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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구티 남부, ○○해안.




옥빛 바닷물이 일렁거린다.
차가운 남색으로 물든 알스터의 바다나, 간혹 백색 유빙이 떠다니는 트로이메라이의 바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보기만 해도 따듯하게 느껴지는 바다. 이런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해적의 포로만 아니라면 말이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망치를 들어올린다. 살짝 들어올려진 부분에 못을 박아 넣었다. 틈이 생긴 부분은 뜯어냈고, 새 목재를 가져다 수리하는 일만 남았다.
“힘들면 쉬어도 상관 없는데.”
“…아니, 사양하지.”
바위에 앉아 자신을 향해 말을 건 사내. 도저히 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딘은 고개를 저었다.
해적보다는 공무원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 자기 말로는 법무관에게 잘려서 해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공무원이었다면 저렇게 능숙할 리가 없잖아.’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서류 정리를 하면 그야말로 표준적인 공무원의 모습으로 보일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믿을 수 없다. 공무원이었다면 알 수 없는 일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선장보다 더한 악질일지도 모르지.”
“뭐?”
“…….”
설마 듣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딘은 다시 망치를 들어올렸다.
수십 명의 선원이 이틀 동안 매달린 덕에 핫스퍼는 예전의 모습을 거의 다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간단한 마무리와 칠만 하면 될 정도로 복구된 함선을 보며, 셰어도어는 옅은 미소를 입에 물었다.
“이제 식수만 실으면 끝나겠네.”
“그렇군.”
어느새 다가왔는지, 엘베는 그의 혼잣말에 대답하며 아직도 수리가 끝나지 않은 핫스퍼로 다가갔다.
망치질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간혹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망치질 소리가 끊이진 않았지만, 그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딘이라고 했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간간이 이어지던 망치질 소리는 완전히 멎어버렸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을 움츠리는 선원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엘베는 그들에게 눈을 돌리는 대신, 살짝 고개만을 돌린 딘을 향해 다시 말을 던졌다.
“대답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름을 확인하고 싶어서 물은 건 아닐텐데.”
“의외로군. 뭐, 좋아. 어차피 이름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말은 맞으니까.”
바람에 날려 살짝 눈을 가린 앞머리를 치우면서, 엘베는 입을 열었다.
“머스킷이 있더군. 그것도 200정이나.”
“…….”
‘들켰나.’
갑판 바로 밑에 숨겨 놓았기에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구입한 곳의 감찰원들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건만, 눈앞의 청년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찾아냈다.
“어떻게 알았지?”
“흘수선. 배가 너무 깊이 잠겨 있더군.”
“쳇.”
그런 미세한 차이를 잡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던 걸까.
아니, 실수는 아니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오래 배를 몰아 왔다고 해도, 함선의 건조 방법이나 재질, 함선의 나이에 따라 그런 것은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찾아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넌 질문을 던질 입장이 아니야.”
“…….”
“다시 질문하지. 이 머스킷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였지?”
딘은 입을 다물었다.
딱히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비밀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다. 그러나 입을 열기가 싫었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확인차 물어보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알스터 제 군용 머스킷. 사정거리가 무려 250야드나 되지. 물론 살상거리는 그 절반도 안 되는 게 단점이라고는 하지만, 화력만은 활에 비할 바가 아니야.”
“잘 아는군.”
“알스터 출신이니까.”
잠시 입을 다물었던 엘베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 형식의 머스킷은 알스터에서도 개발 된 지 5년도 되지 않았지. 물론 비더젠의 머스킷도 상당히 좋은 무기야. 하지만 이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알스터와 비더젠은 내전에 시달려 온 기간이 다르니까. 당연히 무기의 성능도 다를 수 밖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은 그렇지.”
“역시. 비더젠 사람이었나.”
순간적으로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대답을 유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말에 말려들어 버렸다. 그것을 느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화가 향한 대상을 알 수 없었던 딘은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으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렇다면, 이 머스킷들은 비더젠으로 운반되는 물건이었겠군.”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딘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알고 있겠지만, 비더젠은 내전 중이니까.”
“이 정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개인은 흔치 않지. 그렇다면 이건 반군 중 하나가 구입한 건가.”
“반군이라는 말은 거슬리는데.”
“뭐, 상관 없지. 비더젠이 어떻게 되건 알스터에 피해만 안 가면 그만이니까.”
“…알스터 정부에게 쫓기는 해적이 어째서 알스터를 걱정하는 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넌 질문을 던질 입장이 아니야.”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딘은 자신이 허공을 날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바다에 빠지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복부에서 찾아 든 고통은 막 벌어지려던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으윽.”
“미안하지만, 이것도 압수하지.”
‘제기랄.’
눈치 챌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너무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머스킷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물건이다. 방아쇠와 총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화약무기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건 어디서 구한 거지?”
“알스터.”
“그렇군. 새로운 걸 개발해 낸 건가.”
“…….”
“암살용으론 좋을 것 같군.”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은 곧 사라졌다. 아주 잠깐 이어지던 그것은, 다시 심문자의 눈으로 바뀌어 딘을 노려보고 있었다.
딱히 대답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노려보는 것 뿐. 아무 의미도 담지 않은 눈이건만, 너무도 소름이 끼쳤다.
저건, 마치…….
“대답해라.”
“뭐, 뭐?”
“나도 모르는 물건이라면 최근에 개발 된 무기일테지. 그런데 말야. 내 상식으로는 이런 무기를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바보는 알스터에 존재하지 않아. 물론 그런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알스터의 감찰관들은 매우 유능하거든.”
“그래서?”
“이런 물건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감찰관은 없지. 더군다나 그 외국인이 최신형 머스킷을 200정이나 구입한 사람이라면 말야.”
엘베는 고개를 돌려 셰어도어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렇지 않아?’ 라고 물어보는 듯한 느낌에 셰어도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보며 살짝 웃음을 머금은 엘베는 다시 시선을 돌려 딘을 보았다.
“누구지?”
단 한 마디. 그러나 그 뜻은 명확했다.
그럼에도, 딘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해적이 그런 데 관심을 가지는 거지?”
“아까도 말했을텐데. 난 알스터 사람이라고.”
“아니, 달라. 알스터는 해적을…….”
그렇게 말하고, 깨달았다.
“…너희들, 해적이 아니군.”
“아니, 해적은 맞아. 단지 네가 생각하는 해적과는 다를 뿐이지.”
“아론 반 에델슈타인인가.”
“전혀.”
거짓말이 아니다. 어째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이런 계획을 세울 만한 사람은 알스터의 법무관 중 하나인 아론 반 에델슈타인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리고 엘베는 아론의 손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딘은 엘베의 말이 거짓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누구지?”
“잊었나 본데, 질문을 할 권리가 있는 건 나야.”
“크…….”
엘베의 손에 들린 소형 머스킷이 자신의 이마에 닿은 것을 느끼며, 딘은 숨을 삼켰다.
“대답해. 이걸 건네 준 사람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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