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좋은 날이다.
미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삐걱대는 문을 억지로 열었다. 슬슬 수리를 해야 했지만, 그런곳까지 신경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었고, 추수후의 뒤처리 때문에 아비인 빌롬은 매일 해가 지고 난 다음에야 들어왔다.
물론 미카도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점 때문에 이럭저럭 편의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오늘만 해도 보리밭 다지기를 빠지고 이렇게 혼자 집 정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일을 빼고 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었다. 비가 새지 않도록 빌롬이 어떻게 손을 보긴 했지만, 제대로된 기술자가 아닌 사람의 솜씨란건 애초부터 뻔한거였다.
“하아-.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다야 낫겠지.”
쇠못을 살 돈이 없으니 계속 나무못으로 옹이박듯 깎아 넣어야 하고, 그래서 밖에서 보면 얼기설기 엉망진창. 그래도 이정도면 한동안은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한겨울 외풍이 들기 시작하면 그건 정말로 최악이니 겉으로야 어떻게 보이든 일단 바람은 막고봐야 하는거다.
“와칸사람들은 흙으로 집의 틈을 메우기도 한다던데. 어떨까나.”
어떻게 그 버석버석한 흙으로 집안 곳곳의 나무판이 벌어진 틈을 메운다는건지, 미카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털어버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수리는 일단락되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망상아닌 망상에 빠져있던 그녀는 멍하니 있느니 일찌감치 저녁을 준비하는게 낫겠다며 벌어진 숄을 여몄다. 아직은 뒤뜰의 텃밭에서 먹을만한게 나오니까 거기에 손을 벌릴셈이었다.
가끔은 고기가 먹고 싶어지지만- 빌롬은 그런 쪽의 소질은 정말 없어서, 이따금 그녀가 참새낚시를 하는 것 외에는 예정외의 육식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고기 먹고싶다아-!”
커다랗게 변해서, 곧 뭉개질 것 같은 호박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던 미카는 다음순간 꽁꽁 얼어붙었다. 커다란 호박 옆에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대충 물을 들인 회색 로브를 입은 사람은 그녀가 놀라 어깨를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체.
미카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흔들었다. 죽음 같은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이 그녀의 심정이었다. 제대로 약을 쓰지도 못하는 가난한 소작농의 집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의사는커녕 제대로된 약도 구해보지 못한채 결국 죽었다. 많은 나이가 아니었을 시기였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했다.
“으으……….”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자 마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걸 알았다면 그 다음은? 그녀는 필사적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었다.
오늘은 장작을 많이 쓰자.
그리고 맛있고 쉽게 먹을수 있는 것을 만들자.
역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그정도였다. 시대는 점점 바뀌고 있다고들 하고 평민출신의 부호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그건 천국이겠지.
보통의 아이보다 머리가 빨리 컸다고 들리는 미카였지만 이럴 때는 자신의 필요도 없는 지성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럴때는 의사 한명 정도 부를수 있어도 좋으련만.
“나도 참- 잘도 푸념이 여기까지 이어지네.”
자신의 머리에 알밤을 꽁- 먹이고는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옮긴 환자를 위해 서둘러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 정확히는 그녀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진 다음이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쓰러진 사람을 옮기다 보면 여기저기 만지게 되는 모양이라 눈치챈 것인데- 어쨌든 일터에서 돌아온 미카의 아비는 이렇게 딸이 잔뜩 늘어놓는 푸념속에서 잔뜩 서려있는 걱정을 읽고는 설풋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일단 언제까지 어린애 취급할꺼냐면서 화를 냈지만 그것도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이좋은 가족……….’
정신을 차린 이후로 계속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당한 그녀는 이불속 몸을 숨긴채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이미 아득하다는 느낌의 목소리다. 한마디 한마디가 당연하고, 그리고 다정하고, 또 다를게 없는 일상. 그녀는 가만히 누운채 그 소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수는 없겠지.’
그녀는 작은 결심을 품안에 숨기고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감사의 인사는 해야 할 일이었다.
“어맛! 벌써 일어났어요? 내일까지 정도는 푹 쉬는게 좋을텐데. 곧 식사도 가져갔을테고요.”
“아, 아니요. 이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떠돌이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란건 보기 힘든법이에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밥도 먹고 잠도 푹 잔 다음에 가야지요! 내가 기껏 고생해서 준비했는데, 은인의 정성을 무시할 셈인가욧?!
결국 발목을 붙들린 그녀는 조심스럽게 미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계속해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겨우 들었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잘라 버렸다며 잠시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미카는 깔깔 웃어 보였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마지막으로 봤었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제법 곱게 길러져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부녀가 준비해준 건더기가 가득 든스튜를 내려다 보았다.
아마도 그런 것이겠지. 바보라도 알수 있는 일이었다. 소작논의 집에서 갑자기 이런 재료가 튀어 나오거나 하진 않는다. 고개를 푹 숙인채로 그녀는 가만히 손을 놀렸다. 계속해서 감사인사를 해도 오히려 화를 내 버렸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덕분에 식탁은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여행을 해본적이 없어서 궁금한데. 나중에 이야기 해줄꺼죠?”
침묵을 깨버린 것은 미카 쪽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아비쪽이 뭔가 이야기 하려는 것을 막은 모양이었다. 그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꺼내야 할 말. 당신의 정체는 뭐요-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거요-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미카는 단호한 얼굴로 그 말을 막아 버렸다.
“고맙습니다……….”
결국 둘의 배려로 정체불명인채로 남을수 있었던 그녀는 다시한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걸로 된거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간만의 음식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쉴새없이 이야기를 바라는 미카는 꼭 둥지안의 새끼새 같았다. 어쩌면 끝도없이 뭔가를 졸라대는 모습에선 강아지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일엔 할일이 있다면서 잠들었고, 잠이 드는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그녀는 조금 더 미카를 주시하고는 힘들게 은인의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걸쳐둔 로브를 입고, 잔불이 남아있는 벽난로에서 불꽃이 튀지 않도록 잘 정리한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망설이는 듯 조금씩 멈칫거렸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안을 돌아본 다음에는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섶에서 뭔가를 꺼낸 그녀는 한참을 부시럭거린 다음에야 발길을 옮겼고, 그러면서도 몇번이고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채 자리한 그 집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도 결국은 저 멀리 어둠에 묻혀 버렸고, 집은 조용히 침묵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음날, 일터로 나오지 않는 사람 때문에 귀한 휴식시간을 날려 버린 빌이 쉴새없이 욕을 중얼대며 외다로 떨어진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사실 미카 때문에 자원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웠지만, 이 정도 나이쯤 되면 그런 부분에선 솔직해 지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미, 미카! 아저씨는 왜 안나오신거야?”
처음에 문을 열었을때는 기묘할 정도로 차가운 집안의 느낌에 조금 몸을 움츠렸던 빌은 약간 피곤한 듯이 발을 끌며 걸어오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이야기를 꺼냈다. 인사 정도는 폼나게 해도 좋으련만, 이러니까 시골 총각은 안된다는거다. 어쨌든 그는 얼굴이 붉어진것도 자각하지 못한채, 아저씨가 요즘 힘이 좋다느니- 그러다보니 몸살이라도 난줄 알고 걱정했다느니- 하며 두서없는 말을 꺼냈다. 파닥파닥 팔을 내저으며 이말 저말 늘어놓는건 당황했다는 증거, 그러다보니 그는 지금의 이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스윽-
언제나 그녀는 두걸음 정도는 떨어져서 그의 말을 받았는데,
스윽-
지금의 그녀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스윽-
언제나 웃는 얼굴부터 보여주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만 있다.
스윽-
“저기- 미카? 어디 아픈거야?”
그제서야 평소와 다른걸 눈치챈 그는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건 아닐까 하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걱정스러운 듯 물어봤지만, 다음순간 자신의 어깨에 둘러지는 그녀의 팔에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갑작스럽게 보이는 이런 애정표현이라니, 설익은 청년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우적-
“?!?!”
그리고 다음순간, 그녀의 벌어진 입이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단번에 동맥을 끊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턱힘. 그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다음순간 벌어진 그녀의 입이 그의 목줄 전체를 뜯어내 버렸기에 입에서는 바람새는 소리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흐윽-! 끅! 카아아……….”
몇 번을 몸부림치던 살아있는 인간은 곧 죽은자로 바뀌었다. 그의 목에 붙어서 한참동안 살아 있는 자의 피를 탐닉하던 미카는- 아니, 미카였던 시체는 다음순간 저 밝은 태양을 한참동안 주시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크으으……….”
가래가 끓는듯한 신음성을 내던 그녀는 쓰러진 시체의 발을 붙들고 문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거칠게 문이 닫혔고, 외딴 집은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 회색으로 물들인 로브를 입고 있던 여성은 가만히 집 앞으로 다가서서는 흙바닥에 튄 핏자국을 발끝으로 문질러 지웠다.
“……………….”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이야기 했지만, 너무도 작게 가려진 목소리였기에 제대로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다만 확실한것은, 그녀가 돌아온것은 지금 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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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입니까! 드디어 글터 재입장 가능! 설정들을 좀더 자세히 봐야 하지만 뇌가 둔중하여 짜맞추는게 느리니 큰일입니다. 연재속도는 덕분에 미묘(..)할듯.
어쨌든, 돌아왔어요. 흑흑.;ㅁ;
미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삐걱대는 문을 억지로 열었다. 슬슬 수리를 해야 했지만, 그런곳까지 신경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었고, 추수후의 뒤처리 때문에 아비인 빌롬은 매일 해가 지고 난 다음에야 들어왔다.
물론 미카도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점 때문에 이럭저럭 편의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오늘만 해도 보리밭 다지기를 빠지고 이렇게 혼자 집 정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일을 빼고 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었다. 비가 새지 않도록 빌롬이 어떻게 손을 보긴 했지만, 제대로된 기술자가 아닌 사람의 솜씨란건 애초부터 뻔한거였다.
“하아-.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다야 낫겠지.”
쇠못을 살 돈이 없으니 계속 나무못으로 옹이박듯 깎아 넣어야 하고, 그래서 밖에서 보면 얼기설기 엉망진창. 그래도 이정도면 한동안은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한겨울 외풍이 들기 시작하면 그건 정말로 최악이니 겉으로야 어떻게 보이든 일단 바람은 막고봐야 하는거다.
“와칸사람들은 흙으로 집의 틈을 메우기도 한다던데. 어떨까나.”
어떻게 그 버석버석한 흙으로 집안 곳곳의 나무판이 벌어진 틈을 메운다는건지, 미카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털어버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수리는 일단락되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망상아닌 망상에 빠져있던 그녀는 멍하니 있느니 일찌감치 저녁을 준비하는게 낫겠다며 벌어진 숄을 여몄다. 아직은 뒤뜰의 텃밭에서 먹을만한게 나오니까 거기에 손을 벌릴셈이었다.
가끔은 고기가 먹고 싶어지지만- 빌롬은 그런 쪽의 소질은 정말 없어서, 이따금 그녀가 참새낚시를 하는 것 외에는 예정외의 육식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고기 먹고싶다아-!”
커다랗게 변해서, 곧 뭉개질 것 같은 호박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던 미카는 다음순간 꽁꽁 얼어붙었다. 커다란 호박 옆에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대충 물을 들인 회색 로브를 입은 사람은 그녀가 놀라 어깨를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체.
미카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흔들었다. 죽음 같은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이 그녀의 심정이었다. 제대로 약을 쓰지도 못하는 가난한 소작농의 집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의사는커녕 제대로된 약도 구해보지 못한채 결국 죽었다. 많은 나이가 아니었을 시기였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했다.
“으으……….”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자 마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걸 알았다면 그 다음은? 그녀는 필사적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었다.
오늘은 장작을 많이 쓰자.
그리고 맛있고 쉽게 먹을수 있는 것을 만들자.
역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그정도였다. 시대는 점점 바뀌고 있다고들 하고 평민출신의 부호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그건 천국이겠지.
보통의 아이보다 머리가 빨리 컸다고 들리는 미카였지만 이럴 때는 자신의 필요도 없는 지성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럴때는 의사 한명 정도 부를수 있어도 좋으련만.
“나도 참- 잘도 푸념이 여기까지 이어지네.”
자신의 머리에 알밤을 꽁- 먹이고는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옮긴 환자를 위해 서둘러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 정확히는 그녀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진 다음이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쓰러진 사람을 옮기다 보면 여기저기 만지게 되는 모양이라 눈치챈 것인데- 어쨌든 일터에서 돌아온 미카의 아비는 이렇게 딸이 잔뜩 늘어놓는 푸념속에서 잔뜩 서려있는 걱정을 읽고는 설풋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일단 언제까지 어린애 취급할꺼냐면서 화를 냈지만 그것도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이좋은 가족……….’
정신을 차린 이후로 계속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당한 그녀는 이불속 몸을 숨긴채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이미 아득하다는 느낌의 목소리다. 한마디 한마디가 당연하고, 그리고 다정하고, 또 다를게 없는 일상. 그녀는 가만히 누운채 그 소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수는 없겠지.’
그녀는 작은 결심을 품안에 숨기고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감사의 인사는 해야 할 일이었다.
“어맛! 벌써 일어났어요? 내일까지 정도는 푹 쉬는게 좋을텐데. 곧 식사도 가져갔을테고요.”
“아, 아니요. 이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떠돌이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란건 보기 힘든법이에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밥도 먹고 잠도 푹 잔 다음에 가야지요! 내가 기껏 고생해서 준비했는데, 은인의 정성을 무시할 셈인가욧?!
결국 발목을 붙들린 그녀는 조심스럽게 미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계속해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겨우 들었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잘라 버렸다며 잠시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미카는 깔깔 웃어 보였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마지막으로 봤었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제법 곱게 길러져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부녀가 준비해준 건더기가 가득 든스튜를 내려다 보았다.
아마도 그런 것이겠지. 바보라도 알수 있는 일이었다. 소작논의 집에서 갑자기 이런 재료가 튀어 나오거나 하진 않는다. 고개를 푹 숙인채로 그녀는 가만히 손을 놀렸다. 계속해서 감사인사를 해도 오히려 화를 내 버렸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덕분에 식탁은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여행을 해본적이 없어서 궁금한데. 나중에 이야기 해줄꺼죠?”
침묵을 깨버린 것은 미카 쪽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아비쪽이 뭔가 이야기 하려는 것을 막은 모양이었다. 그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꺼내야 할 말. 당신의 정체는 뭐요-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거요-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미카는 단호한 얼굴로 그 말을 막아 버렸다.
“고맙습니다……….”
결국 둘의 배려로 정체불명인채로 남을수 있었던 그녀는 다시한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걸로 된거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간만의 음식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쉴새없이 이야기를 바라는 미카는 꼭 둥지안의 새끼새 같았다. 어쩌면 끝도없이 뭔가를 졸라대는 모습에선 강아지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일엔 할일이 있다면서 잠들었고, 잠이 드는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그녀는 조금 더 미카를 주시하고는 힘들게 은인의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걸쳐둔 로브를 입고, 잔불이 남아있는 벽난로에서 불꽃이 튀지 않도록 잘 정리한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망설이는 듯 조금씩 멈칫거렸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안을 돌아본 다음에는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섶에서 뭔가를 꺼낸 그녀는 한참을 부시럭거린 다음에야 발길을 옮겼고, 그러면서도 몇번이고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채 자리한 그 집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도 결국은 저 멀리 어둠에 묻혀 버렸고, 집은 조용히 침묵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음날, 일터로 나오지 않는 사람 때문에 귀한 휴식시간을 날려 버린 빌이 쉴새없이 욕을 중얼대며 외다로 떨어진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사실 미카 때문에 자원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웠지만, 이 정도 나이쯤 되면 그런 부분에선 솔직해 지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미, 미카! 아저씨는 왜 안나오신거야?”
처음에 문을 열었을때는 기묘할 정도로 차가운 집안의 느낌에 조금 몸을 움츠렸던 빌은 약간 피곤한 듯이 발을 끌며 걸어오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이야기를 꺼냈다. 인사 정도는 폼나게 해도 좋으련만, 이러니까 시골 총각은 안된다는거다. 어쨌든 그는 얼굴이 붉어진것도 자각하지 못한채, 아저씨가 요즘 힘이 좋다느니- 그러다보니 몸살이라도 난줄 알고 걱정했다느니- 하며 두서없는 말을 꺼냈다. 파닥파닥 팔을 내저으며 이말 저말 늘어놓는건 당황했다는 증거, 그러다보니 그는 지금의 이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스윽-
언제나 그녀는 두걸음 정도는 떨어져서 그의 말을 받았는데,
스윽-
지금의 그녀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스윽-
언제나 웃는 얼굴부터 보여주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만 있다.
스윽-
“저기- 미카? 어디 아픈거야?”
그제서야 평소와 다른걸 눈치챈 그는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건 아닐까 하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걱정스러운 듯 물어봤지만, 다음순간 자신의 어깨에 둘러지는 그녀의 팔에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갑작스럽게 보이는 이런 애정표현이라니, 설익은 청년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우적-
“?!?!”
그리고 다음순간, 그녀의 벌어진 입이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단번에 동맥을 끊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턱힘. 그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다음순간 벌어진 그녀의 입이 그의 목줄 전체를 뜯어내 버렸기에 입에서는 바람새는 소리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흐윽-! 끅! 카아아……….”
몇 번을 몸부림치던 살아있는 인간은 곧 죽은자로 바뀌었다. 그의 목에 붙어서 한참동안 살아 있는 자의 피를 탐닉하던 미카는- 아니, 미카였던 시체는 다음순간 저 밝은 태양을 한참동안 주시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크으으……….”
가래가 끓는듯한 신음성을 내던 그녀는 쓰러진 시체의 발을 붙들고 문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거칠게 문이 닫혔고, 외딴 집은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 회색으로 물들인 로브를 입고 있던 여성은 가만히 집 앞으로 다가서서는 흙바닥에 튄 핏자국을 발끝으로 문질러 지웠다.
“……………….”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이야기 했지만, 너무도 작게 가려진 목소리였기에 제대로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다만 확실한것은, 그녀가 돌아온것은 지금 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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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입니까! 드디어 글터 재입장 가능! 설정들을 좀더 자세히 봐야 하지만 뇌가 둔중하여 짜맞추는게 느리니 큰일입니다. 연재속도는 덕분에 미묘(..)할듯.
어쨌든, 돌아왔어요. 흑흑.;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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