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3년, 2월. 트로이메라이 부근 해상.
“…질리지도 않나.”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함선들을 보며, 엘베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삼개월동안 수없이 많은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공격은 대부분 적의 후퇴로 끝났다. 그럼에도, 알스터의 재력가들은 핫스퍼에 대한 공격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몇 척이지?”
“슬루프만 세 척입니다.”
“별 것 아니군.”
“보통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사실이잖아.”
주갑판에 놓인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있던 엘베의 눈이 감겼다. 그 모습을 본 셰어도어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는 엘베에겐 별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핫스퍼를 향해 다가오는 함선들을 바라보았다.
피겨헤드(Figure head : 이물 장식)에 매달린 지브(Jib : fore mast의 stay에 거는 삼각형 세로 돛의 일종)마다 발톱을 세운 갈색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슬레벤을 근거지로 삼은, 레빈탈 가(家)의 함선이다.
“어디야?”
“레빈탈인 것 같은데.”
“그래?”
레빈탈이라는 이름을 들은 엘베는 몸을 일으켰다.
지난 번, 아른헴에서의 돌발사태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가문 중 하나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론을 통해 전달 된 정보에 의하면 약 40만 마르크 정도의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레빈탈 가 전체의 재산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어쩔 거야?”
“전부 침몰시켜야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그가 미친 것이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엘베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셰어도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다가갈까?”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잖아.”
모자를 벗어 의자에 걸어놓은 엘베는 메인마스트를 향해 걸었다.
그곳에 닿은 엘베의 눈이 바다를 향했다. 순풍을 받아 빠르게 다가온 함선, ‘로즈마리’ 호를 본 엘베는 고물(stern : 선미. 함선의 뒤쪽 부분)을 향해 발을 옮겼다.
서서히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데도 포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동안 입은 손해를 만회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멍청한 놈들.”
확실히, 핫스퍼엔 꽤 많은 양의 담배가 실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팔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포격이 아닌 접근전을 유도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겨우 14000파운드 정도에 침을 흘리다니.”
“31만 마르크나 되니까. 충분히 그럴 만 하지.”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군.”
“…그거야 네놈이 괴물이니까 가능한 거고.”
“그런가.”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린 엘베의 시선이 로즈마리의 포어 마스트에 닿았다.
“이거 좀 들고 있어.”
“응?”
엘베가 내민 모자를 받아든 셰어도어의 눈에, 갑판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엘베의 모습이 보였다.
몇 번 본 모습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만, 엘베와 그를 따르는 핫스퍼의 선원들에겐 ‘조금 이상한 모습’으로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만큼, 핫스퍼의 선원들은 상식을 벗어난 일을 많이 경험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끝났나?”
고작 4분만에 로즈마리에서 백기가 올랐다.
마스트 셋이 모두 부러진 로즈마리가 물결에 밀려 핫스퍼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것을 본 셰어도어는 붉은 깃발을 들어올렸고, 그와 동시에 핫스퍼의 갑판으로 한 인영이 뛰어올랐다.
“왜?”
“조류. 벌써 저만큼이나 밀렸잖아.”
“그렇군.”
핫스퍼에서 거의 60야드나 밀린 로즈마리에서 시선을 돌린 아벨은 고개를 돌렸다.
두 척의 슬루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로즈마리에서 백기가 올라가는 순간 선수(뱃머리)를 돌렸다. 역풍이 불고 있는데도 빠르게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면서, 엘베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저건 어쩔 거야?”
“놔두면 알아서 수거해 가겠지.”
셰어도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돛을 내린 채 쉬고 있던 선원들이 셰어도어의 지시에 맞춰 배를 움직였다. 조류에 밀려 멀어져가는 로즈마리를 뒤로 한 채, 핫스퍼는 태양을 향해 달려나갔다.
잠시 후, 핫스퍼에서 한 발의 포환이 허공을 날았다.
대륙의 북단에 위치한 대국(大國) 트로이메라이의 바다는 함선의 항해엔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극에 가깝기 때문에 초여름에도 가끔 빙하가 밀려오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겨울의 끝자락에 닿은 지금은 그런 빙하를 더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 핫스퍼를 가로막은 빙산은, 그런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중 하나다.
“침로 변경! 북서쪽으로 22도!”
“아이, 아이, 써!”
포격을 받아 부서진 빙산의 일부가 핫스퍼로 향하는 것을 본 셰어도어의 명령을 들은 선원들의 움직임이 한층 더 빨라졌다.
기민한 움직임 덕분에 빙산을 피한 핫스퍼는 계속해서 서쪽을 향해 미끄러졌다.
어느새 수평선 너머를 향해 달려간 태양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짙은 노을이 구름을 물들일 무렵, 불어오는 바람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느낀 엘베는 미간을 찌푸렸다.
“폭풍이다.”
“뭐?”
“곧 폭풍이 몰려올 거야. 아무리 늦어도… 네 시간 정도면 올 것 같은데.”
“가장 가까운 항구가…….”
“늦어.”
품속에서 해도(海圖)를 꺼낸 엘베의 손가락이 한 지점에 멈췄다.
“이곳으로 간다.”
“스비츠바르겐?”
고개를 끄덕이며, 엘베는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스비츠바르겐이면,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지도엔 나와있지도 않은 섬. 고작해야 8평방 마일 정도의 면적 밖에 되지 않는 바위섬이다. 물론 주변에 더 작은 섬 몇 개가 있어 스비츠바르겐 제도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알스터가 아닌 다른 국가는 그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작은 섬에서 태풍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느낀 셰어도어는 한숨을 내쉬며 선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돛을 움직여 바람을 실은 핫스퍼는 서쪽을 향해 움직였다.
방향을 바꾼지 한 시간 후. 서쪽 수평선에서 모습을 드러낸 함선을 본 파수대에서 고함이 울렸다.
“시끄럽게.”
“뭐, 임무에 충실하다는 뜻도 되지 않겠어?”
“그렇긴 하지만.”
뭔가 떫은 듯한 표정을 지은 엘베는 고개를 들어 핫스퍼를 향해 다가오는 함선을 바라보았다.
핫스퍼에 비해 조금 작은 규모의 슬루프다. 어느 국가의 함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쪽에서 다가온다는 것은 카한에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어떡할까?”
“뭘?”
“공격할까?”
“글쎄.”
엘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이 조금씩 몰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 물결이 거칠어지진 않았지만, 폭풍이 몰아치는 것은 금방이다. 파도가 잔잔하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함장님! 함선이 사격 가능 거리로 들어왔습니다!”
“…포격 실시.”
“엘베?”
“공격할 이유는 없지만, 그냥 보낼 수도 없지.”
“뭐?”
“아직, 재계는 정부를 완전히 믿고 있지 않으니까.”
조금 굳은 얼굴로 입술을 들썩이던 엘베의 등 뒤로, 하얀 포연이 허공을 수놓았다.
갑작스런 포격을 받은 적함은 당황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적함을 향해 몇 차례의 포격을 더 가한 핫스퍼는 돛을 움직여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며 적함을 향해 다가갔다.
화이트샌드. 하얀 모래라는 글자가 적힌 선수를 들이받은 핫스퍼에서 수많은 갈고리가 날아들었다. 당황한 화이트샌드의 선원들은 검을 들어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잘라내려 했지만, 연결된 갈고리는 너무 많았다.
커틀라스를 든 선원들이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타고 화이트샌드로 뛰어들었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는 바람을 느끼며, 엘베는 눈살을 찌푸렸다.
“셰어도어.”
“응?”
“닻을 올려.”
“뭐?”
“곧 폭풍이 올 거야. 최대한 빨리 끝낼테니까, 일단 닻을 올려.”
“어, 어이!”
당황한 듯한 셰어도어는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엘베는 그런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리지 않은 채 화이트샌드의 갑판으로 뛰어올랐다.
화이트샌드의 갑판에선 꽤 치열한 격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뱃사람으로 자란 알스터의 선원들은 화이트샌드의 선원들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아마도, 몇 분 후면 전투는 끝날 것 같았다.
“응?”
갈색 눈동자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을 느낀 엘베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한 인인가.’
그의 남색 머리카락을 본 엘베는 그가 카한에서 온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한엔 갈색 눈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해 낸 엘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신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엘베는 그가 카한의 사람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이익!”
“…귀찮게.”
뒤쪽에서 달려드는 적이 있다는 것을 느낀 엘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엘베를 향해 달려든 화이트샌드의 선원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갑판으로 떨어졌다.
아래턱이 입 안으로 함몰되어 버린 그를 본 화이트샌드의 선원 몇이 그대로 검을 떨어뜨렸다.
“괴, 괴물!”
“시끄러워.”
기분이 나빠진 엘베는 선장실이 있는 곳을 향해 발을 떼었다. 그러나 이상한 느낌이 그를 사로잡아, 그는 몸을 돌리며 고함을 질렀다.
“모두, 핫스퍼로 복귀한다!”
“함장님?”
“당장!”
눈을 크게 떠올리며 내지른 고함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화이트샌드의 갑판에 발을 대고 있던 핫스퍼의 선원 모두가 황급히 발을 돌려 핫스퍼로 향했다.
“어, 어째서?”
“흥이 깨졌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 화이트샌드의 선원에게 비웃음을 날린 엘베는, 그대로 핫스퍼의 갑판으로 뛰어올랐다.
“함장님?”
“포격 준비.”
“예?”
“포격 준비.”
“아… 아이, 아이, 써.”
잔뜩 굳은 얼굴을 애써 들어올린 선원 하나가 경례와 함께 갑판 아래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뭔가 있어.”
멀어지는 화이트샌드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엘베는 고개를 돌려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포격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서향 32도. 포격.”
“하지만, 그곳은…….”
“포격.”
잠깐의 소요 이후 포격이 이루어졌다.
포격을 받은 바다가 흔들렸다. 마치 소용돌이라도 일어나려는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 캬아아!
“서, 서펜트!”
마구 일렁이던 수면 위로, 검은 비늘을 가진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핫스퍼는 물론, 이미 멀어진 화이트샌드에서도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엘베는 그런 비명을 지르는 대신 선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포격 준비.”
그다지 크지 않은 소리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정신을 놓고 있던 선원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선원들은 이를 악문 채 발을 움직였고, 핫스퍼와 서펜트의 거리가 반 마일로 좁혀졌을 때쯤 다시 핫스퍼에서 포연이 일었다.
이미 화이트샌드는 서펜트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제지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서펜트는 무장을 갖춘 전함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서펜트가 다시 핫스퍼를 향해 달려들었다.
“칼 좀 빌리지.”
옆에 있던 선원에게서 커틀라스를 빼앗아 든 엘베는 서펜트를 향해 그것을 집어던졌다.
수면 밖으로 빠져나온 몸의 길이만 60피트에 달하는 서펜트에 비하면 엘베가 집어던진 커틀라스는 너무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검은 서펜트의 비늘을 파고들었고, 극심한 고통을 느낀 서펜트는 몸을 마구 흔들며 기괴한 고함을 질렀다.
“엘베?”
“선수를 북쪽으로.”
“뭐?”
“폭풍이다.”
어느새 검은 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조금씩 거세지는 바람을 느낀 셰어도어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선원들도 그것을 느낀 듯, 서펜트를 향해 다시 포격을 가한 그들은 재빨리 돛을 움직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서펜트는 이를 잔뜩 드러낸채 핫스퍼를 추격했다. 그러나 돛에 바람을 잔뜩 실은 핫스퍼는 서펜트의 추격을 가볍게 따돌리며 폭풍을 피해 달아났다.
“…이 해역으로는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좋겠어.”
멀어지는 핫스퍼를 향해 울음을 토해내는 서펜트를 보며, 엘베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씩 파도가 거칠어졌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어느새 폭우로 변해 있었다. 아직 폭풍이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위험했다.
“스비츠바르겐은?”
“거의 다 왔어!”
입술을 깨문 엘베가 고개를 들어올릴 무렵, 파수대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스비츠바르겐이다!”
“…다행이군.”
저 멀리서 보이는 바위섬에 시선을 고정시킨 엘베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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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크로스 오버!!!
엘베와 전의 조우입니다.(몇 초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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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black water(11) | 刈 | 2006/05/09 | 3277 |
10 | black water(10) | 刈 | 2006/05/04 | 3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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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black water(2) | 刈 | 2006/01/24 | 2351 |
1 | black water(1) | 刈 | 2006/01/23 | 2308 |