불평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자발적인 존경이란 것을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우리가 지나온길을 바라보았다.
"꽤 멀리도 왔네요, 우리.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엘프는 흔하게 볼 수 있을 거에요. 뭐, 엘프 정도야 이제 하늘섬 내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니까요. 페어리나 앤트 정도면 몰라도, 엘프를 보고 신기해 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그녀는 걸음을 빨리해, 나보다 앞서서 저 멀리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 먼저 가 있을게요. 여왕님과 해야할 이야기도 많거든요. 얼마 안 있어서, 엘프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들은 아마 친.절.하.게 당신을 안내해 줄 거에요. 당신의 예상과는 달리 말이죠."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을 하는 도중에는, 꼼짝없이 제압당하게 되는 위압과 박력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것은 온데간데없이, 아련하게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저, 어쩐지 애달프게 느껴지는 그녀의 마지막 말만 남아 허공을 맴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씁쓸히 웃으며 이젠 사라져 버린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 뿐이다.
이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하늘섬의 거대한 폭포중 하나를 넘어서, 엘프들이 많이 살고 있는곳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그녀가 말을 꺼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는 엘프여왕님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뇨,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는 저이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아마 누군가의 부탁, 혹은 명령을 받고서 엘프여왕님을 만나러 가는 거겠죠? 게다가 그 누군가로부터 엘프여왕님에 대해 무언가 나쁜 말을 들은게 틀림 없어요."
하, 한순간 멍해졌다. 정확히 정곡을 찔린 탓이었다. 허나, 인정할순 없으니까 부정해 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뇨, 분명히 그럴 거에요. 당신은 아마 엘프들의 변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터예요. 제가 '엘프여왕님' 이라고 말 할 때마다 당신의 안색이 미미하게 굳어지는걸요. 여왕님이라는 칭호가 싫은 거겠죠. 하지만."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서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왕님이란 호칭은 그다지 대단할 게 없어요. 당신, 엘프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죠? 그저 엘프들은 모두 미남미녀에 마법을 잘 다루고 자연과 조화를 사랑하는 종족? 하, 웃기지 마세요. 그 정도는 지나가던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말이에요. 그 정도 지식으로 우리 엘프들을 판단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거기서 내가 말을 잘랐다. 더 이상, 이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충고당하듯 이런 말 듣고 싶지 않다.
"그만하시죠. 제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려 하는지 얼굴이 약간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서 언성을 조금 높여 말을 이었다. 엘프 치고는 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아뇨, 당신은 들어두어야 해요. 다른 종족이, 아니 종족까지 갈 것도 없이 당신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당신의 친구나 가족 등이 그런 상황을 지켜본다면, 분명 저와 같은 마음일 거에요. 그게 얼마나 분하고 화가 나는 일인지 알기나 해요?"
"제가 엘프여왕님에 대해, 엘프에 대해 안 좋게 여긴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허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말해보아도 모를 거예요. 당신같이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한 예로 당신은 내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아요."
내가 끝까지 극구 사양했기에, 아직까지 그녀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시간 날 때마다 내게 달려들어 이름을 가르쳐 주고 싶어 했지만, 나에게 이름이란 의미가 없다. 대리자도, 나에게도 이름이 없으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겐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고. 이름을 붙인다던가 해서 무언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녀는 더더욱 화가 나는 듯 했다. 뭐가 그녀를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드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도 모르겠다. 지금 내 눈 앞의 이 엘프 여성은, 나에게 있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비상식이었다.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씩씩거리던 그녀가 화를 좀 가라앉혔는지, 아니면 흥분해 보아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는지 언성을 좀 낮추어서 말을 이었다.
"당신, 참 웃기는 사람이군요. 정말 뭘 몰라요. 모든 게 다 평등한 존재라구요? 웃기지 마세요. 당연히 모든것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예요. 일례로, 모두가 평등하다고 알려져 있던 우리 엘프들만 해도 엘프여왕님이 계셔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는 각자 의미가 있어요. 그 의미들을 구분하고 확연하게 해 주는 것이 이름이란 거지요. 알겠어요? 내가 당신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려 이렇게 애 쓰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써, 각인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부심을 가진 존재에게, 자신이란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큰 충격이라구요."
"그래도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해보죠. 이제 되었습니까?"
"아니요. 당신, 아직도 이름의 가치를 모르는군요. 모든 것은 평등하지 않아요. 자신이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 소중한 것, 싫어하는 것, 증오하는 것 등등 존재하는 이상, 인격을 가진 이상 좋고 싫음이 나타날 수 밖에 없어요. 이름이란 것 하나는, 이런 우리의 감정들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구요.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예요. 이름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담을 수 있어요. 사랑을 담아서, 애정을 담아서, 안타까움을 담아서 불리는 이름이 얼마나 가치있고 훌륭한 건지 몰라요. 당신은 이런 소중한 것들을 모르고 있어요. 나는 그런 당신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은 눈물이 흐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구요."
하지만 눈물 따위 나오지 않는다. 내 이름은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내가, 먼 옛날에 내 속에 가둬버렸으니까.
"엘프들에게 여왕이란 큰 의미가 없어요. 그저 능력있고 훌륭한 지도력을 갖춘 이로서 우리 엘프들에게 조금 더 발전과 희망을 가져다 주기 위한 지위일 뿐이에요. 우리는 여왕님께 공대를 하지만, 사실 이건 예의의 표현일 뿐이에요. 여왕이라고 부르거나, 여왕님의 이름을 부른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그저, 우리의 대표 정도일 뿐이에요. 우리도 격식과 예의를 알기에 높여드리는 것이에요. 이제 알겠나요? 엘프여왕님도 원해서 여왕님이라 불리시는게 아니란걸? 그 분 께서도 엘프들이 불평등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셔요. 하지만 전 안답니다. 이건 불평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자발적인 존경이란 것을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우리가 지나온길을 바라보았다.
"꽤 멀리도 왔네요, 우리.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엘프는 흔하게 볼 수 있을 거에요. 뭐, 엘프 정도야 이제 하늘섬 내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니까요. 페어리나 앤트 정도면 몰라도, 엘프를 보고 신기해 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그녀는 걸음을 빨리해, 나보다 앞서서 저 멀리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 먼저 가 있을게요. 여왕님과 해야할 이야기도 많거든요. 얼마 안 있어서, 엘프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들은 아마 친.절.하.게 당신을 안내해 줄 거에요. 당신의 예상과는 달리 말이죠."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을 하는 도중에는, 꼼짝없이 제압당하게 되는 위압과 박력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것은 온데간데없이, 아련하게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저, 어쩐지 애달프게 느껴지는 그녀의 마지막 말만 남아 허공을 맴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씁쓸히 웃으며 이젠 사라져 버린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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