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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메라이, 라오사



"…알겠습니다."
어두운 실내다. 일부러 어둡게 해 놓은 건지, 한쪽 벽면을 거의 뚫어놓다시피 설계된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막혀있었다. 아무리 잘 쳐줘도 절대 고급품으로는 보이지 않을 거친 삼베. 그것은, 숨이 막힐 만큼 두꺼운 커튼이 되어 태양의 빛을 가리고 있다.
어둠에 눈이 속아서 그랬던 걸까.
흑색 눈동자가, 잠깐이나마 푸르게 빛났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커험. 그, 그럼 난 이만 나가보마."
"몸이 이래서 배웅은 하지 못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아, 아니다. 그런 건 알고 있어."
손을 내저으며 상대의 표정을 살핀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상대의 얼굴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내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방을 나섰다.
브레 폰 알비스타.
의미 없이, 자신의 이름을 되뇌여 본다.
"재미 없어."
조금 전과는 달리 앳된 기가 남아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창으로 다가간 그는 거칠게 커튼을 걷어올렸다. 그러나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창은 절벽을 향해 나 있다. 당연하게도, 빛은 들어오지 않는다.
회색 벽면이 나 있는 창 밖. 브레는 고개를 돌렸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상(彫像). '아르케'라는 이름을 가진, 성자(聖者)의 상(像)이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위에 놓인 그것을 향해 신경질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나 화가 난다.
"……."
이를 갈았다. 오히려 화가 더 치밀어오르는 느낌. 기분 나쁘다.
"엘베 반 에델슈타인."
자신을 이곳에 처박아 버린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다. 분명 형상은 사람이지만, 그때 본 모습은 그런 당연함마저도 지워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가벼운 장난.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손을 든다. 얼굴을 만지자 비어버린 왼쪽 눈두덩이 손에 닿았다.
아니, 눈을 잃어버린 것은 참을만 하다. 어차피 바다로 나갈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눈 하나를 잃는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항해사들 중에서 한쪽 눈을 잃어버린 사람은 많다. 물론 전투로 인해 그것을 잃은 사람은 드물지만, 오랜 기간의 항해는 종종 그런 일을 만든다. 그렇다면, 그것은 별로 화를 낼 만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일 때문이 아니다.
장난이었다. 아주 가벼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일.
딱히 해를 끼치려던 것도 아니다. 장난. 그렇다. 장난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자 전직 집정관의 외손자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겁도 없이 알스터로, 그것도 수도인 아른헴으로 들어온 밀입국자. 그들 가운데 적당한 나이의 여자아이가 있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알스터의 법에 의한 보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딱히 집정관을 지냈던 사람의 인척이 아니더라도,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라면 그들을 상대하는 일은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날도 그랬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닌 일.
그러나, 그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어버렸다.
"윽."
환상통증(幻想痛症). 있을 리 없는 왼쪽 눈이 쓰라리다.
"빌어먹을."
가벼운 장난이었다. 정말로, 가벼운 장난이었다.
딱히 해를 끼친 일도 없건만, 엘베란 이름의 괴물은 그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한쪽 팔이 으스러졌다. 다시는 쓸 수 없게 된 팔을 붙잡고 괴성을 지르는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마치 자신의 얼굴을 새겨넣으라는 듯이 그의 얼굴을 바짝 갖다 댄 그는, 그대로 잡고 있던 머리를 바닥에 메다 꽂았다.
그곳에 날카로운 돌이 박혀 있었던 것은, 정말 단순한 우연이었던 걸까.
피해자. 무자비한 폭력의 희생자는 자신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듣기 좋은 분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성토하던 자신의 외할아버지는 이유 모를 죽음을 맞이했다. 의사들의 말로는 과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가 이끌던 대 선단은 원인 모를 사건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역시 사고였다.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고는 많이 일어난다. 그 깊은 내면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모를 바다 위에서의 사고는 그다지 희귀한 일이 아니다. 딱히 폭풍이 아니더라도, 바다를 지나는 함대의 적은 많았다. 그러므로, 그 일 역시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게 진실일 것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납득하기 싫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교회로 도망쳤다. 그저 회피할 수 있을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완전히 망가졌던 팔은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는 빠져버린 왼쪽 눈도 달아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절했다. 그것마저 회복한다면, 자신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로 돌아갈 것만 같아서였다.
가만히 왼손을 쥐어본다.
강한 힘. 일반 장정 열 명에 해당하는 힘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태양을 보지 않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 건지, 또 어째서 태양을 보면 약해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용의가 있다.
"곧, 만날 수 있겠군."
조금 전 들었던 이야기. 새로운 함대의 제독이 되라는 교회의 제의를 생각하면서, 그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매를 비틀었다.
전열함 여섯 척. 해양 대국인 알스터에서도 얻기 힘든 함대다. 더군다나, 그것은 최근 교회에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해적인 엘베 반 에델슈타인을 처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과거, 80여 척의 함선을 거느리고 대륙 서쪽을 종횡무진으로 날뛰던 대 해적 유슈프 레이스의 함대를 괴멸한 것도, 전열함 여섯 척으로 이루어진 교회 소속의 함대였다.
그 일을 자신의 손을 재현해 낸다는 것은, 그 상대가 엘베 반 에델슈타인이 아니더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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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군요...(...)


그나저나...


빨리 제목을 지어야 하는데...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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